비제도권에서 신학·인문학을 바탕으로 시대를 사유하고자 하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합니다. 이 시대 주목할 만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를 소개하는 에라스무스 연구원들의 글을 차례대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광장에 선 종교와 정치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둘러싼 탐구는 오늘날 개인 일상과 정치 공동체, 국제 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갈등 원인의 맥락을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주제로 자리매김했다. 공론장에서 제기되는 종교의 신념 문제와 혐오의 정치, 종교적 금기와 언론의자유 관계 등은 '문화 전쟁'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다.

국제정치 분야로 논의를 확장해 보면 테러와 내전, 전쟁 정치로 극단화한 정치투쟁에는 종교 집단의 정치 세력화 문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와 같은 정치 경제의 종교성이 함께 드러난다. 세계 정치에서 종교와 정치의 매트릭스가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인지 평화의 도화선이 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관심 역시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와 종교 관계를 근원적으로 탐구하고 포괄적인 인식 지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교 문제를 시민사회의 한 영역으로 간주하거나, 통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기제 혹은 이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선 연구가 필요하다. 세속화 테제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세속 근대성과 분화 논리 그 자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신학-정치적 상상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 연구 흐름은 근대 이후에도 정치신학의 권력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논의가 전개된다. 신을 쫓아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신의 자리는 남아 있으며, 그 자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믿음의 자리 역시 상존한다. 이 글에서 소개할 윌리엄 캐버너(William T. Cavanaugh, 1963~)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둔 가톨릭 전통의 비판적 정치신학자다.

윌리엄 캐버너에 관하여

윌리엄 캐버너는 1963년생으로, 노트르담대학교에 입학해서 1984년에 신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급진적 방법론의 도전: 혼 소브리노와 우고 아스만의 방법론 비교'라는 제목으로 석사 논문을 작성했다. 캐버너는 칠레 군부독재 정권 치하에서 빈민가에 머무르면서 교회 사목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박사 학위논문의 주제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듀크대학교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1996년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캐버너의 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해서 출판한 첫 번째 저작인 <고문과 성찬례>(1998)는 신학계 내부에서 호평을 받았다. 일례로 사라 코클리는 (2010년 시점에서) 지난 25년 동안 출판된 신학 저술 가운데 핵심적인 작품 5권 중 하나로 캐버너의 저작을 선정한 바 있다. 캐버너의 담론이 인문·사회과학계 일반에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근대 종교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담아낸 <종교적 폭력이라는 신화>(2009)의 출판이었다. 현재 드폴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캐버너의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신학, 경제 윤리, 교회론을 아우른다. 더 근래에 출판된 그의 저작으로는 <야전병원>(2016)이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번역서로는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2019, 비아)가 있다.

미국의 가톨릭 정치신학자 윌리엄 캐버너( William T. Cavanaugh, 1963~). 사진 출처 노트르담대학교 홈페이지
미국의 가톨릭 정치신학자 윌리엄 캐버너( William T. Cavanaugh, 1963~). 사진 출처 노트르담대학교 홈페이지

캐버너는 기아와 빈곤의 현실은 외면한 채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사랑을 말하고,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행위를 "최악의 착취를 덮는 위장"이라고 강렬하게 비판한다.1) 또한 종교를 공적인 것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의 사사화 담론을 반대하면서 '인간의 번영'(human flourishing)을 도모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공적 공간에 활발하게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비판적 정치신학자로서 지배적인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을 따져 묻는다. 그는 국가와 종교에 대한 주류 서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을 거부한다. 이미 주어진 설정 안에서 알고 있다고 간주한 신앙 실천을 강화·발전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인식 지평을 심화하는 작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종교전쟁'과
사적 영역으로서 종교 개념의 '발명'

캐버너는 근대 세속화라는 일반적 통념과는 다른 시각에서 초기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관련한 서사를 조망한다. 관례적인 이해에 따르면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전쟁'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유럽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선언됐다. 이를테면 마크 릴라는 <사산된 신>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유발한 핵심 문제는 그리스도교 세계 내부의 신학 교리 문제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의 은총과 예정론, 예수의 인격과 성찬 같은 신학 교리의 차이가 광신주의를 불러왔고, 유럽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했다는 것이다.2)

캐버너 역시 역사 속에서 신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사돼 왔다고 말한다. 나아가 폭력과 학살을 자행한 이들이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라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주장 이면에 은폐된 '꼬리 자르기' 전략을 비판한다. 자신이 소속된 종교의 나쁜 동료 신자를 비웃고 조롱하면서 마치 자신은 거룩한 존재처럼 보이려고 하는 '구별 짓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와 폭력의 상관관계에서 캐버너가 문제시하는 지점은 엄밀한 인과관계 여부다. 사람은 온갖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그렇다면 "종교 아닌 것보다 종교가 특별히 더 폭력을 조장하는 성향이 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3)

캐버너는 종교적 폭력의 대표 사례로 제시되고 관례상 정교분리 원칙의 분기점으로 간주되는 근대 초기 유럽의 종교전쟁 서사를 다시 읽는다.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군대가 '루터파' 비텐베르크가 아닌 '가톨릭' 로마를 약탈한 사례나 리슐리외 추기경 휘하에 있던 프랑스의 '가톨릭' 군대가 '가톨릭' 합스부르크가를 견제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세력인 스웨덴을 도운 사실 등 역사적 정황을 검토하면서, 캐버너는 종교전쟁이 단순히 프로테스탄트주의와 가톨릭주의 사이에 일어난 갈등으로 해석될 수 없음을 주지시킨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종교적 광신에 두고, 세속화한 국가 중심의 세계를 조직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는 담론은 근대국가의 '창세신화'(creation myth)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전쟁'은 근대국가의 탄생을 필요로 한 사건이 아니었다. 실제로 '종교전쟁'은 그 자체가 국가의 산고産苦였다".4) 캐버너는 유럽의 신흥국가들이 전쟁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장악한 국가가 점차 신성화神聖化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근대 세계로의 전환을 '탈주술화된'(disenchanted) 정치 세계로의 진입이라기보다 '성스러움의 전이'(migration of the holy)로 조망하는 것이 더 적실하다는 것이다.5)

2014년 '종교적 폭력의 신화'를 주제로 강의하는 윌리엄 캐버너. The College of St. Scholastica 유튜브 채널 갈무리
2014년 '종교적 폭력이라는 신화'를 주제로 강의하는 윌리엄 캐버너. The College of St. Scholastica 유튜브 채널 갈무리

근대 초기 유럽 신흥국가들이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거대한 전쟁을 '종교전쟁'으로 통칭하는 게 적절한지도 쟁점이지만, 캐버너는 이 시기를 경유하면서 종교 개념이 새롭게 발명됐다는 점을 주목한다. "핵심 변화는 개인 신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공적인 충성과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믿음의 집합체로서 '종교'가 창조됐다"는 것이다.6) '사적 신념으로서의 종교' 개념 탄생에 주목하는 작업은 탈랄 아사드의 계보학적 관심에 잇닿아 있다. 그는 종교를 규정하는 작업이 특수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담론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7)

근대 전환기에 종교는 '정치'와 분리돼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 간주됐다. 새롭게 등장한 종교 개념을 통해 "종교의 공간에서 공동 실천과 규율의 자리를 대신해 배치된 것은 '신앙', '양심', '감수성' 등이었다". 캐버너는 종교를 신앙 공동체로부터 분리하고 모든 이들에게 공통으로 내재된 보편 진리에 기반을 둔 신념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역사화한다. 또한 그는 "종교의 독특한 본질을 규명하고, '정치'나 '경제'의 부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혐의에서 종교를 보호하려는 시도가 실제로는 근대에 일어난, 담론과 권력 영역에서 종교를 제거하려는 작업과 연결돼" 있다는 아사드의 주장에 찬동한다.8)

캐버너의 시각은 종교를 개인 내면이라는 사적 영역에 한정하는 방식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제시한 홉스의 논의와 대비된다. 홉스적 자연 상태 혹은 내전 상황에서 평화로 향하는 길은 교회와 국가의 온전한 일치다. <리바이어던> 표지가 보여 주는 것처럼 주권자가 통치하는 '커먼웰스'(Commonwealth)는 교권과 속권을 모두 포섭한다.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고 세속 통치자들이 종교 교리 갈등까지 총괄"하면서, 신앙은 내면적 영역에 한정된다.9)

캐버너의 관점에서 교회가 정치 공동체에 강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교분리 원칙은 좋은 소식이다. 동시에 캐버너는 여전히 교회의 공적 증언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종교를 사적 영역에 가두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종교 권력을 '길들이고' 국가 주권이 중심이 된 근대국가 질서는 '폭력의 세계'에서 '평화의 세계로' 이행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이후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발생한 여러 "전쟁은 궁극적인 충성이 국민국가로 이양된 것으로, 전쟁의 만행을 억제하지 못했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10)

이러한 캐버너의 권력 비판 담론이 국가 폭력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논점이 제기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캐버너가 교회의 실천에 '낙관적 전망'을 과도하게 부여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조직체로서 교회와 국가는 모두 집단생활에 있어 '폭력적 희생제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양자는 "집단 존속을 위해 일부 구성원들이 희생하는 문제"에 당면한다. 혹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외부자를 희생양 삼는 문제에 직면한다.

신앙 공동체의 '고백주의'(confessionalism)와 근대국가의 '애국주의'(patriotism) 역시 상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세대가 지속되는 집단을 결집"하기 위해 희생의 언어를 내세운다. 지상의 어떤 조직도 현실에서 '희생'과 관련한 지배와 억압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11) 래드너는 캐버너가 그리스도교인들이 참여했던 "폭력의 현장 한복판에서 드러난 실패"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12)

캐버너는 자신 역시 래드너와 동일하게 현실에서 작동하는 교회의 '타락'에 깊이 주의를 기울인다고 응답한다.13) 그는 권력 감시 담론으로 폭력에 공모했던 교회의 역사적 과오가 상쇄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일례로 "고문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일부"였으며, "교회는 종교재판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그가 국가 폭력을 화두로 삼는 것은 이 주제가 "그들"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14)

캐버너 관점에서 '중간기'(interim)의 교회는 "죄와 구원의 변증법 드라마" 안에 존재한다. 캐버너는 신앙과 불신앙이 '혼합된 몸'(corpus permixtum)인 지상교회는 "'적그리스도'(anti-Christ) 요소를 포함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을 수용한다.15) 캐버너는 학살에 대한 기억을 덮지 않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삶은, 오늘날 고문과 학대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압제를 반대하고 억눌린 이들과 연대할 때 나타난다고 말한다.16)

공적 영역에서의 신앙 투쟁:
국가 폭력에 맞선 증언 공동체

캐버너는 20세기 후반 칠레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과 이에 맞서는 저항신학 운동의 역사를 통해 교회의 공적 증언 사례를 검토한다. <고문과 성찬례>는 피노체트 정권에 굴복하던 칠레 교회가 이후 성찬례에 담긴 급진적인 저항신학을 발전시키면서 독재에 맞서 싸운 역사를 담고 있다.

1973년 쿠데타 직후 "민주주의는 때로는 피로 씻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피노체트는 17년 동안 군사독재로 칠레를 지배했다. 그의 집권 시기에 수많은 사람이 강제 구금과 고문으로 피해를 입었고, 공식 보고서 집계로만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칠레 교회는 초기에는 정권에 굴복했지만, 현실의 참상이 계속되면서 본격적인 저항운동에 돌입하게 된다. 캐버너는 정치투쟁에서 성찬례의 정치신학 담론과 실천이 유효했다고 평가한다.

칠레의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197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99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칠레의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197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99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피노체트 정권은 반대자를 억압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규율 장치로 고문을 사용했다. 캐버너는 공포를 유발하는 고문 정치를 '전례'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고문을 "집합적인 퍼포먼스(collective performance)이자 사회적 신체를 조직화"하는 "도착된 전례"(perverted liturgy)로 규정한다. 고문이라는 전례가 도착적인 까닭은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기보다 서로를 의심하는 개인들로 원자화하는 집합체로 조직화하기 때문이다".17) 캐버너는 고문과 같은 인권유린이 신체적 폭행 이상이라고 지적한다. 고문을 통해 정권은 '개인의 신체'(개별 시민)뿐 아니라 국가권력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신체'(사회단체)를 박멸하고자 했다.

고문은 국가권력에 대한 공적 비판을 원천봉쇄하여 독재를 공고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와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단체가 정치 영역에서 작동되지 않도록 하고, 개인을 고립화하는 전략이었다. 교회는 "국가에 대응할 역량을 갖춘 훈육된 단체로 구비돼야만 했지만", 캐버너에 따르면 교회의 초기 대응은 무력했다.18) 일부 각성된 이들이 독재에 저항했지만, 교회가 집합적으로 압제에 맞서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캐버너는 교회 역할을 사적 영역으로 제한하는 신학 담론이 피노체트 독재에 맞서는 자원으로 '불충분했다'는 논쟁적 주장을 펼친다. 정권이 고문 정치로 파편화·무력화한 대상이 사회적 몸(사회단체)인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을 사적 영역으로 제한하게 되면, 공적 영역에서 정치적 저항운동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피노체트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 교회가 칠레평화협력위원회를 통해 실직자와 투옥자, 그 밖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돌봄 사역을 진행했지만, 공적인 장에서 국가에 저항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피노체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위원회를 장악했다'고 주장하고 라울 실바 엔리케스 추기경에게 사임을 종용하면서 정세는 변하기 시작했다. 교회와 정권의 긴장은 고조했고, 교회는 적극적으로 정권에 맞서는 저항운동에 나서게 된다. 캐버너에 따르면 칠레 교회는 과거의 신학 용법을 여전히 차용했지만, 이후 강조점이 달랐다.

주교들은 "신앙이 비단 개인 내면의 양심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또한 성직자는 정치 참여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은 평신도에게 주어진 책임으로 간주하는 게 일반 원리이지만, 정치 현장에서는 두 차원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정부 정책이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의 근본 요소에 관여돼 있는 경우, 교회는 신앙 윤리를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19) 이러한 흐름에서 칠레 교회는 '연대사목회'(Vicariate of Solidarity)와 '고문에 반대하는 세바스찬 아체베도 운동'(Sebastían Acevedo Movement Against Torture)를 통해 독재 정권에 적극 항거한다.

캐버너는 저항운동의 흐름 속에서 정세 변화를 계기로 새롭게 구성된 성찬례의 정치신학적 역할에 주목한다. '갱신된' 성찬신학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된 공간으로 간주하는" 기존 관념을 버리고, 국가 폭력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는 정치신학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20) 칠레 가톨릭교회는 성찬례를 통해 국가 폭력을 단죄하고, 고문 기술자들을 출교해 성찬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거리를 점거하는 등 결속된 교회를 공적인 장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냈다. 고문은 성찬례에서 파문 대상이 됐고, 연장선상에서 거리의 전례에서도 단죄되고 있었다.

캐버너는 저항운동에 투신한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찬례가 고문 정치에 대항하는 중요한 신학적 자원이었음을 확인한다. 성찬례를 통해 공적 무대에서는 고문과 학살을 당한 예수 사건이 기억되고 있었다. 교회는 성찬 전례를 통해서 고난받은 그리스도 사건을 반복적으로 기억하고, 거리로 나와 고문을 자행한 세속 권력을 단죄했다. 교회의 규율은 하느님나라의 도래 관점에서 현재의 참혹한 악을 축출하는 것으로 이해됐는데, 고문기술자에게 영성체를 금지하고, 집합적 차원에서 출교 조치를 명한 것은 이러한 규율의 일환이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지금까지 칠레 사례를 들어 박해 담론과 국가에 대한 교회의 자유 담론을 '독재에 맞서는 저항신학'이라는 맥락에서 논의했다. 그런데 '폭력 국가'에 대항하는 '성찬 교회'라는 대립 구도가 정치 현실 일반에서 유효한 범주인지는 추가적 검토가 필요하다. 고문 정치라는 현실의 특수성을 일반화해,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에서 유효한 '신학-정치적 상상'을 상이한 정치 현실에 곧바로 투영할 경우, "신학적 수사와 정치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긴장과 뒤얽힘을 무시할 수 있다. 또한 "지나치게 순수한 형태"의 비판적 시민성을 상정할 경우 다층적인 정치 현실에서 일어나는 "법과 정치, 교회의 모호한 경계 공간의 복잡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정치 세계의 복합성은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는 마니교적 선악 이원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21)

역사적 맥락과 지역적 차이를 고려하면서, 고문 정치로 공론장이 폐쇄된 시·공간에서의 종교 자유 담론과 민주화한 세계의 공론장에서 제기되는 종교 자유 담론은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 노골적인 방식으로 고문과 사살을 정당화하지 않는 사회에서 박해 담론과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종교 자유 담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별도로 논의할 주제다.

공론장에서의 박해 담론 남용과
종교 자유의 지향점

현대 미국에서는 종교 자유와 박해 담론, 혐오 정치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2010년대를 지나면서 박해의 수사(rhetoric)가 쟁점이 되었을 때 캔디다 모스는 <박해의 신화>를 출간하면서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22) 모스는 과거 순교 담론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현대 공론장에서 진행 중인 박해 담론에 비판적으로 관여한다.

모스는 "그리스도교도가 공격받는 세계가 창조"된 근저에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박해의 역사로 이해하는 인식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문제화한다. 모스는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상대를 지우는 것을 정당화하는 원천으로 박해 담론을 지목하면서, 정치적 담화에서 호전적 문법을 취한다는 점에서 박해 담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다.23)

모스를 자극했던 박해의 수사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정부의 낙태 및 피임약 보험 의무화 정책 등에 반대했던 대니얼 젠키 주교의 강론이었다. 젠키는 오바마의 정책이 '히틀러나 스탈린의 종교 박해 정책과 비슷하다'는 강론을 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또한 미국 주교들은 <우리에게 가장 우선되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를 출간하고 가톨릭 신념과 충돌되는 정책 반대를 표명하면서 종교 자유를 주장했다. 이들은 2016년 <자유의 증인들>에서 자신들을 '순교자의 역사' 행렬에 위치시키면서 선전하고 있었다.

9월 2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발언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9월 2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발언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캐버너는 모스의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 담론 해석에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공적 토론에는 수많은 수사의 과잉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근거와 '시민 교양'(civility)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모스와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교회와 세상의 긴장"을 "그리스도교 내부의 병리적 증상으로만 환원"하는 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24)

캐버너는 정치 세계의 종교적 국면을 진지하게 수용하면서, 공론장이 세속 합리성의 '자유 공간'(free space)이라기보다 '성스러움'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실천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신들의 전쟁'(Krieg der Götter) 공간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후기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신이 된 시장'(Market as God)은 가톨릭 성찬신학을 전도시킨다.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하는 가톨릭 성찬신학과 달리, 시장 종교는 "신성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교환 가능한 판매 품목으로 변형"한다. 시장의 미사에서 종이 울리면, "어머니 대지, 조상의 안식처, 성스러운 산, 신비로운 숲, 미적 영감의 원천, 신성한 영역" 등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땅은 모두 "부동산으로 녹아든다".25)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현대의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를 "고대 금송아지 숭배"의 변형이라고 말한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절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사회 내부의 최하층으로 강등당하는 것을 넘어 사회 바깥으로 쫓겨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프란치스코는 강한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이를 단죄한다.26)

프란치스코가 문제를 제기할 때, 자율적이고 세속적인 공론장 내부에서 기술적인 문제 해결책을 도모할 것을 촉구하기보다 '우상숭배'라는 묵시론적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도를 캐버너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의 경고음은 교회와 세상의 정면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교회와 세상의 긴장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비판이었다. 시장전체주의에 대한 질타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 권력에 기생하면서 자기 확장을 꾀하는 교회를 향한 '자기비판'인 것이다.27)

캐버너는 종교 공동체의 자유가 공론장에서 보호될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28) 하지만 이와 동시에 종교 자유를 주장한 미국 가톨릭 주교들의 캠페인이 미국 애국주의에 호소한다는 점과 그들이 내세운 의제가 미국 내 특정 정책에 지나치게 배타적인 방식으로 초점을 맞춘 데 유감을 표명한다. 국제사회에 만연한 종교·민족 분쟁이 서로 얽혀 일어나는 학살, 사회 내 소수 종교 기관에서 일어난 테러와 같은 사건들은 종교 자유와 관련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29) 또한 캠페인에서 내세운 박해 담론은 모스가 비판한 '박해의 신화'를 전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한다.30)

캐버너는 "미국에서 종교 자유와 박해 담론이 과장되고 유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는 불일치(disagreement)와 차별(discrimination), 박해(persecution)와 같은 용례를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31) 이를테면 '차별'과 '의견 불일치' 문제는 주의 깊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입장 차이가 있는 문제를 두고 박해로 과장해서도 안 된다. 나아가 박해 문제는 세분화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박해받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박해 담론을 통해 무고한 희생자라는 지위를 확보해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고 상대를 비인간화·악마화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전개된 박해 담론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지라르가 발전시킨 것처럼 그리스도교 전통은 희생자가 무고한 자였음을 밝히면서, 박해받은 이들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권력을 취하는 방편으로 '박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박해 담론을 오용하는 이들도 나타난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을 수탈하기도 한다.32)

박해 담론이 공론장에서 논의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부정적 효과를 비판하면서도, 캐버너는 박해 담론 자체를 완전히 기각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에는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실제로 박해받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모스의 관점과 달리 긴장과 반대를 둘러싼 모든 논의가 '무고한 희생자의 지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캐버너는 지적한다. 반대에 부딪히고, 고난받게 될 것을 예상하는 것과 '고통과 순교를 낭만화'하는 것은 명백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가령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버밍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시위자들의 숭고한 용기와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를 두고 고난 그 자체가 좋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33)

캐버너는 지라르의 희생양 기제를 참조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배척되고 소외된 희생자의 삶 곁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갈 때 긴장과 반대는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주류 사회와의 대립과 긴장은 사회적 배제를 은폐하는 규범에 안주하지 않고 억눌린 이들과 연대할 때 찾아오는 삶이라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버밍엄 감옥에서 옥중 서신을 보내면서 당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법과 질서"가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을 명백하게 배제하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직접행동을 하는 이들이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감추어져 있던 긴장을 드러낼 뿐이다".34)

캐버너는 종교 자유가 과거에 장악했던 문화 권력을 다시 쟁취하는 방향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종교 자유와 관련해서 가톨릭 신앙에 기초해 '낙태'를 반대하는 신념은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이 타인에 대한 강제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캐버너는 이 문제만을 특권화하면서 선거 정치로 곧바로 돌진하거나 실력 행사를 불사하면서 권력을 동원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만약 임신중절과 관련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가 있다면, 권력정치 대신 생명 문화를 꽃피우고 "임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여성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35)

캐버너는 다양한 형태로 인권과 생명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존재할 때 국가에게만 공동선을 모색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신앙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국가의 역할은 일정한 차원에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개인들에게 형식적 평등을 부과"한 국가는 불완전하게나마 "타자에 대한 돌봄을 제도화해 왔는데, 이는 선한 것으로 경축할 것이며, 어떤 면에서 그것은 '복음의 사역'(the outworking of the gospel)"이다.36)

캐버너는 복지국가는 "누군가가 어떤 공동체에 속했는가와 무관하게 개인에 대한 돌봄과 존중을 제도화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는 서구 역사에서 "복지국가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복음의 명령을 제도화하는 시도"였음을 인정한다. 다만 여기에서 그는 이반 일리히를 따라 복음서에 나타난 사랑의 정신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타락'에 주목한다. 이반 일리히는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된" 사랑이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마음은 담기지 않은 채 거대한 관료 사회로 변질된 모습을 비판한 바 있다.37)

캐버너 역시 복지국가의 목표가 인격적이고 상호 의존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자립에 있다는 점을 문제시한다.38) 그는 근원적인 수준에서 국가를 공동선을 담지하는 주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매킨타이어의 관점에 동의한다. 아울러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가톨릭일꾼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을 개시한 도로시 데이의 '인격주의'(personalism) 노선을 따라 지금 여기에서의 상호 책임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캐버너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억눌리고 고통받는 이들과 교회가 연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에도, 의료품과 음식, 어린이들 장난감을 가지고 이라크를 방문했던 반전 단체 '광야의목소리'(Voices in the Wilderness)가 좋은 사례라고 그는 말한다.39) 국가권력에 대안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교회의 단독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모범으로 제시한 '광야의목소리' 역시 가톨릭일꾼운동에서 활동하는 캐시 켈리뿐 아니라, 다양한 신앙 전통 및 세속 세계 운동가가 연대하는 단체였다.

가톨릭일꾼운동에서 활동하는 캐버너는 도로시 데이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를 통해 형성되는 그리스도의 몸을 종말론적 완성 차원에서 이해한다. 도로시 데이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자리는 제도 교회의 그것과 무관하다. 그리스도의 몸을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게 될 때,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선은 급진적으로 해체되는데, 이는 "현재 모든 사람은 최소한 잠재적으로나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40)

캐버너는 성찬례가 구성원들에게 인격성과 상호 의존성에 힘을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찬례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Eucharistic Identity)을 지닌 이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구성된 공간을 걷는다. 성찬례를 받은 이들이 잠재적인 그리스도의 몸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을 동료 시민으로 삼고 특별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 안에서 숨어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상 세계와 사람들 안에서 '성사적 심연'을 발견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화해와 회복, 평화운동에 동참하는 삶을 '성사적 삶'(Sacramental Life)으로 호명한다.

'콘스탄티누스주의'를 떠나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로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캐버너의 주된 관심은 '야전병원'(field hospital)으로서의 교회에 있다. "특정 구역에 주둔하면서, 침략에 방어하는 정착 기관과 달리, 야전병원은 기동성이 있으며, 기관 그 이상의 사건이다."41) 캐버너는 교회가 야전병원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소하려고 한 '콘스탄티누스주의'(Constantinianism)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그동안 '국가를 그리스도교화'(Christianizing the state)하는 기획을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제국의 폭력에 공모해 왔다는 것이다.42)

캐버너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야로 세계를 '읽어 내는'(readable) 장소로 배열하고 질서를 구축하는 시도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세계를 체계적으로 재편하는 '전략'(strategy)을 펼치기 위해서는 복합적·중층적 현실을 단순화하기 마련이고, 폭력적인 권력 조작(manipulation of power)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캐버너는 지배 권력의 체계화한 전략 대신에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전술'(tactics)을 가지고 순례하면서 '야전병원' 역할을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 그에 따르면, 순례길을 걷는 교회는 "특정한 장소를 방어하려고 애쓰거나" 자신의 영토를 특권화하는 대신에, "특정 장소를 통과하면서, 실천을 통해 장소를 다른 공간으로 변화시킨다".43)

국내 번역된 윌리엄 캐버너의 저서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과 성찬의 정치학>(비아).
국내 번역된 윌리엄 캐버너의 저서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과 성찬의 정치학>(비아).

교황 프란치스코를 따라 캐버너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에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그린다.44) 순례 공동체는 "지역 이웃과 낯선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대면"하면서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낸다. 그는 지배 권력의 테크놀로지가 완벽하게 결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지점을 염두에 두면서, 경계를 가로지르는 대안적 실천의 잠재력에 희망을 품는다.45) 순례 공동체의 희망은 참회하는 여정 속에서 피어난다고 캐버너는 말한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는 신앙 공동체는 그동안 사회 전역에 뻗어 있는 지배 권력에 공모해 온 내력을 참회하면서, 소외되고 억눌린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염병 위기 사태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를 타격하고 있다. 취약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재난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감염병 사태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그동안 겹겹이 쌓인 미해결 문제가 적나라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독재 정권 시대처럼 노골적인 신체 고문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배제되고 바깥에 내몰린 이들이 산업재해과 사회적 참사로 부서지고 찢겨 나가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류 사회의 표준화한 담론에서 이들의 절규는 소거돼 있다.

기업 권력을 모방하는 주류 종교 역시 표준화한 조직 관리를 넘어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탄식하는 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배척받고 소외된 이들은 사회·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종교 이데올로기적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캐버너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억눌리고 희생당한 이들을 교회의 실천 중심에 둘 것을 요청한다.46) 그는 <야전병원>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인용한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진다".47)

손민석 /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신학-정치적 문제와 정치철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윌리엄 캐버너의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비아)에 수록된 옮긴이의 글과 <철학, 사상, 문화> 34호에 실린 졸고('팬데믹 시대, 비판적 시민성과 정치신학: 윌리엄 캐버너의 담론을 중심으로') 일부를 발췌해 다듬은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십시오.
필자 논문 바로 가기: http://j.mp/3moGoE2

1) 윌리엄 캐버너 지음, 손민석 옮김. (2019).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비아). 194쪽.
2) Mark Lilla, The Stillborn God: Religion, Politics, and the Modern West, Vintage, 2007, 58쪽.
3) William T. Cavanaugh, "Religion, Violence, Nonsense, and Power", in James R. Lewis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Religion and Terror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23쪽.
4)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46쪽.
5) William T. Cavanaugh, "Eucharistic Identity in Modernity", in Joel Halldorf, Fredrik Wenell eds., Between the State and the Eucharist: Free Church Theology in Conversation with William T. Cavanaugh, Pickwick Publications, 2014, 164쪽.
6)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60쪽.
7) 아사드는 사적 신념으로서의 종교가 서구 근대의 경로에서 특수하게 나타난 역사적 산물에도 불구하고, 클리퍼드 기어츠 같은 인류학자가 이를 간과하고 서구 근대의 종교 개념을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종교 개념으로 일반화했다고 비판한다. Talal Asad. (1993). "The Construction of Religion as an Anthropological Category", in 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8)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135쪽.
9)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76쪽.
10)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81쪽.
11) Carolyn Marvin. (2014). "Religion and Realpolitik: Reflections on Sacrifice". Political Theology 15(6). 534쪽.
12) Ephraim Radner. (2012). A Brutal Unity: The Spiritual Politics of the Christian Church. Baylor University Press. 55쪽.
13) William T. Cavanaugh. (2014). "A Response to Radner’s A Brutal Unity". Syndicate 1(1).
14) William T. Cavanaugh. (2011). "How to Do Penance for the Inquisition". in Migrations of the Holy: God, State, an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Church. Eerdmans. 113쪽.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행한 고문과 피노체트 정권에서 '적에 대한 사회적 상상을 조성'한 작업을 비교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William T. Cavanaugh. (2006). "Making Enemies: The Imagination of Torture in Chile and the United States". Theology Today 63.
15) William T. Cavanaugh. (2011). "The Church as Political", in Migrations of the Holy: God, State, an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Church. Eerdmans. 140쪽.
16) "How to Do Penance for the Inquisition", 113쪽.
17) Torture and Eucharist, 12쪽.
18) Torture and Eucharist, 22쪽.
19) Torture and Eucharist, 113쪽.
20) Torture and Eucharist, 221쪽.
21) Anna Rowlands. (2018). "Against the Manichees: Immigration Detention and the Shaping of the Theo-political Imagination". in Ulrich Schmiedel", Graeme Smith, eds. Religion in the European Refugee Crisis. Palgrave Macmillan. 177쪽.
22) 모스는 그리스도교 전통 이전부터 존재한 순교 관념의 원천을 추적하면서,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전 내러티브를 상당 부분 차용했음을 논증한다. 아울러 초기 교회의 순교 담론 가운데 상당수는 꾸며진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데 주력한다. 가령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는 당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정적을 공격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순교자 이야기가 사용됐기 때문에, 에우세비우스 저술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박해의 현실이라기보다는 박해의 수사라는 것이다. Candida Moss. (2013). The Myth of Persecution: How Early Christians Invented a Story of Martyrdom. HarperOne.
23) The Myth of Persecution, 21쪽.
24) William T. Cavanaugh. (2019). "Is it Good to Be Persecuted", in Victor Lee Austin and Joel C. Danels eds. The Emerging Christian Minority. Cascade Books. 10쪽.
25) 하비 콕스 지음, 유강은 옮김. (2018). <신이 된 시장>(문예출판사). 19쪽.
26) 프란치스코 지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옮김, (2014). <복음의 기쁨>(한국천주교주교회의). 54~55쪽.
27) William T. Cavanaugh. (2015). "Return of the Golden Calf: Economy, Idolatry, and Secularization since Gaudium et spes". Theological Studies 76(4). 716쪽.
28) 캐버너가 개인과 공동체 문제에서 '혼종성'(hybridity), '다공성'(porosity) 주제를 철저히 다루었는지는 논쟁적이다. 가톨릭 공동체에서의 '성직자 정치'(priestcraft)가 초래하는 문제 역시 남겨진 과제다. 다음의 비판을 참고하라. Katie Grimes. (2017). "Corporate Vices, Ecclesial Consequences: Poking Holes in the Ecclesiology of “Battened-Down Hatches", in Christ Divided: Antiblackness as Corporate Vice. Fortress Press ; Udi Greenberg. (2020). "Radical Orthodoxy and the Rebirth of Christian Opposition to Human Rights", in Sarah Shortall, Daniel Steinmetz-Jenkins eds. Christianity and Human Rights Reconsider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29) "Is it Good to Be Persecuted", 14~15쪽.
30) "Is it Good to Be Persecuted", 12쪽.
31) "Is it Good to Be Persecuted", 15쪽.
32) "Is it Good to Be Persecuted", 18쪽.
33) "Is it Good to Be Persecuted", 17쪽.
34) Martin Luther King Jr. (1963). "Letter from Birmingham City Jail".
35) William T. Cavanaugh. (2020). "Electing Republicans has not reversed Roe v. Wade. It's Time to Change Our Strategy", America Magazine: The Jesuit Review.
36) Andre Forget. (2015). "The Public Square and the Kingdom of God", Anglican Journal.
37) "Eucharistic Identity in Modernity", 166~167쪽. 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서범석 옮김. (2010). <이반 일리히의 유언>(이파르). 100~102쪽.
38) 캐버너는 국가가 개인을 직접 상대하는 국가 중심의 '단순 공간'(simple space)이 아니라 사회적 소속을 둘러싼 충성과 투쟁의 관계가 복잡하게 재구성되는 '복합 공간'(complex space)을 현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새롭게 복원하고자 한다. 그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William T. Cavanaugh. (2011). "A Politics of Vulnerability", in Migrations of the Holy: God, State, an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Church. Eerdmans.
39) William T. Cavanaugh, "From One City to Two: Christian Reimagining of Political Space", in Migrations of the Holy: God, State, an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Church. Eerdmans, 2011, 68쪽.
40) William T. Cavanaugh. (2001). "Dorothy Day and the Mystical Body of Christ in the Second World War" in William Thorn, Phillip Runkel and Susan Mountin eds., Dorothy Day and the Catholic Worker Movement: Centenary Essays. Marquette University Press. 462쪽.
41) William T. Cavanaugh. (2016). Field Hospital: The Church's Engagement with a Wounded World. Eerdmans, 3쪽.
42) 콘스탄티누스주의와 관련된 학계 논쟁과 관련된 캐버너의 입장은 다음을 참고하라. William T. Cavanaugh. (2013). "What Constantine Has to Teach Us", in John D. Roth ed., Constantine Revisited: Leithart, Yoder, and the Constantinian Debate. Pickwick Publications.
43)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187쪽.
44) <복음의 기쁨>, 49쪽; Field Hospital, 3쪽.
45)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187쪽. 캐버너는 미셸 드 세르토의 '전략'과 '전술' 논의를 차용하면서, 자신의 저항신학을 재구성한다. 캐버너의 세르토 전유에 대한 평가는 다음을 참고하라. Antonio Eduardo Alonso. (2017). "Listening for the Cry: Certeau Beyond Strategies and Tactics". Modern Theology 33(3).
46) William T. Cavanaugh, "The Church as Political", 140쪽. 캐버너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신이 침묵을 깨는 순간은 신이 "밟히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할 때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신은 억압하는 이가 아닌 억눌린 자들 편에 있다는 점을 주지시킨 것이다. William T. Cavanaugh. (2019). "Please Don’t Go Out and Change the World: An Interview with William T. Cavanaugh", in Roberto Sirvent and Duncan B. Reyburn, eds., Theologies of Failure. Cascade Books. 128쪽.
47) <복음의 기쁨>, 30쪽; Field Hospital,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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