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교회 환경에서 다소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한국구약학회(배정훈 회장)는 7월 27일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가 연기된 춘계 학술 대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주제는 '구약성서와 젠더'. 발제자 유연희(감리교신학대학교)·이영미(한신대학교) 교수는 퀴어신학 관점에서 구약 본문을 해석했다.

한국에 있는 신학 학회에서 퀴어신학적 성서 해석을 듣는 일은 처음이다. 한국구약학회 배정훈 회장은 "성평등 주제가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지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교회는 신학을 요구하고 다시 신학은 교회를 이끌어 간다. 오늘 발표자들은 성경에 근거한 자신들의 신학을 제시할 것"이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배 회장은 젠더를 주제로 한 이번 발표들이 한국구약학회의 유일한 입장은 아니며 앞으로도 검증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성별 이분법 관점 버리면
성서 속 인물도 새롭게 해석 가능"

이영미 교수는 '구약성서 속의 젠더 해체하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퀴어신학 관점에서 성서 속 인물들을 해석했다. 퀴어신학이 취하고 있는 '퀴어 해석'은 "경계를 해체하는 상황적 읽기 전략으로, 익숙하게 여긴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퀴어신학이 성서를 성별 이분법에만 근거해 해석할 때 놓치는 지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자들은 여성·남성으로 이분화한 성 범주에 해당하지 않거나 이성애 중심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성서 본문은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퀴어 시각에서 본문을 해석하면 그 침묵을 깨고 경계를 뛰어넘는 요소들을 들추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미 교수는 "퀴어 해석은 여성신학·해방신학과 같이 상황적 읽기 전략 중 하나다. 전통적 해석의 이성애주의적 방침과 가정을 드러낸다. 그동안 성서 읽기를 지배해 온 해석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퀴어들의 경험과 어떻게 다른지 의심한다. 여성신학의 '의심의 해석학'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교수는 요셉이 걸친 '채색옷'이 그의 성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했다. 발표 영상 갈무리
이영미 교수는 요셉이 걸친 '채색옷'이 그의 성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했다. 발표 영상 갈무리

이런 접근법으로 보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인물을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영미 교수는 호주 신학자 마이클 카든 관점을 참고해, 이삭과 리브가를 기존 가부장적 부부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 역할을 수행하는 부부로 해석했다. 이삭은 이성애 가부장적 규범에 순응하고 본인의 소수자 섹슈얼리티를 외면하는 사람으로, 리브가는 강하고 자율적이며 어린 시절 집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여성으로 해석했다.

리브가와 유모 드보라의 관계에서 '자매애'(sisterhood)를 엿볼 수 있다고도 했다. 창세기는 종이었던 드보라의 죽음과 매장을 보도한다. 이 교수는 드보라가 그만큼 리브가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영미 교수는 두 번째로 야곱을 조명했다. 창세기는 야곱과 에서를 같은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서로 다른 젠더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한다. 어머니 리브가는 남성미가 넘치는 에서가 아닌 여성 같은 아들 야곱을 좋아한다. 리브가가 가부장적 질서를 회피하기 때문에 섬세하고 예쁜 소년 야곱을 통해 가계가 계승되길 원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색동옷을 입은 요셉은 전형적인 남성성의 이분법적 젠더 규범을 해체한다고 했다.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해 그에게 색동옷(케토벳 파심)을 입힌다. 케토벳 파심은 다른 구약성서에서 수놓았거나 장식이 달린 겉옷 혹은 다채로운 색의 겉옷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생물학적 남성인 요셉이 색동옷을 입고 지냈다는 점을 '크로스 드레싱' 사례로 들었다. 이 교수는 색동옷을 입고 다니던 여성스러운 요셉이 형제들에게 '젠더 폭력'을 당했다고 해석했다.

이영미 교수는 이처럼 퀴어신학 관점에서 구약성서 속 인물을 살펴보면 가부장 사회의 이분법적 젠더 경계를 해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가부장적 이분화한 젠더 개념을 본질적인 창조질서로 주장한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서를 혐오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야훼 하나님의 첫 창조물은
남성 여성 아닌 '안드로진' 가능성"

창세기는 보수 교계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제3의 성'은 있을 수 없고,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가족을 이루는 게 하나님 뜻이라 주장한다.

한국구약학회 국제학술이사이기도 한 유연희 교수는 '창세기 1~3장을 퀴어링하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유 박사는 본문을 퀴어 해석 관점에서 살펴보며, 야훼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사람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지닌 '안드로진'이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고대 랍비들, 초기 교부들, 신비주의자들 중 일부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이 안드로진이었다고 가정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이들은 창세기 인간 창조 서사를 각자의 목적, 배경 학문과 문화, 관심사에 따라 다르게 해석했다.

유연희 박사는 퀴어 해석법에 따르면,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유 박사는 미국 유대교 학자 마거릿 위닉의 견해를 빌려 '남자와 여자'는 문학적 대조 기법 '메리즘'(merism)이라고 했다. '저녁과 아침'이 그사이 모든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남자와 여자 사이 모든 성별 스펙트럼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그 사이의 모든 조합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흙으로 지은 사람'도 남과 여의 정체성을 띠지 않은, 성적으로 분화하지 않은 '흙 사람'이라는 신학자 필리스 트리블 견해를 소개했다. 유 박사는 이어 흙 사람이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지고, 서로 공동체를 일구어 살아가는 차원에서 둘이 다시 하나 되는 이야기가 창세기 2장이라고 했다.

유연희 박사는 창세기를 퀴어 해석 관점으로 읽으면,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주의 해석처럼 단순하거나 자명한 태도만으로는 모든 내용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 박사는 "퀴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시각에 바탕을 두고 창세기를 읽으면 폭넓은 시각을 경험할 수 있다"며 성서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연희 교수는 창세기를 퀴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발표 영상 갈무리
유연희 교수는 창세기를 퀴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발표 영상 갈무리

두 사람 발표에 대한 논찬 시간에는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학술 대회는 사전 녹화한 영상을 편집해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기에 상호 토론이 아닌 반론 제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사회를 맡은 남서울대 이사야 교수는 "논쟁적인 주제인 만큼 활발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영미 교수 발제에 대한 논찬자로 나선 서울장신대 윤동녕 교수는 이 교수가 '케토넷 파심'을 근거로 요셉의 성 정체성을 가늠한 것에 반론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성서 전체에서 케토넷 파심이 '긴 소매가 달린 겉옷'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며, 고고학자 킹(P. J. King), 스태거(L. E. Stager) 견해를 덧붙였다. 윤 교수는 "'채색옷'이 성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약간의 비약이고, 옷이나 외모를 통해 젠더를 구분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 아닌지 알고 싶다"고 했다.

유연희 교수 발제 논찬자 호서대 안근조 교수는 "'저녁과 아침'의 메리즘으로부터 창세기 1장 27절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건 주석적 결함이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창세기 1장 27절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며, 이미 하나님이 사람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을 묘사한다고 했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는 그사이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남'과 '여' 명확하게 구분되는 다른 '종류'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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