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도하에 있던 대학원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전 한신대학교 신학과 박 아무개 교수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은 5월 21일, 박 교수에게 강제추행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도 명했다. 다만 검찰이 청구한 신상 정보 공개 명령과 취업 제한 명령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교수직 파면 후 교육부에 교원 소청 심사를 청구하지 않은 점 △노회 재판에 불복해 교단에 제기한 상소를 취하한 점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등은 박 교수에게 유리한 정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호·감독하는 학생에게 범행을 저질러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속에 살아가게 된 점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 중인 피해자가 진로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한 점 △사건 직후 진정 어린 사과 없이 2차 가해를 입혀 피해자가 엄벌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징역 2년 6월이 적당하다고 했다.

대책위는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교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 생존자분들께도 오늘의 이 판결이 유의미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책위는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교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 생존자분들께도 오늘의 이 판결이 유의미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피해자와 뜻을 같이하며 연대해 온 한신대박OO(전)교수성폭력대책위원회(대책위)는 판결 직후 원주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며 가르치던 신학대학원의 목사 후보생에게 피감독자 간음을 저지른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것을 교계에도 명백히 일깨워 준 마땅한 판결"이라고 했다.

대책위원장 김희헌 목사(향린교회)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4년보다 형량이 줄어든 것은 유감이지만, 재판부가 양형 사유에 집착하지 않고 피해자 고통 호소를 인식하고 상식적으로 진행한 판결이다. 우리는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하고 각성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피해자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한신대신학대학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김평화 학생은 "본 사건이 발생한 물리적 장소가 가해자의 집이었다면 사회적 장소는 한신대다. 학교는 두 사람의 위계가 형성된 곳으로, 피해 생존자 회복에 힘썼어야 했다. 하지만 학교는 그동안 피해 생존자를 외면했다. 학교는 이제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대책위 입장문 전문. 

한신대 박OO (전)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대책위 입장문 

오늘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478일째 되는 날입니다. 2020년 5월 21일 오늘 원주지원 형사 제1단독 재판부 오승준 판사는 피고인 박OO씨에게 징역 2년 6월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에게 징역 4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 신상 정보 및 실명 공개, 취업 금지 3년을 구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려진 판결에서 재판부는 동종 범죄 전과가 없다는 점과 범행을 자백 인정하고 교원 소청 심사와 총회 재판을 취하했다는 점을 인정하여 양형 사유로 삼았습니다. 이는 유감입니다.

이 사건의 피해 생존자는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마주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엄중한 처벌을 선고해주시기를 부탁"한 바 있습니다. 오늘의 판결은 이렇듯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유의미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도 정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성폭력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며 가르치던 신학대학원의 목사 후보생에게 피감독자 간음을 저지른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것을 교계에도 명백히 일깨워 줄 것입니다.

오늘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피고와 피고 지인들에 의한 허위사실, 왜곡된 정보, 피해 생존자를 음해하고 모욕하는 다양한 언어들로 인해 피해 생존자가 감내해야 했던 2차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판결은 고통 속에서도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고자 애써 온 피해 생존자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촉발된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은 교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어디선가 행해지는 또 다른 피감독자에 의한 간음이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그루밍 성폭력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판결로 이러한 가해행위는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교계에도 각인되어야 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2019년 2월 1일부터 피해 생존자를 지지하고 연대해 온 대책위는 1심 선고 결과가 사건의 종결이 아님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피해 생존자가 더는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성폭력을 넘어 안전하고 평화로운 신학교와 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1심 판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자 합니다.

피해 생존자가 온전히 치유되기 전에 함부로 용서를 말하거나, 왜곡된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피해 생존자의 회복 과정을 방해하는 모든 언동에 대해 법적 조처를 할 수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건 해결에 대해 미진한 대응을 해온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등에 경고합니다. 이 사건에 책임 의식을 느끼고 철저한 대책 마련에 솔선수범해야하는 단위들은 현재까지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예방 대책을 수립하고, 피해 생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역시 교단에 소속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에 빠트린 이 사건의 뼈 아픈 교훈을 기억하며, 성폭력 예방과 처리를 위한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여 또 다른 피해 생존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신학교, 기독교 단체 등 교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 생존자분들께도 오늘의 이 판결이 유의미하길 기원합니다. 침묵을 끝내고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다(고전 12:26)."

2020년 5월 21일 
한신대박OO(전)교수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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