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보수 개신교계의 집단행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인권조례 제·개정을 막더니, 이제는 인권조례뿐 아니라 학생 인권조례, 양성평등 조례, 문화 다양성 조례, 민주 시민 교육 조례, 노동 인권조례 등 직접적 상관성이 낮은 조례들도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도 대전과 경기도구리와 부천 등지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은 10월부터 보수 교계 반대로 무산된 전국 지자체 조례 현황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를 12월 19일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발표했다. '반동성애 세력에 의한 전국 지자체 조례 제정 현황 조사 및 연구' 발표회에서는, <뉴스앤조이>가 앞서 보도한 지자체 21곳의 인권조례 제정 무산 사례 외에도 '동성애·이슬람 조장'이라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빛을 보지 못한 사례가 나왔다.

발표를 맡은 문화연구가 시우 씨는 "2012년부터 조례(규칙 포함)가 폐지되거나 제정이 무산·개악된 경우, 또 제정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친 경우를 합산하면 118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에 인권 관련 조례가 통과된 사례 역시 118건으로 동수를 이룬다. 산술적으로 조례 두 건이 발의되면 한 건은 보수 교계 반대로 폐기 혹은 보류되는 것이다.

인권조례 논의 초창기에는 진보 정당뿐 아니라 보수 정당 의원들도 앞장서 관련 조례를 발의해 왔다. 대표적으로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를 제정한 부산 해운대구 사례가 그렇다. 한나라당 의원과 진보신당 의원이 함께 발의해 조례를 만들었다.

그런 해운대구에서 보수 교계 반발로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했다는 점은, 오늘날 인권조례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해운대구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이든 지역 기독교연합회가 반동성애 운동 전위대 역할을 해 조직적으로 나선다. 이들은 반대 투쟁 선봉에 서서 집단 민원, 의회 앞 시위, 의원 로비 등으로 반대 운동을 벌인다. 전북처럼 '영적 대각성 집회'를 열어 대규모 교인을 동원하고, 이 자리에 반동성애 활동가를 불러 강의를 듣게 해 반대 운동의 명분을 제시하는 경우도 흔하다.

시우 씨는 "보수 개신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조직화된 반대 운동이 없다면 조례는 대부분 수월하게 제정된다"고 말했다. "보수 교계가 중심이 되지 않는 조직화된 반대 운동이 존재했느냐"는 질문에는 "한 건도 없었다"고 답했다.

10월부터 지자체 조례 상황을 연구해 온 시우 씨는 그동안 폐지되거나 무산, 반대 운동에 부딪친 사례가 118건이라고 했다. 조직화된 반대 운동에는 항상 보수 개신교계가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반동성애 집단의 조직적 시위가 먹혀 들어가는 상황은 의회 속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국 지방의회 속기록을 살펴본 시우 씨는, 보수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다수 발견했다.

2018년 12월 부산시 인권조례 일부 개정안이 본회의에 올라오자, 오은택 부산시의원(자유한국당)은 "서구의 타락한 문화를 추종하지 말고 한국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 윤리·도덕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2018년 2월 충남 인권조례 폐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송덕빈 충남도의원(자유한국당)은 "하나님의 성서에 나와 있는 말 그대로 저희들은 동성연애에 반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덕빈 의원은 2012년 충남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한 사람이다.

김용필 충남도의원(국민의당, 후에 자유한국당 입당)은 2017년 9월 도의회 본회의 5분 발언 시간에 "로마서 1장 27절에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되어 있다. 성경의 근본, 그것을 거부하는 이 부분에 관해 충남 20.7%(기독교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데 이들은 도민이 아니냐"고 말했다.

시우 씨는 교회가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출입국관리소'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동성애'와 '이슬람'이 세트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우 씨는 "인권 관련 조례가 발의되면, 그동안 가족의 가치가 준수되고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정의와 평화의 가치들이 지켜지던 공간에, 교란하고 왜곡시키는 이들이 갑자기 등장했다고 여긴다. 성소수자를 일종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로 여기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을 이 공간에서 추방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시우 씨는 이러한 조직화된 반대 운동은 '공적 논의'가 아니라고 말했다. 도리어 공적 논의를 이루는 사회적 장을 파괴하고 인권 정책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했을 때, 조례가 무산되는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이런 사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단체장들이나 의원이 몸을 사리고 경계하게 된다. 공론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자료 정리 및 체계화 작업을 거쳐 2020년 초 전국 조례 제정 실태를 연구 보고서 형태로 내놓을 예정이다.

부천, 2017년부터 조례 5개 실패
"목사님이 하라고 했다"는 교인들
수적·논리적 싸움 안 돼
"시민들에게 조례 필요성 알려야"

이란주 대표는 부천시의회가 제정을 시도했다 실패한 조례 5개 사례를 설명했다. "목사님이 시켜서 한다"는 교인들의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이기려면,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전국 상황 발표에 이어 아시아문화인권연대 이란주 대표가 부천 지역 사례를 소개했다. 부천은 2017년 '혐오 표현 및 차별 예방 조례' 제정 무산을 시작으로, 2019년 '인권조례', '문화 다양성 조례', '민주 시민 교육 조례' 제정 무산과 '성평등 조례' 개정 무산을 겪었다. 5개 모두 보수 개신교인들이 개입해서 실패했다.

2019년 6월 무산된 문화 다양성 조례는 본회의 상정 당일 철회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12년부터 준비한 조례여서 의원들의 이해도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속기록을 보니 '부천에 나체촌 생기는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나오더라. 논란 끝에 상임위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올렸다. 그런데 본회의에 올라가기 1주일 전부터 얼마나 세게 반대하던지, 그 사이에 모든 게 다 무너졌다. 본회의 있는 날 아침 의원들이 긴급회의를 하더니 철회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젠더전문관' 채용을 골자로 한 성평등 조례 개정 시도도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부천시장이 발의한 건데, 젠더전문관 만들어서 지역 의식을 높이려던 게 아니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여성 친화 도시'로 지정받아 국비를 타 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젠더'라는 단어 때문에 시의회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가 들어왔다. 부천시에서는 젠더전문관 → 성평등전문관 → 양성평등전문관으로 계속 후퇴시키면서 조례를 만들려고 하더라.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그렇게는 안 된다. 개악해서 여성 친화 도시 만들어야겠느냐. 자존심이라도 지키라'고 반대해 개정이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9월에는 인권조례와 민주 시민 교육 조례 제정을 놓고 시민사회와 보수 교계가 또 맞붙었다. 이란주 대표는 "시의원들도 문화 다양성 조례 철회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이번에도 반대 운동이 대단했지만, 시의원들이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이번 조례는 지킬 거라고 생각했다. 시의원들 의지가 어떤지 월요일부터 금요일 밤까지 매일 체크했다"고 말했다.

변수는 토요일이었다. 이란주 대표는 "토요일 아침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시의원들이 회의하더니 다 바뀌었다. 내년 총선이 있으니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시의원 공천권은 국회의원(지역위원장)이 갖고 있어서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란주 대표는 이 싸움이 논리적으로나 수적으로나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우선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교인들은 이 조례가 논리적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역 대형 교회 다니는 이웃들에게 왜 문자 보내고 반대 서명하는지 물어보면 '나 몰라. 목사님이 하라고 했어'라고 한다. 단지 그 이유만 댄다. 아무리 집회 나와서 소리를 질러 대도, 본질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례에 찬성하는 시민 수가 부족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700명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가져다 놨더니, 반대 서명 6000부가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이런 걸로는 안 되는 거구나' 절감했다고도 했다.

이란주 대표는 "자꾸 조례 제정에 실패하다 보니 죄책감이 너무 커서 죽고 싶을 정도다. 어딜 가도 '부천에서 무너졌대' 얘기를 하니 괴롭다. 시의원들을 믿었으나 호랑이 앞에서는 고양이라는 점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이란주 대표는 결국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시민들에게 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시민들이 이런 내용에 크게 관심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시민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고 쉽게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무산된 조례 5개를 주제로 강의를 열고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홍보용 만화까지 그려 가면서 지역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주민 발의 제도'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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