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청에 전시 중인 '인권 그림 공모전' 수상작. 기초 단체들은 다양한 인권 관련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인권 감수성 향상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반동성애에 잠식된 보수 개신교계는 인권조례를 '동성애 조례'라고 부른다. 논리는 간단하다. ①국가인권위원회는 법에 '성적 지향'을 집어넣은 친동성애 기관이다 ②기초 단체 인권조례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협력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③그러므로 인권조례는 친동성애 조례가 맞다는 삼단논법이다. 지차체가 제정하는 인권조례에 '성적 지향' 문구가 없어도 무조건 달려드는 이유다.

억측과 달리, 인권조례는 장애인 차별 금지 조례, 성평등 조례, 청소년 노동 인권 보호 조례 등 세분화한 인권 정책을 하나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10조에 따라 기초 단체가 인권 행정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지역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인권조례의 골자는 △인권 교육 △인권위원회 심의·자문 △인권 영향 평가 △인권 지표 개발 △인권센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기초 단체들 사례를 보면,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 삶과 인권 의식 전반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찾아가는 인권 교육'
"함께 사는 공동체임을 깨달았다"
공무원 교육도 '집체'에서 '참여형'으로

서울 도봉구는 '세계 인권 선언의 날(12월 10일) 주간'을 맞아 초등학생 대상 인권 그림 공모전을 열었다. 구청 로비에는 수상작을 전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여성·장애인·노인·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다. '차별'을 뜻하는 벽을 허무는 그림, 휠체어를 탄 사람과 비장애인이 함께 웃는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이런 공모전은 인권 정책의 일환이다. 도봉구를 비롯한 대부분 기초 단체 인권조례에는 "주민의 인권 보장 및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관련 정책을 발굴하여 이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상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단체장 책무가 규정돼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주민의 인권 의식을 증진하기 위해 공모전을 열거나, 인권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인권 교육'은 필수다. 기초 단체들은 조례에 "공무원 등에 대해 연 1회 이상 인권 교육을 실시하여야 하며, 사업장 및 민간 단체 등에 대하여 인권 교육을 시행할 수 있도록 권장·지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근거해 1회성 행사뿐 아니라 '주민 인권 학교' 등 교육을 프로그램화해 운영하는 기초 단체가 많다.

인천 미추홀구는 올해 7월 '노동 인권에서 복지 인권까지'를 주제로 구민 인권 강좌를 개최했다. 5주간 노동 인권, 여성·청소년 인권, 시민권, 노인 인권을 주제로 토론형 강좌를 열고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연인원 113명이 참석했다. 이밖에도 찾아가는 통장 인권 교육, 인권모니터링단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추홀구뿐 아니라 서울시 은평구·서대문구·영등포구·동작구·노원구, 경기 수원시, 광명시 등 여러 기초 단체가 주민을 대상으로 인권 학교, 인권지킴이단 기초 및 심화 과정 등을 열고 있다. 수원시는 2019년 3분기에만 찾아가는 인권 교육을 8회(연인원 199명), 도서관 인권 행사를 19회(연인원 375명) 열었다. 보육 교직원 인권 교육, 청소년 노동, 노인 인권 감수성, 평화의 소녀상 그리기 등 내용도 다양했다.

인권 교육은 주민들 의식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 2018년 광명시 인권 지킴이 심화 과정을 이수한 최 아무개 씨는 광명시민인권센터 홈페이지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말할 권리와 들을 권리에 대해 서로 충분히 존중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알아 가기, 긍정하기, 소통하기, 협력하기를 훈련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인천 미추홀구 공무원들은 올해 근로기준법에 신설된 '직장 내 괴롭힘' 조항에 대해 성공회대 하종강 교수를 불러 강의를 들었다. 사진 출처 미추홀구청 홈페이지

조례 규정에 따라 공무원 대상 인권 교육도 시행한다. 최근 들어서는 수백 명을 수용해 한두 시간 강의하는 형식적인 집체형 교육에서 벗어나, 직급별·부서별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고양시는 △시장·부시장을 비롯한 간부 공무원 및 시의원 대상 △일산동구·일산서구·덕양구 등 각 구 7급 이하 공무원 대상 △신규 공무원 대상 △통장 및 주민자치위원 등으로 그룹을 나누어 교육했다.

서울시 서대문구는 5급 이상 구청 직원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행했다. 수원시 역시 신규 임용 공무원 대상 교육, 부서 간 통합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광명시도 45명 소규모 참여형 공직자 교육과 150명 대규모 강좌형 공직자 교육을 구분해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기초 단체에서 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12월 11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인권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인권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니 공무원이나 주민이나 모두 막연하게 생각하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교육도 직급별 등 세분화한 소규모 교육 방식을 택하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다.

하종강 교수(성공회대 노동대학 학장)도 12월 11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뒤떨어지게 된다. 인권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 심의·자문하는 '인권위원회'
차별·침해 사례 접수하는 '인권센터'
"인권 문제, 지자체 사무로 인식해야"

은평구 인권위원회는 구청장에게 인권침해적 정책이나 법규에 대해 올해만 두 차례 권고 결정을 내렸다. 사전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해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고, 아동·청소년 관련 조례도 차별 소지가 없게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지역 인권 전문가와 주민으로 구성하는 '인권위원회'는 기초 단체 기본 계획 수립에 관여하고, 관내 인권 정책을 심의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개선을 권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역에 따라 골프장 개발(고양시), 6·25 양민 학살 유해 발굴(아산시), 군 공항 이전(광주 광산구) 등 인권과 관련한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은평구 인권위원회는 올해 4월 구청장에게, 정책 수립 단계에서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구청장이 적극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은평구 인권위는 2016년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장애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의견 표명, 2018년 '공무직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관리 규정 제정 권고'를 한 바 있다. 이는 모두 구청장이 사전에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했으면 예방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광명시는 2018년, 인권조례 9조에 근거한 인권 영향 평가를 2차례 실시했다. 광명시는 '무장애 광명길' 조성의 일환으로 '보행권 인권 영향 평가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보도의 폭과 표면 상태가 적정한지, 유모차·휠체어가 다닐 만한지, 교통사고와 범죄 위험에서 안전한지, 가로수·소음·매연·쓰레기 등 쾌적한 보행 환경에 방해되는 요소는 없는지 등 60여 개 요소를 평가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는 광명시를 비롯해 수원시와 아산시, 광주광역시 관내 5개 구 등 여러 기초 단체가 투표소에 경사로·점자블록·턱 존재 여부와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 등을 조사하는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했다.

수원시는 경기도에서 최초로 인권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인권센터·인권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있다. 수원뿐 아니라 인권조례를 내실 있게 운영하려는 기초 단체들은 홈페이지에 인권위 회의록과 인권 교육 내용, 침해 진정 방법 등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수원시 홈페이지 갈무리

'인권센터' 설치도 필요하다. 현재 서울 성북구, 은평구과 인천시 미추홀구, 경기도 광명시, 수원시, 전북 전주시에 인권센터가 있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10월 서울 도봉구 인권센터가 정식 개소했고, 서울 서대문구와 충남 아산시는 인권센터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 구로구는 차별 행위 등 민원 고충을 처리하는 '인권옴부즈맨' 제도를 두고 있다.

인권센터는 인권 행정 업무의 헤드쿼터 기능을 맡을 뿐 아니라, 기초 단체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진정을 접수한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지난해 7월, 시가 운영하는 공공 수영장이 오전 시간 남성의 이용을 제한한다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에 들어갔다. 이후 시내 공공 수영장 10곳 전체를 대상으로 차별 여부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8곳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가장 최근 인권센터를 개소한 도봉구는 우여곡절 끝에 센터를 설치했다. 2018년 9월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보수 교계를 중심으로 한 시위와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반동성애 진영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거짓말같이 반대 민원이 뚝 끊어졌다. 도봉구 인권센터는 개소 한 달 만에 인권침해 및 차별 진정 8건을 접수해, 이 가운데 일부를 조사하고 있다.

도봉구 정웅정 감사담당관(인권센터장 겸직)은 "도봉구는 과거 케네디인권상을 수상했던 고 김근태 선생의 지역이기도 하다. 어느 도시보다 더더욱 인권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인권 보장은 지역 단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봉구뿐 아니라 다른 기초 단체들이 인권을 지방정부의 과제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명시는 2018년 선거를 앞두고 각 투표소 접근성이 용이한지 인권 영향 평가를 실시했다. 또 시민들의 보행권이 침해받는지 살펴보기 위해 약 70개 문항으로 구성된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결과를 평가했다. 이렇듯 인권조례는 '동성애 조장'이 아닌 시민들이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곳곳에서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실제로 인권조례가 제정돼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 교계 반동성애 진영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사상을 퍼뜨리는 게 아니라,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시민 의식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런 인권조례가 억측에 근거한 반대 운동으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제정률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기초 단체들이 인권조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잘 몰라 자문을 구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일상생활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도 인권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이고 거창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있다 보니, 기초 단체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실질적으로 인권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 단체가 인권조례를 내실 있게 운영하려면, 실제 행정에 인권의 가치를 반영하게 해야 한다. 인권 기본 계획 수립 시점에서부터 공무원들이 이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업무가 가중될 수 있지만, 한국 지방 공무원들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정책을 일단 정착시키면 그다음부터는 잘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잘한다고 알려진 타 지자체를 무조건 벤치마킹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지역 특색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권위원회와 인권센터 등 전담 부서, 그리고 일선 공무원이 협력해야 한다. 인권위원회나 전담 부서가 정책을 강요하는 형태가 되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전담 공무원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끝)

※뉴스앤조이는 전국 인권조례 현황과 운영 실태를 태블로로 시각화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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