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있어서 율법과 은혜의 역할에 대해 대부분 세 가지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견해, 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견해, 주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율법 조항들을 지켜야 구원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견해 말이죠.

"바울 당시에 있었던 율법의 역할에 관한 세 번째 오류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외에 신학적인 용어로 '갈라디아주의'(Galatianism)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명칭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사상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73쪽)

M. R. 디한(Martin Ralph De Haan, 1891~1965)의 <율법이냐 은혜냐>(생명의말씀사)에 나오는 내용이죠. 그는 구원에 있어서 '율법주의', '반율법주의', '갈라디아주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롬 3:28) 알도록 하기 위해 바울이 로마서를 썼다고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의 법'으로 행함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야고보서를,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도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갈라디아서를 쓰게 됐다고 말하죠.

<율법이냐 은혜냐> / M. R. 드 한 지음 / 이용화 옮김 / 생명의말씀사 펴냄 / 279쪽 / 1만 4000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고 말하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값없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죠. 율법은 출애굽한 지 50일 되는 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었다고 밝힙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거울'이자 '잣대'요 '지침서'였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돌판에 새긴 십계명을 비롯해 절기와 성일과 희생과 제사와 음식에 관한 법과 민법과 성막의 모형도까지 함께 주셨다고 하죠. 디한은 그것을 '도덕적인 율법의 계명'(출 20:1-26), '재판'(민법, 출 21:1-24), '의식儀式'(출 24-31)이라는 세 부류로 구분하죠. 그것이 출애굽기 20장부터 31장까지 나온 율법의 총체적 내용이라고 하죠.

더욱이 그는 아담 이후 2500년 동안 율법 없이 살아왔다며, 율법은 '시대적' 상황에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차원에서 그들이 죄의 근성을 드러내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이기 위한 '본보기'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이 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주신 것이라고 밝히죠.

이스라엘 민족이 지킬 수 있어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하기 위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율법의 행위에서 기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 깊이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고 명하나 은혜는 '이것은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죄짓는 영혼은 죽는다고 하지만 은혜는 믿으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죄를 속량합니다. 율법은 복종을 요구하나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줍니다. 율법은 속박하지만 은혜는 자유하게 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116쪽)

이는 율법과 은혜의 대칭되는 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래 이 책에는 19가지가 나와 있는데 그중에 몇 가지만 간추린 것이죠. 물론 그 밖에 얼마든지 더 소개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가 진정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적인 행위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스도로 돌이키도록 말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행위나 자기 자아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실은 율법주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이 통치하는 곳에는 율법이 필요 없습니다. 전에 고용인으로 데리고 있던 여인의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다하라고 부엌 벽에 십계명을 써 붙여 놓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이 부인이 매일 아침 부엌에 붙여 놓은 율법을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200쪽)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지, 그에 대한 쉬운 예화를 하나 소개한 것입니다. 이전의 고용주 앞에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한 여성이 그 고용주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사랑의 법' 아래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죠. 그것이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과 구원의 은혜 아래 자유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하죠. 구원받은 사람에게 선한 열매가 맺혀야 하는 것도 율법 조문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의 은혜가 열매를 맺게 하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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