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설교> /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 서문강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 펴냄 / 358쪽 / 1만 5000원

새로 부임한 목회지에서 3년 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통해 변화되지 않는 신자들을 보면서 자괴감이 빠질 때가 많습니다. 설교에 변화를 줘야 되는 건 아닐까. 영상 설교를 도입해야 할까. 재미난 유머를 많이 사용해 볼까. 화려한 어법보다 투박한 어투로 바꿔 볼까.

"설교자는 반드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붙잡힘을 당하고 끌려 있다는 사실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 그것으로 너무 감동되고 감격한 나머지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 갖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114쪽)

"뜨거움이 없는 빛은 결코 어떤 사람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빛이 없는 뜨거움은 영구한 가치가 없습니다. 모르지요, 지나가는 비처럼 당분간 화끈한 효과가 있을지. 그러나 그것은 진정하게 회중들을 돕지 못하고 그들을 세워 주지도 다루어 주지도 못합니다." (127쪽)

마틴 로이드 존스의 <목사와 설교>(기독교문서선교회)에 나오는 내용이죠. 설교자가 자기 확신과 감동이 묻어나지 않는데 신자가 어찌 영향을 받을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새로운 흐름에 맞는 신지식과 유머와 간증과 영상을 설교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는 오직 복음적 설교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하죠.

왜 이런 관점을 드러내는 걸까요. 하나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고, 인간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외적 상황은 날로 변하여 과학과 지식도 문화도 매일 색다른 옷을 입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예전과 똑같다는 것이죠. 죄로 얼룩진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에 사로잡힌 설교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 전반부를 읽고 내 나름대로 설교를 그렇게 정립했습니다. 설교란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엡 4:18)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요 3:19) 신자에게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골1:29)를 따라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행 3:6)을 복음을 전해 그들에게 "복음의 광채가 비치"(고후 4:4)게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를 위해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가 준비해야 할 부분에 대해 후반부에서 일깨워 줍니다. 설교자는 1년에 성경 1독은 해야 하되 설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자신에게 부딪혀 옴을 위해" 읽도록 하고, 그때의 깨달음을 메모지에 옮기고, 그것을 기초로 본문의 주석과 강해를 시도하여 각 대지와 소제목들을 연결하여, 적용하고 권면할 것을 설교에 담도록 일러 주고 있습니다.

물론 각 설교는 조직신학이 바탕에 깔려야 하고 그를 위해 신학 서적과 경건한 독서와 설교집도 중요하다고 하죠. 더욱이 시대 흐름을 알리는 정기간행물과 잡지도 놓치지 말라고 하죠. 그만큼 균형 잡힌 독서를 강조하는데, 다만 그것들이 설교의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거나 설교 석상에서 축음기처럼 틀어 놓고자 해서는 안 된다고 하죠. 그 책들을 통해 깊은 영감을 받고, 설교의 시녀로 삼도록 하라고 말이죠. 그도 목회 초기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집을 많이 읽었고, <신앙 감정론 The Religious Affections>를 통해서는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죠.

"우리 모두 극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의 준비에만 의지하여 더 이상은 바라지 않고, 어떤 이는 준비를 경멸하여 성령의 역사와 감동과 영감에만 의지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결단코 되지 않습니다. 늘 둘을 겸해야 하고, '둘이 함께' 가야 합니다." (400쪽)

"이 능력을 찾으십시오. 이 능력을 간절히 기대하십시오. 이 능력을 갈망하십시오. 이 능력이 임할 때 그에게 복종하십시오. 저항하지 마십시오. 필요하다면 여러분의 설교 내용 모두를 잊어버리십시오. 그래서 성령께서 여러분을 끌어가도록 하십시오. 성령께서 그의 능력을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426쪽)

이른바 설교 원문에 충실할 것과 즉흥적 깨달음을 성령의 음성으로 알고 전하는 것, 그 둘 사이 간극에 대해 말하는 것이겠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자신의 설교가 죽어 가는 한 영혼에게 마지막 설교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다는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처럼 최선을 다해 원고를 쓰되, 설교 석상에서만큼은 성령님에게 압도되어 손과 발까지도 완전히 자유롭게 설교할 것을 권면하죠.

이제 나도 성경의 권위에 온전히 사로잡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성령님의 능력에 붙들린 복음 설교만으로도, 신자들이 완전히 녹아들 뿐만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 신자의 개인 문제까지도 성령님께서 터치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간구하는 바입니다. 그 설교 하나만으로도 신자들이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일깨워 준 참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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