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할 때 우리는 청중에게, 천국을 설교하기 전에 먼저 지옥을 설교하여야 합니다. 먼저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을 통하여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줄을 알게 한 다음, 복음의 위로로 그들을 치료하여야 합니다. 먼저 율법을 통하여 그들의 자칭 의인됨을 폭로하고 그것이 얼마나 추한 의복인지를 보여 준 다음, 복음을 통하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 주어야만 합니다." (126쪽)

C.F.W. 월터(Carl Ferdinand Wilhelm Walther, 1811~1887)의 <율법과 복음>(컨콜디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설교자가 회중을 향해 설교할 때, 율법을 먼저 설교하고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지옥을 말하고 그 후에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이른바 은혜로 인한 죄의 회개가 앞서고 그 뒤에 믿음이 이어지는 설교를 하는 것(행2:37-38)과 같은 차원입니다. 은혜가 먼저요 선행은 그 후(엡 2:8-10)라는 것이죠. 그래야 회개, 의인, 성화의 순서를 따르는 복음적 설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설교할 때나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할 때에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향해 설교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죠.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이미 회개할 준비가 돼 있는 이들이었기에 행함보다 복음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라고 말이죠. 대신에 자신의 의와 행함을 자랑하고 나섰던 부자 청년을 향해서는 또 다른 행함을 강조하는 율법에 방점을 두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율법과 복음> / C.F.W. 월터 지음 / 지원용 옮김 / 컨콜디아사 펴냄 / 310쪽 / 7500원

사실 이 책은 월터 교수가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컨콜디아신학교 교수로 재직할 당시, 1884년 9월 12일부터 1885년 11월 6일까지, 매주 금요일 총 39회에 걸쳐 비공식 '루터 강좌'를 열었는데, 이를 엮은 것입니다. 그는 1811년 독일 작센 랑엔슈어도르프의 3대 루터교 목사 집안에서 자녀 열두 명 중 여덟째로 태어났고, 1829년 슈니베르크의 라틴어학교를 마치고 음악을 전공하기 원했지만 아버지 권유로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지병에도 종교개혁자 루터의 작품들과 사상 연구에 몰입했으며, 1833년 대학을 졸업하여 1837년 목사 안수를 받고 작센 브라운스도르프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지역 교회에 불어 닥친 합리주의 물결과 루터교 신앙고백 노선이 대립하게 되었고, 급기야 그는 1839년 초 미국으로 가는 작센이민단에 들어가 이민길에 오릅니다. 2월 19일에는 미국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여 그 유명한 알텐부르크 '통나무방 대학'을 창설하는 데 협력했고 강사로도 봉사했죠. 그 뒤 알텐부르크대학이 세인트루이스로 옮겨와 컨콜디아신학교가 되었을 때, 그는 1850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수와 교장으로 봉직하며 섬겼습니다.

"율법을 거의 설교하지 않는 것이 복음적 설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설교하지 않으면 복음적 설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설교자는 기만歎滿하는 사람이요 복음의 씨를 마치 싹이 틀 수 없는 바다 가운데 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복음의 천국 씨앗은 오직 상한 심령에서만 싹을 낼 수 있습니다." (261쪽)

복음만을 설교한다는 명목으로 율법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 것은 설교자의 직무 유기와 같다는 뜻이죠. 율법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비추는 거울이자 인간의 죄를 노출하는 도구요, 복음은 주님의 은혜로 인간을 변화하게 해 그 마음속에 사랑을 심고 선을 행하도록 능력을 부어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율법 폐지론자나 율법 무용론자로서 말씀을 선포할 게 아니라, 오직 율법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복음주의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설교자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가르침이고 복음은 신약의 가르침이라고 오해하는 경우 말이죠. 하지만 복음은 구약 가운데도 있고 율법은 신약 가운데도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상반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다만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말하지만 그걸 행할 힘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변화될 수 있고, 복음을 통해서만 주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을 수 있고, 복음을 통해서만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죠.

바로 그 점을 이 땅의 설교자들이 갈파하여 설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펴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생명 사역을 하는 설교자들이 무생명의 존재로 강단에 서지 않도록 말입니다. 오직 율법과 복음에 관한 바른 교리를 토대로 청중들이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설교 석상에서 45분간 설교하는 설교자들의 일이 스스로의 구원에도 유익할 뿐 아니라 청중들의 구원을 이끄는 가장 값진 열매를 누리게 하는 가장 영예로운 영적 직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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