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신학생시국연석회의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거리 행진을 했다. 2년 만에 이규학 이사장이 돌아온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선출 문제로 학내 분쟁을 겪는 한신대학교, 교회 세습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서울신학대학교 등 신학생 130여 명이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6월 22일 서울 광화문 감리회 본부 앞에 모였다.

27도를 훌쩍 넘는 오후 5시부터 이들은 떼제 찬양을 부르며 행진에 나섰다. 무리 앞에는 보라색 천을 두른 십자가가 앞장섰다. 감리회 본부에서 출발해 종로5가를 지나 기독교회관까지 1시간 가까이 걸었다. 날씨가 더워 신학생 목덜미에는 금세 땀이 찼다.

이들은 '단결한 신학생은 패배하지 않는다', '교계 적폐 청산하여 종교개혁 완수하자', '정치 목사들은 대학 사유화를 중단하라', '이사회는 즉각 퇴진하라', '개혁하지 않는 성결은 썩은 백합이다', '이사회 퇴진, 이사회 빼고 모두가 원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으로 자신들의 바람을 알렸다. 비리에 물든 한국교회와 신학교를 비판했다.

행진을 인도한 신학생 이종건 씨가 "이렇게 내년에 종교개혁 501주년이 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한국교회를 개혁하자. 복음에 차별은 없다"고 구호를 외친 후 행진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젊은 신학생들의 행진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현수막 내용을 읽고 사진을 찍었다. 한 외국인은 직접 와서 무슨 일인지 묻기도 했다.

신학생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길거리 행진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행진 전, 신학생들은 감리회 본부 앞에서 함께 예배했다. 학교마다 처한 상황을 탄식하며 기도했다.

"주님, 우리 한국교회가 아픕니다. 우리 신학교가 아픕니다. 한 학우는 곡기를 16일이나 끊었고 한 학우는 15일 동안 고공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모두의 짐을 지고 고독과 외로움과 고통과 싸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을 보아야 할 사람은 끝내 외면했습니다. 이규학 직무대행은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야망과 욕심에 우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코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주님, 욕심으로 배부른 자의 기도를 듣지 마시옵고 여기 가진 것 없으나 정의를 위해 예수의 길을 따르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 감리교신학대학교 추은지 씨

"하나님, 우리는 지금 거짓과 자본, 폭력과 탄압, 거대한 이기심으로 가득찬 한신의 저 임마누엘 동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동산이, 우리들의 학교가, 당신보다 더 큰 하나님으로 자리하고 있는 저들의 위선으로 짓밟혀 처참히 뭉개져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저히 저 거대한 괴물들을 당해 내 본 적이 없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우리는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한 이 억울함과 분노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거룩한 억울함이요, 거룩한 분노라고 믿고 싶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와 함께 싸워 저 거대한 괴물을 물리쳐 주옵소서." - 한신대학교 이신효 씨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제목 앞에서, 역사 속에서 성령님의 적극적인 인도하심으로 세워진 성결교회가 오늘날 성결의 능력을 잃어 가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과 성결의 이름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성결교회는 지금 성결하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을 사유화하기 위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해, 목사 자신, 성도, 그리고 하나님까지도 속이는 목사들이 있고, 이를 향하여 비판하지 않고 침묵하며 오히려 공고히 하는 목사들이 있기에 성결교회는 이제 성결하지 않습니다." - 서울신학대학교 진지한 씨

전 감신대 교수 이정배 목사가 젊은 신학생들을 응원하며 '우리들 미래를 빼앗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시종일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탐욕에 젖은 한국교회를 비판했다.

"거룩이란 옷을 입고 신앙을 들러리 삼아 돈과 권력을 탐하는 기성 목회자들, 감독과 총장, 교수들을 향해 학생들은 마치 돌이 소리치듯 말했습니다. 기독교계와 자신들의 교단 내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누구도 소리 내지 못할 때, 길가에 나뒹구는 돌처럼 흔하고 값없는 이들 신학생들이 불려졌습니다. 소리치는 이들, 젊은 예언자들은 예수만 바라볼 것을 수차례 다짐하며 오늘 이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만 바라보려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은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교단 권력으로도, 돈의 힘으로도, 교수란 자격으로도 이들의 외침을 잠잠케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약한 이들 소리를 듣고 자신들 죄악을 그치지 못한다면 하늘은 기독교를, 우리들 교단을 그리고 신학대를 역사의 심판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 다음 대상이 사학 비리 척결이라 하니 신학대학들 역시 두려워 떨 일입니다."

 

신학생들은 행진 전 감리회 본부 앞에서 예배했다. 감신대 전 교수 이정배 목사가 설교하고, 이종화 씨가 발언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감신대 사태에 대항하며 16일간 단식 투쟁을 한 이종화 씨(감신대 종교철학전공)도 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문익환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낭독했다. 그는 시의 일부인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주장하는 일이라고/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있다고 생각하나"를 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 씨는 "한신대는 총회 결정에도 아랑곳 않는 이사들이 버티고 있다. 장신대는 퀴어까지 갈 것도 없이 단 3%의 여성 총대도 허용 못하겠다고 한다. 감신은 3년간 싸웠지만, 학내 사태 원흉 이규학 이사가 다시 이사장이 됐다. 성결교단은 서울신대 학생들이 그렇게 목소리 높여도 세습방지법 하나 없다. 우리 눈앞에 참담한 현실 앞에서 총장 직선제를 말하고, 대형 교회 세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자고 말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게 참 어리석은 일이겠다 싶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도이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본다. 현실 너머에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정의를 본다. 그 정의를 믿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자.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이 되자. 기독인으로서 역사를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연대하고 투쟁하자"고 말했다. 신학생들은 손뼉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예배와 행진을 마친 신학생시국연석회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 필요한 96개 논제를 발표했다. 이들은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발표한 95개조 반박문에서 더 나아가자는 의미로, 한 조항을 추가해 96개 논제를 만들었다.

1. 우리의 주님이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이 우리의 내적 개인적 반성에서 머무르고 교권의 이해와 용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다시 말해 참회는 개인의 내적인 영역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의 역사가 삶에서 총체적으로 보여야 한다.

4. 그런고로 종교개혁 역시 교단 내의 산적한 문제점들에 대해 "회개합니다"하고 잠실운동장 같은 데 모여서 기도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외부로 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금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교계의 자랑과 기념행사들은 전혀 유의미하지 않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전혀 건강하지도 않다.

5. 뱀이 그 허물을 벗는다 한들 비둘기가 될 수 없듯이 교회도 본래의 잘못을 가진 채 일회적 참회 퍼포먼스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릴 수 없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일회적 반복이 아닌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

6. 교계의 자칭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죄는 스스로 용서하고 사회적 약자와 타자들에 대해서는 정죄하며 교회를 우려하는 사회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교회를 흔드는 악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를 참칭하는 교계 지도층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밖에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그런즉 이 죄는 교계의 권력층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역시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9. 교계의 숱한 비리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교계를 키우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10.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교회의, 교계의 잘못을 용인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는 편한 변명 아래 교회의, 교계의 잘못에 일정 부분 방조하거나 동참해 왔다.

11. 또한, 우리가 선지 동산이라고 부르는 신학교 안에서부터 누구의 자녀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서로 무리 지어 행동하였으며 여성이라고, 혹은 그 밖의 어떠한 소수자라는 이유로 배척하고 차별하였다. 이것은 거룩한 공교회를 가르는 행위이다.

12. 교회를 가르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가르는 것이며 이러한 가라지가 충분히 자라났다면 이제 그것을 뽑아야 할 것이다. (마 13:30)

13. 이와 같은 행위 속에서 신학생들 또한, 아니 그보다 앞서 회개해야 함은 자명하다.

14. 이것은 누군가를 지목하여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15. 교회는 계속해서 성화되어야 하며 이것은 교회를 이루는 각 사람의 회심이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16. 또한 동시에 이것은 공교회 전체의 회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17. 교단과 교계의 잘못을 하나로 묶어 그저 교회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18. 그것은 수많은 문제의 각 층위를 다루지 않고 마치 하나인 것으로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19. 하나의 죄라는 이름 아래 더욱 심각한 죄는 마치 가벼운 죄처럼 인식되고 더욱 가벼운 죄–혹은 죄가 아닌 것–은 마치 큰 죄악인 것처럼 인식된다.

20. 그러므로 각 잘못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특유성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바른 참회가 가능할 것이다.

21.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잘못은 가장 먼저 교회의 사유화에서 찾을 수 있다.

2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 1:24)으로 그것은 사유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23.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은 교회를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위이다. 교단 내 세습방지법이 있는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세습방지법이 없는 교단은 속히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24. 세습방지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기 위한 다양한 편법이 있지만 가장 낯부끄러운 방법의 하나는 분가를 가장한 허수아비 또는 유령 교회를 만들어 재합병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교회가 유령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그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25. 목회자를 양성하는 기관인 신학교 역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소유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26. 신학교가 이사회와 이사장만의 것이 된다면 그것은 신학교라기 보단 이사장 학교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 고로 감리교신학대학교는 이규학대학교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검토해 보길 바란다.

27. 한신대 역시 이극래대학교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보길 바란다. 총신대와 침신대도 원한다면 그와 같이 할 수 있겠다.

28. 만일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부끄럽게 여겨진다면 이제라도 자신들이 한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깨닫고 학교 운영에 있어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학내 구성원의 뜻에 수긍하길 권한다.

29. 교단과 교계 역시 특정 집단에 의해서 사유화되고 있다. 교단별로 있는 이른바 '출세 라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것이 교회의 이야기인지 대기업에서 라인 타는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30. 사역자가 어떠한 교회에서 사역한 것이 그의 발자취를 보이는 것이 될 수는 있으나 교계에서 사역자들이 특정 교회에 단계를 밟듯 들어가 일정 세력을 갖게 되고 자기 사람을 만들고 또 자기 사람을 다른 교회에 이른바 꽂아 주는 행위는 개교회를 본인 소유의 회사로, 공교회를 시장으로 보는 것이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31. 그러나 교회 안의 노동 처우를 살펴보면 이들이 교회를 본인 소유의 회사로 보지 않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이른바 교계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세금도 내지 않으며 교회 안에서 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봉사와 헌신이라는 말로 부교역자와 교회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32. 마찬가지로 부교역자들과 교회 직원들은 교회에서 일하지만,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증명할 수 있는 서류 같은 것을 본적도 작성한 적도 없다.

33. 이처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게 되니 부교역자와 교회 직원들은 불규칙한 업무와 간혹 생기는 비인격적 대우에도 봉사와 헌신으로 사역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 이런 노동력에 기댄 교회 운영을 바라실 리는 만무하다.

34. 교회 운영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해도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한국교회의 재정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신자들은 본인들이 낸 헌금이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드린다.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게 임한 복(요 20:29)이 이것일까?

35. 교회의 재정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지단체의 재정 및 인력 역시 불투명하고 당혹스럽게 이용된다. 교회의 부교역자와 직원들은 복지시설의 업무를 떠맡고 복지 단체의 직원이 교회의 일에 동원되어 서로가 목적과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36. 교회는 시장이 아니며 교인은 재화가 아니다. 내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다른 교회를 죽이는 수평 이동은 공교회를 죽이는 일이다. 이러한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37. 교인을 포함한 교회의 매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의 몸을 사고파는 그리스도인이 있단 말인가!

38. 교회가 이렇게 맛을 잃은 소금(눅 14:34)처럼 되어서 쓸모가 없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단 공포를 불어넣는 데 노력하게 되었다.

39.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의 권리 요구를 악마화하며 교회의 적으로 간주하여 내부의 단합을 도모하는 일은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40.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내부의 단합을 도모하니 정작 중요한 회개와 은혜가 사라져 버렸다.

41. 한국교회에서 은혜는 값싼 것이 되어 버렸고 회개는 남발되어 뱀이 허물을 벗는 것보다도(제5논제 참조) 쉬운 것처럼 되었다. 약자와 소수자들에게는 지옥의 불 맛을 약속하신 두려운 하나님이 내부의 단합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용서하는 꿀맛 같은 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42. 그러나 참다운 회개는 대가를 달게 받는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남발하는 내부적인 값싼 은혜, 관대한 회개는 은혜와 회개를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43. 이처럼 내부의 결속을 위한 말이 남발되다보니 교회의 강단에선 시대적 메시지가 상실되었다.

44. 내부의 결속에만 경주한 나머지 지역사회에 대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45. 교회당이 위치한 지역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는 교회가 선교를 외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사실 사회는 교회의 공헌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회는 오히려 염려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46. 꼴찌 된 자가 되어 으뜸이 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마 20:16) 오늘날 개신교는 가톨릭, 불교와 3대 종단 신뢰도 조사에서 언제나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47. 그런 교회가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처럼 횡행하는 사이비 종교를 보고 "저것은 악하다!"고 사람들에게 외친들 그 말을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슬프게도 이것은 교회가 쌓은 잘못의 결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48. 그룹(בורכ)을 보고 Group이라고 설명하는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는 교인을 만든 교회는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

49.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공부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려 주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50. 몇몇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목회–인듯 하지만 자신들의 돈벌이–에 방해될 만큼(사실 교인이 성경을 잘 아는 것이 목회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처참한 것이다.) 성경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51. 그런 이유로 많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공부는 사실 성경 공부라기 보단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을 심는 교리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52. 이런 풍조 아래서 질문이란 금기가 되었다. 교회 내에서 질문은 죄악시되었고 이는 맹목적 믿음을 가진 교인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53. 맹목적 믿음을 가진 교인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교회가 채택한 것은 열광주의이다. 교인의 믿음은 방언의 수준으로 계량되며 방언의 수준은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지에 따라 평가받는다.

54. 하지만 우리는 방언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도, 깨친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고전 14:15)

55. 방언만을 중시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을 멀리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모르겠으나 교회에겐 유익하지 못한 것이다. (고전 14:6)

56. 교인의 신앙은 개인화되었으며(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온전한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은 '파편화'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여하한 예전 없이 강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예배는 개인화된 신앙에 더없이 알맞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57.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철저히 개인화된 신앙 속에 자리할 때 비로소 악한 것이 된다. 더욱 악한 것은 교회가 열광주의를 위해 이것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58. 성숙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성도의 개인적인 신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 (고후 2:15)

59. 교회에서의 생활과 사회에서의 생활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교회당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0. 또한, 교회와 사회의 삶을 구분하는 태도는 교인 개인뿐 아니라 교회가 사회적 아픔에 대해 둔감해지게 하는 결과를 끌어낸다.

61. 사회적 아픔에 대한 교회의 공감은 취사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값없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교회가! (롬 3:24)

62. 교회는 아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거나 같이 고난당하는 데에선 손을 끊는다. 그들은 교훈의 주제이거나 동정 혹은 무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연대나 동일시의 대상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63.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그리스도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마 25:40, 45)

64.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교회의 바른 사회참여는 권력욕에 찌들어 기득권을 두둔하는 기독당이나 기독자유당, 진리대한당과 같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데 있다. (눅 4:18)

65. 그러나 몇몇 교계의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금권 선거라고 검색을 하면 추천 키워드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고 나온다. 한기총은 몰락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한국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불리고 있다.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66. 교단의 총회도 교단 내 권력가들의 각축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굳이 어느 교단이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어떤 교단의 총회에서는 총무가 총을 들고 앞에 나가 총대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 문단에서만 총이 총 몇 번 나왔는지 모르겠다. 총을 들고 나온 총무는 몇 년 뒤 다른 목사를 칼로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67. 각 교단 최고 의사 결정 기구라는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 인원 구성을 보면 이 총회가 교인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싶다. 거의 모든 총회에서 50대 이상 비율과 남성비율이 각각 90%에 육박한다. 이것은 중년, 노년 남성의 독식이라 부를 만하다.

68. 따라서 각 총회는 여성 총대 할당제를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69. 하지만 여성 총대 할당제를 시행하려고 해도 많은 교단에서 여성 총대로 추대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70. 이것은 현재 한국 교회의 성 평등의 현실을 보여 준다. 남성 교인보다 여성 교인이 더욱 많지만, 여성 장로, 여성 목사, 여성 총대를 찾기 어려운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지극히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왔음을 증명한다.

71. 교회 내 사역과 봉사와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개교회 안에서도 여성 교인들은 식사 준비와 같은 일을 하고 여성 교역자는 유치부, 어린이부, 혹은 기관 사역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교회 내 성차별의 근절책이 필요하다.

72. 남성은 정, 여성은 부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은 이제 교회에서 퇴출당해야 한다. 루터가 수녀들을 억압적 수녀원에서 탈출시켰듯이 우리도 억눌린 여성을 교회에서 해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때 그것은 남성에 의한 해방이 아닌 억압에 대한 자기 자신의 해방이 되어야 한다.

73. 또한, 교회 내 성폭력, 성추문에 대해서도 더욱 엄정한 태도가 필요하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이런 사실을 감추고 은폐하는 것은 죄를 감추고 은폐하는 것이다. 참다운 회개는 대가를 달게 받는다. (제42 논제 참조)

74. 특히나 교회 내 성폭력, 성추문을 보고 '여자 문제' 라고 칭하는 말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사실 그것은 절대다수 '남성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75. 신학교와 교회, 그리고 교계는 이제라도 여성 혐오적 발언들을 멈추고 그동안의 행보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 잠시 입을 멈추고 마음을 바로하길 바란다. (마 15:18)

76. 교회 내 청년의 위치에 대해서도 교회는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한다. 교회 인구가 역피라미드화된 지 이미 오래이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교회는 활기 없는 죽은 공동체가 되고 말 것이다.

77. 그렇다고 '요새 청년들이 이런 걸 좋아하던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진 말기를 바란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떠나는 이유는 교회가 청년을 타자화하고, 실존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미래 세대'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78. 어디서 유행어 하나 듣고 와서 삼포 세대를 위한 공동체니, 욜로족을 위한 목회니 이런 거 생각하곤 속으로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외치셨을 텐데 그냥 생각만 하고 접어두셨으면 좋겠다. 그런 거 생각하느라 캡짱 고생했지만, 청년들이 앞서 말한 교회 안의 산적한 문제들을 외면하고 신앙생활을 할 리 만무하다.

79. 여성과 청년의 교회 내 지위 향상을 위해선 개교회에서도 성별, 연령별 장로 할당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80. 하지만 성별, 연령별 장로 할당제는 교회에 헌금한 금액이 장로를 선출하는 기준이 되는 지금의 교회에선 무의미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고려할 필요 없이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81. 만일 여성 안수조차 되지 않는 교단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교단법을 바꾸길 권한다. 지금은 2017년이다.

82.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묵인해 온 자, 타칭 교계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3. 총회에서 총무가 총을 꺼내고, 목사가 교인을 성추행해도 면피성 징계만을 내린 교단에서 약자와 소수자와 함께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목사에게 이단성 조사를 하겠다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웃긴 것일 수밖에 없다.

84.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강단과 교회에서 범람하고 있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어야 한다. 타자에 대한 혐오는 성경적이지 않다. 본디 그리스도인은 타자가 아니었던가. (출 23:9, 신 10:19)

85. 이것은 신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신학교 안에서 나오는 혐오와 차별의 언동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86. 신학교 안에서조차 자유로운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회는 고인 물이 되고 말 것이다. 신학교 안에서 학문의자유가 지켜지고 다양한 논의들이 꽃을 피울 때 교회는 자라날 양분을 얻게 된다.

87. 한국의 교회는 이제 선하고 의로운 일에 마음을 합하여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88. 만연한 개교회 성장주의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거룩한 교회로서의 역할이다. 교회는 구별되어 나온 이들을 말한다. 성장주의, 경쟁 사회 속에서 구별되어 나와 주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기쁨을 이야기해야 한다.

89.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개교회의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공회가 아닌 자기들만 거룩하다 외치는 공해가 되고 말 것이다.

90. 이와 같은 우리의 요구들에 대해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권력으로만 억압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를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그러나 우리에게도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이 요구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각자 삶의 자리에서 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 글이 한 번 보고 넘어가는 글이 된다면 우리에게 그것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될 때까지 우리가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싸운다면 우리에게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9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가라 (겔 13:10 16 렘 6:14, 8:11 살전 5:3)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사실–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4. 개혁이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개혁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 그 길은 좁고 힘든 길이지만 계속해서 경주해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안과 성장과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나라에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지게 해야 한다. (행 14:22)

96. 하나님, 이 교회를 당신 손에 맡깁니다. (눅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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