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신학생들이 옥바라지 골목에서 기도회를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용역 200여 명이 새벽부터 옥바라지 골목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구본장여관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밖으로 내던졌다. 신학생, 활동가 50여 명이 이를 막아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용역들에게 붙잡혀 밖으로 끌려 나왔다. 지난해 5월 17일 옥바라지 골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현장에는 신학생들이 철거민과 함께 있었다. 기습 철거 소식을 듣고 감리교신학대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한신대학교 등에서 달려온 학생들이다. 신학생들은 길바닥에 앉아 부당함을 호소하는 철거민 이길자 씨의 울부짖음을 잊지 못했다. 그해 5월, 옥바라지 이름을 따 '옥바라지선교센터'를 만들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길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한 철거민들을 찾아가 응원하고 힘을 실었다. 옥바라지 철거민에 이어 지난해 10월부터는 '아현포차 이모'와 함께했다. 이모들은 지난해 서울시가 아현역 인근 포차 거리를 철거하면서 생계 터전을 잃었다. 현재 마포구 공덕역 인근 경의선 공유지에서 임시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매주 경의선 공유지와 아현역 인근을 번갈아 가며 '아현포차를 되찾기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다.

이외에도, 건물주 리쌍과의 계약 문제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곱창집 '우장창장', 수협의 현대화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몰린 '노량진수산시장'이 강제집행을 당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발 벗고 찾아가 철거민과 연대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5월 17일 경의선 공유지에서 1주년 기도회를 열었다. 5월 17일은 지난해 용역들이 구본장여관을 철거하기 위해 들이닥친 날이다. 당시 영상을 보면서 기도회를 시작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이길자 사장이 말했다.

"그때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했다. 어떻게 그런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 지금 다시 삶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에 진실로 감사를 드린다. 함께하는 모든 신학생들을 잊지 않겠다."

기도회에는 신학생, 일반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1주년을 자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참석자들은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들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설교를 전한 이종건 전도사는 예수님의 삶을 좇자고 말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 곁에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했다. 당시 종교 권력이 바라보지 않은 이들을 향하셨다. 우리와 같이 가난하게 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모습으로 옷 하나 걸치지 못한 채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팔복을 말씀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 의에 주린 자, 옳은 일을 하다 박해받는 자… 복이 있다."

아현포차 전영순 사장(사진 왼쪽)과 구본장여관 이길자 사장.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도회에 참석한 이길자 사장이 지난해 용역들이 구본장여관에 들이닥쳤던 영상을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옥바라지선교센터 신학생들이 특송을 부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도회 마지막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일어나 찬양을 불렀다. 제목은 '사랑이 이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소수이긴 하지만 감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 등 학생들의 연대체다. 이종건 전도사는 "신학생들이 그동안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 사건 등 대중의 분노가 표출되는 광장에서는 종종 연대했지만, 옥바라지나 아현포차 등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골목(현장)에서의 연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최초의 골목 에큐메니컬 단체인 셈이다.

서로 다른 신학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고통받고 약한 사람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 곁을 지키며 돕겠다는 마음이다. 이들을 돕는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피해 당사자 중심에서 생각하고 운동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세월호국장 전이루 목사(장신대)는 "종교의 중요한 역할은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가 1년 동안 해 온 일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옆을 지킨 것뿐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분들 곁에서 함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홍보국장 김이슬기 전도사(한신대)도 "구본장여관 사장님, 아현포차 이모들 옆에서 한 주 한 주 지내다 보니 1년이 지나갔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이모들 옆에서 한 주 한 주 버티며 싸우겠다"고 했다.

이종건 전도사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사역이 한국교회 대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학생들 중에는 앞으로 어떻게 사역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학교나 기성 교회에서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이들에게 사역 모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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