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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무인도에라도 살아만 있어다오"
[인터뷰]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이영문 씨
  • 유영 기자 (young2@newsnjoy.or.kr)
  • 승인 2017.05.1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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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사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지낸 지 50일이 다 되어 간다. 뉴스앤조이 유영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장미가 피고 정권은 바뀌었다.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는 문재인 대통령 행적에 많은 사람이 뉴스 보는 재미로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마음은 밝지 않다. 바다 위를 떠돌 선원들을 생각하면 하루, 한 시간을 급하다.

실종자 가족들 마음은 타들어 간다. 농성장에서 앉은 어머니들 표정은 늘 어둡다. 눈물 흘리기 일쑤다. 청와대 인근 농성장에서 만난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69세)는 "아들이 죽었다고 하면, 나는 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냥 따라 죽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서른을 조금 넘긴 생때같은 아들이 떠올라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스텔라데이지호를 타러 중국으로 출국하던 날,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어요. 큰 캐리어 두 개와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날 끌어안고 '잘 다녀올게요'라고 말했어요. 그날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요. 아들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슬픔에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진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지낸 지 벌써 50일이 다 되어 간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슬픔과 고통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는 "젊은 아들이 살고 내가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책하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한다.

"아들이 중국에 머물 때, 제가 큰 교통사고를 겪었어요. 자동차는 심하게 망가졌는데 신기하게 저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검사를 위해 병원에 며칠 입원했는데, 아들이 걱정할까 알리지 못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사고 났던 날 생각이 많이 나요. 그때 제가 죽었으면 아들이 배에 타지 않고 한국에 돌아왔을 테고,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겠지요. 다치지 않은 게 이렇게 후회되고 안타까울 수가 없어요."

이영문 씨는 아들이 그립다. 뉴스앤조이 현선

이 씨가 한탄하는 이유가 더 있다. 허재용 씨는 해양대학교 출신이 아니다. 이 씨는 아들이 대형 선박 항해사가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법대생이었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던 허 씨는 법대 교수들 권유로 로스쿨 입시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 아들이 선원이 되겠다고 한 건 2013년 일이다. 개인 사정으로 잠시 외국에 나가 있던 이 씨가 갑자기 받은 소식이었다. '꿈이 있었는데 왜 방향을 틀었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 큰 자녀의 의지를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선원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를 받고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로스쿨 입시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했더라고요. 더러운 세상을 경험했다며, 바다로 나가겠다고 하니 말릴 수가 없었어요. 귀국해서 보니, 실습항해사(실항사)로 배에 탔더군요. 실습 기간에는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일한다던데, 자기 걱정은 안 하고 척추 수술해서 다리가 좋지 않은 제 걱정만 하더라고요."

허 씨가 실항사로 지내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어머니는 허 씨 걱정에 바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보름이 지나도록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실항사였던 허 씨가 배에서 통신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을 많이 받지 못해 확인이 늦었던 것이다. 허 씨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타는 화물선은 세월호처럼 작은 배가 아니다. 문제가 생겨 침몰해도, 침몰하는 데 며칠은 걸린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을 보냈다. 항해를 마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같은 말을 했다.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씨는 그 말을 믿었다. 이 씨 말고도 모든 가족이 허 씨 이야기를 믿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당일, 이 씨의 딸들도 "침몰까지 오래 걸리니 탈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길게 기다릴지 몰랐어요. 처음에는 정말 며칠이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어요. 정말 이렇게 기다림이 길지 몰랐어요. 이제는 속이 타다 못해 멍해요. 정신병을 앓는 사람을 보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요. 저도 곧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을 찾지 못하면 못 살 것 같아요. 아들이 죽었다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 이대로는 살 수 없어요."

"그리운 마음에
아들에게 매일
카톡 편지 보내"

바다 위에 있을 아들 생각에 이 씨는 길거리에서 지내는 시간도 미안하다. '뭐라도 먹고는 있을까', '추위에 떨며 엄마를 찾지는 않을까' 계속 걱정한다. 선사는 아들이 죽었다며 유족보상을 이야기하지만, 살았으리라는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살아 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편히 자는 것만으로도 죄짓는 심정이다.

"깊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아들 모습이 자꾸 상상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침대에 눕는 게 미안해요. 어떤 날은 땅을 밟고 선 것도 미안하더군요. 조그만 구명벌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할 텐데, 지쳐 죽어 가고 있을까 걱정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매일 편지를 써요. 카톡으로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 아들을 그리는 마음을 보내요. 가끔은 메신저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엄마' 하고 답할 것 같은데, 답이 없네요. 아들을 꼭 찾았으면 좋겠어요. 구명벌을 꼭 찾았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애타는 심정으로 카톡으로 매일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실종자 가족 제공

이 씨는 가슴에 쌓여 가는 원망을 어디에 이야기할지 모른다. 사건 초반 정부와 선사를 믿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처음 부산에 갔을 때는 선사에 기대했고, 한 주 뒤 서울에 올라와서는 정부를 믿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정보를 찾아서 전달해도 정부와 선사는 제대로 들어 주지 않았다. 이 씨는 "정부와 선사의 태도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수색과 구조가 늦어지는 만큼, 희망도 사그라진다고 이 씨는 토로한다. 새 정부에 조속한 수색을 요청하는 이유다. 이 씨 귓가에는 스텔라데이지호를 타러 떠나던 날, 엄마를 안아 주며 건넨 아들의 인사가 아직 생생하다. 아들이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돌아오기를 여전히 기대한다.

"아들이 표류하다가 무인도에라도 흘러가지 않았을까 많이 생각해요. 그냥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들이 땅에 발이라도 딛고 있기를 바라요. 영화에서 본 장면 같은 기적이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실종자 가족은 다 같은 마음입니다. 1분 1초가 급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를 꾸리느라 바쁘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손써 주기를 바랍니다. 수색 재개하고, 정부가 가진 수색 자원 동원하라고 지시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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