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침에 신문을 보다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교단에서 '국정화 찬성 성명서'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성명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썼던 글과 같은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슷한 글을 쓰고 싶지 않음에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예장합동 국정화 찬성 성명서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 12월 2일,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 1면에 실린 국정화 찬성 성명서. ⓒ뉴스앤조이 이은혜

카카오톡 찌라시에 버금가는 성명서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이 성명서는 찌라시다. 성명서를 쓴 사람 중에 한국사 교과서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이번 국정화 논쟁을 주의 깊게 본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증거자료를 첨부하고 공개 변론을 하시라. 적극적으로 토론에 응할 마음이 있다.

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성명서에 실린 내용 대부분이 국정교과서 논란 초기에 돌던 카카오톡 찌라시와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간 뉴라이트 진영에서 앵무새처럼 이야기한 것, 교육부 TF팀에서 제작해 배포한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난 한 달간 상당한 논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자료들이 제시됐고 국정교과서에 대한 무수한 반박이 있었는데 조금도 참고하지 않았다. 숙고하지도 않았고 반박에 대한 재반박도 없었다. 대체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성명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기존의 검인정교과서에 대한 예장합동 성명서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배타적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2. 기독교 역할을 거의 인정하고 있지 않다.
3. 독립운동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지 않고, 민족주의 계열 사람들의 활동을 폄하하고 있다.
4.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
5. 6·25 전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침략 야욕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
6. 산업화와 민주화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지난 한 달 내내 논란됐던 내용들이고 많은 반박이 있었다. 국회에서 도종환 의원이 황교안 총리에게 "교과서 읽어 보았습니까?" 호통을 칠 때 제대로 답변 한마디 못하면서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극우 진영에서 반복적으로 돌고 돌던 그 이야기가 아닌가. 기독교가 능동적으로 국정화를 지지하고, 여러 목사들과 극우 기독교 단체들이 국정화 찬성 찌라시를 만들어 유통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순수하니까.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버젓이 이런 성명서를 싣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뻔뻔한 거다. 왜? 수많은 역사 교사들이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언로를 통해 교과서 페이지를 인용하면서 이 모든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증언하고 또 증언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모자라서 역사학계의 많은 교수님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박하지 않았던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런 반박에 대해 숙고해 보고, 그래도 의심이 가거나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비판을 해야 하는 게 순리 아닌가. 성경적 가치를 떠나서 이것은 기본적인 예의범절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아무튼 하나하나 살펴보자.

1. 배타적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이야기하는가. 뉴라이트가 항상 하는 말이 배타적 민족주의이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처럼 국제주의로 가자는 말인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뉴라이트 서적 어디를 뒤져 봐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대안을 설명한 적은 없다. 아니면 예장합동은 새로운 이론이라도 있는가.
 
2. 기독교 역할을 거의 인정하고 있지 않다 - 교과서는 충분히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알렌과 헐버트 선교사 이야기, 이화학당이 했던 여성 교육과 여권신장, 학교와 병원 설립 등을 통해 애국 계몽 운동의 기초 마련했던 일, 기독교 민족주의 단체 신민회의 활동, 신민회를 탄압한 105인 사건, 3·1 운동을 종교계가 주도했다는 것 등등. 기독교는 오히려 다른 종교에 비해 교과서에 훨씬 많이 서술돼 있다.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이만열 장로가 얼마 전 긴급 포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독교 쪽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연구는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 솔직히 역사학계에 이만열 교수 외에 극히 몇 사람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업적을 내고 있는 기독교인이 누가 있는가. 반영이 안 됐다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 제대로 된 연구 성과도 내놓지 못하면서 이런 식의 성명서를 내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차라리 기독교 역사학자들에 대한 막대한 재정 지원과 연구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 그게 순리이고 대안 아닌가.

3. 독립운동사에서 민족주의 계열의 활동을 폄하하고 있다 - 교과서를 한 번도 안 읽은 것 같다. 현행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오직 민족주의 계열, 그리고 민족주의 계열과 연합했던 중도 세력까지만 서술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의 독립운동사는 필요에 따라 극히 부수적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왜곡된 것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사이지 민족주의 독립운동사가 아니다.

4.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 -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다. 성명서 앞쪽에서는 3·1 운동을 운운하고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건국에 대해 말한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더니 가장 대표적인 민족운동이 누락됐다고 하고 다시 건국을 이야기하는 이런 논리는 뭔가. 친구를 앞에 두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거나, 자식들 앞에서 인생을 한탄하면서 멋대로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것과 역사 서술이 똑같다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상당수가 그대들이 누락됐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들, 김구·김규식으로 대표되는 양심적인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왜 반대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은 해 보았는가. 공부라도 해 보았는가.

5. 6·25 전쟁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북한의 침략 야욕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 -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6·25 전쟁을 둘러싼 많은 학술 연구 성과에 비해 현행 교과서는 너무나 단출하게 북한의 남침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다.

6. 산업화와 민주화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 매우 균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 새마을운동과 중화학공업만을 강조하고,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통일 운동, 민주화 운동이 수능 출제에서 빠지고 있다. 균형추가 그대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로 뭉개져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꼬집을 수 있는 것들은 넘치고 넘쳤다.

"개항 이후 기독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한국 사회 근대화에 기여하였고" - 어처구니없는 문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개신교일 거다. 예장합동이 가톨릭을 기독교로 인정할 리 없으니 말이다. 개신교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아무리 빨리 당겨도 개항기 때다.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가 제너럴셔먼호(1866)에 타고 있지 않았던가. 개신교는 구한말 조선이 받아들인 '서구 문물' 중 하나였지 개신교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조선 근대화 과정의 도구 중 하나가 개신교였지, 개신교가 근대화를 주도한 것 역시 아니다. 문장 자체가 왜곡이고 오류라는 말이다.

정확히 쓰려면 "개항 전후 서구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들어온 개신교는 조선 근대화 과정에 기여했다"고 써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 사랑과 독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감당했으며" - 역시 잘못된 서술이다. 우선 나라 사랑은 모호한 개념이다. 규명되지 않았고, 정착하지도 않은 비학술 용어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주도하는 보훈 교육인 '나라 사랑 교육'을 말하는 것인가. 정치색이 짙다.

선구자 역할을 감당했다는 말도 문제가 있다. 개신교가 어떤 종교 못지않게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종교나 천도교에서 활동한 것도 못지않았으며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분들이 있다. 선구자 역할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사회 계몽 운동" - 존재하지 않는 용어다. 구한말 애국 계몽 운동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1920년대 물산장려운동 같은 실력 양성 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개혁주의를 루터·칼뱅주의 혹은 개혁침례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 있나. 제네바에서의 칼뱅의 신정정치를 '제네바 상공인 연합통치주의'라는 식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와 싸우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일에 혁혁한 공헌을 이룩" -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개신교 역사의 자기부정이며 종교의 가치를 스스로 파기하는 구절이다. 안창호, 김구, 김규식, 이상재, 조만식 등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민족의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언제나 적극적으로 좌익과의 연대를 도모했다. 민족 유일당 운동, 신간회 결성, 좌우합작 운동, 남북협상 운동, 평남건국준비위원회 등등이 모두 그런 노력의 결과물 아닌가.

이런 것들은 기독교적 가치가 아닌가.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 분열을 막기 위해 이념을 뛰어넘으려는 노력, 민족의 해방·독립을 위해 누구하고도 연대하는 노력. 이런 것들이 기독교적 가치가 아닌가. 공산주의를 사탄의 제국과 동일시하고, 증오·적대하며, 싸우고 죽이는 행위가 기독교적 가치인가. 과거에 존재했던 그 거친 시절 이야기를 무마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한국 기독교가 걸어가야 했던 모진 고통의 시절을 두고, 평화적이지 못했다고 매도하고 싶지 않다. 한경직 목사가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을 피하여 6·25 전쟁 중 반공 기독 청년 3,000명가량을 모아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렇다면 딱 그 자리에 멈추어서 생각해야 하나.

손양원 목사가 자기 자식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아들로 삼았던 일을 칭송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최고 계명인데 지금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있는가. 대체 이 넘실대는 증오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개신교가 정치 집단인가. 교회는 교회의 역사가 있다. 종교는 종교적 가치가 우선하는 것 아닌가. 어려웠던 식민지 시절에도 목회자들이 헌신적으로 교회를 꾸리고 구제 활동에 앞장서며 고아원도 세우고,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면서 목회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그게 교회 아닌가. 정치적 격변이야 한 시절의 논란 거리다. 보수 교회라면 한 시절이 아니라 영원하고 항구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재준, 안병무, 문익환을 잘못됐다고 공박한 것 아닌가.

보수 교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능동적으로 정권과 여당에 찬성하며 정치 활동을 했나. 보수 교회가 주장하던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나. 이보다 더 능동적인 정치 집단이 대한민국에 대관절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얼마 전 '내가 복음이다' 팟캐스트 '전병욱&오정현 편'을 들었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합동스럽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자조 섞인 발언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 합동스럽다. 고통스럽다.

심용환 / 역사 강사, 깊은계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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