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7년 3월,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됐다. 정부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전국 99.9%의 고등학교가 좌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교육 현장에서 뛰고 있는 선생들은 순식간에 좌편향된 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가 됐다. 교육부는 선생들을 '좌파'라고 몰아갔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육부가 학부모와 선생 사이에 불신을 조장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선생들을 '엄정 조치'하겠다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1,017명의 현직 교사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기독교 교사 연합 단체 좋은교사운동(김진우·임종화 공동대표)에 속한 기독 교사들이었다.

선언을 주도한 김영식 선생은 기독역사교사모임 소속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학생부장을 맡고 있다. 학생의 날에도 동료 교사들과 함께 탈을 쓰고 아이들을 반겨 줬던 자상한 선생님이다. 11월 4일, 덕양중학교에서 그를 만나 기독교인이자 역사 교사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어 봤다.

▲ 김영식 선생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이 학교에 오기 전에는 7년 동안 고등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산업공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수능을 봐서 역사를 공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교육부와 정부 발표에 따르면 김 선생님도 좌편향 교육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서 함께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왜 계속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 모르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이 6만 명 정도 된다.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수십만의 교사들은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나도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데 역사 교과서에 반대하고 있지 않나.

- 교육부는 행정 예고 후 2주 동안 현장 의견을 수렴한다고 했다.

행정 예고 후, 교육부에서 교사·학생·학부모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응답자의 60%가 반대한다고 했지만 무시하고 고시를 강행했다. 반대 의견을 내도 전교조에 세뇌당해서 그렇다고 해 버리니까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 교과서 국정화를 이끈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장관 다 기독교인이다. 같은 기독교인이자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한국의 기독교 지도층이 역사를 인식하는 수준이 참 낮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교회의 성향과 흡사한 것 같다. 세속적인 부와 권력이 성공의 기준이 된 것인데…기독교인이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실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다르지 않은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지만 모든 왕을 잘했다고 하시지는 않았다.

요셉을 총리로 세우시고, 다니엘을 쓰신 것도 그들이 차지한 정치적인 지위 자체를 축복으로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온 길을 통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볼 수 있도록 의도하셨다. 신약에서는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런 인식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독재를 극복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한반도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감사한 일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끌어 온 역사에 반하는 시도다.

교회가 이 일에 저항해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은 알겠다. 하지만 국정화에 앞장서거나 기독교 분량을 늘리기 위해 국정화를 지지하는 것은 성경의 역사 인식과 배치된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지도층의 역사 인식 수준이 너무 낮다고 본다. 한국 기독교가 이 사회에 큰 죄를 지었다. 그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지만 역사 교사, 기독교인으로서 참 속상하다.

 발제를 맡았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저번 긴급 포럼(관련 기사: 이만열·김영식·심용환, 역사 교과서 논쟁을 파헤치다)에서 현행 역사 교과서에는 이미 기독교가 개화기에 기여한 부분이 많이 서술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 서양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다. 그때 활약할 수 있는 서양 사람들은 거의 선교사였다.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교육을 받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술들을 전한 것도 선교사들이다. 헐버트 선교사 같은 경우에는 을사조약이 맺어진 후 세계와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기독교인' 아무개가 이런 일을 했고 기독교가 이런저런 위대한 일을 했다고 역사책에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생각은 교육 현장의 자율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제너럴셔먼호를 설명할 때 한국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계기를 함께 설명한다. 제너럴셔먼호가 우리나라에 장사하러 왔다가 포격을 맞고 불에 타서 끝난 사건으로만 가르치지 않는다. 그 사건 속에서도 이 땅에 개신교가 들어온 하나의 계기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개신교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교회가 시작되었는가를 가르칠 수 있다. 이미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아, 우리나라에 이렇게 교회가 들어왔구나'하고 알게 되고, 어떤 애들은 '아 선교사들이 저렇게 허망하게 죽어 갔는데도 한국에 교회가 들어왔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물론 교회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기독교 서술 분량 증가를 주도하는 박명수 교수 그룹이 기독역사교사모임에 일을 같이 하면 어떻겠느냐고 문의해 온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의 대답은 변함이 없다. 역사학계에 기독교 관련 논문이나 연구도 턱없이 부족한데, 정치·사회·문화 가운데서도 문화로 분류되는 종교 이야기를 어떻게 많이 실을 수가 있겠는가.

▲ 덕양중학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소개하는 피켓이 있다. 유기견 보호, 금연,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 방사 등이다. 그중에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기억하자는 코너도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보수 기독교계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한다고 발표했을 때, 사회에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 있었다. 기독교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심지어 극우에 가까운 사람들도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에 세월호 사건 겪으면서 '우리의 침묵이 키운 재앙'이라는 생각을 했다. 백일 집회나 추모제 가서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행정 예고를 했을 때, 사실 논쟁이 더 길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고시를 강행하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부를 보니 세월호 사건 때와 닮아 있다고 봤다. 기독교인 역사 교사로서 책임 있게 발언하고 반대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으면 했다.

두 번째는 기독인 역사 교사들이라는 이름으로 반대 선언을 발표하면,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좌편향 주장에 대한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봤다. 전교조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이고 중도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가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번 논쟁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교육의 관점에서도 안 되는 일이다.

- 좋은교사운동 내 기독역사교사모임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기독교인 역사 교사들이 모여서 강의 듣고 공부하면서 기독교적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모임이다.

우리는 기독교 대안 교육이 아닌 공교육 안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공교육에서 기독교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기독교 가치라는 것은 한 개인이 역사 속에서 자기를 넘어서서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는 삶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을 키우는 것이 기독교적 역사교육의 핵심이다.

- 설명을 듣고 있으면 기독교인과 역사 교사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함께 고민했던 것 같다.

기독교인과 역사 교사라는 정체성의 제대로 된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역사교사모임 덕분인 것 같다. 하나님은 입시를 잘 가르치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내가 맡은 아이 한 명 한 명이 자신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위해 역사교육을 하라고 부르신 것이다.

이것은 교육부의 교육목표와도 부합한다. 교육부가 초·중·고 교육제도를 통틀어 강조하는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민주 시민교육'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를 통틀어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 수 있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이 좌편향인가 묻고 싶다.

- 중학교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주로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는가.

모든 과목이 그렇겠지만 주입식으로 역사를 배우면 재미가 없다. 과거 국정교과서가 재미없었고, 국사 시간이면 애들이 다 잠을 잤던 이유는 사건을 나열하는 식으로 역사를 설명해서 그런 것이다. '얘들아, 이거 중요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외워야 해'라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절대 흥미를 못 느낀다.

아이들이 관심 있어야 하고 주목하는 것은 이야기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역사 속에서 헌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동교회 청년부였던 이회영과 6형제 이야기가 아주 좋은 예다. 그들은 민족의 위기 앞에서 개인이 가진 재산을 다 내놓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반대로 윤치호 같은 인물도 있다. 이 둘은 같은 신앙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걸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문제는 국정교과서를 하면 윤치호도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2017년 3월이면 국정교과서가 배급된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나.

역사 교사들을 중심으로 거부 운동을 일어날 것 같다. 지방 교육청이 검인정교과서를 만들면 그것이 부교재가 될 수 있다. 지금도 교과서로만 수업하지는 않는다. 교과서가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압축한 것이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충 교재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국정교과서가 되면 교과서가 더 외면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사들이 절기 설교를 하는 것처럼 계기 수업이란 것을 할 수도 있다. 현충일이나 제헌절 등에 맞는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해서 교장의 결재를 받으면 교사가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교장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진행하고 보지 않을까 싶다.

혼자서 이렇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회적으로 함께 거부 메시지를 계속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에게도 떳떳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교과서가 바뀌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오늘부터 바뀐 교과서로 수업하자'고 할 수는 없다.

▲ 김영식 선생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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