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다"…'기독인 금식 기도단' 가동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
8월 6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빗속에서도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하는 유가족들의 호소는 계속됐다. 행인들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서명에 참여했다. 천막 안에서 단식 중인 유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명자들에게 나눠 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는 '광화문 국민 휴가'를 기획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단식 농성에 참여하게끔 하고 있다. 국민 휴가는 8월 1일부터 9일까지 진행한다. 대책회의는 광화문광장 중앙에 10여 개의 텐트를 설치했다.
휴가 느낌 나게, 광장에는 카페도 있다. 간판 대신 내건 현수막에는 '교회2.0 광화문 천막 카페'라고 적혀 있다. 대책회의가 국민 휴가 기간에 카페를 운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단식 농성에 참여하고 있던 최헌국 목사(촛불교회)가 카페는 개신교에서 맡겠다고 나섰다. 최 목사는 교회2.0목회자운동(교회2.0)에 카페 운영을 요청했다. 교회2.0은 흔쾌히 수락했다.
박형근 목사(다꿈교회)는 카페가 문을 연 8월 1일부터 지금까지 광화문 카페를 지키고 있다. 5평 남짓한 천막 안에서 박 목사를 비롯한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복작댄다. 박 목사는 원두를 갈고 커피를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봉사자들은 완성된 커피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유가족들에게 나눠 줬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음료는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티다. 하루에 2000잔 정도가 나갈 정도로 인기가 좋다. 박 목사는 잠시 틈을 내 기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두 손으로는 커피를 내렸다. 가슴에는 '교회2.0 박형근 목사'라는 명찰을 달았다.
"교회2.0 안에는 카페를 운영하는 목사들이 있다. 나 역시도 교인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교인들은 설교를 듣고 삶이 바뀌지 않는다. 목사의 삶을 보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때 교인들은 변화한다. 미천한 기술로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유가족 중 개신교인이 있다. 농성장에 목사들이 와 있다고 반가워한다. 처음에는 목사들이 농성장에 나왔다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광화문을 찾는 사람은 신부나 승려밖에 없는 줄 안다. 신부나 승려는 사제복이나 승복을 입고 있지만, 목사들은 사복을 입으니 티가 안 나는 것 같다.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을 때부터 최헌국 목사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회자들이 계속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이름과 교회가 적힌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목사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게 명찰을 달도록 요청했다. 지금은 다들 교회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다."

사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농성 참가자들에게 개신교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중년의 남자는 기자에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관련 있는 신문이냐"고 물었다. 별로 관련 없다고 답했더니, 그는 그제야 경계를 풀었다. 자신도 부인을 따라 교회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한기총과 개신교 목사들이 하는 막말을 듣고 교회에 나갈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몇몇 목사의 경솔한 발언으로 개신교 전체 이미지가 망가졌다.
최근에는 일부 보수 단체가 유가족들에게 서명운동과 단식 농성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개신교인들도 거들었다. (관련 기사 : 이제는 세월호 사태 마무리하자는 목사들) 박형근 목사는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몇몇 개신교 목사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가 광고 낸 걸 봤다. 그런 사람들은 말은 잘하는 데 실제적인 활동이 없다. 뭘 이만하면 됐나.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흘렀다고, 나라가 시끄럽다고 그만두라는 건 지극히 이기적이고 편파적인 생각이다. 현장에 나와 보면 그런 말 못한다. 자기 자식 일이어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겠나. 한국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 모습이 반복됐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계속 생긴다. 철저한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유가족들이 납득할 만한 답변이 나와야 한다."
박 목사와 같이 유가족들 곁을 꿋꿋이 지키며 이들을 위로하는 개신교인들도이 많다. 현재 광화문광장에는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 외에도 30여 명의 개신교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와 민주쟁취기독교행동은 하루씩 순번을 정해 단식 농성에 동참하고 있다. '기독인 금식 기도단' 천막에는 목사들 외에도 개별적으로 광화문을 찾은 교인들이 기도와 성서 묵상을 하고 있었다.
한편, 단식장에는 8월 14일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교황의 시복 행사 전까지 특별법 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피해자 가족들의 농성 천막이 철거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교구 소속 나승구 신부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했다. "교황께서 8월 15일 대전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때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직접 면담한다. 가톨릭 역시 8월 16일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 간다. 정부가 강제 철거를 강행할 수는 있지만, 가톨릭에서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