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마중'. 세월호 침몰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7월 12일부터 국회 본관 앞에서 노숙하고 있다. 14일부터는 15명의 유가족이 단식을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을, 그들은 별 마중이라는 예쁜 말로 표현한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이자 세월호사고희생자·실종자·생존자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경근 씨는 그 뜻을 이렇게 말했다. "안전한 나라 건설이라는, 별이 된 304명 희생자들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어 내기 위한 마중물이 되려는 우리 가족들의 몸짓입니다."

▲ 14일부터 유가족 15명이 단식에 돌입했다. 10명은 국회에서, 5명은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 중이다. 유가족들은 오늘도 하늘이 훤히 보이는 국회 본관 앞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몸을 누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14일 밤 10시 국회. 본관 정중앙에 양쪽으로 5명씩 단식하는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고, 그 뒤에는 경찰 십여 명이 문을 막고 서 있다. 왼쪽에는 유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노란 종이로 배를 접고 이름을 써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시민들이 늦은 밤까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본관 앞에 남았다. 단식 농성 중인 유경근 씨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하루 일정을 마친 유경근 씨와 만났다. 유 씨는 현재 안산 화정감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이자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의 말 속에는 약간의 냉소가 묻어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도 채 가눌 시간 없이 대책위 대변인 역할을 맡으면서, 온갖 사람과 언론을 상대해야 했던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유 씨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여러 도움을 줬지만, 유독 진상 규명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다음은 유 씨와의 일문 일답.

▲ 유경근 씨는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다.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대책위 대변인을 맡아 왔다. 유 씨가 체감하는 진상 규명과 한국교회에 대해 들어 봤다. 사진은 유경근 씨가 1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틀 후(16일)면 국회 본회의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세월호 특별법 TF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심경은 어떤가.

특별법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해 줘야 이런 상황이 빨리 끝날 수 있다. 유가족들이 입법 청원한 4·16 특별법의 내용을 100% 그대로 받아 달라는 것도 아니다. 여야 의원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논의해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목적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들이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를 설득하려는 노력도, 논리도 없다.

- 새누리당이 내놓은 법안을 보니 진실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에 있어서 굉장히 소극적이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유가족들이 집권 여당만 비판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유가족들에게 정치색을 씌우는 일은 의미가 없다. 유족들이 물론 과거에는 보수적이었을 수도 있고 진보적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왜냐면,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상만 규명할 수 있다면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철저히 가려내서 처벌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방법, 그 길이라고 하면 유가족들은 하나가 된다.

▲ '진실은 침몰 않는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만들기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뿐이다. 사진은 늦은 밤까지 국회 잔디밭에서 노란 종이로 배를 만들고 있는 희생자 아버지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오늘 안산 합동 분향소에 다녀왔다. 안산시기독교연합회 부스에서 몇몇 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일 교단별로 돌아가면서 부스를 지킨다고 한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애틋한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진상 규명'이나 '정부' 얘기가 나오면 일단 반감을 가지더라. 유가족들의 서명운동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는 비단 이 목사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대다수 교인들의 정서다.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

내가 얘기한다고 그들의 마음이 바뀌겠나…. 간혹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양반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정부를 믿는 사람인가. '슬퍼한다',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진상 규명이라든가 책임자 처벌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관심을 싹 끊어 버린다. 더군다나 그 화살이 정치권을 향하거나 정부 여당을 향하게 되면, 반신앙적인 모습처럼 보는 것 같다. 정교분리 운운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몇몇 대형 교회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노골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는 이야기를 한다.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면서, 마치 신앙적·성경적인 것 마냥 얘기한다. 이런 거야 말로 정교유착 아닌가. 한편으로는 '저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진짜 저 말에 찬성하기 때문에 저 설교를 듣고 있는 걸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듣고 앉아 있는 걸까' 이런 걸 물어보고 싶다.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정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무슨 신학이나 논리, 철학 같은 어려운 설명이 필요하겠나. 단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만 하면 답이 나온다. 물론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동시에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셨다.

▲ 기자는 이날 오후 안산 합동 분향소에 다녀왔다. 안산시기독교연합회 부스를 지키고 있는 목사 4명을 만날 수 있었다.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진상 규명 서명운동은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교단이나 교회에서 모금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유가족 대책위에게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당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6월 30일 출범한 세월호참사범국민대책및회복위원회에 1억 원을 기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오정현 목사, 세월호 유가족에게 피소)

첫째로 그 돈이 오 목사 개인 돈인지, 사랑의교회 교인들의 헌금인지 알고 싶다. 둘째로, 돈 모아 주는 게 교회가 할 일은 아니다. 물론 교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헌금해서 주는 거라면, 개인적으로 일반 국민이 성금하는 것보다 더 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교인들의 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대형 교회가 무슨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이 재해 성금 내는 것처럼 1억 원씩 턱턱 내놓고. 무슨 교회가 그런 일을 하나. 교회는 그런 거 하는 데가 아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교회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이 사회가 이윤을 추구하고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되다 보니까 이 사고가 났는데, 교회도 역시 거기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140만이든 14만이든, 숫자보다 중요한 건

 

- 촛불교회(최헌국 목사)를 비롯한 여러 교회들은 계속 유가족들을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 대형 교회인 안산동산교회(김인중 목사)는 유가족들을 교회로 불러 서명운동을 할 수 있게 도운 것으로 알고 있다.

힘이 되어 주는 교회가 많다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훌륭한 교회와 목사님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동산교회 목사님은 범국민대책및회복위원회의 공동대표도 맡고 계시다. 유가족들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직접 교회에서 서명운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거 다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많이 도와주고 계시다.

▲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사진 위)는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농성을 시작한 12일부터 매일 국회에 찾아왔다. 13일과 14일 저녁에는 촛불교회 주관으로 국회 앞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맨 앞쪽에 유가족들이 앉아 있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런데 개신교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약하다.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알다시피, 이번에 법륜 스님이 만든 '정토회'에서 140만이 넘는 서명을 받아 주셨다. 딱 2주 걸렸다. 처음에는 정토회 쪽에서 100만 서명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5일 정도 됐는데 50만을 했다고 하더라. 반드시 100만 채울 테니, 채우는 날 가져다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왔다. (7월 14일 현재 서명자 수 360만 명 - 편집자 주)

숫자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140만이면 어떻고 14만이면 어떻고 1만 4000이면 어떤가. 해 주신 정성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토회는 단 한 번도 이런 서명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서명을 어디서 받아 본 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 누구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140만을 받았다. 누가 도와준 것도 아니다. 그냥 매일 매일 전국에서, 되든 안 되든 매일 2주를 하니까 된 거다.

이에 비해 교회, 특히 큰 교회 같은 데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서명을 받아드리려고 하는데', '유족들이 언제 어디로 오셔서 받으면 되는데'. 우리가 장을 펼쳐 놨으니 너희가 와서 받아 가라는 식이다. 물론 이것도 고마운 일이긴 하다. 정토회에서는 유가족들에게 와서 서명 받으라는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 그냥 자기들끼리 한다. 우리는 고마우니까 오히려 먼저 찾아간다. 가면 우리가 막 웃는다. 거기 나온 (정토회) 아줌마들이 서명을 받을 줄 몰라서 시행착오도 겪고, 쩔쩔 매고, 쉽게 할 수 있는 거 어렵게 하고…. 다 보게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냥 했다, 매일 매일.

이게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고,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유가족들이 본 거다. 가가호호 방문도 하고, 하여간 자기들이 몸으로 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게 단순히 누가 지시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법륜 스님 영향력이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스님이 유가족들을 무조건 도와주라고 했단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다. 법륜 스님의 영향력이 있기는 하지만, 지시만 듣고 의무적으로 따랐다고 이런 결과가 나올까. 처음에는 저 양반들이 어떻게 서명을 받았나 싶었는데, 학부모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누차 얘기하지만 숫자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 과정을 봤다는 말이다.

▲ 불교 정토회는 2주 만에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주었다고 한다. 현재 360만 명이 서명한 것을 보면 약 1/2.5을 정토회가 감당한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숫자보다 그들의 태도에 더 감동받았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10일 세월호 가족 버스와 동행하며 서명운동을 벌인 정토회. ⓒ뉴스앤조이 구권효

- 비교가 될 수밖에 없겠다. 전에 세월호 가족 버스를 취재하면서 한 희생자 어머니를 만났는데, 자기가 교회에 다니는 게 창피하다고 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기독교인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하시더라. (관련 기사 : 세월호 유가족, "진실 알려 달라는데 교회는 돈만 걷어")

아무래도 이렇게 비교가 되는 일이 많다. 종교계에서 연락도 많이 온다. 우리가 연락도 하고. 서명운동 전개할 때, 개신교·천주교·조계종 세 군데에 연락했다. 천주교는 우리가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수원 교구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의 요청에 제일 반응이 빨랐던 건 조계종이었다. 사실 조계종은 기대를 안 했다. 총무원장의 정치적인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응이 제일 빨랐다. 바로 약속 잡고 다음 날 면담했다. 그때가 국회 처음 들어와서 2박 3일 있었을 때, 5월 말이었다. 그가 그 다음 날 유가족들 지지하러 국회에 방문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더라. 간 김에 자기가 국회의원들 모아 놓고 한 소리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날 저녁에 상황이 끝나 버려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왔다. 근데 개신교는… 모르겠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특별법 제정인데, 어떻게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연합 기관이나 교단이 너무 갈라져 있어서 그런 것도 같다.

▲ 350만 1266명의 서명이 담긴 416개의 박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유경근 씨는 뜬 눈으로 별 마중 4일차를 맞았다. 그리고 돗자리에 누워 한뎃잠을 잔다. 그저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밝혀야겠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건데, 치러야 할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하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16일 본회의 때까지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특별법 만들어질 때까지 여기 있을 겁니다."

 

유가족들은 7월 15일 오전, 그동안 받은 350만 명의 서명을 416개의 노란 박스에 담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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