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 지 나흘째인 4월 19일, 악화되는 상황에 안산시는 더욱 침통해졌다. 단원고등학교는 취재진을 통제하고 내부 정리에 들어갔다. 강당에서는 여전히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구조 현황을 지켜보고,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상담을 진행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학교를 방문한 시민들은 복도와 교실 창문에 빼곡히 붙어 있는 응원 메시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 단원고등학교 복도와 교실 창문은 사고를 당한 학생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방문객들은 메시지를 읽어 나가며 눈시울을 붉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실종된 학생들이 다니던 교회들도 침울한 분위기다. 대부분 사고가 난 이후 매일 기도회를 열어 교인들과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있다. 단원고 앞에 있는 안산명성교회(김홍선 목사)는 매일 저녁 8시에 기도회를 연다. 19일 저녁 기도회가 끝나고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한동안 교회 앞을 떠나지 못했다. 학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주일학교 교사들은 그늘진 얼굴로 말없이 이들을 쓰다듬었다.

이번 사건으로 실종된 학생들은 상당수가 안산시 고잔동과 와동에 살고 있다. 한 시민은 이 지역에 생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실종된 학생들 중에는 개척 교회 목사 아들도 있었다. 이 학생은 아버지가 힘들게 목회하는 것을 보면서도,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어 왔다고 한다.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가 키우다시피 한 학생도 있었다. 부모가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홀로 신앙을 키우며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도 많았다.

▲ 실종된 학생 중에는 개척 교회 목사 아들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한 교인이 이 학생을 응원하며 교회에 메시지를 붙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교회 목회자는 저번 주까지 함께 예배에 참석했던 친구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들은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무작정 금식하겠다고 나서고, 어떤 학생들은 구조 소식을 접하며 정부와 사회에 크게 분노했다. 적어도 학생들 앞에서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 주려 하는 목회자들도 어떤 말로 이들을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안산광림교회 한 목사는 "사람의 말로 어떻게 위로가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사고를 당한 학생이나 가족들이 있는 교회 목회자들은 부활절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안산명성교회 한 목사는 부활절 설교 준비를 일주일 전에 끝냈는데, 다시 준비하고 있다며 토요일 오후까지 염려 속에 빠져 있었다. 안산성광교회 한 목사도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솔직히 스스로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며, 다만 벌써부터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한 것처럼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부활절 기념행사를 취소한 교회들도 여럿이었다. 이번 부활절은 기쁨보다는 애도와 위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안산광림교회는 부활절 칸타타를 취소하고, 바자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성광교회도 매년 해 왔던 계란 전도와 음악회, 봄나들이 등을 취소했다. 안산제일교회도 교인 간 교제 중심의 행사는 전부 보류한 상태라고 전했다.

▲ 실종된 학생이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매일 기도회를 열고 있다. 교인들은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단원고 바로 앞에 있는 안산명성교회도 매일 저녁 8시 기도회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안산의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교회들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건을 무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부활절 설교에서, 한국교회 전체를 망신시키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망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교단이나 연합 기관이 직접 움직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큰 단체가 움직이면 의전을 따지게 되고, 이것은 사건을 당한 교회에도 부담스럽고 가족들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질적인 지원도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이나 안산 단원고에 지원 물품은 충분했다. 시민 단체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안산명성교회 김홍선 목사는 교회가 물질적인 부분보다 심적·영적인 치료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시 전체가 큰 충격을 받고 우울감에 빠져 있고, 학생·가족·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를 풀 곳은 마땅치 않다.

▲ 안산 화랑 유원지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단원고 재학생 및 졸업생, 학부모들이 잇따라 편지를 낭독했다. 1000여 명이 모여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편, 이날 안산시 화랑 유원지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촛불 물결을 이뤘다. 단원고 재학생 및 선후배, 학부모 등이 사고를 당한 학생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너희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적을 바라는 기도밖에 없어서 미안해", "이제 핀 꽃들아, 제발지지 말아 줘", "꼭 다시 돌아와 줘". 편지를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한마음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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