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 없는 정부 수색 작업에 지친 피해 가족들은 자주 부두로 나와 말없이 바다를 응시한다. 답답한 이들은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필사적으로 구조 작업을 하고 있지만, 높은 파도와 짙은 안개, 무엇보다 강한 조류로 구조 작업이 난항이라고 정부는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후 나흘째인 진도 팽목항의 공기는 무겁다. 4월 19일 해양경찰청이 오전 구조 작업을 보고했다. 해경은 함정과 항공기, 잠수부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에 나섰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세월호 선실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 묻는 말에 해경은 선체 진입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해경의 조사 보고가 있을 때면 팽목항은 칼 위를 걷는 듯 싸늘해진다. 성과 없는 무책임한 보고에 학부모들은 욕설과 함께 분노를 쏟아낸다. 일부 피해 가족들은 해경을 믿을 수 없다며 직접 조사 현장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몇몇은 부두에 서서 말없이 바다를 응시하며 담배를 태웠다. 시계태엽 감듯 되풀이되는 이 광경은 사고 첫날 친구의 아들을 찾기 위해 팽목항으로 달려왔던 김민호 목사(고군중앙교회)에게 낯설지 않다. "믿을 수가 없죠, 믿을 수가. 은폐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지켜보는 저도 답답했는데, 학부모들은 오죽하겠습니까."

4월 16일 오전 김민호 목사는 여객선 침몰 사고가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팽목항에 도착했다. 친구의 아들이 세월호 안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 88명이 부두로 들어왔고, 나머지 아이들도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친구의 아이는커녕 나머지 학생들을 실었다는 배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서야 현장을 통제하던 해경은 정부 통계가 잘못됐다고 했다.

친구의 아이를 찾지 못한 김 목사는 무거운 마음으로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1박 2일 동안 팽목항을 지키면서 구호 물품을 제공했다. 4월 18일부터는 진도 실내 체육관에서 진도군교회연합회(진교연·문명수 회장) 캠프를 차리고 피해 가족과 함께했다. 체육관에 함께 있는 친구는 무덤덤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래도 속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이의 생사가 가장 중요한데." 김 목사는 눈시울을 적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옷 400벌 구해 달려온 목사

▲ 박철민 목사는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노인복지관에서 남는 옷 70벌을 챙겼다. 나머지는 목포 등 인근 노인복지관에 연락해 마련했다. 학생들이 모두 구출됐다는 언론 보도에 총 400벌의 옷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사진 제공 박철민)

사고가 난 첫날 이랜드복지재단 진도노인복지관 관장인 박철민 목사(광주목원교회 협동)도 진도 실내 체육관에 있었다. 구조된 아이들에게 물에 젖은 교복 대신 갈아입힐 옷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급한 대로 인근 복지관에 연락해 옷을 마련했고, 아이들 모두에게 지급할 400여 벌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배고플까 봐 빵과 우유 등 간단한 간식거리도 샀다. 하지만 뉴스와 다르게 아이들은 절반도 오지 않았다. 남은 옷은 다급하게 오느라 여벌의 옷을 가져오지 않은 실종자 가족들의 몫이 됐다.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로 순식간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상황에서, 자식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학부모들을 위해 박 목사는 동분서주했다. 첫날 체육관에 캠프를 차리고 구호 물품을 공급했다. 이후에는 팽목항에 자리 잡은 진교연을 도와 생필품을 조달했다.

박 목사가 물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SNS가 큰 역할을 했다. 페이스북에 알린 글을 보고 여러 단체와 교회가 후원했다. 월드비전 울산 지부는 2.5t 트럭 세 대 분량의 손난로와, 양말, 모포를 제공했다. 새누리3교회를 담임하는 임진산 목사는 교인 7명과 함께 1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해 4월 18일 팽목항을 찾아 구호 활동을 함께 했다. 박 목사는 신속하게 학부모들에게 생필품을 지급할 수 있었다며,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피해 가족들에게 전달되었기를 바랐다.

▲ 구조 작업이 지체되면서 지칠대로 지친 피해 가족들을 위한 임시 처소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이 외에도 이웃의 아픔에 함께하기 위해 조용히 팽목항에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목동 평강교회에서 청년부를 맡은 안세주 전도사는 서울에서 뉴스로만 듣기엔 마음이 불편해 4월 17일 진도를 찾았다. 직접 사고 현장에 가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안 전도사는 체육관과 팽목항, 구조 작업 현장에서 피해 가족과 함께 울었다.

교인들도 구호 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진도로 왔다. 부산 수영로교회의 윤일호 집사는 4월 19일 피해 가족을 돕기 위해 아내와 함께 팽목항을 찾았다. 청년들도 뉴스를 보고 찾아와 힘을 보탰는데, 연세대학교 기독학생연합 소속 청년 4명은 4월 18일 체육관에 찾아와 구호 물품을 나눠 줬다. 광주보건대 기독교인 청년 4명도 팽목항에서 봉사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바닷속 어딘가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피해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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