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지키는 노동자의 삶도 정의롭게 전환돼야 한다
| 기후위기기독인연대가 '정의로운 기후 사회'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비상계엄 내란 저지와 대통령 탄핵을 위해 수많은 시민이 광장을 지켰지만, 우리 삶에 밀접한 과제(민주주의·에너지·차별·기후 등)에 대한 논의는 '계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고 재난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기후위기기독인연대 활동가들이 격주 토요일마다 다양한 주제를 논의합니다. 글은 2025 기후 정의 행진이 열리는 9월 27일 전까지 총 11회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
| 고 김용균 이후 6년 만에 다시 발생한 참사 |
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석탄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27세의 청년이 일한 지 3개월 만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하청 업체가 그동안 인건비를 착복하고 인력을 최소한으로 배치해 사고 위험을 높였던 것이 드러났다. 고 김용균 씨가 사고를 당한 컨베이어 벨트 점검 작업은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환경이었다. 안전을 위해 2인 1조 작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이에 따라 국내 모든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2인 1조 작업을 원칙으로 하는 지침이 내려졌다. 하지만 원청업체 대표 등은 김용균 씨의 죽음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지침은 만들어졌지만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법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6년 6개월이 지난 2025년 6월 2일,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발전 노동자가 사망했다. 또 김용균 씨가 사망했던 태안 화력발전소였다. 세상을 떠난 김충현 씨는 발전소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기계를 작동하다가 팔부터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2인 1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부발전은 사고 이틀 만에 발전소 정상 운영을 명령했다. 고 김충현 씨의 동료 노동자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죽은 충격에서 벗어날 여유도 대안도 없이 다시 위험한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노동자의 삶은 없다 |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화석연료가 지목되고, 탄소 감축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들이 반영되면서, 정부는 2023년 제10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석탄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1600여 명이 직장을 잃게 될 때,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 대책은 아이스크림 공장에 취업하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석탄 화력발전소의 폐쇄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정책에는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빠져 있다. 결국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소리인데, 20~30년간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해 온 사람들에게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은 이들을 거리로,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다.
석탄 화력발전소 노동자 역시 발전소 폐쇄에 동의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발전비정규직대표자회의 이태성 간사는 2024년 충남노동자대회를 준비하는 '석탄의 일생' 상영회에서 동료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을 산업 역군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자녀에게 석탄 화력발전소가 기후 위기 주범이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기후 악당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발전소 폐쇄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일자리를 잃게 되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발전소가 폐쇄된다고 해서 노동자의 삶까지 폐쇄되어서는 안 된다.
| 남아있는 김용균, 김충현들, 정의로운 전환 |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가 결정되면서 인력 충원, 물적 투자 등의 지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방치돼 왔다. 서부발전은 하청에 인건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편성하면서 2인 1조가 근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폐쇄를 앞둔 발전소에 신규 인력 충원이 이뤄질 리도 없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마지막을 지키는 노동자들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 지금 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다른 김용균, 김충현들이다. 일터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발전소 폐쇄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두 문제 모두 폐쇄를 앞둔 석탄 화력발전소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며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와 에너지 전환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노동자의 삶도 함께 정의롭게 전환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발전 노동자의 삶을 보장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2023년 5월 미국 뉴욕주 의회는 '공공재생에너지건설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천연가스를 포함한 비재생 전력 설비 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 산업에 우선적으로 고용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독일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이 하청에 업무를 위탁할 경우, 작업환경과 지시 체계에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한다. 영국은 원청이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에 책임을 지운다.
고 김충현 씨는 대통령선거 하루 전날 사망했다. 그날은 후보자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협약식을 예정했다가 취소한 날이기도 하다. 이유는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시작된 김용균법과 대선 하루 전날 사망한 김충현 님,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 비정규직 발전 노동자들의 과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지 않게, 일자리를 잃어 죽지 않게, 정의로운 전환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
문형욱 /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