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IVP,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북 클럽 두 번째 시간
새벽녘, 작은아들이 토사곽란으로 심하게 고생을 했다. 일곱 살 아이가 종종 겪는 일이다. 토사물을 치우고 나서, 기운 없이 잠이 든 아이 곁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연약함은 단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다. 신체의 여러 기관이 제어에서 벗어나 스스로 이것저것을 내뱉어도 어찌할 도리 없는 무력함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 아이는 두려워했다. 아이의 토사물 앞에서 내가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아이가 통제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한 내 방편이었다. 후에, 장성한 아들이 연약해진 내 육신과 내가 내뱉은 갖가지 오물 속에서도 나를 담담히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나의 욕심일까.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지음, IVP)를 읽고 모인 두 번째 저녁, 우리는 모두 그간 담담히 마주하지 못하고 기억의 어딘가, 마음 한편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책을 통해 얻은 용기로. 아버지의 연약함과 그로 인해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진솔히 적은 김혜령 교수의 글은 모두의 마음에 막 하나를 걷어 내고, 벽 하나를 부수어 감춰진 것을 끌어냈다.
지난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한 참가자는 아버지가 목회를 끝내시고 요양보호사로 보낸 말년을, 그간 살뜰히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읽으며 아버지가 요양보호사로서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연약함을 돌보며 살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곱씹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아버지는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계셨다면 분명 요양보호사셨을 거야."
그는 그 이야기를 되새기고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정말 참된 요양보호사셨다"는 확신이.
감춰 둔 마음들 속에서 나온 가장 진솔하고 값진 고백은 "답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인간에게 왜 불행과 고통이 닥쳐오는지, 전능한데 선하고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하나님의 본성으로는 도대체 그 문제에 완벽히 말하기가(207p)" 어렵다는 김 교수의 고백이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모두가 세상일에 대한 해답을 알기라도 하듯 살아가지만, 그 단단한 벽들이 오늘만은 우르르 무너졌는지 "답하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참가자가 있었다.
한 참가자의 이야기다. 형제를 잃어 가슴 아파하는 이에게 조금 많은 액수의 조의금을 보냈다. 그 역시 사랑하는 형제를 잃었기에 타인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형제를 잃은 고통을 다시 마주하고, 과거 자신에게 필요했던 말을 그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로 어려운 일은 누군가를 돕는 것보다 약해진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사곽란으로 지쳐 설핏 잠이 든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아빠, 미안해."
나는 온 바닥에 쏟아 놓은 토사물 때문에 염치없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아들이 용기 있게 자라기를 바란다. 연약함도 용기가 있어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다 내보여 줄 용기, 내 속의 고통의 시간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거기에 보태어 나 역시 어느 날 온 바닥에 내 오물이 흩뿌려지더라도 누군가의 돌봄과 처치를 받을 용기가 생기길 바란다. 그 일이 내 아들의 몫이 되더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