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가르침 덕에 이른 나이부터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언가를 위해' 살기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들로 삶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어질고 착하라'는 뜻을 지닌 내 평범한 이름을 대할 때도, 그 '어질고 착함'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일단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며 더 애착을 가질 수 있었다. 수천 년 역사가 기획해 공동 작업물로 만들어 놓은 '타자 받들기'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일을 그치고, '나 믿어 주기'라는 씨앗을 마음 텃밭에 가꾸며 살아온 지난 40년의 삶에 감사한 마음이다.

어린 시절 교회는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나-이웃-하나님'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교육이 나와 타자의 평등한 윤리적 관계나, 우리 모두가 고유의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인간 이해를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느낌·감각·정서·지식이 총동원된 내면의 메시지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개념들을 내 것인 양 착각하며 나 자신과 유리된 삶을 살기도 했다. 어른이 된 나는 가끔 그런 시간 속에 서 있던 유년시절의 나를 만나, 사과하고 다독이고 위로하곤 한다.

지금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삶을 살고, 네가 사는 삶을 사랑해(Live the life you love, Love the life you live)"라고 노래한 밥 말리(Bob Marley)의 표현처럼 살아가고 있다. "네가 선택하고 존중하는 너의 삶을 살라"는 이 어질고도 착한 초대 덕에, 내 일상 영역에서 아직도 의심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자주 살핀다. 오늘 나눌 마지막 '함께고통함께평화' 이야기는 그 의심의 한 자락에서 만난 삶의 현장, 나의 비건(Vegan) 식생활과 연결된 '몸'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의 함께고통함께평화 현장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몸과 생활의 이야기다. 사진 제공 프리다
오늘의 함께고통함께평화 현장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몸과 생활의 이야기다. 사진 제공 프리다

지난 20여 년을 가금류를 거의 먹지 않는 식생활을 해 왔다. 느슨한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생선·달걀·유제품을 제외한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 유형)'으로 살아온 나의 식생활에 새로운 질문 던지기 시작한 건 작년 무렵이었다. 몸은 노화를 겪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들 다 챙기는 영양제도 두세 종류 먹고 있었고, 콜레스테롤 조절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 소견대로 약을 복용한 지도 수년째였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시기에 코로나19로 단순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몸과 생활을 더 세밀히 살피게 됐다. 내 몸을 다독여 가며 '늙어 가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고, 살아 있는 오늘은 나의 가장 젊은 날이자 성숙을 더해 가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약의 통제 속에 있지만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가기로 했다.

작년 어느 날 비건으로 사는 사람들이 내 인생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들과 삶을 나누는 일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자발적 선택'에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습성, 새로운 사고와 시도에 여전히 열려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 '몸의 성찰'이 가져다준 선물인 듯하다. 그들과의 만남들을 계기로 나는 2020년 9월부터 비건 식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만 10개월 차 초보 비건으로 살고 있다.

채식의 계기를 준 두 사람은 치유 음악가 '봄눈별' 님과 지난 글에 소개한 '기독청년의료인회'의 한 회원이다. 봄눈별을 처음 만난 건 내 소중한 친구이자 평화교육 활동가 반은기 선생의 집들이에서였다. 봄눈별은 스틸 텅드럼, 인디안 플룻, 칼림바 등을 가져와 그 집의 안녕과 친구들의 평화를 위해 연주했다. 그 연주를 들으며 지구 평화가 그냥 그날로 이뤄질 것만 같은 감정을 느꼈고, 그날 이후 그의 연주를 찾아 듣고 책도 읽으며 친구가 됐다. 또 다른 계기는 온라인 책 토론장에서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면서 연결된 채식인의 이야기였다. 짧은 단편영화 같은 채식 생활을 그녀의 공간에서 만났고, 그날 대접받은 '통밀 바나나 부침개'는 내 비건 생활의 첫 메뉴가 됐다.

'봄눈별'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산책하던 중 휴식 취하며 바라본 바다. 사진 제공 프리다
'봄눈별'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산책하던 중 휴식 취하며 바라본 바다. 사진 제공 프리다

나는 채식을 기꺼운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차원에서 몸과의 대화를 이어 갔다. '나' 없는 삶을 강요하는 가부장 문화나, '몸'의 중요성을 억압하고 존재를 분열적으로 이원화하는 근본주의신학 사상은 내 주된 비판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비판을 넘어선 다른 변화를 내 몸에 담아 낸 것도 아니었음을 자각했다. '입이 아니라 몸에 맞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먹는지' 일지를 쓰고 사진으로 남기며, 내 입으로 만든 식민지에서 빠져나오는 해방운동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음식 원료나 종류를 탓하기보다는 국수·빵·치즈·우유·과자에 대한 욕구 통제가 왜 그리 어려웠던 건지 몸과 마음을 살피기 시작했다. 막연히 그런 음식을 참아 내며 '억압 행동'을 하고, '건강'이라는 단어를 몸에 채워 넣으려 했던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식 사육을 거친 육류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 건강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무성의한 연대의 환상에서 빠져나와, 평화롭고 친절한 탈식민지 해방운동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음식을 먹고, 몸을 살피고, 명상하고, 다시 몸을 살피면서, 나름 다양한 생활 실험을 해 나갔다. 우선 채식을 시작하며 3개월 후 혈액검사를 할 생각에, 먹고 있던 영양제와 약을 모두 중지했다. 냉장고에 있던 치즈·멸치·새우·달걀·생선·젓갈·요거트·우유 등을 정리하고 채소와 과일로 식단을 마련했다. 하루 두 끼 현미를 먹어 온 일상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 실험은 3개월이 지난 후에도 계속됐고, 이제는 생활로 자리 잡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몸에 담겨 있던 나의 고통과 참된 연대를 하게 됐다는 점, 나의 몸을 생의 도반道伴으로 초대해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

채식인으로의 변화는 몸의 변화로 가시화했다. 꽤 높았던 혈관계 요소들의 수치가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떨어져 모든 약과 영양제를 끊게 됐다. 체중은 지난 10개월간 천천히 조금씩 감량돼 기존 체중보다 15%가량 빠졌다. 자고 일어날 때 느꼈던 부기와 피곤감도 사라졌다. 식생활과 몸의 변화는 다른 생활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하루 한 끼 생식을 하니, 화식火食이 줄어 도시가스 사용량도 줄고, 음식에 넣던 양념도 덜 쓰게 됐다. 그릇을 세제로 닦을 필요가 없어 설거지도 간단하게 할 수 있고, 물 소비량도 줄었다. 거리의 좌판이나 작은 상점에서 사 온 과일·푸성귀들로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으니 냉장고 없는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대형 마트, 식자재 배송, 배달 음식은 전부터 이용 빈도가 매우 낮았으나 이제는 아예 이용하지 않게 됐다. 젓갈 없는 김치를 샐러드처럼 해 먹고, 현미 생식을 하거나 불린 쌀로 밥을 지으니 김치냉장고나 밥솥도 살 필요가 없어졌다.

가치관과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채식으로 구성된 성찰적 식생활은 삶의 속도와 내용도 살피게 했다. 명상과 산책을 일용할 삶의 요소로 선택하니, 집 밖의 공원들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왔다. 광주에서 살던 집보다 많이 좁아진 생활공간에 가졌던 불평도 사라졌다. 군데군데 마련된 개방형 헬스장과 동네 운동기구들도 고맙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시민들, 온갖 종류의 반려견을 산책에 데리고 나오는 시민들 덕에 반려동물이 없는 데서 느꼈던 아쉬움도 덜하다. 플라스틱 물병에 붙은 상표를 분리해 내는 일도 재미난 놀이가 됐고, 박스에 붙여진 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납작하게 하는 일도 즐겁다. 대중교통을 사용하니 자동차에 필요한 보험, 유지 비용, 화석연료 등을 쓸 일도 없다. 쓰레기 줍는 시간은 수돗물을 더 깨끗하게 먹는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고, 확대되는 공공 도서관은 내 노년의 놀이터가 돼 줄 것이라는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일용할 삶의 요소가 됐다. 사진 제공 프리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일용할 삶의 요소가 됐다. 사진 제공 프리다

2년 전부터는 머리카락도 직접 자른다. 화장은 현경 선생님이 알려 준 대로 코코넛 오일과 햇빛 차단제를 쓰는 것으로 그만이다. 샤워는 물로만 하고, 작은 빨래거리는 손으로 빤다. 종이 휴지를 되도록 쓰지 않는 대신, 사용한 반쪽짜리 크기의 손수건을 그날그날 빨아 쓰면서 더 푸르고 깊어질 강과 숲을 기대하는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전보다 많이 줄어든 나의 소비생활에도 여전히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긴 하다. 기도하는 거룩한 시간을 위해 질 좋은 초를 사고, 평화교육을 위한 써클에 함께할 성물聖物을 사는 일, 나와 내 친구를 위해 꽃을 사는 일, 마음과 이야기가 담긴 선물을 사는 일, 전시회에 가고, 좋은 음반을 사는 일이 그렇다.

채식 생활은 내 몸과 생활 현장 전반에 평화로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나의 식생활은 일을 해내기 위해 후다닥 준비하고 급하게 먹어 치우는 기계적인 '식노동'이었다. 버는 돈의 양만큼 일하는 양도 많았고, 업무 일정을 접착 메모지에 적어 붙이고 떼어 내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최악의 경우엔 15분 단위로 그렇게 살기도 했다. 걸음은 왜 그리도 빨랐던 건지, 빠른 발걸음도 모자라 상체가 늘 앞으로 향해 있었다.

변화된 식생활은 내 손과 발과 마음과 생각으로 하는 모든 일을 온전한 '나의 일'로 바라보게 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침의 첫 동작, 창을 열고 환기하는 일, 호흡,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일, 책을 읽고 연구하는 일, 대화하는 일, 설교를 준비하는 일, 글을 쓰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일에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이 담겨 있는지를 확인하며 살아가게끔 했다. 비건 생활은 마감을 다투어 글쓰기와 설교 짓기를 해내던 습관과도 이별하게 됐다.

내 선택으로 기꺼이 시작한 채식은 그렇게 나의 생을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고 있으며, 더 비워 내도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한 평화를 내 몸과 마음에 선사 중이다. 그렇다고 모든 염려가 사라졌다거나, 줄어든 수입으로 인한 불안이 전혀 없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사회복지 시스템 구축과 교육·의료·교통·복지·주택·기독교 등의 공공성 확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나의 신앙과 기독교 공동체성, 그리고 그것이 발현되는 사회적 현장과 공간에서 더 평화롭게 기꺼운 춤을 추며 살아갈 것이다.

프리다의 첫 비건 메뉴였던 통밀 바나나 부침개. 사진 제공 프리다
프리다의 첫 비건 메뉴였던 통밀 바나나 부침개. 사진 제공 프리다

오늘 글을 마치며 나의 첫 비건 메뉴였던 통밀 바나나 부침개가 생각나, 그것으로 점심을 먹었다. '함께고통함께평화' 연재를 마치는 축하 밥상이기도 했다.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산책을 했다. 산책로의 나무와 숲을 오가며 새소리, 바람 소리, 이파리 부딪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나를 대신해 하늘에 올리는 기도 소리 같았다. 그 속에 한동안 머무르니, 가족·친구·교우들, 연재된 글의 현장에 있는 동지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너도 새와 바람과 이파리의 기도 같은 그런 사람이 되렴' 하는 내면의 초대장을 받는 기분이었다.

'함께고통함께평화'의 현장, 그 속에 사람들이 있다. 아프고 거룩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있다. 기꺼이 선택한 나의 사소한 결정과 그것이 만든 일상들이 그들에게도 닿기를 기도한다. 사랑으로 가득 찬 광활하고 따스한 텅 빈 공간 같은 하나님의 시선이 담긴 삶을 살고 싶다. 척박하고 아픈 각자의 시간을 살아 내고 있는 존재들의 손을 잡고, 나도 이 기나긴 시간을 잘 건널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함께해 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나의 인사를 드린다. 함께고통함께평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오현선(free다)의 함께고통함께평화' 연재를 종료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고통함께평화! - 편집자 주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