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선(free다)의 함께고통함께평화] 나의 벗, 나의 동지 '나비날개짓' 이야기
2019년 5월, 13년간의 광주 생활을 뒤로 하고 고향인 서울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집값을 충당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결국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를 찾아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주'가 살아가는 자 모두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내 조그만 삶에서도 경험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서부 버클리, 샌 안셀모, 클레어몬트, 다시 서울, 안산, 광주를 거쳐, 오늘 내가 머물러 사는 곳은 경기 고양이다.
고양에 온 지 며칠이 흐른 어느 날 고양 사는 류태선·백경천 목사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두 분은 동네 친구로 함께 살아가자며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함께고통함께평화' 세 번째 이야기는 이 두 분, 그리고 동네 친구는 아니지만 곧이어 합류한 홍인식 목사님과의 모임인 '나비날개짓'에 관한 이야기다.
류태선 목사님은 학생운동, 인권 운동으로 청년기를 보내며 신학을 늦게 시작했다. 신학교에 들어왔지만 교육 내용에 답답함을 느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내에 '열린신학바른목회연구회'를 조직하고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교단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용산교회 목회로 이어지는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
류 목사님은 개혁이 어려운 교회 현실에 직면하면서 '교회개혁예장목회자연대'를 조직하고 목회를 확장해 왔다. 교회 개혁을 위한 과제를 발견하고, 실천적 관계망을 조직했다. 최근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두고 씨름하기까지 일관된 교회 개혁 과제를 자신의 삶으로 직조해 왔다. 현재는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이자로 소규모 대출을 지원하는 '생명의길을여는사람들'에서 일하면서, 고양시 지역사회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휴일에는 텃밭 채소를 가꾸며 가족을 지원하는 가사 노동자이기도 하다.
백경천 목사님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은퇴하기 전까지 일산호수교회에서 18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고양에 와서 백 목사님을 처음 만나자마자 겸손함과 진취적인 의지를 품은 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분이 내게 선물한 <형에게>(사하라북스)를 읽으며, 그분의 인격과 더 깊게 만났다. 백 목사님은 폐 이식을 받았는데, 같은 아픔으로 소천하신 그분의 형님에게 쓴 편지글에서 백 목사님이 사람을 얼마나 깊이 존중하는 사람인지 볼 수 있었다.
폐 이식을 한 지 이제 4년째인 백 목사님은 '이삭의샘선교회'를 만들어 미얀마 선주민의 자주적 선교와 교회 설립을 지지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병원 침상을 드나들면서도, 독서와 글쓰기, 독서 모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 평화와 에큐메니컬 정신을 일상화하기 위해 이웃 종교인들과도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엘리사벳'에 관심을 갖고 공간 활동이 광주에서 고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구소 공간을 주선하는 등 나의 고양 정주에 큰 환대를 선사한 친구다.
홍인식 목사님은 고양에 살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이유로 위임목사직을 떠나게 된 내 오랜 친구다. 1986년 신대원 동기로 만난 홍 목사님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가진 해방신학자이자 목사다. 파라과이로 이주해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과 아르헨티나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 후 쿠바·아르헨티나·멕시코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2016년 순천중앙교회에 부임했다. 그러나 2020년 사임을 하고, 현재는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이사장과 언론지 <에큐메니안> 대표로 활동하며 '더처치'에서 목회하고 있다.
홍 목사님은 한때 서울 한 교회에서 위임목사로 있다가 교회 개혁의 한계를 절감하고, 교회를 떠나 약속된 사례도 없이 멕시코로 향했고, 그곳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 사정을 나중에 알게 된 나는 한없이 안타깝고 미안해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과테말라 한 마을에서 채소·꽃·과일을 파는 사람들을 손수 그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내가 있는 광주까지 찾아와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이 소중한 그림은 나의 책 <이주 여성과 함께하는 부모교육>(꿈꾸는터)의 표지가 됐다.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을 때 "이런 일이 늘 나쁘지만 않더라고. 누가 정말 친구인지 알 수 있게 되니까"라고 말해 준 홍 목사님의 우정에 참 감사함을 느낀다. 터전으로 삼은 곳의 문을 나와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공감·연민이다. 35년 신뢰를 지닌 채, 각자의 현장에서 사명 따라 살다가 함께 '나비 날개짓'을 하게 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렇게 50, 60대의 사람 네 명이 모였다. 서로 만나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아가고픈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모임 이름을 '나비날개짓'으로 정했다. 네 사람 모두 교단·교회에 애정이 두텁고 교단 개혁 의지도 뚜렷했던 터라, 뜻을 모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회에 외치는 종교개혁 선언문'을 작성하고 발표하기로 의논한 자리에서 지어 붙인 이름이다. 교회 개혁을 위한 기개를 갖되,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양과 빛을 담은 '나비'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날개짓'을 더했다.
교단 문제를 비판하고 개혁 요청을 담은 선언문 1차 초안은 내 개인 차원에서 작성된 문건이었다. 이것이 동지들의 합류와 더불어 대폭 수정돼 네 사람의 의지를 담은 '공동 선언문'으로 재작성됐다. 서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민주적으로 합의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이 주시는 영적 해방감에 휩싸였고, 상호 신뢰의 정을 쌓을 수 있었다.
만나서 대화할수록 개신교 종교개혁과 교단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마음이 있었다. 마침내 2020년 10월 30일 종교개혁 주간, 우리는 총회 앞에서 선언문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함께 읽어 내려가며 첫 날개짓을 시작했다. 선언문을 작성할 때에도, 읽을 때에도 우리 마음은 뜨거워졌다. 아주 작은 시작이었으나 이 미세한 날개짓에 성령이 또 다른 바람을 더해 가실 것을 믿으며 기도하고 있다.
나는 선언문 발표 후 한 주 뒤인 11월, 교단 탈퇴의 의지를 담아 내가 속한 노회에 '목사 시무 사임 청원서'를 제출했다. 노회는 당시 분립 분쟁 중이어서 내 서류는 공식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햇수로 2년째 진행된 분립 분쟁을 종료한 올해 3월 11일 "수년에 걸쳐 교단 총회가 공적으로 행하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 부자 세습 허용과 차별금지법안 제정 반대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에 교단을 탈퇴하고자 합니다"라는 사유를 적어 다시 노회에 서류를 제출했다.
'나비날개짓'은 오늘도 함께하고 있다. 각자 처한 삶의 자리에서 교회 개혁을 향한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며 살자고 격려한다. 교회·교단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을 살아 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므로, 생존과 소명 사이에서 험한 줄타기를 하며 기도 속에 묵묵히 교회를 지키는 수많은 목회자와 교우들이 있다.
물론 촘촘히 짜인 거대한 이익집단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사회의 부자富者 세습, 교회의 부자父子 세습이 어떻게 관철돼 가는지 수년간 봐 왔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부자 교회의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자본을 섬기는 사람,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적당히 무시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뭐 내 동생을 지키는 자라도 됩니까?(Am I my brother's keeper?)"라고 항변하는 무책임하며 잔인한 태도가 어디 카인만의 것이랴.
나는 작은 날개짓을 시작한 내 삶의 현장 '나비날개짓'이 자랑스럽다. 그리스도인이자, 실천신학자, 교육학자, 목사, 엄마로 사는 나의 부족함·연약함도 이들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용적이며 부드럽고 분명하다. 책임감 있고 온유하다. 위계적이지 않고 시선이 곱다. 나의 책 선생, 파커 팔머(Parker Palmer)가 이분들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 것 같다. 교단 개혁이라는 무게감 실린 일에는 분명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더불어 나비 날개짓하며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을 듯하다.
파커 팔머는 민주 시민에게 두 가지 마음 '흐츠파(chutzpah)'와 '겸허(humility)'를 요청한다. 흐츠파란 '나는 의견이 있는 사람이며, 내 의견은 들려질 권리가 있고 또 나에겐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의견을 말할 때는 명료하게, 확신에 찬 태도를 갖춰야 한다. 반면 '겸허'에 담긴 의미는 '내 의견은 (내게는 옳다고 여겨지더라도) 언제나 부분적이며 심지어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마음 열고 존중하며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두 단어는 옳은 소리라 여겨지는 말을 거칠게 할 때가 있는 내게 늘 거울이 되는 말이다.
우리는 이 정신으로 예수교회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교회(예장통합)와 서류 정리까지 마치고, 최종적으로 이별하게 된 날이다. 또한 오늘은 더 많은 나비 날개짓을 원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흐츠파'와 '겸허'의 마음을 가지고 '나비 날개짓'을 함께 하고픈 독자들의 연대를 바란다. 함께고통함께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