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목사 자녀 비전 투어> ㉒

저녁에 '8번가교회'를 방문하고 나니 밤이 깊어졌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뭔가 아쉽고 허전합니다. 이틀 후 아침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은 시간을 아껴서 여행을 즐겨야 합니다. 우리는 추위를 뚫고 '록키 스텝스(Rocky Steps)'라고 불리는 필라델피아박물관을 갔습니다.

"얘들아, 여기가 바로 록키가 권투 연습을 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야. 록키가 빠른 발로 계단을 오른 다음 꼭대기에서 두 손을 높이 들잖아" 하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들의 대답, "록키가 누구에요?" 하긴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도 모르겠는데, 록키를 알 리가 없습니다. 그만큼 세대 차이가 많은 걸 몰랐습니다. 록키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영화 주인공처럼 두 팔을 높이 드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짧고 아쉬운 필라델피아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대학교를 둘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프린스턴신학교도 방문했습니다. 이 학교 재단 이사이기도 한 김진수 장로님이 안내해 주셨고, 크레이그 반스(M. Craig Barnes) 총장님이 자기 방으로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총장님도 목사 아들입니다. 총장님은 아이들을 격려한 다음 학교 기념 책갈피와 초콜릿을 선물하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 학교 대외 섭외도 맡고 있는 부총장님은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고, 최근에 신축한 도서관에서는 연세 지긋한 사서 할아버지가 층층이 다니면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김진수 장로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김진수 장로님은 작년에 처음 만나서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선교와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본인이 세운 회사를 정리한 다음, 캐나다에 있는 인디언 원주민들의 신앙과 경제 자립을 위해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에 매진하십니다. 긱섬(Gitx Mushroom Inc.)이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원주민들이 고사리와 송이버섯을 캐 오면 그것을 가공해서 판매, 그들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습니다. 또 'Grace Charity Foundation'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기부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분입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도 넉넉히 후원해 주셨습니다.

사모님이 정성껏 준비한 풍성한 저녁을 먹고 남자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탁구와 당구를 칩니다. 여자 아이들은 짐을 싸거나 엄마 아빠랑 통화하면서 뭐가 그리 서러운지 또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최후의 순간은 늘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법입니다. 아이들은 마지막 밤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려고 잠을 안 자고 시끄럽게 떠듭니다. 저는 '이 밤만 넘기자, 이 밤만 넘기자', 이렇게 주문을 외면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침밥에 수면제라도 탄 것일까요. 공항 가는 차에 오르자마자 아이들은 또 시체가 되었습니다. 이제 두세 시간 후면 헤어지는데, 이별의 아쉬움은 온데간데없고 고개를 꺾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낸 다음 멕시코로 갑니다. 공항에서 이별해야 합니다. 귀찮은 녀석들이지만, 마지막이니까 한 명 한 명 포옹하면서 이별의 시원섭섭함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많이 온데다가 출근 시간이라 차가 거북이 걸음입니다. 비행기 탈 시간이 빠듯합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얘들아, 빨리, 빨리, 빨리" 재촉했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출국 심사대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계획한 대로 아이들을 안아 주지 못하고 손만 흔들어 주면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제 드디어 해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