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 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이 3월 13일 비례 후보로 선출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컷오프(부적격 통보)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임 전 소장을 배제한 이유로 그가 과거 '병역을 기피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당 안팎에서는 임 소장의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임태훈 전 소장은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임을 밝힌 바 있어, 민주당이 총선에 악영향을 받을까 봐 교계 눈치를 봤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이 진보당·새진보연합·정치개혁과연합정치를위한시민회의(연합정치시민회의)와 함께 4·10 총선을 대비해 만든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이다. 민주당은 당초 위성 정당을 꾸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번복하면서, 그 명분으로 각 정당과 시민사회에 비례대표 후보 추천 권한을 줬다. 후보자 30명 중 진보당·새진보연합에 각 3명, 연합정치시민회의에 4명을 배분했다.

임태훈 전 소장은 시민사회 몫으로 배분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연합정치시민회의는 3월 10일 '국민 후보 공개 오디션'을 통해 임태훈 전 소장을 선출했다. 그가 후보로 선발된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군대 내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 온 전문가라는 점이 컸다. 임 소장은 군인권센터 대표를 맡아 윤 일병 사망 사건,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건, 기무사 계엄령 모의 사건,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사건 등을 폭로한 것을 비롯해, 최근에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등에도 앞장서 왔다.

이러한 경력으로 임태훈 소장은 국민들에게 인지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군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해 온 궤적을 인정받으며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실제 시민사회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가 연 공개 오디션에서, 임 전 소장의 점수는 남성 후보 6명 중 2등이었고, 대국민 문자 투표에서는 2만 3172표로 전체 후보 12명 중 가장 많은 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연합은 3월 13일 임 전 소장에 대해 부적격 결정을 내렸다. 임 소장이 후보로 선발된 지 3일 만이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임 전 소장에게 "심사를 진행한 결과, 제2차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의결한 부적격 사유 중 '병역기피'에 해당하여 부적격 처리하였음을 알려 드린다"고 통보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시민사회 몫 후보로 선발됐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더불어민주당의 위성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시민사회 몫 후보로 선발됐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더불어민주연합이 내세운 명분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태훈 전 소장의 경우 일부 고위 공직자가 물의를 빚는 '병역 면탈'이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임 전 소장은 대체 복무가 법으로 보장되지 않던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이미 수감 생활을 했고,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2018년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 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대체 복무제를 도입했다. 민주당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 복무제를 연구해 온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는 3월 1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과거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전과가 말소되지 않고 있다면, 선출직 결격자로 삼을 사유가 되는가. 다름 아닌 '민주'당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선출직 결격자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썼다. 

뿐만 아니라 임태훈 소장의 출마 이유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상 규명'이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낸 메시지와 일치한다. 민주당은 작년 10월, 채 상병 사망 사건 및 외압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올렸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5대 실정으로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를 꼽았을 정도로 채 상병 사건은 총선의 핵심 이슈이기도 하다. 채 상병 의혹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앞장섰던 상징적인 인물을 도리어 병역기피자로 몰아 배제한 셈이다.

임태훈 전 소장은 군 인권 전문가이자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등에 앞장서 왔다. 임태훈 전 소장 페이스북 갈무리 
임태훈 전 소장은 군 인권 전문가이자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등에 앞장서 왔다. 임태훈 전 소장 페이스북 갈무리 
시민사회 심사위원들 
"민주당, 병역 문제보다 성소수자 이슈 우려"
"당이 올드한 관점으로 판단, 어리석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민주당이 임태훈 소장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더불어민주연합 시민사회 몫 후보 선출을 맡았던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김상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전 KBS 이사장)는 3월 15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공개 오디션에 참여할 12명의 후보를 공개했을 때부터 민주당 내부에서는 임태훈 전 소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병역 문제보다도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성소수자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가 감당 못한다'고 하더라. 지역구에서 목사들의 압박이 극심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민주당의 결정을 이해하지만 실망도 크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서도 민주당이 반복해 보여 온 반응 아닌가. 교회 전체도 아니고 극성스러운 일부의 의견일 뿐인데 왜 정면 격파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송경용 신부(대한성공회·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는 "민주당이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만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내부적으로 교계의 반발을 우려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태극기 부대를 지원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메시지를 매일같이 내놓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4선을 한다. 일부 교회에서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선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기준을 잘못된 곳에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임태훈 전 소장은 2030,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 있는 인물이다. 민주당의 약점을 크게 보완해 줄 사람인데, 당이 올드한 관점에서 올드한 패러다임으로 판단했다. 너무 어리석었다"고 말했다. 또 "적어도 진보 개혁 정당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사회 현상에 반응하고 어떻게 제도 안으로 데려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인권 수준이 한 단계 진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책임 있는 정당, 가장 큰 정당이 결단해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 소장 후보 선출 철회 요구한 보수 교계
민주당 측 "교계 반대 의견 전달받은 바 없어"

임태훈 소장이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교계는 보란 듯이 그가 '성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열을 올렸다. <국민일보>는 3월 12일 '헌정사 첫 동성애자 국회의원 나오나'라는 기사를 썼고, 다음 날인 13일에도 임 전 소장 지명 철회 기사를 썼다. 단순히 임태훈 소장의 성적 지향만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민주당 인사들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도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후보 선출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당이 이런 목소리에 눈치를 보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20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녹색당 등과 함께 비례 연합 정당을 추진했지만, 녹색당이 성소수자인 고 김기홍 씨를 후보로 공천하자 난색을 보였고, 선거 연합은 결국 결렬됐다. 당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념 문제라든지 성소수자 문제라든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성소수자를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발언해 지탄을 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 대회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백승아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 대회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백승아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임태훈 전 소장은 3월 1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대체 복무제를 발의한 것도 민주당이었고,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대체 복무제가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이번 결정으로 인권 보호에 대한 공당의 책무와 그동안 이뤄 온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처럼 비칠까 봐 우려된다. 또한 정당정치가 시민 정치 플랫폼을 경시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는 3월 14일 오전 더불어민주연합에 부적격 결정 철회를 요청하고 15일 임 전 소장을 후보로 재추천했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국민후보추천심사위원회 상임위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전원 사퇴했다. 이들은 "다양성의 인정을 포기한 채, 연합 정치의 한 축인 민주당이 차별적이며 퇴행적 기준을 앞세워 국민 후보를 부적격 판단한 것은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의 합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며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 측은 교계 반발 때문에 임태훈 전 소장을 컷오프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추진단장으로, 국민 후보들에 대한 민주당의 우려를 더불어민주연합에 전달했다고 알려진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3월 15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개신교 쪽에서 (임 전 소장에 대해) 내게 이야기를 한 것도 없고, 잘 모르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는 "(보수 교계의 반대 의견이) 공식적으로 전달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