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는 이태원과 핼러윈이 잘못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안전해야 할 사람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시스템과 정부의 문제입니다."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와 정의평화사제단이 10월 19일 서울시청광장 분향소에서,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주제로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와 연대의 거리 기도회를 열었다. 이날 기도회를 인도한 오상운 신부(포천나눔의집)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이나 핼러윈이라는 행사가 참사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분향소 옆 잔디광장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가 기도회 장소까지 들려오는 가운데, 정일용 신부(수원나눔의집)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이경호 주교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이경호 주교의 메시지에는 "이태원 참사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이상한 축제를 즐기려는 들뜬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파와 흥겨운 축제가 되도록 관리하고 질서유지를 담당해야 하는 행정 지도력 부재로 발생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기도회에는 성공회 사제들을 비롯해 교인 40여 명이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날 기도회에는 성공회 사제들을 비롯해 교인 40여 명이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눈 자캐오 신부(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는 "유가족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하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손과 발, 품과 시선이 돼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집은 우리 사람들 가운데 있어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이 되고, 마음이 되고, 품이 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자캐오 신부는 "간혹 '종교인들이 골방에서 기도하지, 왜 거리에 나와 기도하느냐'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는 말씀 때문에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함께하고 투쟁하고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그 일 가운데 바로 하느님의 집이 있다"고 말했다.

자캐오 신부. 뉴스앤조이 엄태빈
자캐오 신부. 뉴스앤조이 엄태빈

희생자 임종원 씨의 아버지 임익철 씨는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정부는 일관되게 우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방관하며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 참사가 잊히기만을 바랍니다. 우리는 1년 동안 모두가 처음 겪는 무수한 아픔과 고통을 때로는 천막에서, 때로는 아스팔트 위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않은지 이제 서서히 이 정권의 종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우리를 짓밟고 억눌러도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별법이 통과돼 참사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엄벌에 처해져 다시는 이 땅에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전 사회로 가는 초석이 다져질 것을 굳게 믿습니다.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시민·종교 단체 여러분, 부디 희생당한 우리 아이들이 명예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임익철 씨.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임익철 씨. 뉴스앤조이 엄태빈

김남석 신부(봉천나눔의집)는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기도와 위로가 되어야 함을 잊지 않고, 이태원 참사를 섣부른 종교적·문화적·정치적 신념에 따라 해석하며 가볍게 떠들지 않도록, 함께 슬퍼하며 견딜 수 있는 애달픔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회는 유가족이 나눔의집 사제들에게 10월 29일 있을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 추모 대회 초청장을 전달하며 마무리됐다.

다음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대한성공회 이경호 주교가 발표한 메시지 전문.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주님!
이태원 참사로 별세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애통해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자비를 베푸소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들이 상통하며 더 성숙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합니다.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고 기억하는 예식이나 전통은 지역과 종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핼러윈은 지역 토착 신앙과 교회의 전통인 모든 성인의 날(11월 1일), 모든 별세자의 날(11월 2일)과 결합되어 다양한 방식의 축제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문화를 만나면서 다양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짧고 제한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우리의 시각에서만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편협한 주장입니다.

1년 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이상한 축제를 즐기려는 들뜬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참사의 출발은 수많은 인파와 흥겨운 축제가 되도록 관리하고 질서유지를 담당해야 하는 행정 지도력 부재로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참혹한 참사 앞에서 "그때 그곳에서 국가는 어떤 지도력을 발휘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 마련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기억과 추모의 공간을 마련하기 전에 "국가는 그때 이곳에서 무엇을 했고, 왜 그런 참사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있어야 참사의 원인이 드러나고,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참사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선행되었을 때 추모와 위로는 힘을 얻고 그동안 수고한 분들의 선한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모든 이들이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안식하시길 기도하며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울러 참사의 현장에서 함께했던 모든 이들과 구조를 위해 애쓰신 분들, 참사의 여파로 힘들었을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3. 10. 19.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이경호 베드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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