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159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39일이 지났다. 그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검찰의 보강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이 진행됐다. 그러나 '꼬리 자르기식 셀프 수사'라는 비판과 '책임자들의 비협조적 태도' 속에서 각종 논란을 빚으며 정쟁화를 거듭하다 끝났을 뿐, 정작 유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요원했다.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유가족들은 정부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특별조사위원회의 설치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10·29 진실 버스'를 타고 전국 13개 도시를 다니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5만 명 넘는 시민이 특별법 제정 국민 동의 청원으로 부응했다. 이에 지난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 국회의원 183명이 '이태원참사의피해자권리보장과진상규명및재발방지를위한특별법(이태원참사특별법)'을 공동 발의했으나, 여야 갈등으로 비화하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유가족들은 6월 8일부터 매일 오전 10시 29분 서울광장 분향소를 출발해 국회까지 총 159km를 릴레이 행진하고, 20일에는 국회 앞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등 이태원참사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 21일 더불어민주당이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특별법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다음 날인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관련 논의를 시작했으나, 곧바로 법안 처리 방식 및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합의 처리'를 고수하며 제2소위원장 자리를 넘겨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서 패스트트랙 처리를 예고했다.

10·29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이 주최한 '이태원참사특별법 긴급 토론회'가 6월 23일 서대문구 공간새길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10·29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이 주최한 '이태원참사특별법 긴급 토론회'가 6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공간새길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처럼 이태원참사특별법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법안의 내용과 입법 전망을 살펴보는 긴급 토론회가 6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공간새길에서 열렸다. 10·29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그리스도인모임)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는, 참사 희생자 오지민 씨의 아버지 오일성 운영위원(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전수진 미국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10·29이태원참사TF), 최희천 연구소장(생명안전시민넷·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김지애 간사(그리스도인모임)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 30여 명도 자리해 이들의 발제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10·29이태원참사특별법을 제정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특별법 정쟁 삼아선 안 돼"
"희생자·피해자 아우르는 특별법,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와 신속성 중요"

유가족으로서 당사자 발언에 나선 오일성 운영위원은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것은 유가족·민변·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법이지,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법이 아니다. (여야가) 서로 조율해서 만들면 될 일이지, 진영 논리를 먼저 들이대며 정쟁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도움을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연대 없이 (제정은) 꿈도 못 꾼다. 여러분이 도와 주시는 만큼 저희도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오일성 운영위원은 국회가 이태원참사특별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오일성 운영위원은 국회가 이태원참사특별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전수진 미국변호사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의 내용과 입법 전망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국회 법안 발의 최소 의원 수인 10명을 훌쩍 넘어 183명의 의원이 이 법안에 동의했다는 것은, (이 법안이) 그만큼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운을 뗐다.

전 미국변호사는 특별법의 적용 대상이 참사로 사망한 '희생자'뿐만 아니라, 유가족, 참사 당시 구조자, 주변 거주자 및 지역 상인 등 더 넓은 범위의 '피해자'까지 포괄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피해자의 주요 권리, 즉 △진상 조사에 참여할 권리 △차별·혐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개인 정보 및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기억·추모·애도를 받거나 할 권리 △생활·의료·법률 지원을 받을 권리 △배상·보상을 받을 권리가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참사 발생 이후 위와 같은 권리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특별법 제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미국변호사는 무엇보다도 특별법에 명시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독립된' 조사 기구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조위는 진상 규명, 재발 방지, 피해 실태 및 구제를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이를 위해서는 참사에 책임이 있는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직무 수행이 필요하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은 조사 개시 후 1년이고 6개월 연장이 가능한데, 수행 업무와 활동 기간을 고려했을 때 신속히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때를 생각해 보면,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증거를 잘 보존하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특조위가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수진 미국변호사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의 주요 내용과 입법 전망에 대해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수진 미국변호사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의 주요 내용과 입법 전망에 대해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경찰·검찰·국회를 통해 이미 충분한 조사가 이뤄졌으니 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은 기능상 중복된다며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나선 행정안전부 의견에 반박하기도 했다. 전 미국변호사는 "포괄적인 원인과 책임에 대한 규명은 없었다. 현행 기관들은 모두 다 책임을 회피했고, 오히려 (책임자들의) 무죄를 설득하는 내용이 유가족들에게 통보됐다. 제한적인 조사와 짧은 기간으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미국변호사는 특별법의 조속한 시행 필요성을 강조하며 패스트트랙 발동에 힘을 실었다. 그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최대 기간인 330일과 내년 5월 종료되는 21대 국회의 임기를 고려했을 때, 특별법을 6월 30일까지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 유가족과 시민들이 릴레이 행진과 단식 농성 등을 이어 가고 있으니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낡은 재난안전법 넘어
특별법 및 생명안전기본법 필요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최희천 연구소장은 '생명안전기본법(안)'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이 지닌 재난·참사 관련 법 제도 및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많은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고 여전히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대신, 일부 실무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망각의 길로 갔던 게 수십 년간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은 문제의식, 독립적 조사 기구의 필요성, 피해자 권리 보장 중시 등에 있어 이태원참사특별법과 궤를 같이한다. 

최 연구소장은 기존의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은 공급자적 관점에서 시민·피해자를 안전 홍보와 계도를 위한 '객체·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을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 정도가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한다고 했다. 또한 '안전권', '안전 약자' 등의 개념을 명문화해 안전에 대한 국가의 구체적인 책임과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이태원 핼러윈 행사를 봤다면, 초행자·외국인 등 참사 당시 현장의 지리적 여건을 잘 알지 못했던 '안전 약자'들에 대한 지원 및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생명안전시민넷·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최희천 연구소장은 '생명안전기본법(안)'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 참사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생명안전시민넷·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최희천 연구소장은 '생명안전기본법(안)'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 참사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참사 발행 이후 진상 규명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며 '독립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기관 혹은 경찰·검찰 등 사법기관이 주도하는 진상 규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최 연구소장은 "정부가 진상 규명을 주도하게 되면 단기적 관점에 매몰되어 책임자 몇 명을 빨리 처벌하고 넘어가려 한다. 또한 정부는 참사 원인을 기술적인 문제로 협소하게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체계 안에서는 대책 방안도 '부처 간 협업 강화', '교육 및 홍보 강화', '신속 대응 체계 구축' 등 추상적이고 공허한 차원에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경찰·검찰 수사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재난 관리 국가 시스템의 개선이 아니라, 사법적 논리에 입각해 형법상 책임을 판단하고 처벌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재발 방지나 제도 개선은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목적에 그친다. 기존 법령과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두고 준수·위반 여부를 수사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제도의 공백이나 문제점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루게 된다"고 했다.

최희천 연구소장은 이태원 참사에서 '피해자들의 권리'가 침해됐고, 생명안전기본법은 이를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고 필요한 조력을 받을 권리', '사고 원인과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조사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강조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유가족과 지역 주민·상인들이 핵심적인 이해 관계자이기 때문에, 진상 규명과 정책 입안 과정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이와 같은 권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재난의 대응과 안전 사회 건설은 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전 역량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함께해 온 그리스도인모임
"온전한 애도의 날까지 함께할 것"
김지애 간사는 유가족과 함께해 온 그리스도인모임의 발자취와 향후 방향을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지애 간사는 유가족과 함께해 온 그리스도인모임의 발자취와 향후 방향을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지애 간사는 발제 마지막 순서로 나서, 1월 30일 출범 이후 유가족과 함께해 온 그리스도인모임의 활동을 보고하고 향후 활동 방향을 공지했다. 그리스도인모임은 △철저한 진상 규명 △꼬리 자르기식 수사 중단과 책임자 처벌 △유가족과 생존자, 이태원 주민과 상인, 목격자와 구호 인력 등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 △시민의 생명과 안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체계 마련을 요구하며, 기도회, 간담회, 분향소 지킴이, 입장문 발표 등 다양한 활동으로 유가족과 연대해 왔다.

김 간사는 그리스도인모임이 앞으로도 국회 앞 농성장, 159km 릴레이 행진, 단식 농성, 특별법 제정 과정과 책임자 모니터링 등을 이어 갈 예정이라며, 많은 그리스도인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그는 "유가족분들과 맞잡았던 그 손을 잊지 않고, 유가족들이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그날까지, 피해자 및 생존자들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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