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천 아무개 목사(54)는 청년·부부 상담 전문가로 통했다. 신학 외에도 상담심리학·자연치유학을 전공한 그는 2008년 서울 강남에 상담 센터를 겸한 ㅇ교회를 세웠다. ㅇ교회는 인생·행복·관계·성공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고 전도에 열을 올렸다. 교인 5명으로 시작한 ㅇ교회는 가파르게 성장했고, 한때 교인 수 1500명을 넘어섰다. ㅇ교회는 교세가 커지자 2019년 분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아일보>는 2021년 ㅇ교회를 "치유 목회로 코로나 우울을 이겨 내는 교회"로 소개하기도 했다.

천 목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며 ㅇ교회를 이끌어 왔다. 교인들에게 존경받던 천 목사였지만, 그의 삶은 앞뒤가 달랐다. 앞에서는 거룩한 사역자로 행세하고, 뒤에서는 여성 교인을 상대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천 목사의 성폭력 사건은 올해 2월 ㅇ교회에서 공론화됐다. 교인 2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천 목사는 자진 사임했다.

천 목사의 그루밍 성폭력은 앞서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권 아무개 목사, 한 아무개 목사의 범죄와 유사했다. 그는 신앙 훈련 등을 빙자해 피해자들을 길들인 후 성폭력을 가했다. <뉴스앤조이>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을 입수하고, 피해자 중 한 명인 A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분당 ㅇ교회. 천 아무개 담임목사는 청년·부부 관련 세미나를 활발히 열며 치유 목회 사역을 해 왔다. 한때 교인 수는 1500여 명에 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분당 ㅇ교회. 천 아무개 담임목사는 청년·부부 관련 세미나를 활발히 열며 치유 목회 사역을 해 왔다. 한때 교인 수는 1500여 명에 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리더십 아카데미 통해 천 목사 깊이 신뢰
전임간사·비서 역할도
목양실 불러 유사 성행위 강요

A에게 천 목사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20대 후반,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잡아 준 사람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영어 학습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천 목사를 알게 된 A는, 2013년경 ㅇ교회 '리더십 아카데미'도 수강했다. 리더십 아카데미는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ㅇ교회에 상주하면서 예배 준비와 교회 청소 등을 하고, 천 목사에게 집중 상담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천 목사는 집중 상담 과정에서 A를 비롯한 청년들의 취약점 등을 짚어 주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이끌어 주겠다고 말했다. 교회에서의 순종·실행을 통해 자신을 깎는 훈련을 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리더십 아카데미를 나온 뒤 높은 급여를 받게 된 교인을 소개하며 청년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도 했다.

A는 리더십 아카데미 과정을 거치면서 천 목사를 깊이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 다른 교회에 출석했던 A는 천 목사의 요청에 따라 ㅇ교회로 적을 옮겼다. A는 ㅇ교회 전임간사를 맡을 뿐만 아니라 천 목사가 교수로 있는 신학대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천 목사는 다른 청년·교인보다 유독 A를 챙겼다. 여러 명이 있을 때 A에게만 "밥 먹었느냐"고 말을 건네고,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몇몇 교인이 "왜 A만 유독 잘 대하느냐"며 시기 질투할 정도였다. 천 목사는 A에게 비서 역할까지 맡겼다. A는 당시 존경하고 의지했던 천 목사가 자신을 각별히 신경 써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디 가서 내가 이런 인정과 사랑을 받을까 싶었다. (그때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고 기대해 주는 사람은 목사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열심히 성장해서 (천 목사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천 목사는 2008년 교회 개척 초기부터 '리더십 아카데미'라는 청년 양육 프로그램을 열어 왔다. 피해자 A는 20대 후반, 리더십 아카데미를 거치면서 천 목사를 깊이 신뢰하게 됐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천 목사는 2008년 교회 개척 초기부터 '리더십 아카데미'라는 청년 양육 프로그램을 열어 왔다. 피해자 A는 20대 후반, 리더십 아카데미를 거치면서 천 목사를 깊이 신뢰하게 됐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ㅇ교회에는 설교나 강의를 듣고 느낀 점, 깨달은 점, 실천, 다짐을 천 목사에게 이야기하는 '피드백' 문화가 있다. 천 목사는 교회에 상주하던 A를 목양실로 따로 불러 피드백을 지시했다. A는 천 목사가 초기에는 피드백만 듣다가 나중에는 등 마사지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A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천 목사가 평소 비서실장이나 교회를 오래 다닌 간사들에게 등 마사지를 요청하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A는 ㅇ교회에 나온 지 2년 여가 지난 2015년 무렵, 목양실에서 천 목사를 마사지해 주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이 이해는 안 됐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몸이 굳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천 목사는 '의도 파악'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목사의 행동 이면에는 나를 위하는 좋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나의 인생과 행복을 위해서 무언가를 깨닫게 해 주려고 하신 거구나', '나는 아직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목사님의 큰 의도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거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천 목사는 A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유사 성행위도 요구했다. A는 "천 목사가 '사역하느라 피곤하니 혈액순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도 신뢰하는 목사님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물어보지는 못하고 (유사 성행위를) 하게 됐다. 끝나고 나자 천 목사는 '이제 네 인생에 자신감과 의욕이 생기지 않느냐.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후로 천 목사의 성폭력은 계속됐다. A는 뿌리친 적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천 목사는 늘 특유의 '심리 상담사' 같은 태도를 유지하면서 다가왔다. 모든 게 다 나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사 성행위는)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해석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는 판단 능력이 없었다. 회피하고 잊어버렸다."

결혼 후에도 지속된 성폭력

천 목사의 성폭력은 A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됐다. A는 ㅇ교회 청년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천 목사가 주례를 섰다. A는 결혼한 지 6개월 됐을 때 천 목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또 유사 성행위를 강요받았다고 했다. 그는 기혼자인 자신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천 목사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A는 고민 끝에 자신의 친척이자 교회 간사인 B에게 그동안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B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면서 천 목사를 만나고 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만 넘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A에게 "남편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상담을 빙자한 성폭력은 지속됐다. 2021년 무렵, 천 목사는 A에게 '주부 간사'가 돼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상담을 해 주겠다며 매주 1~2회 교회 상담실로 불러냈다. 천 목사는 A에게 다른 사람이 시기 질투할 수 있으니 자신이 챙겨 주는 것을 티 내거나 말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상담만 하던 천 목사는 또다시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천 목사의 성폭력은 올해 2월까지 이어졌다.

ㅇ교회에서 열리던 기혼 여성 대상 세미나. A와 ㅇ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세미나에 매주 참여했다. A는 세미나가 끝난 뒤 천 목사가 자신을 목양실로 불러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ㅇ교회에서 열리던 기혼 여성 대상 세미나. A와 ㅇ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세미나에 매주 참여했다. A는 세미나가 끝난 뒤 천 목사가 자신을 목양실로 불러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천 목사 "다 내 잘못, 사과한다"더니
"A·B가 먼저 접근했다" 2차 가해
노회는 '정직 7년' 징계
A "사건 덮으려 졸속 치리"

천 목사의 범행은 공교롭게도 B를 통해 알려졌다. 올해 2월, B는 천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밝혔다. 동시에 B는 A도 천 목사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B의 가족은 이 사실을 A의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알렸다. A의 남편은 곧장 천 목사에게 달려가 진위를 물었다. 그러자 천 목사는 "미안하다. 가정이 행복하게 사는 게 부러웠다. 다 내 잘못이고 사과한다"며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이 A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이 ㅇ교회에서 공론화하자, 천 목사는 말을 바꿨다. 그는 2월 24일 교회 간사 약 30명을 불러 자신이 사임하는 이유는 성 문제 때문이며, 유사 성행위를 한 적은 있지만 A·B가 먼저 접근한 것이라고 2차 가해 발언을 했다. 또, A의 남편이 자신을 몰아내고 B의 동생이자 교회 전임전도사인 C를 담임목사로 세우려 한다는 음모론도 제기했다. 그러는 한편 A의 지인을 통해 "등 마사지 외에는 일체 성적인 의미의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사실 확인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천 목사는 2월 26일 주일예배에서는 성범죄가 아닌 '성 추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성 추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족분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앞으로 교회 발전을 위해서 여러분의 입에서 (사건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된 시찰장 유 아무개 목사는 천 목사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천 목사는 사건이 드러나자 자신의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입장을 바꿔 교인들 앞에서 피해자를 모함했다. 피해자에게 '사실 확인서'라는 문서를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천 목사는 사건이 드러나자 자신의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입장을 바꿔 교인들 앞에서 피해자를 모함했다. A에게 '사실 확인서'라는 문서를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천 목사가 사임 의사를 밝히고 교회를 떠나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평남노회(진병헌 노회장)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했다. 3월 14일 재판을 열고 천 목사에게 '정직 7년, 상담 치료 2년, 6개월마다 경과보고, 성찬 참여 불가' 징계를 내렸다. 전 임시당회장 유 아무개 목사는 4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ㅇ교회 측에서 먼저 고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면서 "교회가 밝힌 내용과 (내가) 임시당회장으로서 그동안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노회는 재판국을 구성해 재판을 진행했다. 천 목사와 증인, 변호인을 불렀고, 천 목사는 성범죄에 대해 일부는 인정하고 일부는 부정했다. 우리 노회는 목사의 성 문제가 일파만파 퍼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전에 정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바로 출교하면 타 교단에서 받아 줄 수도 있으니 7년 정직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는 노회가 사건을 덮기 위해 천 목사를 졸속 치리했다는 입장이다. A는 "유 목사는 천 목사와 더불어 '성범죄는 없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여러 차례 요구해 왔다"면서 "천 목사의 측근 교인이자 유 목사의 조카가 한 교인에게 '노회 재판은 피해자와 교인들이 더 이상 항의하지 않고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천 목사의 반성 태도를 감안해 1년 만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노회 목사들이 서로 덮어 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 목사는 A에게 사실 확인서를 요청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교회를 위한 일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는 "(사실 확인서를 통해) 당사자들이 서로 사과하고 (사건을) 덮어야 각자의 가정이든 교회든 깨지지 않는다고 봤다"고 말했다. ㅇ교회 측은 사실상 2차 가해를 저지른 유 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그는 임시당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천 목사 측, 성범죄 '부인'
ㅇ교회 "2차 가해 교인 소환 조사"
<뉴스앤조이>는 천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일주일간 그의 거취를 수소문하고 여러 차례 전화·메시지로 연락했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연락이 닿은 천 목사의 아내는 "(천 목사는) 성범죄를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뉴스앤조이>는 천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일주일간 그의 거취를 수소문하고 여러 차례 전화·메시지로 연락했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연락이 닿은 천 목사의 아내는 "(천 목사는) 성범죄를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ㅇ교회 인스타그램 갈무리

현재 천 목사 측은 성폭력 사건 자체를 전면 부인하면서 천 목사를 적극 두둔하고 있다. 천 목사의 비서실장 C는 4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내가 옆에 있는 동안 우리 목사님은 성폭력을 한 적이 없다. 깨끗하다. 이번 일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 목사가 정말 잘못이 없다면 사임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C는 "목사님이기 때문에 자기 임기 동안 생긴 문제는 예수님·하나님의 마음으로 다 덮고 간다는 마음이다.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며 천 목사를 두둔했다.

천 목사의 아내 변 아무개 씨는 4월 20일 통화에서 "(천 목사는) 성범죄를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성 추문이라든지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해 (일부 교인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당하고 있다. 그동안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는 천 목사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ㅇ교회는 임시당회장이 세 차례 파송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피해자 편에 서서 사건을 수습하고 있다. 천 목사가 교수로 재직하던 신학대학교에 사건을 알리고,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등을 통해 피해자를 돕고 있다. ㅇ교회 측은 "사건 이후 목사 측에 서서 2차 가해를 저질렀던 일부 교인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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