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거룩한 범죄자들'의 판결문을 살펴볼 당시, 나와 기자들의 영혼은 매우 피폐해져 있었다. 차마 기사로 옮기기 어려운 목회자들의 범행 사실이 판결문에 한 자 한 자 박혀 있었는데, 이를 읽어 내야 하는 현실이 버겁기만 했다. 한숨을 내쉬어 가며 판결문을 보고 있을 때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예장합동중앙 권○○ 전 총회장, 그루밍 성폭력으로 징역 3년 법정 구속.'

평소 군소 교단을 중심으로 취재하는 교계 기자가 제보 차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권 아무개 목사(69·새로운○○교회)의 판결문을 입수해 내용을 살펴보면서 내 영혼은 더욱 피폐해졌다. 그는 악랄했다. 마침 피해자 측도 기사화를 요구해 본격적으로 취재에 착수했다.

권 목사의 이력은 화려했다. 사단법인 국제열린문화교류회 대표, 이스라엘 목회자포럼 대표회장, 종로경찰서 교경협의회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대통령 표창(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과 국회 표창(대한민국 사회 공헌 대상)을 받았다.

<크리스천투데이>는 2017년 10월 2일, 대통령상을 수상한 목회자가 범상치 않은 삶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했다는 홍보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는 권 목사가 20년간 세계를 다니며 문화 공연과 자원봉사로 박애와 섬김,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했다는 등 낯 뜨거운 상찬이 담겨 있다.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했다. 취재 과정에서 이단·사이비 전문 매체 <현대종교>가 1991년 권 목사를 다룬 기사를 찾았다. <현대종교>에 따르면, 권 목사는 통일교 출신으로 탈퇴 이후 군소 교단을 옮겨 다니며 목회를 해 왔다. 20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 총회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통일교 꼬리표를 떼지 못해 이단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권 목사는 교회 이름을 바꿔 왔다. ○○○○기도원-○○교회-구기동○○교회-새로운○○교회.

권 목사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지역 정치인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관계를 쌓는 데 애썼다. 특히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목회할 때는 당시 지역구 의원이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도 가깝게 지냈다. 정 전 총리는 권 목사 책의 추천사를 써 주기도 했다.

통일교 전력을 빼고 특이점이 없어 보이던 권 목사는 올해 10월 12일 피보호자간음·업무상 위력등에의한추행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3년 전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의 20대 여성 청년을 상대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절대적 위치에 선 목사 
예언·저주하며 스스로 신격화"

<뉴스앤조이>가 '거룩한 범죄자들'을 통해 언급했듯이, 목회자 성폭력은 이단과 정통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통제·지배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주의종'이라는 권위를 앞세우고 때로는 하나님을 들먹이기까지 했다.

권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앤조이>가 구기동○○교회(현 새로운○○교회)를 다니다가 실체를 알고 탈퇴한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권 목사는 교회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서 있었고 교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요구했다. 일례로 권 목사는 교인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부 녹음하게 한 다음 다시 듣거나 받아 적게 했다. 때로는 교인들에게 예언을 하고 저주를 퍼부으며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교역자 출신 A는 11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권 목사는 '과거 삼각지기도원에서 하나님한테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모세처럼 쓰실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식의 예언을 즐겨 하면서 자신을 왕처럼 떠받드는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구기동○○교회에 20년 넘게 다닌 B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전만 해도 권 목사는 말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권 목사는 '옛날에 순결을 바치겠다고 하는 청년이 많았다. 그 정도로 너희 선배들이 나한테 충성했다. 너희도 나한테 충성을 다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스스로를 신격화했는데, 언제든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본다. 어쩌면 피해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목회자의 절대 권위를 강조하는 곳일수록 재정 문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A는 "권 목사는 십일조 안 낸 교인들에게 대놓고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했다. 교인을 교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돈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적도 없다. 나를 포함한 부교역자 일부는 무보수로 사역해 왔다"고 했다. B는 "권 목사는 '차를 헌납하면 내가 편해지고 너희 사업도 잘된다'면서 물질을 내도록 강요했다. 한때 교회 빚이 40억 원이 넘었는데, 교인들에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교회에 헌금을 내게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운영해 온 서울 구기동○○교회 예배당을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하나님의교회세계선교복음협회(하나님의교회·김주철 총회장)에 팔기도 했다. 등기부 등본을 보면, 2021년 12월 6일 자로 소유권이 권○○에서 김주철로 변경됐다. 매매가는 71억 2000만 원. 권 목사는 예배당을 넘기고 받은 돈으로 빚을 상환하고,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 새로운○○교회 예배당을 마련했다. 수년간 구기동○○교회에 다녔던 C는 11월 17일 기자와 만나 "지금 남아 있는 교인들은 구기동 예배당을 이단에게 팔았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담임목사 신변 모르는 교인
부목사는 2차 가해 발언

새로운○○교회는 한때 교인 수만 300명이 넘었지만, 권 목사의 과격한 목회 방식 탓에 교인은 꾸준히 감소했다. 지금은 50명 정도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목사가 법정 구속된 이후 새로운○○교회는 권 목사의 아내 고 아무개 목사가 이끌고 있다. 고 목사는 피해자가 남편 권 목사의 성범죄를 폭로했을 당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여기서 덮고 가야 한다"는 등 2차 가해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C는 "고 목사도 예언·저주 설교를 자주 해 왔다. 피해자는 권 목사가 교인들에게도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막은 게 고 목사다. 아직까지 권 목사 성범죄 사건을 모르는 교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권 목사의 성범죄와 관련해 교회 측 반응과 입장을 살피고자 11월 20일 일요일 새로운○○교회를 찾아갔다. 신도시 빌라 한가운데에 있는 예배당은 4층 규모로 깔끔해 보였다.

마침 예배를 마치고 나온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권 목사의 거취를 아는지 물었다. 20년 넘게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소개한 집사는 "권 목사님은 자택에 칩거 중이다. 몸이 안 좋아서 교회에 못 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가 재판을 받은 걸로 안다고 하자,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따가 고 목사님과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한 여성 교인은 "우리 목사님을 왜 찾는 거냐. 주일에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면서 불쾌해했다.

고 목사는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교회 부목사라고 밝힌 중년 여성은 "필요하면 교회에서 먼저 연락을 주겠다. 고 목사님은 만남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어 기자에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은 뒤 갑자기 요셉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요셉이 감옥 간 게 진짜 잘못해서 갔느냐"면서 권 목사를 요셉에 빗대 옹호했다. 이어 "자녀끼리 싸우면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사실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고 말했다. 법원이 유죄라고 판단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그는 "(권 목사는) 요셉처럼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다. 우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나도 딸을 키우고 있다. 목사님도 목사님이지만, 그 아이(피해자)의 미래도 있다. 걔는 뭐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권 목사와 상관없다"는 교회
"권 목사님 영육 강건케 해 달라" 기도
새로운○○교회 측은 권 목사와 관련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피해자를 향해 2차 가해 발언을 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새로운○○교회 측은 권 목사와 관련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피해자를 향해 2차 가해 발언을 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새로운○○교회 측은 11월 25일까지 권 목사 성범죄 사건에 대한 입장을 <뉴스앤조이>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회 측은 지정한 날짜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기자는 26일 고 목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었으나, 그는 "전화 잘못 걸었다"면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권 목사의 성범죄와 관련한 교회 입장을 듣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고 목사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3시간 후 갑자기 교회 부목사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교회는 권 목사님과 상관없다. 그렇기에 교회 입장이란 건 없다. 권 목사님과 피해자 간 개인의 일이다. (고○○) 담임목사님과 자녀들도 피해자다. 또한 성도들도 피해자다. 더 이상 교회와 성도들에게 피해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뉴스앤조이>가 악한 도구에서 선한 도구가 되길 기도한다." 

새로운○○교회는 사건을 권 목사와 피해자 간 문제로 축소하고, 권 목사의 가족과 교인들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려 했다. 기자는 답장을 통해, 권 목사가 세운 교회인데 어떻게 상관없다고 할 수 있는지, 담임목사와 자녀들도 피해자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 물었다. 

부목사는 "권 목사님은 구기동○○교회를 세우셨고 이 교회와는 상관없다"면서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뉴스앤조이>가 선한 도구가 되길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권 목사와 관련이 없다던 새로운○○교회는 매주 주보에 "데이비드 권 목사님, 영육 강건케 하소서"라는 기도 제목을 내고 있다. 데이비드 권 목사는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권 목사를 말한다. 기자는 권 목사가 교회와 관련 없는데 강건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왜 하는지, 하나님의교회에 구기동 예배당을 팔고 지금의 교회를 세웠는데 어떻게 관련이 없다고 하는지, <뉴스앤조이>가 '선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팩트를 알려 달라고 했으나, 부목사는 답변하지 않았다. 

예장호헌 총회장 "올해 4월 제명 처리"
10월 판결 전까지 홈페이지에 권 목사 소개 
이우회 총회장(사진 가운데)은 올해 봄 정기회에서 권 목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를 제명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예장호헌 총회 갈무리
이우회 총회장(사진 가운데)은 올해 봄 정기회에서 권 목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를 제명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예장호헌 총회 갈무리

권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예장호헌·이우회 총회장) 총회 소속으로 8~9년간 활동해 왔다. 예장호헌 총회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성서신학 교수를 맡기도 했다. 피해자 측은 10월 기독교반성폭력센터를 통해 권 목사를 고발하려 했는데, 총회 측은 "권 목사는 현재 예장호헌 총회 소속이 아니고, 신학교에서는 외국어 강의를 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권 목사가 법정 구속되자 예장호헌 총회가 '꼬리 자르기'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총회 소속이 아니라던 권 목사의 프로필이 법원 판결 전까지 예장호헌 총회 신학대학원 홈페이지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 직후 권 목사의 프로필은 삭제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예장호헌 이우회 총회장은 올해 4월 정기노회에서 권 목사를 제명했다고 주장했다. 권 목사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려서 자체 조사한 후 치리했다는 것이다. 이 총회장은 11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계속 두면 노회와 총회에 누가 될 것 같아서 봄 노회 때 제명했다. 내가 노회장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회장은 "권 목사가 우리 교단에 가입한 지는 몇 년 안 됐다. 다른 교단 출신 총회장을 받아 주는 게 부담스럽긴 했다"며 "이제 제명했기 때문에 우리 예장호헌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우회 총회장은 봄 정기회 때 권 목사를 제명했다고 말했는데,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예장호헌 총회 홈페이지에는 권 목사가 속한 중부노회의 올해 봄 정기회 사진이 올라와 있다. 노회가 열린 장소는 새로운○○교회였다. 이 사진에는 권 목사 부부와 이우회 총회장 등이 찍혀 있다. 기자는 다시 이 총회장에게 연락해 제명한 게 맞는지 물었다. 이 총회장은 11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4월 노회 때 제명한 게 맞다"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같이 기념 촬영까지 해 놓고 징계를 한 것이냐고 묻자, 이 총회장은 "날짜가 다른 걸로 안다. 제명한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총회장은 10월 법원 판결 전까지 권 목사의 프로필이 홈페이지에 게시된 것과 관련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우회 총회장은 권 목사를 제명했다고 강변했으나, 새로운○○교회에 대한 후속 행정 조치나 피해자를 위한 지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C는 "예장호헌 총회는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꼬리 자르기를 했다고 본다. 총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니까 교회에서는 사건을 축소·왜곡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사건 피해자 김서연 씨(가명)도 만날 수 있었다. 서연 씨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으면서도 권 목사를 고소하고 언론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기를 택했다. 권 목사가 그를 어떻게 그루밍했으며, 교회는 권 목사의 성폭력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살펴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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