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남편이 처음 전도사 사역을 시작한 교회이기도 한 나의 모교회는 20여 년 만에 새로운 담임목사님 청빙을 앞두고 있었다. 담임목사님 은퇴로 인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음에도 은퇴와 청빙을 앞둔 교회 분위기는 다소 소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새로 오실 담임목사님을 향한 기대와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우리 교회가 어떤 분을 모시고 싶은지, 보통 어떤 분을 담임목사님으로 뽑는지 궁금하던 차에, 신문에 난 우리 교회 청빙 공고를 봤다. 여러 가지 제출 서류와 조건이 있었지만 내 시선을 끈 건 다름 아닌 "사모님 직업이 없어야 함"이라는 문구였다.

'담임목사님 사모님은 직업이 없어야 하는구나… 왜지?'

그러고 보니, 기존 담임목사님 사모님도 직업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건 연세가 많아 일반 직장에서도 은퇴할 나이시니, 으레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생각했다. 새로 모시려는 담임목사님 연령대는 40대 중반~50대 중반인데 사모님이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설마 후보 목사님을 사모님이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떨어뜨리기라도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사모님이 직업이 있지만 서류 심사에 통과하면 무조건 하던 일을 그만두도록 하겠다는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분은 서류 심사에서 바로 탈락했다. 문득 그 옛날 남편과의 결혼을 앞두고, 시어머님이 하시던 기도가 생각났다. "우리 며느리, 임용고시 떨어지게 해 주세요"라시던 그 기도. 사모에게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는 목사님을 보면서, 어려운 시험에 통과한 후에 그만둬야 할 상황을 마주하기보다는 애초에 불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차라리 현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왜 사모는 직업이 없어야 하는지' 궁금해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지레짐작으로 '목사님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조에 전념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모에게 직업이 있으면 목사님이 사모의 경제적 능력에 기대어 주의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더욱더 주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사모에게는 직업이 없어야 한다고.

어느 날 사역지를 옮기려고 다른 교회 면접을 보고 온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면접 자리에서 사모님에게 직업이 있느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아기가 어려서 쉬고 있다고 했단다. 계속 일을 하지 않았던 거냐고 묻기에 그전까지는 프리랜서로 과외도 하고, 한국어 강의도 했다고 했더니, 아이가 좀 더 크면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단다. 어디서는 사모가 직업이 있으면 안 된다더니, 여기서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모들에게는 직업이 있어야 할까, 없어야 할까. 사실 교회가 사모가 직업 갖는 것을 허락(?)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수많은 조건이 따라붙는다. 평일에만 근무해야 하고, 야근 없이 칼퇴근이 가능해야 하며, 남편 사역에 방해되지 않도록 혼자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한다. 게다가 남편의 사역지 이동이 잦은 경우에는, 사모가 일을 그만둬도 쉽게 재취업할 수 있는 능력자이거나 직장 내 근무지 이동이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모님은 3교대를 해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교회에서 남편 목사님에게 이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고 싶으면 사모가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주변 사모님들은 "주일성수를 온전히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고 조언해 주곤 했는데, 나는 그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만약 직업 자체가 주일성수를 할 수 없다면, 애초에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사모가 될 수 없는 걸까.

반면에 한 사모님은 사모가 직업을 갖는 것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교회가 사모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할 거면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 줘야 한다고. 그러지도 않으면서 일을 하지 말라는 건 옳지 못하다고. 맞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고개가 바로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분이 경제적 논리만 내세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직업은 그저 경제적 필요만을 채워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뤄 가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이다. '민달팽이'라는 존재의 자아가 실현되는, 내 존재를 온몸으로 부딪쳐 깨닫고 발견하는 현장 말이다. 그런데 사모에게는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 현장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니. 사모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달란트를 거둬 가시는 것도 아닐 테고, 분명 여전히 그 사람이 달란트를 사용하며 자아를 실현해 가기를 바라실 텐데 말이다.

사모이기 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사모니까 직업이 없어야 해, 사모니까 이런 직업이 있어야 해'라는 조건을 나열할 게 아니라, 사모도 주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자기 달란트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불량 사모'라서 드는 생각일까.

믈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이가 클 때까지는 당분간은 좀 쉬셔야죠", "아이가 크면 평일 오후 6시까지만 하실 수 있는 구해야죠", "틈틈이 공무원 시험이나 보건 임용고시를 준비하시는 건 어때요?" 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어차피 내가 가진 생각은 작은 계란에 불과하고, 거대한 바위에 던져 봤자 깨지기만 할 뿐이니 그저 잠잠히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니까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아주 가끔은 세상이 바뀐다,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꼭 해야 되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런 질문을."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묻고 싶다.

"누군가가 사모가 되면, 하나님은 그에게 주신 직업적 소명과 달란트를 거둬 가시나요? 사모는 주님의 자녀가 아니라, 그저 목사의 아내에 불과한가요?"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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