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목회자인 남편과 결혼한 뒤, 내겐 수많은 율법이 주어졌다. "사모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해요. 피아노 반주는 기본이죠. 요리는 물론이고요. 교인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사모끼리 몰려다니지 마시고요. 육아와 살림은 알아서 잘 하시면 됩니다. 남편에게 부탁하지 마시고요" 등…. 그중 가장 강렬했던 율법은 바로 "사모는 언니가 있어야 해요"였다.

이 율법은 남편의 새로운 사역지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주어졌다. 율법을 전수해 주시는 분이, 그 교회 사모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수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시더니, 대뜸 이렇게 물으셨다.

"사모님, 언니 있어요?"
"아뇨, 언니 없는데요."
"음… 사모는 언니가 있어야 하는데… 언니 없어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때 나는 이게 그저 언니의 존재 유무를 묻는 말인지, 아니면 진짜 어떻게 해서든 언니를 만들어 오라는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안타깝게도 그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아빠인 용순 씨가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조금 넘었을 때였고, 엄마인 말희 씨가 돌아가신 지는 이제 막 반년이 됐을 무렵이어서 그랬다. 게다가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어서 더 그랬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사역으로 바쁠 목사님을 대신해 주위에 도움 받을 손길이 있느냐'는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언니 없어요?"라는 그 물음이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곤 했다. 특히 언니가 필요한 순간마다 더 그랬다. '언니'라는 말로 대변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마다 '언니가 없는 나는 사모가 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에 빠졌다. 그렇게 언니라는 말에 왠지 모를 나쁜 감정만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에서 만난 분을 통해, 우연히 한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됐다. 어떤 유명 작가 분이 만든 카페였는데, 거기서는 모두가 서로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 카페에서 진행한 '한 달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했고, 함께했던 언니들과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언니'라는 말은 그저 카페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 뒤에 붙이는 '님'을 대신하는 존칭 정도였다.

어느 날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그랬다. 당신 앞으로 온 우편물 뭐냐고. 누구한테서 온 거냐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멀뚱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는데, 남편이 또 그런다.

"새삼 당신 인생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남편이 말한 우편물은 인터넷 카페의 한 언니에게서 온 거였다. 언니가 직접 쓴 소설책을 선물로 보내 준 거였는데, '받는 사람'란에 꾹꾹 눌러 쓴 글씨로 '민달팽이 언니께'라고 적혀 있었더랬다. 남편은 그걸 보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우리가 가 본 적도 없는 어느 도시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언니'라고 써서 정성스레 우편물을 보냈으니 말이다. 

남편은 그걸 보고 그렇게 생각했단다. 내 아내가 생각보다 인생을 잘 살고 있는 모양이라고. 인간관계를 잘하는 모양이라고. '언니'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는 건데, 아주 오랜 세월 알고 지낸 누군가가 우편물까지 보낸 걸 보면 아내의 인생은 참 멋져 보인다고 말이다.

우편물을 보낸 언니는 한 달 동안 나의 '글 짝꿍' 언니였을 뿐이고, 우린 며칠 전 온라인 화상 모임으로 처음 얼굴을 본 사이일 뿐이라고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내 남편이 잘못 본 건 아닐 거라는, 이건 내가 인생을 잘 살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카페를 만든 작가님의 큰 그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주는 안온함을 나누자는, 우리가 그 안온함을 함께 누리자는 큰 그림말이다. 

작가님의 큰 그림을 생각하니 "사모에겐 언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게 됐다. 카페에 가입한 뒤로 수많은 언니가 생겨서이기도, 손편지를 보내오는 글 짝꿍 언니를 만나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당시 그 말이 왜 내게 상처가 됐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사모가 지켜야 할 수많은 율법을 들었던 나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삶이 두려웠던 거였다. 이제 남편은 교회 일로 바쁠 테니 내 삶에서 남편을 제거하라는 말처럼 들렸고, 그 빈자리를 언니로 채우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언니 같았던 말희 씨마저 더 이상 옆에 있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이내 내가 듣지 못한 말이 떠올랐다. 그 수많은 율법을 뒤로하고 내가 진심으로 듣고 싶었던 단 한마디. 그 말을 듣지 못해 계속 아팠고, 속상했으며, 마음속에 무수한 생채기가 생겨난 거였다. 이제 내게는 그 말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는 단단함과 여유가 생겼다. '쓰고뱉다'에서 만난 동기들, 카페에서 만난 언니들 덕분이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곤란해하는 누군가에게, 자모실에서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이에게, 따스한 엄마의 밥상을 받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그저 옆에서 같이 울어 주고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이들에게 '언니'가 되어 주고 싶다. 어쩌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이제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제가 그 언니가 되어 드릴게요."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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