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행전] 이유도 모른 채 밀려난 이들에게 내미는 손길
| 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사모행전'을 사랑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편집자 주 |
"저도 당연히 교회 목사 사모님은 피아노도 잘 치고, 형제도 많고, 유아교육도 전공했을 거라는 정체불명의 편견이 있었더랬어요."
'사모행전' 연재 글 중 하나에 어느 독자분이 달아 주신 댓글이다. 사실 나도 이러한 편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내 주변 사모님들은 모두 반주를 잘했고 유아교육을 전공한 분이 많았다. 그도 아니면 부모님이 장로님·권사님이거나 목사님·사모님이셨다. 게다가 다들 한결같이 성격이 참 온유하셨다.
나는 이 모든 편견을 깨부수는 아주 독특한 사모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전도사 남편과 결혼해 사모가 됐을 때, 우리 교회에 있다가 유학을 다녀오신 한 부목사님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배가 끝난 후 정수기 앞에서 만난 목사님은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셨다. 이윽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민달팽이, 사모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알고 보니 우리 남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사모가 된다고 했을 때, 모든 이가 그런 표정으로 의문을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민달팽이, 쟤가 사모가 된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반적인 사모상(?)에 어울리지 않는 나였지만, 나는 교회 '안'에서 제법 예쁨을 받으며 자랐다. 엄마 말희 씨는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나를 데리고 예배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나를 두고 성가대석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장의자에 혼자 남겨진 나는 성함도 모르는 장로님 옆에 앉아 예배를 드리다가 그분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구역장이었던 말희 씨가 구역예배를 드리러 갈 때 혼자 앞서 걸어가면, 어린 나는 뒤에서 권찰 집사님의 손을 잡고 뒤따라가곤 했다.
말희 씨는 사모나 권사가 아닌 집사였고, 아빠 용순 씨는 말희 씨가 교회에 나간다고 간혹 물건을 때려 부수는 사람이었음에도, 나는 장로님·집사님 등 교회 분들 손에 자랐다. 온 교회가 나를 키웠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보살핌을 받았으며, 때론 아픔도 겪었다. 그곳에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말희 씨와 용순 씨도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교회 분들은 성격이 독특한 나란 아이를 늘 따뜻하게 품어 주셨다. 성품이 다듬어지면 언제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기대를 걸 만한 영민한 아이라고 응원하며 기도해 주셨다. 목회자를 준비하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모가 되고 난 뒤로, 교회에서 자랐던 아이는 어쩐지 교회 '밖'으로 저만치 밀려났다. 남편이 목사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교회에서 자랄 수 없었다. 알아서 잘 자란 후 교회에 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본이 돼야 할 뿐이었다. 자식을 양육하는 일도, 사모인 나의 신앙적 성장을 위한 일도 모두 교회 밖에서 스스로 해야만 했다. 다듬어질 수 있는, 쓰임받을 만한 영민함은 사모가 된 아이에겐 독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또 어떻고. 말희 씨는 한번의 말실수로 언제든 전도사 사위를 해고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됐고, 알코올중독자 용순 씨는 사위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짐 덩어리가 됐다.
왜 이래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는 그저 목회자가 되려는 '남자 사람'과 결혼했을 뿐인데, 더는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이의 모든 것은 교회가 도저히 품어 줄 수 없는 문젯거리로 취급받았고, 아이는 하루아침에 교회 밖으로 저만치 밀려났다. 교회'밖에' 모르던 아이가 교회 '밖'으로 밀려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달라짐의 이유를 찾고 싶었고, 이제는 달라짐을 넘어 다시 교회밖에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동안 내가 써 온 글은, 그 과정 중에 있는 한 사람의 고군분투기였다. 또한 "네가 사모가 된다고?"라며 의아한 시선을 보냈던 이들과 나 자신에게 보내는 답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답을 완벽하게 찾지는 못했다. 여전히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나를 교회 밖으로 밀어낸 이들에게 항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처럼 어느 순간 교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눈에 보였다. 이유도 모른 채 밀려난 이들이 말이다.
그 이후로는, 글을 쓰는 내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교회 밖으로 밀려난 사모님들'과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이들에게 한 조각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지금까지의 연재는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해 길을 걸어가 보자고 내민 민달팽이의 작은 손길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교회 '밖'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위로하며, 다시 교회'밖에' 모르는 우리로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 모두가, 교회 '안'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며 밖을 서성거리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손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글이 연재될 수 있도록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부족한 글솜씨 갈고닦아 주신 글 스승, '김싸부' 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같이하는 글쓰기의 가치를 일깨워 준 '쓰고뱉다' 5기 동기들, 따뜻한 조언으로 글이 예뻐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심화반·완성반 1·2·3기 동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지지해 준 목사 남편과 부족한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해 주는 두 딸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사랑해.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