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목사 아내, '사모'. 한 번도 사모 대접을 요구한 적 없지만, 언제나 '사모'로 불리며 온갖 가부장적·신앙적 틀에 맞춘 역할 혹은 무역할을 강요받는 사람들. 교역자도 아니고 교인도 아닌 '깍두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들. <뉴스앤조이>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연재한 민달팽이(필명)의 '사모행전'은 어느 교회에나 있지만 어느 교회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평범한 목사 아내의 목소리를 담았다. 좋은 글은 개인 경험에서 출발해 보편 경험에 잇닿는다고 했던가. 민달팽이의 연재가 꼭 그랬고, 많은 그리스도인 독자의 공감을 샀다.

고백하자면 '사도행전'을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이 연재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온 땅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도 바울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별안간 예배당 뒷편에 조용히 앉은 중년 여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무리 진보연해도 한국교회 남성으로 자라온 내 안에 깊숙이 드리워진 편견은 이토록 끈질기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차 목사 아내 민달팽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간단히 요약하며, 어렸을 적 '교회밖에' 몰랐으나 목회자 남편과 결혼한 이후 한순간에 '교회 밖'으로 밀려나 '불량 사모'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변'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도리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발견하고 위로를 건네는 마음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그간 겪은 일을 100회로 나눠 써도 모자랄 텐데 10회에 담아 달라 요청했으니, 애초에 기획 단계부터 잘못됐던 건 아닌지 아쉬움과 반성이 남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오길 기대한다.

지난 5개월간 전화·메시지를 통해 소통해 온 민달팽이를 4월 11일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그 위에 단단히 터 잡은 한국교회에서 편견과 강요를 늘상 견디며 살아온 10년 차 목회자 아내의 삶은 어땠을까. 연재에 미처 담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최소한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진은 얼굴 아래로 담고 블러 처리했다.

<뉴스앤조이>에 '사모행전'을 연재한 민달팽이를 4월 11일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뉴스앤조이>에 '사모행전'을 연재한 민달팽이를 4월 11일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10년 차 목회자 아내 민달팽이입니다. '민달팽이'는 안온한 껍질을 잃어버리고 다시 따스한 집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필명이에요. 저는 현재 외국인 친구들이 많은 초등학교·중학교에서 한국어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안녕, 신앙생활>(토기장이) 작가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하는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에서 글을 쓰셨죠.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뭔가요.

김정주 작가님이 쓰신 <교회 미생 김파전의 파전행전>(선율)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남편이 사역하는 청년부에 수련회 강사로 오신 적이 있어서 소셜미디어 친구를 맺었는데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진행한다고 하기에 참석을 결심했어요. 원래는 학교에서 한국어 학급을 담당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작가님이 '목회자 아내의 삶' 대한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과연 내 얘기가 그렇게 특별한가',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시중에 나와 있는 사모님들 이야기는 대부분 은혜로운(?) 내용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글을 써 보게 됐죠.

- 그때 쓰신 글을 토대로 '사모행전' 연재를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사실 연재 이전에 글의 일부분을 소셜미디어 비공개 그룹에 올린 적이 있어요. <뉴스앤조이> 연재 글은 수정도 많이 하고 새로 써서 분량도 늘린 글이고요. 그때 얼굴도 모르는 사모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이 공감을 표해 주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익명으로 연재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다들 위험할 것 같다고 말리더라고요.(웃음)

아니나 다를까, 연재 첫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연재를 계속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충격을 먹었어요. 비판 강도가 생각보다 세더라고요. '이게 독자들의 반응인가' 싶어서 그 이후로는 댓글을 거의 안 봤어요. 익명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도 궁금한데요.

일단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은 전혀 모르시고요.(웃음) 주변분들 특히 사모님들은 많이 공감해 주시고 응원도 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저를 아는 분들이기도 하고, 다들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을 테니까요. 다만, 이런 따뜻한 반응들이 정말 독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좀 자신이 없고 의문스럽죠.

- 스스로를 '불량 사모'라고 다소 자조적으로 부르셨는데요.

목회자 아내가 된 이후로 "민달팽이, 네가 사모가 됐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어떤 목사님은 저를 한참 쳐다보면서 "너 진짜 잘하고 있는 거 맞냐"고 묻기고 하셨고요. 대부분 네가 사모가 될 줄 몰랐다면서 마치 제가 '사모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얘기했어요. 그래서 '내가 역량이 안 되나', '교회가 정해 놓은 사모상이 있나'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모는 피아노 반주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유아교육과 나와야 하고, 요리는 기본이고, 성격도 온화해야 하고….'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까 '그럼 나는 불량 사모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 청년 시절에는 아무 문제없던 것이 '목회자 아내'가 되니 문제가 됐다고요. 엄청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사회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고, 항상 무언가를 가르치고 주도하는 걸 좋아했어요. 청년부 시절에도 총무를 맡아서 전반적인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했고요. 저만의 달란트를 갖고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해 왔는데, 목회자 아내가 되니까 갑자기 달란트를 사용하면 안 되는 사람이 돼 버린 거예요.

남편이랑은 제 모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결혼했는데요. 당시 신학생이었던 남편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고 저희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기 전까지 8개월 정도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전도사가 되자마자 갑자기 제가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마구 생기더라고요. 청년부도 안 돼, 장년부도 안 돼, 여전도회도 안 돼, 성경공부 참여도 안 돼, 교회학교 교사도 안 돼…. 평생 교회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사모'가 된 이후로 갑자기 교회 밖으로 밀려나 어디에도 속할 수 없게 돼 버린 거죠. 왜 그래야 하는 건지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 너무 부당한 처우네요. 달라진 건 딱 하나, 목회자 남편과 결혼했다는 것뿐인데요.

모교회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었어요. 어찌 됐든 아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남편이 사역지를 옮겨서 전혀 모르는 새 교회에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아예 '0(zero)'…. 사실 지금도 0에 가까워요. 처음 오자마자 '사모들끼리 친하게 지내지 마라', '평신도랑도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남편 신경 쓰이지 않게 집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맡아서 해라' 하는 말부터 들었으니까, 서로 교제하거나 이런 건 아예 꿈도 못 꿨죠.

지금은 그나마 담임목사님 사모님 모르게(웃음) 조금씩 서로 교제를 나누긴 하는데, 그분들도 사역지를 옮기고 하시니까 깊은 교제가 지속되기 어려워요. 제가 있었던 교회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큰 교회도 상황이 어렵더라고요. '사모 모임'이 따로 있다고 해도 남편 목회자 서열에 따라 철저히 계급화해 있고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남편이 어떻게 책잡힐지 모르는 경직된 분위기라서 주님 안에서 진정한 교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포함해서, 목회자 남편과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교회 내 교제에서 배제되는 경우를 많이 봐요. 목회자 아내들은 늘 공동체 교제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달란트로 교회를 열심히 섬겨 온 민달팽이는 "목회자 남편과 결혼한 후로 갑자기 달란트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자신의 달란트로 교회를 열심히 섬겨 온 민달팽이는 "목회자 남편과 결혼한 후로 갑자기 달란트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가는 곳마다 일종의 '사모 수업'을 들으신 거네요. 명확한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고, 교회마다 기준도 다르고 규율끼리 상호 모순적이기도 해서 힘드셨다고요.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이었죠.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규율이 있는데, 그마저도 저마다 잣대가 다른 거예요. 이 교회에서는 사모가 직업이 있어야 한다 하고, 저 교회에서는 직업이 없어야 한다 하고, 교인들과 친해지지 말라면서 누구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하고, 기도 많이 하라고 하는데 새벽 기도 때는 울면 안 되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었어요.

남편 새 사역지에 왔을 때였는데요. 교인분들한테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자마자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저를 따로 불러서 앉혀 놓고 1시간 30분 동안 '사모 교육'을 하셨어요. 그때가 처음 만난 자리였는데요. 거기서 나온 얘기가 '남편에게 육아·살림 의존하지 마라', '교회에서 아이들이 아빠(남편)에게 아는 척하면 안 된다. 아이들 안아 주지 마라', '아이가 아프면 등에 업고서라도 공예배는 반드시 참석해라', '나는 이사를 8번 했는데 남편 도움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사든 뭐든 그냥 알아서 하는 거다' 이런 식이었어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성경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율은 아닌 것 같았고요.

어떤 분은 "이 정도 의식 있는 사람이 왜 '사모'라는 말을 쓰는 거냐"고 하시는데요. 저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에요. 무슨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서 이런 호칭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저 신자 중 하나로 상식선에서 올바르게 성경적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온 교회가 저를 '사모'로 규정하고 가만히 두질 않아요.

- 결국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부합하라는 압력인 거잖아요. 모순적인 이중 잣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죠. 성경적이라기보다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것 같아요. 한번은 저희 교회에서 부부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자리에서 담임목사님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목회자 가정상은 목사가 혼자 뒷짐 지고 앞서가면 사모는 아이 셋을 데리고 짐을 이고 뒤따르는 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딱 가부장제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이잖아요. 40대 중반 젊은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니까 당황스러웠고, '건강한 가정을 세우자'는 행사 취지에 너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담임목사님이 한동안 설교 중에 사모님 흉을 보셨거든요. 그래서 세미나에서 의견을 나눌 때 이러이러한 부분은 동의가 안 되고 은혜도 안 된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옆에 있던 남편은 얼굴이 사색이 돼서 그만하라고 했고요.(웃음)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은 그게 '목회 스킬'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교인들이 사모님을 불쌍히 여기고 더 사랑해 준다고, 담임목사 가정이 화목해 보이면 교인들이 더 상처받고 실족한다고요.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됐어요. 오히려 담임목사님 가정이 건강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교인들도 본받지 않을까요.

- 여러 규율들이 나를 찍어 누르는 '쿠키 틀'처럼 날카로웠다는 표현이 마음 아팠는데요. 죄인처럼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고 자격지심을 강요받는 상황이 일종의 '구조적 가스라이팅' 아닌가 싶어요.

맞아요. 옷차림부터 하나하나 스스로를 검열하게 돼요. 제가 생활한복을 좋아해서 많이 입는데요. 입으면 입는 대로, 안 입으면 안 입는 대로 지적을 받아요. 심지어 조금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한복을 입으면 남편조차도 "어디 굿하러 가냐"고 할 정도고요. 그러니까 이제는 저부터가 '이건 주일에 못 입고 가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신 대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셈인 거죠.

심지어 어떤 사모님은 주일에 교인들이 와서 인사를 하더니 옷을 뒤집어 상표를 슬쩍 확인하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평범하고 일반적인 옷을 입어도 브랜드 검열이 남은 거죠. 옷조차 마음대로 입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이런 경험담이 <부름받아 나선 이년>(뉴스앤조이)에 똑같이 나오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특수한 경우에만 겪는 일인 줄 알았거든요.

- "내 모습 이대로, 네 모습 그대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교회가 왜 목회자 아내들은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할까요.

목회자에 대한 교회의 인식 자체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요. 성경적인 시각에서 '목사는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사람'으로 보는 걸 넘어서, 유교적 시각에서 '가부장적 선비'로 보니까 목사 아내도 당연히 그걸 같이 감내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목사와 1+1으로 묶어 버리는 거죠.

교인들이 목사를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먹고사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특히 부교역자들에게 '내가 돈을 주는 고용인인데 너는 내가 마련한 규율을 당연히 따라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느껴요. 기본적으로 목사가 하는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사역이라는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 교회 공동체 내에서 합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목사에 대한 이런 시각들이 목사 아내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은데, 목사 아내도 일반 교인과 똑같이 대해 주면 좋겠어요.

민달팽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일반적인 교인 중에 하나로 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민달팽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일반적인 교인 중에 하나로 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글쓰기 모임,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여러 어려움을 타개해 오신 것 같아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밖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슬프네요.

일단 교회 안에서는 말하기가 어렵죠. 사실 사역지를 옮겨 온 이후로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혼자 집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우울증도 왔고요.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교회 밖에 있는 건강한 성경 공부 모임을 소개해 줬어요. 물론 담임목사님 몰래 다녀야 했고요. 그마저도 오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에 그만뒀어요. '우리 교회가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데 왜 나는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못하고 밖에서 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죠.

주변 사모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들 성경 공부든 일상적인 교제와 도움이든 큰 필요를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이런 것들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으니 다 외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사모님 2~3명만 휴게 공간에서 모여 있어도 "또 자기들끼리 뭉쳐서 교인들 위화감 조성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쩔 수 없죠. 저도 '쓰고뱉다'를 비롯해 오히려 교회 외부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고요.

- "다시 교회밖에 모르는 사모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거의 교회에서 살았거든요. 놀 때도 교회에서 놀고 학창 시절에는 시험공부도 교회에서 했어요. 주일에는 여러 가지 일을 섬기면서 예배도 기쁘게 드렸고요. 교회는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정말 편안한 공간이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었죠. 그런데 슬프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걸 봤고 또 너무 많은 일을 경험한 거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마냥 교회가 좋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고 공부하는 게 좋아서 즐겁게 신앙생활 했던 때가 그립고요. 그런데 그런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안의 문제도 있겠지만 구조적·외부적 문제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조금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낯선 땅에 온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오히려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발견하는데, 정작 교회 안에서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설령 할 수 있는 걸 찾는다고 해도 교회가 그걸 하게 내버려 둘까 하는 고민이 앞서죠. 물론 남편이 사역할 때 제가 육아하고 살림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실제로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게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제게 주신 사명이나 소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글쓰기 활동을 통해 사모님·교인분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이야기도 들어 주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면서 함께 기도도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니,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교회가 사모에게 이런 일을 허락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또 사람들이 저를 '불량 사모'라고 생각하려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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