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남편이 처음 전도사 사역을 시작한 교회는 내게 고향과도 같은 교회였다. 나는 그곳에서 유아세례부터 입교까지 받고 자랐다. 교회에는 나와 비슷한 은혜 사모님이 계셨다. 우리 교회에서 오래 사역한 부목사님의 아내분이셨고, 심지어 아버님이 교회 창립 멤버 중 한 분이셨다. 그러니까 은혜 사모님도 나처럼 이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모가 된 분이셨다.

언젠가 사모가 되어 다른 교회로 간, 청년부 후배이자 사모로서는 선배인 인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결혼 후 다른 지역에서 살던 인애가 마침 여름휴가를 맞아 친정에 왔던 터였다. 사실 우리는 며칠 전 한 장로님께 '사모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거지'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들은 상황이었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교회에 온 나와, 친정에 온 김에 교회에 들른 인애가 장로님께 딱 걸린 거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사모라면 응당 교인들 집집마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모로 사는 삶에 대해 인애와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은혜 사모님이 조용히 다가오셨다. 서로 안부를 묻던 와중에 며칠 전 장로님께 들은 한바탕 강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은혜 사모님이 주위를 살피시며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혹시 장로님이 그 이야기는 안 하셨어요?"
"무슨 이야기요?"
"새벽 기도 이야기요."
"아, 사모는 새벽 기도 빠지면 안 된다는 거요?"
"아뇨, 그거 말고요. 사모는 새벽 기도 때 절대 울면 안 된다는 거요. 내가 언젠가 많이 힘들 때 새벽 기도에 나와서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었거든요. 기도가 끝나고 나니 장로님이 조용히 불러서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사모는 기도할 때 울면 안 된다고, 교인들 보기에 좋지 않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울지 말라고요. 본이 되지 않는다네요."
"네?"
"새벽부터 사모가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교인들이 은혜 받을 수 있겠냐고, 교인들이 받을 은혜를 가린다고 하네요."

"…."

은혜 사모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인애의 손을 포개어 잡고 두어 번 두드려 주시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말문이 막힌 우리 둘은 여전히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모가 새벽 기도 때 울면 안 된다는 이유가 차라리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고릿적 이야기 때문이었다면 잽싸게 반박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모가 울면 교인들이 받을 은혜를 가린다니, 내 눈물이 교인들 은혜를 못 받게 만든다니….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새벽부터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진 못할망정 은혜를 가려서는 안 되니 말이다.

그날 이후 새벽 기도든 다른 예배 시간든,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마다 눈물을 삼키느라 애를 썼다. 아빠 용순 씨의 장례를 치렀을 때도, 1년 뒤 엄마 말희 씨의 장례를 치르고 예배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그날 예배 시간에 용순 씨가 가장 좋아했던 찬양을 부르게 됐다. 찬송가 354장 '주를 앙모하는 자'. 힘차고 빠른 피아노 반주가 시작됐는데, 반주만큼이나 빠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행여나 누가 볼세라 고개를 푹 숙이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 내기에 바빴다. 결국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발개졌다. 예배 후 현관 앞에 서 계신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허리를 굽혀 서둘러 인사한 뒤 잰걸음으로 예배당을 벗어나야 했다.

남편이 옮겨 간 사역지에서도 사모가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을 교육받아야 했다. 비슷하기도 하고 많이 다르기도 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모인 내 처지가 꼭 날카로운 쿠키 틀에 여러 번 찍혀 늘어진 반죽 같다는 생각을 했다.

틀로 찍어서 만드는 쿠키 반죽은 손으로 여러 번 치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쿠키의 바삭함이 사라져 버린다. 쿠키를 깔끔하게 찍어 내기 위해서는 반죽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어 밀대로 밀고, 틀로 찍어 오븐에 구워야 한다. 그런데 이때 틀에 찍고 남은 반죽이 아깝다고 한데 모아 손바닥 온도로 녹이고, 다시 반죽 덩어리를 만들어 또 다시 틀로 찍어 내는 일을 반복하면, 반죽은 늘어질 대로 늘어지게 된다. 그런 반죽으로는 아무리 잘 구워 내도 질기고 딱딱한 쿠키가 될 뿐이다.

사모에게 주어지는 규율들은 꼭 쿠키 틀 같았다.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그 끝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쿠키 틀. 이제 막 사모가 됐을 땐 그 틀에 맞춰 예쁘고 바삭한 쿠키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리저리 수많은 틀에 찍히다 보니 어느새 늘어진 반죽 신세가 된 것 같았다. 게다가 울지 말라며 감정까지 통제를 당했을 때는, 이러다가 나중에 바삭함은 커녕 딱딱함만 남아 있게 될까 두려웠다.

그 틀에 눌려 지쳐 갈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를 만드신 이가 애초에 나를 쿠키 반죽으로 만드셨을까. 어쩌면 나는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돼야 하는 빵 반죽은 아니었을까. 사모가 된다고 갑자기 눈물이 말라 버린다거나, 원할 때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닐 텐데, 저마다 다른 모습과 달란트를 가진 사모들이 왜 목사와 결혼을 하는 순간 틀에 박힌 듯 똑같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받아야 할까.

이제는 쿠키 틀에 찍히고 싶지 않다. 쿠키 반죽이 아니라 빵 반죽일지도 모르는 내게 들이대는 날카로운 틀에 더 이상 나를 내어 주고 싶지 않다. 주님 앞에서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주의 자녀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곁에서 함께 울어 주고, 웃어 주는 따스한 한 사람의 성도가 되고 싶다. 주님을 향한 따스한 온도를 지닌, 한 몸 된 지체를 향해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모가 되고 싶다. 그런 사모가 새벽에 흘리는 눈물은 절대로 은혜를 가리지 않을 테니.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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