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손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조금 내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종종 우울합니다. 아, 벌써부터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군요. "목사가 믿음이 없으시구먼. 혹시 구원 안 받은 거 아니유?" 

"여기 등장하는 위인들의 이야기는 우울증을 죄악시하며 낙인찍는 교회의 편견을 깨뜨린다. 나는 실패자야, 나는 '형편없는 신앙인'이야, 이것보다 훨씬 더 잘 지내야 해, 내가 좀 더 신실하거나 거룩하거나 강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말하는 거짓을 뭉개 버린다." [다이애나 그루버, <영혼의 밤을 지날 때>(바람이불어오는곳), 45쪽]

저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사입니다. 진급 과정에서 정신과 검사를 받고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절차가 있었는데요. 의사인지 심리 상담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저를 검사했던 분이 검진표를 들여다보며 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교회 일이 되세요?" 그렇다고 우울증 판정까지 받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제 모습이 부끄럽거나 신앙적으로 죄스럽지 않습니다. 제 각진 얼굴 모양이 부끄럽거나, 투박한 발가락 모양이 죄스럽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제 우울함은 일종의 '마음의 모양' 아닐까요? 다만 한국교회의 신앙적 풍토가 이런 식의 이야기를 얼마나 수용해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우울을 호소하는 제가 가여웠던 모양인지, 하늘은 제게 <영혼의 밤을 지날 때>(바람이불어오는곳)를 만나게 해 주었고, 이렇게 서평까지 쓰고 있습니다. 정말 유익한 책입니다.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마음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한 이들을 늘 만나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만약 이 책을 읽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쓰실 더 좋은 목사가 되실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영혼의 밤을 지날 때 - 우울증을 안고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 / 다이애나 그루버 지음 / 칸앤메리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300쪽 / 1만 6000원
<영혼의 밤을 지날 때 - 우울증을 안고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 / 다이애나 그루버 지음 / 칸앤메리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300쪽 / 1만 6000원

저자 다이애나 그루버 역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인데요. 7개 챕터로 이루어진 책 내용은 사실 단순합니다. '마르틴 루터'부터 '마틴 루서 킹 주니어'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7명의 영웅적 인물들이, 사실 매우 우울한 사람들이기도 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빛나는 명성의 이면에 짙은 어둠의 안개가 자욱했다는 사실을 부디 생각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첫 장의 주인공인 마르틴 루터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하나를 인용해 볼까요? 

"종교개혁을 전후로 그의 신학이 바뀌었을 때도 증세는 여전했다. 불안감과 우울함은 평생 루터를 괴롭혔다." (58쪽)

최근 기념했던 종교개혁주일의 주인공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의 문장입니다. 그가 말년에 아내에게 했다는 말은 더욱 놀랍습니다. "세상이 너무 싫어(73쪽)." 그야말로 우울함의 극치입니다. 그루버는 우리가 신앙의 영웅으로 여기는 7명의 삶에 모두 이런 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 낯설게 느껴지는 신자가 많을 것 같습니다. 강단에서는 보통 '좋은 부분'만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46쪽). 혹시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분이 계실까요? 그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안 우울한 척' 우리를 속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우울했음에도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신앙의 성장판을 손상하지 않으며 신앙의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마더 테레사의 삶은 이를 선명하게 입증한다." (218쪽)

그러고 보면 우울한 기질과 성향이 "영감의 모판"(36쪽)이라거나, "탁월함이나 창조성"(36쪽)을 불러일으킨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꼭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7명의 종교적 천재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지 않은가요? 꼭 종교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가령 좋아하는 가수들도 한번 떠올려 보시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 한 분 역시, 그렇게 구슬픈 노래를 계속 작곡하며 큰 명성을 얻더니, 결국 스스로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그러므로 우울함은 좋다'는 것도 아니고, '우울함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우울한 이들에게 함부로 신앙적 정죄를 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느니, '구원받기 힘들다'느니 하는 식의 정죄 말입니다. 

"당신이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부디 주변에서 우울증을 앓는 수많은 사람이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46쪽)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중 누가 우울한 이들의 마음을 평가할 자격을 갖췄는지요? 우리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3장 주인공)'도 아니고, '윌리엄 쿠퍼(4장 주인공)'도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저와 여러분은, 역사상 가장 신실했던 거장들이 견뎌 낸 어둠의 세월을 겸허히 헤아리며, 그동안 마음이 아픈 이들을 함부로 대했던 우리 언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우울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자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정치인·연예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하늘로 가 버리는 일을 정말 어쩌면 좋을까요? 우울함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샜습니다만, 사실 우울증과 자살은 깊이 연관돼 있기도 하지요. 제 이야기인즉슨,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울한 이들을 왜 그리도 폭력적으로 대하는지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라는 기본적인 반응조차 못하는 기독교인들을 목도할 때마다, 정말로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방금 죽은 사람을 놓고도 "자살했으니까 지옥 가지 않았을까?"라는 무심한 말을 내뱉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정말 기독교인이 맞는지요? 우리가 경배하는 예수님께서, 실은 가장 '인간적인' 분이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그분을 그토록 사랑하는 것 아니었던가요? 그분이 정말 우리 기독교인들의 구주가 맞습니까?

가장 인간적이었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섬기면서도, 일부 기독교인들이 가장 비인간적인 감성의 소유자가 된 데는 아마 '바울에 대한 오해'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를 잘못 읽은 열광적 신자들이, 고통 중에 슬퍼하는 이들을 죄인 취급하거나, 스스로의 우울한 마음도 죄스럽게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바울의 정신, 특별히 "항상 기뻐하라"는 그의 말을 오해한 분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은 그 말을 문맥 속에서 따져 보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본인의 말처럼 항상 (감정적으로) 기쁜 사람이었는지, 그가 쓴 서신들의 '어조'를 살펴보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설사 바울의 말이 정말 '그런' 의도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울한 사람들을 정죄하라'는 뜻이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의 말에 비춰 볼 때 '그다지 안 기뻐 보이는' 시편 기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말입니다. 그들도 '우울한 죄인'이라고 하실 거냐고 말입니다. 성경을 '종합적으로' 읽으셔야 할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자신의 설교에서 스펄전은 죽고 싶어 했던 엘리야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 우울증으로 씨름했던 시편 기자들을 보며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며 이미 다른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걷는다는 사실에 위로받게 된다'고 했다." (203쪽)

저는 서문과 '들어가며'를 읽은 후, 훌쩍 건너뛰어 6장 '마더 테레사' 부분부터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읽어도 무방한 책이기도 하고, 평소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평생을 바치며 칭송받던 그의 사후에 드러난 어둠과 고뇌의 시간들은, 그에게 "의심과 절망을 숨긴 사기꾼"(214쪽)이라는 혹평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해 보일 만큼 놀라운 것이 사실입니다. 무려 50년씩이나(214쪽) 신앙적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면서도(212쪽), 그의 대외적 이미지는 흡사 예수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배신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도 오래전 그의 진실과 마주했을 때 매우 놀랐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저는 그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했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하루 종일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이 세상의 고통과 무관한 '사적 영성'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보다, '너무나 우울했지만 끝내 예수의 길을 좇았던' 테레사에게서 구원을 본다고 말입니다. 테레사 본인은 비록 힘들었겠지만, 하나님은 그의 우울함마저도 사용하셨다고 말입니다. 

주변에 우울한 이들이 보이시는지요? 혹시 종교가 기독교이신지요? 혹시 직업이 목사이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교화'하고 싶은 마음에 입술이 요동을 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교화할 생각을 거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울 속에 고통받는 그들이, 구원을 넘어 우리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뤘는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저자의 아래와 같은 멋진 말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해 "이제는 우울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향한 비인간적이고 무익한 판단을 멈추라"고 요청하는 것만 같습니다.

"복음은 내게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58쪽)

이현우/ 김포에서 목회하는 감리회 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