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나라마다 자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부호富豪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일론 머스크(테슬라),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루이비통·디올·지방시·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베르나르 아르노(LVMH)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재용 부회장(삼성전자), 김범수 의장(카카오) 등이 있겠네요. 오늘 이야기할 홍콩에도 거부가 있습니다. 리자청(청쿵그룹), 리자오지(헝지그룹), 청위통(저우다푸) 등이 그 주인공이죠.

홍콩에는 여섯 가문이 가장 유력합니다. 리 가문(리자청), 리자오지 가문, 청 가문(청위통), 궈 가문, 바오와 우 가문, 카두리 가문인데요. 앞서 소개한 대다수가 신기술과 상품으로 그룹을 성장시킨 기업가라면, 홍콩 가문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모두 부동산 재벌입니다. 막대한 토지·주택을 통해 쌓은 재산을 기반으로 금융·유통·통신·교통·전기 등 다양한 산업 분야를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서울에 사는 땅 부자 박 아무개 씨와 그의 가족들이 은행과 대형 마트뿐 아니라 서울주택공사·서울교통공사·서울도시가스·한국전력공사 등 공공서비스업까지 독점하고 있는 셈이죠. <홍콩의 토지와 지배계급>(생각비행) 저자 앨리스 푼은 이 여섯 가문을 봉건시대 세습 귀족인 영주에 비유합니다.

<홍콩의 토지와 지배계급>은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조성찬 원장)이 부동산 재벌이 야기하는 사회 모순과 문제를 알리기 위해 올해 9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을 번역한 조성찬 원장은 토지·부동산 문제가 어떻게 도시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고 시민들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지 보여 준다며, 집값이 폭등하고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홍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대표가 10월 14일 하나누리 사무실에서 조 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홍콩의 토지와 지배계급>(생각비행) 저자 앨리스 푼은 홍콩 부동산 재벌 여섯 가문을 봉건시대 세습 귀족인 영주에 비교하며, 부의 불균형과 사회문제를 지적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홍콩의 토지와 지배계급>(생각비행) 저자 앨리스 푼은 홍콩 부동산 재벌 여섯 가문을 봉건시대 세습 귀족인 영주에 비교하며, 부의 불균형과 사회문제를 지적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토지 공급 제한, 정경유착 이용해
홍콩 점령한 부동산 재벌

- 이번에 번역한 <홍콩의 토지와 지배계급>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나요? 

책은 소수의 권력가에게 경제력과 부가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홍콩의 토지제도 작동 방식과 주요 부문에서의 경쟁 부족 때문이었죠.

저자는 영국 식민 정부 시기부터 이어진 토지제도가 어떻게 지배층의 부를 증대했는지, 경쟁법(혹은 독점금지법) 부재가 어떤 방식으로 소수에게 산업적·경제적 특권을 갖게 했는지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의 불균형이 결국 어떤 사회적·경제적 병폐를 야기했는지도 이야기합니다.

많은 홍콩시민이 터무니없는 집값과 생활비 부담에 시달려 왔습니다. 책이 출간되자 홍콩 사회에 큰 반향이 있었죠. 홍콩 정부는 토지 매각으로 세수의 대부분을 얻는 단일 최대 토지 소유자였어요. 시민들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책을 보면서 홍콩 소수 가문이 각종 공익사업과 공공서비스 회사를 독점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인데요. 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됐나요?

부동산 재벌들은 영국 식민 정부 시기에 형성된 토지 독점을 통해 홍콩 경제를 지배하게 됐습니다. 경쟁법 및 소비자보호법 부재로 여러 부문에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결국 부의 과도한 집중과 빈부 격차 증가로 이어졌어요.

토지 공급 감소도 원인 중 하나예요. 홍콩 정부는 1984년 홍콩 반환 협정 이후, 토지 공급량을 1년 50㏊(헥타르) 이하로 줄여요. 공급이 줄어드니 당연히 땅값과 임대료가 오를 수밖에 없었죠. 부동산 재벌은 이 시기에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통·금융·통신·전기 부문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나갔어요.

- 저자는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벌에 호의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지적하는데요. 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경 유착과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부동산 재벌과 측근들(은행·법률·건축·엔지니어링 분야 인맥)이 행정장관 선출을 위해 구성된 800인 선거위원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에요. 입법 과정에서 부동산 특권층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쉬운 구조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스>는 2013년 3월 의미 있는 보도를 내놓습니다. 6개 부동산 재벌 관계자들이 홍콩 정부 기관 산하 각종 법정 자문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법정 자문 기구 위원 임기는 6년으로 제한돼 있어요. 이것도 길죠.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의원에서 부의장, 부의장에서 의장으로 직위를 바꾸는 편법을 써서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권력 중첩이 소수 엘리트 계층 간의 정경 유착을 심화시켰습니다.

- 그렇게 재벌들의 독과점이 심해지면서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했겠군요.

그렇죠. 토지·부동산 가격이 치솟았고 임대료가 올랐습니다. 생필품, 공공서비스(전기·교통·통신·가스 등) 요금도 상승했고요.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무너졌고 중소기업들도 도산했습니다. 높은 진입 장벽은 창업 기회를 위축했고 실업 문제도 심각해졌습니다. 이는 홍콩 경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한 사회에서 건강한 토지제도가 수립 및 유지되려면 건강한 비전을 가진 카리스마적 정치 지도자가 장기간 권력을 행사하거나, 공동체 의식 수준이 높은 구성원이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 지도자를 마냥 기대할 수 없죠.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요. 결국 남는 건 북유럽 국가처럼 공동체 의식 수준이 높은 시민들이 직접 정치 지도자를 뽑고 건강한 제도를 만드는 방법인데요. 이러한 점에서 홍콩은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정치적·경제적 자주권과 행정장관 직접선거라는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성찬 원장은 토지를 바라보는 대중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조성찬 원장은 토지를 바라보는 대중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부동산, 가계 부채 급등하는 한국
"토지 가치 환수, 공공성 확보 중요"

- 이 책은 2005년에 쓰였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의 홍콩은 어떠한가요?

2018년 초 홍콩을 세 차례 방문했는데 큰 변화는 없어 보여요. 그동안 우산 혁명(2014)과 범죄인송환법 반대 운동(2019)으로 시민들이 단합해 목소리를 내는 의미 있는 행동은 있었지만,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은 요원하고 기존 정치체제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여전히 심각해요. 10㎡에 2~3명이 거주하는 극소 주택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요. 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시민들이 매달 평균 가구 소득의 70%에 해당하는 2만 홍콩달러(약 300만 원)를 임대료로 지불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건, 최근 중국 정부가 홍콩 부동산 개발사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겁니다.

- 홍콩 사회 모순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네요. 한국이 홍콩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토지·부동산 가격의 급등,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기반 시설에 대한 재벌의 독점이 결국 홍콩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주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전국 토지·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 부채도 급증했습니다. 금리도 곧 오를 전망이고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은 공공 기관의 허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어쩌면 홍콩 사회는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결국에는 정부가 토지 가치를 제대로 환수해 공공에 돌리는 올바른 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 원장님께서는 어떤 토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먼저 저자가 제시한 정책들을 소개할게요. 저자는 공공 토지 경매, 공공 주택 확대 등 토지 공급량을 높여 땅값을 낮춰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토지 공급 계획을 민간에 투명하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고요. 부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직접세(개인·기업 소득세)를 강화하고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몇 가지 더 추가하고 싶어요. 먼저 대중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나 개발이익을 소득이 아닌 '커먼즈(commons, 공유지)'로 보는 거죠. 그런데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시민도 많으니까요.

토지 공공성 확대를 위해 토지 지대를 제대로 환수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령 도시 단위에서 토지 사용권을 배분하는 '공공 토지 임대제' 방식 중에서 매년 지대를 받는 '토지 연조제'를 확대해야 합니다.

- 어떤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부동산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집값, 가계 부채 상승은 이미 홍콩에서 다 나타난 증상이거든요. 서울·수도권 집값이 언제까지 계속 고공행진을 할지 모릅니다. 부동산 정책 전환을 위해 시민사회가 함께 이 책을 읽고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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