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니버시티를 비롯한 미션스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한국교회를 빼다 박은 듯한 '혐오'의 문제다. 여기서 (재)생산되는 혐오의 종류는 정말이지 다종다양해서 뭘 어떻게 콕 집어 말하기도 지친다. 그렇다,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지쳐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글을 써 내야 하지 않겠나. 힘들어도 쓰는 것, 그것이… 약속이니까.

소레가 약소쿠다카라.
소레가 약소쿠다카라.

그 학교에서 들었던 어떤 수업에서 내가 배운 것은, 공포 영화에 '괴물'로 등장하는 존재의 종류·형태가 주로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며, 그 사회가 어떤 것을 혐오·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낸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적용해 볼 때, 갓니버시티가 무엇을 혐오하는지는 곧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와 단단히 결부돼 있다.

앞서 말했듯 갓니버시티의 혐오는 한국교회의 혐오 양상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성에 대한 혐오가 대표적이다. 글로벌한 갓니버시티의 성 혐오는 특히 미국 극우 개신교의 성엄숙주의나 그 옛날 세일럼 마녀재판과 닮았다. 르네 지라르식으로 말하자면, 성을 혐오하다 못해 깨끗이 배척한 뒤 이를 신성시하기에 이르렀달까. 매 학기 큰 행사로 '순결 서약식'이 열리고(잊지 말자. 여기는 '대학'이다), "성과 거리를 둬 순결함을 유지하자"고 외치는데, 가만 보면 열을 내면서 역설적으로 성에 대한 관심을 충족하는 꼴이다. 물론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잘 지켜 내려는 노력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성을 막 다루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문제는 자신들의 주장을 신성시하는 태도가 이내 그 테두리 바깥 사람을 쉽게 정죄하게 만들고, 구성원들을 심각한 자기 검열로 내몬다는 점이다. 일례로 '순결 서약식' 이후 죄책감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해야 했던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이런 식의 간접적인 피해 사례는 넘쳐 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수는 성을 '보석'에 비유하곤 했다. 사람마다 정해진 숫자의 보석을 가졌는데, 이 보석은 정해진 단계의 스킨십을 할 때 상대방에게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보석은 (당연히?) 성관계이고, 결혼 전에 이런 보석들을 다 줘 버리면 나중에 배우자에게 줄 보석이 없으니 잘 지켜야 한다, 뭐 이런 얘기였다. 이쯤 되면 이제 성과 성을 혼동混同하는 지경地境이 아닌가 싶고, 내가 그렇게 보수적保守的인 인간人間은 아닌데도 괜히 '국한문혼용체國漢文混用體'를 고집固執하고 싶어진다.

성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라도 할 생각인가 보다. JTBC '마녀사냥' 갈무리
성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라도 할 생각인가 보다. JTBC '마녀사냥' 갈무리

이외에 갓니버시티는 또 무엇을 혐오하는가. 대충 늘어 놓으면 '비기', 이슬람, 세상 그 자체, 이단, 빨갱이, 동성애 정도가 있겠다. 한때는 좌파 좀비, 속칭 '좌좀'이란 멸칭이 '빨갱이'와 함께 유령처럼 갓니버시티를 떠돌던 시기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극우에 물든 당시 학생회장이 극우 성향 교수의 지령을 받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했으므로 죄인이다. 그러므로 추모소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학교 공식 입장인 것처럼 내놓은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학내는 들끓었고 학생회장 탄핵 총투표까지 이루어졌지만, 끝내 탄핵은 부결됐다. 이후 해당 학생회는 임기 말까지 이렇다 할 정치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자.

혐오에 눈이 뒤집힌 갓니버시티는 종종 물불 가리지 않고 개인·일부의 의견을 학교 전체의 공식 의견인 것처럼 발표하곤 했는데, 저 당시가 딱 그런 모양이었다. 세월이 흘러 2017년 1학기에는 반동성애에 열심인 기계과 모 교수가 겨울방학때 모은 학생들과 함께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라는 괴책자를 만들어 별안간 학교 전역에 삐라처럼 뿌렸고, 교목실은 "동성애는 성경적 진리에 반하므로 갓니버시티는 동성애·동성혼에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반동성애 입장을 공식 천명한 것은 '갓니버시티가 전국 대학 최초'라고 자랑스러운 듯이 굴었다.

당시 총학생회도 처음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그냥 '유감'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추가적인 문제 제기가 들어오자 총학생회는 해당 성명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했고, "이미 충분히 대응했다", "더 이상 논란이 커지길 바라지 않는다", "학교의 입장과 동일하나 절차적 문제가 있을 뿐이다" 등 폭력적인 응답이 다채롭게 나왔다. 총학생회는 해당 사안에 관해 학교 당국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후속적으로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갓니버시티에서는 동성애에 관한 공식적인 선언문을 작성하여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로 시작하는 그놈의 성명은 아직도 인터넷상을 떠돌고 있다.

대체로 위와 같은 식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입장을 묻지 않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소통의 창구도 거의 없으며, 학생들도 딱히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없다. 대화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이 '소통의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함께 휘말려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 같은 것들의 잔해를 너무 많이 봤다, 너무 많이.

사라지는 것: 비행기(X) 선박(X) 소통(O) 인간 존엄(O)
사라지는 것: 비행기(X) 선박(X) 소통(O) 인간 존엄(O).

다양한 혐오의 양상은 대략 저 때를 기점으로 대상을 바꿔 한쪽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은 바로 '페미니즘'이었다. 당시 막 대학원에 입학해 고통받던 나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페미니즘 강연 논란'은 갓니버시티의 입장을 확연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과거 사건 당사자였으나 지금은 갓니버시티를 나와 탈조선해 잘 살고 있는 대학원생(잘 사는게 맞나 싶지만 여튼)의 증언과 해당 사건을 다룬 여러 게시물을 찾아 보면서, 이 사건과 관련된 날것의 이야기를 더 접할 수 있었다.

그간 해 오던 대로 주요 학생들을 자기 방으로 '소환'한 당시 학생처장은 겉으로는 시험 기간에 행사를 여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해당 공간에서의 대화를 녹취한 내용을 들어 보면, "그러면 너는 헌법으로 가라. 나는 학교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학생이 아닌) 국민으로서 얘기하려면 학교 밖에서 얘기하라" 같은 반국가적 발언과 함께, 녹음 중인 학생들에게 "너희 즐겁지? 노래해 줄까? 너 갓니버시티 왜 왔어?"와 같은 조롱을 늘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교는 겨울방학 내내 주요 학생 소환을 시도하거나 진술서 작성을 요구했고,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당사자들은 '054(갓니버시티 지역 번호)'로 시작하는 번호로부터 숱한 연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이전 글에서는 조롱도 좀 섞어 가며 짐짓 유쾌한 듯 글을 썼지만, 혐오의 문제에서만큼은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당연히 학내 혐오는 앞서 이야기한 사례들에서 그치지 않았으니, 그것들을 하나하나 뜯어 보는 일은 날카로운 면도기의 날들을 옆으로 쓸어 보는 자해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이런 식의 혐오를 공유하는 모집단으로서의 한국교회와 그 표본인 미션스쿨이 지닌 상동성, 혐오의 생성·재생산 구조를 짚어보는 일이 더 중요하겠다. 타자를 제거한 매끈한 표면, 적을 설정하여 정상성·순수성을 지키려는 그 멘탈리티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모르겠지만, 한국교회와 미션스쿨은 '이왕 이렇게 된 거(어떻게 됐는데?) 선빵을 때리자'는 기세로 악착같이 혐오와 배제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체 없는 두려움의 손길질·발길질에 누군가가 계속 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 선빵의 첨병에 있는 갓니버시티는 혐오의 생성·재생산을 통해 스스로를 '세상'과 동떨어진 '광야 속 온실'로 만들고자 한다. 갓니버시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말하자면 규격과 품종을 따져 선택된 작물만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불필요한 해충과 잡초를 제거하는 기획인데, 문제는 그걸 사람에게 시도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실제로 이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라고 부르는, 누구나 다 아는 바로 그 사건 말이다.

사진은 갓니버시티와 관련 없음. 네이버 로드뷰 갈무리
사진은 갓니버시티와 관련 없음. 네이버 로드뷰 갈무리

갓니버시티는 이런 숨막히는 '정상성'을 성실히 수행하는 이들을 매년 배출한다. 당연하다. 구성원들이 이미 한국교회에서 어느 정도의 혐오·배제를 학습한 채 갓니버시티를 소망하고 꿈꾸며 입학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갓니버시티도 천국은 아니네"라며 실망했다고 투덜대는 내용은 주로 사람들이나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일들에 그치며, 학교 도처에 흐르는 혐오와는 큰 관련이 없다. 그렇게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세상을 뭐 어떻게 아무튼 바꾸겠노라 다짐하며, 방학 때마다 단기 선교를 가고, 미전도 지역과 소수민족을 위해 기도하다가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이나 취업 길에 뛰어드는 게 대다수다. 세상 풍파에 힘들어하다 갓니버시티가 그리워지면 찾는 총동문회는 사실상 듀오(결혼 정보 회사)에 가까우며, 갓니버시티의 '남녀'는 하나님의 축복 아래 맺어져 갓니버시티의 씨족을 이룬다. 총동문회의 '이성애 씨족 파티'를 제외하면 여타 미션스쿨도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는 갓니버시티에 별 생각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마주했던 온갖 혐오를 되짚어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굳건히 깔려 있고, 그런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그런 사건을 종종 겪으면서 용케 '졸업'을 했다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름대로 '생존'한 게 아닐까. 갓니버시티 학생의 '이념형'이라고 할 수 있을 앞 문단의 저 깨끗한 정상성 테두리에 사정없이 쓸리고 튕겨져 나간 이들 역시 일종의 생존자일 것이다. 그렇게 지금도 살아남고 있거나 이미 살아남은 이들에게, 늦게나마 짙고 긴 위로와 공감을 보낸다. 신청곡으로 헤드윅 OST-'Midnight Radio'를 띄우며, 부디 모두 마침내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