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전 글에서는 갓니버시티를 비롯한 대다수 미션스쿨이 공유하고 있을 채플에 대한 인식을 다뤘다. 갓니버시티의 채플은 졸업을 위해 몇 학기를 필수로 들어야 하는 행정적 의미로서의 '수업' 형태를 띠지만, 학교는 이것이 단순한 기독교 교양 수업 정도로 치부되는 것을 거부하며 '예배'이길 고집한다. 이렇게 유화가 덜 된 소스마냥 따로 노는 인식은 불가피하게 채플의 퀄리티를 수업도 예배도 아닌 함량 미달의 '정기적 시간 폐기 의식'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인의자유·종교의자유, 바람직한 기독 사학 커리큘럼의 형태나 이에 대한 국가·단체의 간섭 범위 같은 '복잡한' 논의는 꺼낼 수준도 안 된다.

사실 특정 가치관에 입각한 반강제적 커리큘럼이 그 자체로 내 관심사는 아니다. 채플도 '굳이 그렇게 계속 하고 싶으면 하든가' 정도로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채플을 강권할 거라면, 적어도 그에 맞게 떳떳한 내용으로 채워지면 좋겠다. 군대 정훈 교육처럼 채플을 진행하니 이를 바라보는 인식도 군부대 종교 활동 정도로 전락해 버린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지 마시라. 나도 알고 싶진 않았으니까. '이게 뭐야? 저 사람은 누군데 저기서 저런 소리를 하고 있어? 대체 누가 데려온 거야?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돼?' 같은 분노 섞인 물음에 묻혀 버린 기독 사학의 '크리스천 전인 교육 담론'은 지금도 저기 채플 구석 어딘가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이렇게까지 그것도 꾸준하게 채플 얘기를 꺼내나 싶을 것이다. 중독인가? 아니, 원래 트라우마는 오래가는 법이다. 다음은 지난 몇 년간 갓니버시티 채플 수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괴상한 설교 내용들이다. 워낙 다채롭게 괴상한 만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보려 한다. 대체로 이 범주를 한두세 가지 정도 공유하며,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소리'도 왕왕 있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아무튼 내가 '채플 중독'이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그림 출처 '메디툰'
아무튼 내가 '채플 중독'이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그림 출처 '메디툰'
기기괴괴 채플 유형 1:
갓니버시티 땡전뉴스

저번 글에서 밝혔듯 갓니버시티의 채플은 학교의 이데올로기 및 관습·문화를 효과적이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장이다. 학교가 정부의 어떤 사업을 따내 얼마를 받았다느니, 글로벌 창의 융합(대충 두루뭉술하고 좋아 보이는 단어)의 방향으로 학교 비전을 설정했다느니, 삐까번쩍한 신축 기숙사가 들어설 예정이라느니 하는 자랑은 매 학기 한두 번 정도 꼭 듣게 된다.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 ICT와 코딩 얘기를 늘어놓더니 돌연 '사랑의 종소리'를 '갓니버시티의 종소리'로 개사해서 부르는 건 예사다. 이처럼 매 학기 첫 번째 채플은 꼭 총장이 나와 이런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첫 주뿐만 아니라, 채플 자체가 총장 또는 학교 당국이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통보(소통 아님 주의)' 창구다. 2013년에는 돌연 차기 총장이 내정됐는데, 학생들은 그 소식을 네이버 뉴스로 알았다(역시 ICT 스타트업이라 빠른가 보다). 사람 좋은 척하며 허허 웃던 전 총장의 이미지로도 학생들의 분노를 잠재울 길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채플 단상에 서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이내 은은한 최루가스라도 끼얹은 듯 훌쩍훌쩍 진정됐다. 그렇게 총장은 무사히 바뀌었고, 바뀐 총장은 별다른 논의도 없(었다는 듯)이 이사회 결정에 따라 중임까지 살뜰히 해냈다.

한편 당시 교목실장은 전산전자학부(이거 중요하다) 교수와 목사를 겸임하는 소위 '목수'였는데, 매번 갓니버시티의 지번을 구호처럼 학생들에게 외우도록 시키던 '훌리건'이었다. 그는 차기 총장을 기름 부으심 받은 기도 응답의 결과물로 소개하곤 했다. 또 그는 갓니버시티 초창기 선배들의 (헝그리) 정신을 되살리자며 별안간 학생들을 일으켜 서로 인사하는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인사보다는 다른 '인사'가 문제였던 것 같다.

아무튼 모든 것은 기도 응답의 결과물이었다. 동양방송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1980. 08. 31.) 갈무리
아무튼 모든 것은 기도 응답의 결과물이었다. 동양방송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1980. 08. 31.) 갈무리

적당히 은은한 줄만 알았던 그의 광기는 유감스럽게도 진짜였다. 여느 날처럼 설교랍시고 갓니버시티 얘기를 늘어놓던 중, 그는 '요셉의 꿈'과 '다윗의 비전' 같은 상투적인 말을 꺼내더니 갑자기 각종 통계와 도표를 보여 주며 학교의 취업률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게 다 여학생들이 인문학부를 많이 선택하고, 일부 학생들이 이상한 연계 전공 조합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갓니버시티는 2학년 때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전산전자학부를 선택한 여학생의 취업률은 100%이니 전산전자학부에 오는 게 어떠냐, 뭐 이런 내용이었다. 자유롭게 전공을 고르라길래 골랐더니 돌연 후려치는 이런 영업 방식은 다단계 업체에도 없을 것이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채플에서 오갈 소리가 아닌 건 확실하다.

기기괴괴 채플 유형 2:
도널드 트럼프

이 유형은 저 이름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하는 말마다 편견과 혐오와 기상천외한 표현이 묻어난다. 대체로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오만하며, 본인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듯이 말하지만 한 글자도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6년 9월경 김진홍 목사는 설교를 하러 와서 제주 4·3 사건을 '폭동'이라 부르고, 일본은 영성이 '구리다'고 비난하며, 대한민국에 끼친 자유민주주의와 이승만 장로의 공로를 추켜세웠다. 11월경에 온 어떤 목사는 가톨릭이 이단은 아니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이단적이라고 최선을 다해 설파하고 돌아갔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형 설교는 대체로 해로운 정치적·신학적 관점을 겸비한 경우가 많았다. 

또 한 번은 2015년 5월. 당시 교목실장은 기숙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체 체계를 세우려는 학교 방향에 맞춰, 시편 본문을 통해 공동체의 중요성을 설교하려 했다. 살짝 집중력이 떨어지려던 찰나, 그가 갑자기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을 꺼내 들기에 다시 주목해 들어 봤다. 욕망의 소용돌이, 스캔들, 보복 가능성이 적은 대상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희생양 매커니즘까지 신나서 얘기한 그는 갑자기 "공동체가 이렇게 무섭고 위험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동체가 위험해서 뭐 어쩌자는 거지?'라고 생각하던 순간, 그 역시 위화감을 느꼈는지 잠시 쉬고는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라고 급하게 결론 내렸다.

잠시 후 그는 별안간 현대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슨 저주받은 예언이라도 내리듯, 이 세상 조류가 얼마나 반기독교적이고 사악하게 변해 왔는지 아느냐고 운을 띄우고는 쉬지 않고 아무 소리나 방언처럼 쏟아 냈다. 아무+이상한+많은 말을 '트리플 악셀'로 달성한 당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는 미국 프리섹스 운동의 아버지가 됐다.
(빌헬름 라이히와 성 해방 얘기인 것 같은데, 프리섹스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 피카소에서 시작한 추상화 중심의 사조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러왔으므로 해로우며, 심지어 '아비뇽의 처녀들'은 최초로 웃고 있는 창녀를 그렸으므로 문제적이다.
(미술 및 예술 사조의 흐름상 철저히 틀려먹었고, '아비뇽의 처녀들' 관련 이야기도 사실무근일 뿐더러 설령 사실이더라도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다.)

- 상대성 이론은 다원주의를 불러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으나 귀걸이를 코뚜레로 쓰는 수준이다.)

- 진화론이 사회진화론으로,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와 우생학으로 나아갔다.
(마치 기독교는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듣다가 너무 어이없어서 따로 적어 둔 메모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주변 사람들이 기억난다. 팩트체크 하는 기계라도 있다면 곧장 과부하로 고장 나겠다 싶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던 찰나, 그는 갑자기 또 돌변하더니 "그러나 이런 사상들이 전부 사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급히 수습했다. 그렇게 후다닥 번갯불에 콩 볶듯 설교가 끝나고 축도로 채플이 끝났다. 그러니 이게 도대체 다 뭐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채플을 마지막으로 듣던 2016년 2학기 1주 차에는 웬일로 총장 대신 위에서 말한 교목실장이 설교를 맡았다. 그는 대뜸 검은색으로 'Spirituality', 붉은색으로 'Sexuality'를 크게 적은 PPT를 띄워 놓고 동성애, 술, 섹스를 무턱대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Sexuality'의 빨간 글씨를 가리키며 "그러니까 저쪽은… 빨갱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웃기려고 한 말이겠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던 그의 말에, 웬만하면 웃어 주는 순하고 착한 (이미지로 보이길 원하는) 학생들마저도 무반응이었고, 교목실장은 겸연쩍어하며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하고 넘어갔다. 이럴 거면 차라리 총장이 나오지 싶었다.

안타깝게도 구글 번역기마저 '세속화'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구글 번역기마저 '세속화'되고 말았다.

사실 교목실에서 채플 설교를 맡으면 매양 저런 식이다. 무슨 얘기를 하다 자주 까먹어서 수습하려는 건지, 맥락 없이 별안간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를 운운하며 '결속은 나의 무기'를 외치곤 한다. 이외에도 착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순결 등을 강조하며 동성애와 성적 타락과 '세상'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교목실이기에 갓니버시티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동성애 반대 성명' 따위를 전국 대학 최초로 내놓을 수 있었다. 자랑스럽게도 말이다.

내 갓니버시티 생활 마지막 채플은 정말이지 화룡점정이었다. 외부 강사가 왔는데, 언어의 힘을 강조하면서 근거도 하나 없는 소리를 연구 결과랍시고 늘어놨다. 대중가요(어디의 어떤?) 차트 top100 가수들의 인생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그들의 노래 가사대로 됐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고강동(경기 부천시 소재)을 통째로 다 사 버릴 거야"라는 어느 인디 가수의 가사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고운 말을 들려준 양파가 더 잘 자란다' 수준의 유사과학에서 대상만 사람으로 바꾼 실언을 진지하게 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양파야, 사랑해 고마워.
양파야, 사랑해 고마워.

이어서 그는 미국 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설교 속 우스갯소리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BMW가 둘 있으면 교회가 망한다'는 말이었는데, 그는 그 말을 듣고 'BMW 탈 정도로 재력 있는 성도가 둘이나 있다면 성공한 교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BMW는 'Big Mouth Woman'의 약어로, 말 많은 아줌마를 의미했다. 그러니까 말이 많고 불평불만이 많으면 갈등이 생겨 결국 교회를 망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입이 큰, 그래서 말이 많은, 여성. 아… 설교 날로 베껴 먹기, 자본주의적 교회 성공 담론, 문제 제기를 억누르는 기계적 평화주의, 여성 혐오적 농담까지. 듣고 있기, 아니 맞고 있기 괴로웠다. 이 정도면 몸에 맞는 공 밀어내기 득점으로만 10점은 먹고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이왕 콜드게임으로 승리했으니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 나머지 헛소리는 생략하겠다.

기기괴괴 채플 유형 3: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천민자본주의 정신

사실 이 유형을 갓니버시티만큼 잘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학교 탄생 스토리부터 책으로 팔아먹고 동명의 후원까지 받으니 정말이지 타의 귀감이 된다. 그런 갓니버시티의 아성을 넘보거나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외부 강사도 종종 있었다. 10년 전 하나님을 '재벌'이라 부르던 어떤 기업가는 간증(혹은 구술 명세서)의 대부분을 '하나님께 돈과 땅이 필요하다고 기도했더니 필요한 그만큼을 주셨다'는 소리로 채웠다. 하나님이 사라고 한 땅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며 회사 이전을 강행했고, 반대하는 직원은 모두 잘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회사도 잘되고 선교센터도 세웠으니 이게 다 하나님 은혜라나 뭐라나. 당시 친구들과 나는 그 사람을 '돈 목사'라고 불렀다. 물론 중의적 의미다.

기부나 후원 신청을 바라며 찾아오는 이들도 비슷했다. 흔한 한국교회 간증이 그렇듯 하나님께 소홀히 한 채 살다가 고난이 닥쳤고, 어떻게 자복하고 회개하니 회복됐고, 이전보다 더욱 성공하게 됐다는 그런 서사가 주를 이뤘다. 음악계 종사자의 경우 몇 곡의 공연이 곁들여진다. 마지막에는 각 학생마다 후원 신청 종이가 주어지며, 마음에 감동이 있는 사람마다 신청서를 적으라고 한다. 차분한 CCM 피아노 반주와 함께 다소 어두운, 그러나 신청서를 작성할 수는 있을 만큼의 조명이 주어지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신청서를 걷고 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채플은 이내 끝이 난다.

이런 채플은 의외로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일례로 2015년 고난주간에는 총장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덕담과 더불어 상술한 구조의 간증 및 후원 권유가 예배 순서의 전부였다. 다른 시간에 채플을 들은 학우의 증언에 의하면 "세월호로 죽은 사람들은 살릴 수 없지만, 이 아이들은 여러분의 도움으로 살릴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후원자 수급에 열과 성을 다하는 동안 오히려 고난주간의 'ㄱ' 자도 언급되지 않아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채플이 '채플' 하는 이유

이렇게 구체적으로 채플이 낳은 참사를 톺아보니, 내용이 괜찮았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야기하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로 미션스쿨의 채플 수업 퀄리티는 온라인 중고 장터 허위 매물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마치 민트초코를 맛보게 해 준다며 '치약'과 초콜릿 '가공품'을 믹서기에 함께 갈아 넣고 굳힌 '어떤 것'을 씹어 먹으라고 강요하는 느낌이다.

물론 교목실의 고충도 이해한다. 학교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섞여 있는 만큼, 여느 교회 예배처럼 강의(설교)를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개 교회도 전도 축제용 설교와 평소 설교가 다르니까. 그렇다고 매주 전도하듯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보면 자주 방향도 잃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나마 공통점인 학교 얘기를 늘어놓거나, 자기들 생각에 무조건 죄인 것 같은 동성애, 성적 타락 얘기를 심심하면 꺼내는 것 같다. 외부 강사는 외부 강사대로 교내 분위기나 상황을 모르고 그냥 외부 이미지 따라 '신실하고 착한 크리스천 학생들이 모여 있겠거니' 단정하며 설교를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이스라엘 아이언돔이나 제주 4·3 폭동 같은 소리도 말릴 새 없이 입 밖으로 토해져 학생들에게 흠뻑 묻어 버리는 것이다.

수업과 예배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플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이상한 소리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채플을 기대하고 반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채플은 오래도록 강의 평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물론 이런 채플이라도 듣다 보면 은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인 내가 어떻게 은혜 여부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근본도 매너도 없는 땅 밟기 기도나 번화가 한복판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피켓을 목격할 때 느끼듯 '은혜 받기 쉽진 않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오묘하고 그 말씀에는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운동력이 있으니 최종적인 은혜의 문제에 대해 나는 오직 겸손히 내려놓을 뿐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우리 주의 형제자매들이 실족해 버리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몇 번 보기도 했다. 총장의 훈시를 빼고서라도 한 학기 두어 번씩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러시안룰렛의 확률로 시험에 드는 게 일상다반사다. 이럴 때면 차라리 엉망진창인 채플 퀄리티 덕(?)에 다들 졸거나 딴짓을 하느라 유심히 듣지 않는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게 오늘날 채플의 현실이다.

나가며

하지만 누군가는 채플의 'ㅊ' 자만 나와도 척수반사처럼 기독 사학 채플의 정당성부터 부르짖을 것이다. 그들은 채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정확히 무엇을 근거로 하며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이나 하고 있을까? 확실하지 않다. 다만 채플을 잃기 싫어서 얼치기 힙합마냥 별안간 화부터 내는 이런 현상을 통해 채플을 둘러싼 모종의 두려움과 욕망을 재확인할 수는 있다. 논증 이후의 반응이 다시금 논지의 타당성을 예증해 주는 셈이다.

내 논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채플이 채플다웠으면 좋겠다. 기꺼이 듣고 싶은 수업이 되거나, 쓸데없이 강제하지 않아도 좋아서 찾게 되는 예배가 됐으면 한다. 그것을 등록금과 교환되는 교육 서비스로 여기든, 진정성이 담긴 하나님과의 교감이라 여기든 상관없다. 둘 중 하나라도 잘 갖춰진다면 '수업이자 예배로서의 채플'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른다.

"채플, 후회하지 말고 해 보자"던 말은 농담이 아니다. 속 편한 형식 속에 채플이나 미션스쿨의 가치관을 욱여넣은 채 끝내지 말고, 부디 더 깊고 넓고 섬세한 이야기가 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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