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한인 선배들이 모인 신입생 환영식, 날씨 때문인지 각자의 앞에 놓인 축하주는 유달리 빛났다. 이윽고 한 선배가 이 자리를 축하하자며 건배를 제안한다. 고민하던 C는 결국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저는 갓니버시티를 나왔으므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의 마음이 담긴 축하주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술을 입이 아닌 가슴으로 마시겠습니다!"

 

말을 마친 C는 제 가슴팍에 축하주를 쏟았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C의 가슴팍을 시원하게 핥고 지나갔다. 덕분에 축하연은 C의 가슴팍이라도 된 듯 술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선배들은 축축히 젖어 도드라진 C의 가슴을 응시하다 무심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자세히 보기……

선배들: ……?. MBC '무한도전' 갈무리
선배들: ……?. MBC '무한도전' 갈무리

위 이야기는 한인 최초로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학생회장을 지낸 갓니버시티 초기 학번 선배의 일화를 각색한 것이다. 갓니버시티에 입학한 학생들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저 선배의 저 일화를 구전으로 먼저 접하곤 한다. 그 역시 갓니버시티의 몇몇 교수와 학생처럼 별안간 '사라졌기' 때문에(왜 사라졌는지는 추후 다룬다) 요새도 저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상 속 갓니버시티'라는 자랑은 학교 홍보 및 이미지 메이킹 작업에서 빠지지 않는다. 한국교회에서 종종 갓니버시티는 개신교 대학의 'SKY'처럼 여겨지며, '저기서는 영어로만 수업한다'는 욕망 섞인 사실무근 괴담도 곁들여지곤 한다. 학교 쪽에서도 이런 가짜 뉴스를 굳이 정정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대학'과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는 실력 있는 대학'이라는 칭호를 RPG 게임 장비 아이템처럼 장착/해제할 뿐이다.

갓니버시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학교가 표방하는 '이미지'다. 겉보기에 이 학교는 스스로를 마치 죄악 된 속세에서 벗어나 실력을 갈고닦은 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려는 듯 이야기한다(아무튼 광야를 좋아하는 게 '에스파'만은 아닌 것이다). 무협지로 치면 죽은 부모나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디 산이나 동굴에서 무공을 연마하는 전개다. 당장 이 학교의 창세신화 격인 한 단행본만 봐도 전 총장이 스스로 '느헤미야'를 자처하며, 학교 설립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같은 일로 표현한다. 그런데, 그건 도대체 무엇을 향한 복수이며 어떤 폐허를 재건한 것인가? 거창한 신화 같은 이 서사의 외피를 걷어 내면 안에 남는 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기준에 맞춘 이야기들뿐이다.

갓니버시티는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세상의 평가에 목말라 있다. 이 학교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쓰는 이벤트 중 하나로 <중앙일보>에서 매년 발표하는 대학 평가 순위를 꼽을 수 있다. 갓니버시티 수뇌부는 눈에 보이는 '입시 결과'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내비치는 자부심의 근거는 눈에 보이는 저 대학 순위일 때가 많았다. <중앙일보>가 무슨 자격과 기준으로 왜 순위를 정해서 대학들을 줄 세우기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이, 학교는 우위를 점한 '오징어 게임' 참가자마냥 대번에 순위 경쟁에 몰입하곤 했다.

시스템 밖 '언더독'인 양 행세하지만, 사실 시스템의 문법에 누구보다 친숙한 갓니버시티의 이런 표리부동은 개교때부터 이어져 왔다. 위에서 언급한 창세신화 책에 그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전 총장은 특정 기준 이상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만을 입학생으로 뽑고 싶었으나 허가가 안 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담당자가 없는 사이에 '날치기'로 허가를 받았다는 비위 사실을 '간증'이랍시고 얘기한다. 세상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왔을 테니 화제를 모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초대교회 서사처럼 전해 내려오는 일도 퍽 당연할 테다.

갓니버시티는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세상의 눈치를 보는 행위는 입학한 학생들에게서도 징후적으로 관찰되곤 한다. 본인은 어느 어느 대학에 붙(을 만한 성적이)었으나, 모든 걸 버리고 여기에 왔다는 사명감 넘치는 고백이 끊이지 않는다. 이 학교가 대학 입시 담론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하는 정시 '가·나'군이 아닌 '다'군에 속하며, 비기독교인들이 진학을 잘 고려하지 않는 '기독교 학교'라 굳이 다른 대학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점은 안 비밀이다. 

이렇게 '입시 결과'를 둘러싼 '훌리건' 짓을 하는 데는 초대 학번 선배들에 비해 최근 입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현실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고등학교부터 갓니버시티 주최 캠프에 참여하며 잠재 고객으로서 요셉 꿈을 꾸던 이들이 겨우 '문 닫고' 학교에 입학한 이야기를 은혜롭게 나누기도 한다. 자신들의 '내려놓음'을 둘러싼 인정 투쟁이든 은혜로운 하나님의 '붙여 주심'이든 간에, 학교에 들어온 이들은 대체로 앞서 말한 '흉부 음주 신화'처럼 초기 학번 몇몇 선배가 이룩한 '세상적으로 뛰어난' 어떤 것을 목표로 한다.

한없이 세속적이고 사사로운 욕망을 신앙적으로 포장하는 패시브 스킬은 갓니버시티 구성원의 생태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일례로 알버트 슈바이처를 꿈꾼다는 슬로건을 이름으로 내건 어떤 학회가 떠오른다. 여기서 어떤 학술 활동을 하냐면, 슈바이처같은 의료 선교를 꿈꾸고 의사가 되기 위해, MEET, DEET 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면서도 학회 소개 글을 보면, 여기는 단순한 시험 준비 모임이 아니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적어 놓는다고 본질상 시험 준비 모임이 아니게 되나 싶고, 일단 '학회'는 아닌 듯한데, 아무튼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드온의 횃불처럼 그 주장을 붙드니 도리가 없다.

"자네들이...하나님 이름 팔아...세상 성공 추구하는 건...말이 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자네들이...하나님 이름 팔아...세상 성공 추구하는 건...말이 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그렇다면, 도대체 갓니버시티에서 말하는 '실력'은 무엇이며, 그 목적은 또 무엇인가? 이 학교에서는 열심히 세상 트렌드를 좇아 창의·융합 등 뭔지 모를 말을 자주 갖다 붙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말은 '글로벌(Global)'이다. 갓니버시티는 '하나님의 대학'을 참칭하는 한편, '갓(God)'의 'G' 자리에 글로벌을 넣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진짜로 '갓'은 모르고 오직 '글로벌'인 줄만 알고 낚여서 온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다양한 국가의 선교사 자녀와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한 갓니버시티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에 그친다. 학교 내에서는 이들을 '재외'라 부르는데, 대부분의 경우 재외와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정도면 재외가 아니라 '제외'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국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많은 체계도 주로 영미권에 국한해 있으니 '글로벌'이라는 말은 진작에 한껏 무색해져 버린다.

한편 '글로벌'과 '외국인'이 '영어 사용자'로 퉁쳐지는 가운데, 소수민족·열방을 향한 기도 모임과 방학때마다 이어지는 단기 선교에 대한 열정은 꺼지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자'는 학교 슬로건과 함께 생각해 볼 때, 갓니버시티에서 이야기하는 '실력'이란 이미 지난 세기 세계를 한 차례 휩쓴 제국주의적 욕망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곤 한다. 여기서는 저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 어떤 헤게모니를 쟁취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성경적 리더의 영향력'이 지닌 낙수 효과를 안겨 주려는 다소 시혜적인 시각이 읽힌다. 그런 면에서는 절 앞에 가서 '땅 밟기' 기도를 하는 일부 한국교회의 모습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나라 이름이 '조선'이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이 땅을 선택(chosen)하셨기 때문이는 소리가 나도는 한국교회 토양을 생각하면 그닥 놀랍지도 않다. 이런 갓니버시티는 결론적으로 '기독 탈레반'을 양성할 뿐이라던 한 교수님의 일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공통점: 딱히 국제와 상관없고, 지극히 한국적이며,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들림.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갈무리
공통점: 딱히 국제와 상관없고, 지극히 한국적이며, 경상도 사투리 쓰는 지역과 관계 있음.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갈무리

결론적으로 갓니버시티는 '실력 있는(?) 하나님의(?) 실무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지만 그 실질적인 운영은 더없이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렇게 빛과 소금을 꿈꾸며 입학했는데 되레 '빚과 속음'만을 얻어 나가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이런 사례는 학교가 내는 통계에서 적극적으로 누락될 뿐이다. 바라기는 갓니버시티가 이왕 세상 눈치를 볼 거면 제대로 보든지, 아니면 자신들만의 확고한 기준 같은 걸 제대로 세워서 지켰으면 좋겠다. 아니, 최소한 세상 눈치 보며 정책과 편제를 멋대로 주무르고 순위 경쟁에 몰두하는 일에 '하나님'이나 '기독교적·성경적 가치' 따위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하나님, 저희가 세상적으로 좀 잘나가 보겠다는데 이름 좀 빌려주십쇼!' 같은 솔찍헌 욕망이라도 내비치면 진짜 광기로 인정해 주겠다.

정작 사회적·윤리적 기준에 맞춰 시정해야 할 학내 혐오·차별, 비민주적·반국가적 리더십 등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보여지고 싶은 것만 드러내는 것. 이런 걸 성경에서는 '외식'이라고 부르더라. 외진 곳에 위치해 외식도 쉽지 않은 학교이니 다른 외식이라도 잘해야 하나 싶겠지만, 그거 잘 못해도 되니까 조금만 솔직하고 겸손해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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