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갓니버시티의 인문학 멸시를 다뤘는데, 결론까지 이르러서 보니 개교 초기부터 정해진 채 꾸준히 이어지는 주요 리더십의 방향성에 문제가 있었다. 단순히 비율로만 따지면 극히 일부에 불과한 구성원이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니! 그러나 갓니버시티의 키를 잡은 높으신 분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풍경은 사실 크게 낯설지 않다. 한국교회가 노회나 담임목사, 장로 같은 몇몇 사람의 영향만으로 괴상망측한 일을 벌이듯, 유사 교회 같은 미션스쿨도 사정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갓니버시티의 리더십에는 좀 더 야만적이고 기묘한 데가 있다. 이사회, 총장 등 요직에 앉은 이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안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도 행사하듯 방해하고 거부한다. 그 사안이란 게 다음 날 점심 메뉴 정도로 사소한 것이라면 유난스러울지언정 해롭지는 않겠지만, 갓니버시티의 방향과 성질을 결정하는 큰 갈림길마다 이 크고 비밀한 공작(?)이 자리하곤 했다. 전에도 얘기했듯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총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를 선임하거나,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업 존폐 여부, 교수 임용을 결정하는 일이 다반사다. 필요할 경우에는 공과 사도 구분하지 않은 채 주요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학교·단체 이름을 달고 성명 같은 것을 내곤 한다. 선 조치 후 통보의 의사 결정 구조에 항의라도 할랍시면, 사과나 해명은커녕 일방적인 '설명' 정도로 소통을 끝낸다.

이런 리더십의 전횡은 참 당연하게도 개교 초기부터 이어진 것이다. 초기 학번 선배들이 작성한 문서 속, 신화처럼 내려오는 초기 갓니버시티 서사의 이면을 살펴보자. 학교의 설립자와 재단 간 마찰이 불거져 소송까지 이어진 지 3년째인 1999년에 학교는 승소했다. 재판 다음 날, 전 총장은 교수 및 교직원을 모아 놓고 학교의 재도약을 천명하는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 모임에는 교수와 직원의 이름이 적힌 출석부가 있었고, 이에 체크하지 않은 교수들은 이후 시말서를 써야 했다. 연설 자리에서 전 총장은 "모세가 민주적인 지도자였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반국가적·반민주적인 주장을 설파했다. 그가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성원들의 필참을 강제하며 '갓니버시티의 재도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자리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점이 퍽 상징적이다. 저 말에 결부된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모세처럼 가나안에는 못 들어가지 싶다.

모세: 나도 가나안에는 못 들어갔어.
모세: 나도 가나안에는 못 들어갔어.

갓니버시티 리더십의 횡포는 대체로 직접적인 수업권 침해로 드러나곤 했다. 학교 당국의 이상한 결정이 불러온 낙수 효과의 끝이 학생들의 교육 서비스 품질 하락이라니, 그래도 대학은 대학이니 안도해야 하는 걸까(그럴리가). 크게 기억나는 사건은 저번 글에서 밝힌 영상 트랙 교수 충원 이슈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2010년 1학기, 승진에 필요한 요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교수 4명의 승진이 보류됐다. 당시 총장이나 교무처장, 인사를 담당한 이들을 제외하면 당사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유를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듣지 못했고, 이후 교수연대와 학생회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메일을 보낸 날로부터 2주 뒤에야 학교 당국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유인즉슨 채플, 공동체 리더십, 교수 수련회, 교수 기도회라는 4대 항목의 출석에서 '정량적 평가'가 미달됐기에 '인성·영성 부족'을 이유로 승진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 승진 기준'의 충족도 자연스레 승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저 기준을 충족하고도 승진이 보류된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수는 승진 면담 중 전 총장이 승진 대상자에게 정치적 견해를 물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전 총장은 학생 설명회에서 "승진과 관계없이 그냥 물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 그랬다고 한다.

???: 정치적 입장을 밝히시오. tvN SNL 코리아 갈무리
???: 정치적 입장을 밝히시오. tvN SNL 코리아 갈무리

또 다른 사건은 바로 다음 학기에 일어났다. 어떤 학생이 특정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의 정치적인 발언을 듣고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이 줄었다고 했다. 학생이 이를 부모에게 알렸고, 부모는 학교에 항의했고, 학교 당국은 해당 교수에게 징계를 내렸다. 당시 구체적으로 언급된 해당 교수의 주요 죄목은 "수업 시간과 무관한 발언을 하여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학부모의 입김으로 인사권을 휘둘러 일 처리를 하는 스타일도 갓니버시티답게 주먹구구식이지만, 거기에 붙인 '학습권 침해'라는 구실도 퍽 우스웠다.

'정치적인 이유'로 징계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불리하리라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기에 그런 궁색한 이유를 붙였을 테다. 하지만 해당 수업은 언어와 사유의 관련성을 알아보는 수업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를 필연적으로 비판적으로 읽어 내야 하는 수업이었다. 이런 수업에서 정치적이지 않으려 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정치적이었을 것이며, '수업과 무관한 발언'이 아니라 수업 자체를 진행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해당 사건은 과반수 교수의 반발과 여러 학생들의 대자보, 연서, 시위 등 이런저런 논란을 겪고 다음 학기에 '절차적 하자'(물론 정확한 사유는 명시되지 않았다)를 이유로 징계가 취소되면서 허겁지겁 찝찝하게 일단락됐다.

하고자 하는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안 하(게 만드)는 일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갓니버시티의 리더십은 간혹 자기 권한 밖의 일도 당연한 듯이 통제하곤 했다. 이는 주로 앞의 사례처럼 공식적·제도적 외피를 두르고 벌어지지만, 때로는 더 노골적이고 몰상식하게 이뤄지기도 한다. 기계제어공학부의 어떤 교수는 교내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학생들이 의견을 표명하며 연서를 받을 때마다 수업에서 학생들을 겁박하곤 했다. "연서 명단에서 이름이 발견되는 학생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는 등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기계에 대해 가르치는 걸 헷갈리다 못해 아예 학생들을 기계로 여기는 지경이 된 건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갓니버시티는 학생들이 학교에 어떤 불만을 표출하면 해당 학생을 소환해 면담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인트라넷에 학식이 너무 엉망으로 나온다고 누군가 글을 쓴다. 어느 날 그 학생의 핸드폰으로 갓니버시티의 지역 번호로 시작하는 전화가 걸려 온다. 언제 어디로 오라는 메시지대로 가 보면 난데없이 학생처장과 독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개 학생과 처장만 있으니 어떤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간담회나 협상의 자리라 할 수는 없을 테고, 이건 그냥 말이 '면담'이지 사실상 처장의 권위를 이용해 학생을 찍어 누르는 사적인 '혼내기'에 가깝다.

"진실의 방으로". 영화 '범죄도시' 갈무리
"진실의 방으로". 영화 '범죄도시' 갈무리

하다못해 취조실도 만약의 사태를 위해 뒤에 지켜보는 사람은 있다. 이 정도의 야만성은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혹은 그 옛날 군사정권의 삼청교육대에서나 전해 들었을 법하지만, 위 사례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러한 개별적 '소환'의 케이스를 내 주위에서도 종종 접하곤 했다. 학내 페미니즘 강연을 둘러싼 몇 년 전 '그 논란'의 중심에도 이런 개별 면담이 있었다. 공론장의 형태가 에브리타임 등 익명성이 강조된 공간으로 바뀐 오늘날에도 어떻게 학생 정보를 캐다가 소환하고 겁박하는 건지 궁금하다. 아니, 사실 썩 알고 싶지 않다.

갓니버시티 리더십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의 정체성을 담당하는 교목실도 덩달아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교목실 소속 목사 및 교목실장과 관련된 인사는 철저히 갓니버시티 리더십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초교파'를 표방하지만 대체로 특정 색채의 정치적·신학적 입장이 교내 담론의 주류를 차지한다.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말이 한때 한국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갓니버시티의 교목실은 '폴리패스터(poli-pastor)'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폴리페서는 정부에서 한 자리라도 차지하지, 이 작은 학교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나팔수 역할을 맡는지 알 수 없다.

앞서 적은 내용들이 무색하게도, 마음에 안 드는 의견에 대한 갓니버시티 리더십의 대처는, 대부분 그 의견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형식이었다. 지독하게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이 왕정 국가, 아니 '대학'의 탈정치성만큼 정치적인 태도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필요할 때는 언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인 개입을 꾀했다.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지는 익히 알 테니, 다만 이를 '하나님의 일'로 포장하는 수법으로 자기변호를 했다는 점만을 밝혀 둔다.

한편, 갓니버시티의 리더십이 이상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결정들을 마음껏 내리는 데는 더없이 너그러운 학생들도 한몫한다. 자신을 '갑'으로 착각하는 '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야기가 드문 것도 아니지만, 이곳처럼 학교의 리더십을 앞장서서 변호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멋대로 인격화한 '갓니버시티'를 보듬는 곳도 흔치 않을 것이다. 꽤 많은 학생들이 갓니버시티를 무균의 온실처럼 여기며, 이곳만큼은 그래야만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곤 했다.

우린 모두 총장님 말 잘 듣지.
우린 모두 총장님 말 잘 듣지.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학교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극단적인', '지나치게 편향적인', '분열의 영' 따위의 수식어를 붙이며, 교내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뒤에도 '우리 안의 죄와 상처'를 돌아보고 기도할 것을 촉구하는 데 그쳤다. 그렇게 가장 큰 목소리는 찬양 집회 기도 시간의 빵빵한 음악 소리에 은혜롭게 묻혔고, 사랑스러운 전 총장님은 채플에서 "알러뷰 갓럽슈(I love you, God loves you)"만 한 번 외치면 학생들에게 면죄부를 얻곤 했다. 이건 그냥 담임목사를 무작정 따르는 어떤 교회 성도들 모습이 아닌가 싶다면, 그게 맞다. 총장을 담임목사처럼 추앙하는 행태는 어떤 미션스쿨도 감히 갓니버시티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갓니버시티가 독보적이며, 안 자랑스럽다.

최근 갓니버시티는 새로운 총장을 찾고 있다. 곧 누군가가 그 자리에 가겠지만, 사실상 '총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이름과 외모, 생사 여부 정도만 다를 뿐 전 총장의 또다른 호크룩스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정확히는 전 총장과 그들 뒤의 이사회, 모 대형 교회의 아바타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갓니버시티는 '기독 지성'을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을 표방하지만, 역설적으로 리더십의 흉한 일들 때문에 성경적이지도 은혜롭지도 않으며, 대학 본연의 기능인 수업조차 사유가 메마른 어느 변두리 광야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구조가 앞으로 어떻게 극적으로 바뀌리라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더 안타까워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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