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창조과학에 진심인 K-개신교 미션스쿨

갓니버시티를 대표하는 기독교 댄스 동아리에는 실력이 수준급인 댄서들이 모여 있다. 그 동아리의 대표 작품인 'Drama: Creation, Fall, Redemption(드라마: 창조, 타락, 구속)'를 정말 좋아한다. 리듬에 맞춰 하나님의 창조를 표현할 때 각자가 내뿜는 몸짓, 갑자기 반전되는 분위기 속에서 타락하고 사탄에게 억눌린 인간의 모습, 이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까지. 매년 이어지는 이 동아리의 드라마는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을 짧고도 강렬하게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에 감동을 받으려면 저런 형태의 즉각적인 '창조'를 온전히 믿어야 할까?

골치 아프다. 이 주제는 K-개신교와 이를 토대로 한 미션스쿨에서 웬만하면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무엇이 골치 아픈가 하면, 이 주제가 갖는 비합리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교조적인 특징 자체와 더불어 '이런 게 아직까지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는 아뜩한 사실이다. K-개신교의 세례를 받은 미션스쿨 중 꽤 많은 곳에서, 지구가 6000년~1만 2000년 전에 창조됐다는 '젊은 지구 창조 가설에 입각한 창조과학'을 표방한다.

갓니버시티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갓니버시티는 스스로가 혼탁하고 세속화한 이 시대 대학들의 머리채를 잡고 '6000년 하나님의 역사' 앞으로 다시금 끌고 갈 느헤미야라는, 타 대학이 들으면 까무러칠 만한 자의식을 품고 있을 만큼 독보적이다. 학교 선언문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기반으로 '성경적 창조론'을 회복한다는 내용이 있다.

갓니버시티를 대표하는 기독교 댄스 동아리가 신입생 환영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Motion In Christ 유튜브 채널 갈무리

초대~4대까지 갓니버시티를 책임진 전 총장님은 갓니버시티를 세우기 전에 이미 창조과학의 총본산인 '한국창조과학회'를 창립하셨다. 그를 이어받아 최근까지 총장으로 일하신 분도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정권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설립에 큰 역할을 하셨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까지 받았다. 뭔지 모르겠는 '부'에서 뭔지 모르겠는 '상'을 받은 것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창조'와 '과학'의 기운이 아무튼 느껴진다.

그만큼 갓니버시티는 창조론에 진심이다. 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수업을 각각 2학점씩, 세계관 관련 수업을 5학점 이상 들어야 한다. 창조론은 특히 세계관 수업에 크게 관여하는데, 그중에서도 창조과학을 다루는 수업이 있다. 예전에는 정말 과목명이 '창조과학'이었지만, 편파적이라는 항의를 받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시에 다루는 '척'하는 수업으로 바뀌었다. 이 수업은 세계관 수업 중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어 가장 많은 수강생을 확보한다. 그 수효가 강의실을 넘어 채플 강당을 채울 정도다. 그러나 말이 창조론과 진화론이지, 실상은 그냥 '창조과학'을 설파하는 수업이다.

창조과학의 문제점 1:
좁아터진 과몰입

학교가 건학 이념·가치관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무작정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있다면, 해당 가치관 자체가 지닌 윤리적∙논리적∙정치적 '적합성' 여부 혹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등이겠다. 전자에 있어, 창조과학은 비논리적 논지 전개 방식이나 비전문성·비윤리성 등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후자의 문제점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창조과학의 가장 큰 문제는 '창세기'를 연구(?)의 거의 유일한 레퍼런스로 삼는 과몰입이다. 창세기라 말하기도 민망한 게, 창세기 전체도 아니고 주로 창세기 초반 창조·타락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며, 그 중에서도 '천지창조'나 '노아의방주' 같은 스펙터클한 부분만을 마사다(66~77년 유대 독립 전쟁 당시 유대 저항군들이 로마를 상대로 싸운 최후의 요새 - 편집자 주)처럼 지킨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가면 동식물, 지질학, 화석, 공룡, 연대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공인된 학설들을 나름 '반박'한다고 해 놓은 자료들을 볼 수 있지만, 설령 그 말이 다 맞다 쳐도 실제로 검증되는 건 조그만 부분뿐이다. 정말 창조과학이 창세기 초반에 적용하던 대로 문자주의적인 성경 독해를 본격적으로 전개했다면, 당장 레위기에 나온 온갖 금기들에 대해서도 그럴 만한 과학적 이유를 제시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돼지고기나 토끼 고기, 갑각류, 두족류 등이 건강에 나쁘다거나 여성의 월경이 불결하고 부정하다는 과학적 증거 말이다. 하나님이 직접 불/가능 여부를 말씀하셨으니, 여기에도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지 않겠나.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창조과학은 이에 대해 소극적인 의견을 내비친다. 최근 창조과학회 8대 회장에 취임한 이경호 교수는 '노아 방주의 안전성 평가'를 통해 창조과학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창조과학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창조과학에 대한 공격은 주로 '문자적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저희의 입장은 신약에는 비유도 나오지만, 구약은 역사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대로 믿어야지, 비유로 해석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일부분으로 무슨 '학파'까지 만들 정도로 과몰입하는 한편, 신약을 가볍게 '비유'로 내쳐 버리는 태도가 흥미롭다. 레위기도 구약인데… 뭐 일단 넘어가자. 욥기가 희곡, 시편이나 예레미야애가가 시가라는 등의 문학적 장르 차이도 일단은 넘어가자. 신구약 선긋기가 뭐 창조과학의 방법론으로 예수님의 숱한 기적과 부활을 규명하기 어렵거나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어려워서는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예수님의 행적에 비하면 그래도 좀 과학이라는 도구로 어떻게 해 볼 만하다 여기는 것도 물론 아닐 테다. 아마도 창조과학의 역할은 오직 그저 창조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니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치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테일러주의('과학'적 관리법)에 찌든 비숙련 노동자처럼 나사 하나를 조이는 역할이랄까. 나머지 부분은 겸허히 주께 떠넘… 맡기는 태도야말로 창조'과학'의 큰 특징이다.

창조과학의 문제점 2:
진화론을 향한 뒤틀린 짝사랑

창조과학의 또 다른 문제는 진화론에 대한 열등감이다. 창조과학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화론과 대결 구도로 설정하며, 자신을 일종의 '도둑맞은 챔피언'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렇게 극단적인 양자택일 구도를 설정하고는 '진화론'이라는 자기만의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마음껏 두들겨 팬다. 진화론은 '적자생존'을 통해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사회를 만들었으며, 이는 제국주의·우생학·나치즘·공산주의 등 아무튼 온갖 나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1) 상대를 가장 나쁜 형태로 상정하고 가장 나쁜 예시를 끌어내 가장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모르겠지만, 창조과학은 사명을 붙들듯 늘 그렇게 해 왔다.

창조과학자들이 제일 싫어할 것 같은 그림.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창조과학자들이 제일 싫어할 것 같은 그림.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창조과학의 전제 자체도 '물음표 살인마'처럼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적자생존은 곧 약육강식인가? 오늘날 진화론이 그렇게 주장하는가? 강함과 약함, 자연에게 선택받은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를 가르는 기준이 그렇게 단순한가? 동식물, 나아가 지질과 천체에도 저 기준은 유효한가? 일단 현대과학은 치열한 가설 설정과 관측, 실험, 주장과 반박 등을 토대로 우리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 그 전후를 밝히려 하며 지금도 그렇다. 각 학문에 깊이 몰두하는 동시에 간학문적으로 진행되는 이 논의에서, 다윈의 적자생존을 범박하게 '약육강식' 정도로 요약하는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그런 거 없다. 늘 그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를 등에 업고 타 학문을 판결하는 법관 노릇을 할 뿐이다. 여기서 피고는 건방지게 과학임을 자인하(노라 여겨지)는 '진화론'이나 '젊지 않은 지구 창조론' 등이다. 내부 교통정리야 그렇다 치고, 창조과학은 정말 진화론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 심지어 창조과학을 주된 활동으로 하는 갓니버시티의 학술 동아리도 '진화론에 의해 무너진 신앙의 기초를 창조과학을 통해 회복'하려 한다.

창조과학이 진화론에 관해 기껏 한다는 말은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하는데, 그럼 기분도 나쁘고 삶에 의미도 없지 않느냐'고 묻는 수준이다. 위 진술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적절하지도 않다. 우선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인류의 기원은 원숭이가 아닌 유인원인데, 아무래도 창조과학은 '적'의 주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담이 구별하여 지어 준 이름도 무시하거나 둘 다인 듯하다. 게다가 인류의 기원이 무엇이었든 그 '기분'을 근거로 진리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공식적인 입장도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진술이 실제로 등록금을 잔뜩 머금은 갓니버시티 '대학 강의실'에서 자행되곤 한다. 롤러코스터로 한 바퀴를 돌며 거꾸로 스쳐봐도 이건 진화론을 향한 창조과학의 짝사랑이다, 근데 이제 괴롭히는 방식으로 뒤틀리게 표현된.

실제로 이렇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이렇지는 않겠지만….
창조과학의 문제점 3:
비전문성·비학문성

아무래도 창조과학은 진화론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면 자연스레 창조과학이 대세가 되리라 믿는 것 같다. 이와 동시에 건전하게 창조론을 설파하는 다른 갈래의 의견들도 쳐내려 하니 기괴할 정도다. 마치 '창조' 자체를 '창조과학'으로 전유해 버리려는 것 같다. 만약 창조과학이 학문으로서 나름대로의 정합성과 설득력이 있다면 그런대로 믿어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아니다. 학문으로서 창조과학의 문제점은 비전문성, 자기 복제, 타 학문에 대한 몰이해로 요약할 수 있다.

갓니버시티는 '실무형 인재 양성'을 특장점으로 내세웠다. 말하자면 취업 잘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기른다는 의미로, 신앙적 함의를 더한다면 '믿음의 텐트 메이커 양성소'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다른 말로는 갓니버시티에는 '순수학문'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순수학문이 빈약한 만큼 이를 전공한 교수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특히 창조과학 분야에서 더 뚜렷이 드러나는데, 대체로 창조과학을 강의하는 이는 해당 과학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거쳤다. 실은 한국창조과학회를 만든 초대 총장님도 금속과 재료공학을 전공하셨다. 이외에 경제학·기계공학 등 당최 창조 혹은 과학과 무슨 상관인가 싶은 전공의 교수님들이 창조과학을 열심히 부르짖었다. 연구는 안 하고 '강의'만 일삼는 '전도사'들은 그 전공조차 알아볼 가치가 없다.

그렇다 해서 이 '창조과학' 판이 영 비전공자들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다. 간혹 물리학·유전학·지질학 등을 전공한 해외 연구자의 글을 열심히 번역해 오기도 한다.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풍부하게 접할 수 있는 이 자료들은 대체로 그 연도가 2000년대에 머물러 있으며, 오로지 창조과학의, 창조과학에 의한, 창조과학을 위한 학술장 내에서만 활발히 공유되고 트위터처럼 '리트윗'된다. 진화론에 '맞서는' 창조과학의 논법도 비전문적이다. 그 어떤 화석의 발견 소식에도 잠시 침묵한 뒤 "그래도 그 사이 중간 화석이 없다"고 속편히 말할 뿐이다. 혹여 논증이 필요할 때는 성경으로 돌아가거나(갑자기?) 상대 주장에 '완벽한' 증거가 없다는 점, 혹은 윤리적 허점을 침소봉대해 수사적으로 지적하면 된다. 타이어는 신발보다 싸고 '창조과학 하기'란 내 차 시세 확인보다 쉽다.

창조과학의 문제점 4:
타 학문에 대한 몰이해

자기 증명을 위한 창조과학의 고군분투야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창조과학은 애먼 타 학문을 무리하게 끌어온다. 이를테면 '이런 소리를 요새도 하는구나'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노아의홍수를 논증(?)하는 대목이었다. 창조과학은 '배 선' 자 안에 노아의방주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 최초의 배에는 8명의 사람이 탔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자를 가지고 풀어내는, 참신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웹 소설 같은 썰이 몇 가지 더 있지만 생략하겠다. 여튼 저런 해석은 한자의 구성원리를 하나도 모르고 하는 헛소리다. '배 선'은 뜻을 나타내는 '배 주' 자와 음을 담당하는 '산속의 늪 연' 자가 합쳐진 '형성'으로 만들어진 한자다. 이런 기본적인 문법도 모르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발화를 고개 들고 하는 걸까? 한국창조과학회는 그 근거로 1979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한 서적과 미국의 병리학자(?) E. R. Nelson 박사의 주장을 끌어온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며, 불성실하다.

이런 것도 있다…. <한컷 만화 창조과학 100> / 김재욱 지음 / 생명의말씀사 펴냄. 생명의말씀사 공식 블로그 갈무리
이런 것도 있다…. <한컷 만화 창조과학 100> / 김재욱 지음 / 생명의말씀사 펴냄. 생명의말씀사 공식 블로그 갈무리

창조과학이 노아의방주를 워낙 좋아하니 또 다른 예시를 들어 보자. 창조과학은 전 세계 곳곳에서 '홍수신화'가 공유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노아의홍수의 설득력을 주장한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이런 소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여러 신화, 전설, 설화와 민담에 대한 구조나 그 공통점 및 차이점은 그 단계를 나누는 서사소 단위부터 시작해 다각도로 연구돼 왔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홍수야 왕왕 있었을 것이고, 거기서 초월적 존재를 상상했다면 이는 일종의 형벌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노아의홍수'로 수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각 서사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범위로는 각종 신화, 주제로는 창조 신화와 종말론까지 폭넓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독보적인 '과학'을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창조과학은, 정작 다른 공인된 학문들의 논의를 숙고해 보는 성의가 없다.

창조과학 수업의 문제점: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상술한 사실들 외에도 창조과학을 비판할 근거는 차고 넘친다. 다만 이 모든 괴상함을 굳이 파악하고 반박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짧고 아깝다(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앞에서 창조과학의 문제를 다뤘다면, 이제는 그 잘난 창조과학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봐야 하겠다. 갓니버시티의 대학원 학위논문을 찾아보면, 진화론 일색의 생물 교과서에 창조과학을 동등한 자격으로 끼워 넣으려는 기획들이 자주 눈에 띈다. 초록을 읽어 보거나 본문을 살펴봐도, 대체로 뒤틀린 진화론 짝사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얄팍한 문제 제기 이후에 '갓니버시티 강의실의 축소판' 같은 대안이 나올 뿐이다.

'학문적 탁월성'을 드러내려는 노력도, 타 학문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지식 담론을 공유하려는 모습에서는 게으름마저 느껴진다. 학교는 등록금을 받고 그런 게으름에 '학위'라는 외피를 둘러 준다. 이는 창조과학과 결부된 학교의 권위에 레퍼런스를 제공해 주며, 대학원생은 졸업 후 학위를 토대로 미래를 도모한다. 얼핏 창조과학이 아니라 '창조 경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런 연구와 주제로 충분한 미래가 보장될지는 의문이다(아마도 장관은 되지 못할 것이다). 반면 학교는 받을 돈은 다 받고 졸업생 수만큼의 실적은 챙기면서 창조과학의 이데올로기를 성공적으로 재생산한다. 썩 창조적이지도, 건강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 방식인 거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 방식인 거다.
나가며:
하나님의 창조를 누리는 데
'창조과학' 같은 게 필요할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대학 입시 시절엔 모 전도사의 창조과학 강의를 PMP에 넣어다가 자습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걸 경청하며 은혜 받았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무려 '창조과학자'였으며 갓니버시티 입학 전까지 인터넷 브라우저 즐겨찾기에는 한국창조과학회가 있었다. 어째 글 막바지에 꼭 이렇게 변명하는 것 같지만,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창조과학의 굴레를 한참 전에 벗어 던진 지금도 하나님의 창조와 이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에 시시각각 놀라곤 한다. 세상을 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곁들일수록 창조에 관한 말씀은 그만큼의 층위를 지닌 은혜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창조를 누리는 데 창조과학은 필요 없다. 지구의 나이에 관계없이 댄스 동아리의 '드라마'는 감동을 주고, 우리 신체와 존재를 넘어선 표현, 겸허한 노력 끝에 빚어지는 작은 의미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창조처럼 다가온다. 그러니 부디, 누가 '창조'의 풍성함을 편협하고 재미없게 만드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1) 이 말이 안 믿어진다면, 한국창조과학회의 자료실 MAP을 보시라.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항목 작성에 영혼을 바친 나무위키처럼, 진화론을 짝사랑하는 창조과학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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