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과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한 사람이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이 다가와서 함께 춤을 춘다. 자신의 친구들도 부른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붙기 시작하고, 결국 많은 사람이 떼를 이뤄 함께 춤을 춘다. 7년 전쯤 봤던 이 영상은 '두 번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내게 알려 줬다. 기독 청년 독서 모임 '지지팩토리 -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합니다'의 시작도 이와 비슷하다.

2017년 11월, <특강 이사야>(IVP)가 출간됐을 때 나는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아는 동생이 "그럼 누나가 만들어요. 누나가 하면 저도 할게요!"라고 말했다(그 중요한 두 번째 사람이다). 한 사람은 보장됐으니 용기를 내어(4년 전 나는 이런 일에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페이스북에 파티원 모집 글을 올렸다. 참가 신청서를 만들 때, 각자 모임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항목도 넣었다. 총 다섯 명이 모였는데 그중 둘은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었다. 이들이 모임에 바라는 점을 요약하면 책을 완독하는 것과 같이 읽고 수다 떨면서 친해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희미하게나마 앞으로 진행될 이 모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책은 거들 뿐'이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따뜻한 저녁을 같이하고 차를 마시면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웃으며 책을 읽었던 시간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독서 모임을 마친 날에는 기념으로 각 사람마다 상장도 만들어서 나눠 줬다.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진심을 담아 상 이름을 짓고, 상장 용지에 출력하는 나를 보면서 '아, 내가 이런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새삼 알게 됐다.

독서 모임 '지지팩토리' 첫 번째 모임 당시 사진. 사진 제공 후이롱
독서 모임 '지지팩토리' 첫 번째 모임 당시 사진. 사진 제공 후이롱

두 번째 책 <복음의 공공성>(비아토르)은 내가 좋아하는 언니·동생들과 함께 읽었는데, 책 내용도 좋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게 참 좋았다. 당시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공간을 제공해 주셔서 더 아늑하게 모일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니 '레위기'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레위기는 연초에 다짐하는 성경 통독의 '버뮤다 삼각 지대'가 되지 않던가…. 레위기를 함께 공부하고 소화해서 뭐라도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2018년 가을, 추가 멤버를 모집하고, 3권의 레위기 관련 도서 선정해 정말 성실히 읽었다. 독서 모임을 마치고 조금 쉰 후에 '이번엔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하며 다시 뭉쳤다.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사역이 끝난 주일 저녁에 모인 적도 있었다. '이 열정 뭘까' 하며 잠시 우리의 열정에 취해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다. 머릿속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 아쉬운 점들, 보완해야 할 것들을 짤막히 메모해 두었는데 그것이 유의미한 시간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완벽하거나 탁월하지 않아도 그 경험이 다음 시도를 할 수 있는 도움닫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실현하기를 미루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해 보는' 시도를 계속 이어 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의 독서모임은 '지지팩토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설령 결과물이 '개구리 알'같이 생겼더라도 일단 세상에 나와야 그게 올챙이가 되든, 뒷다리가 쏙 나오든 할 게 아닌가. 꿈만 꾸다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지팩토리 홈페이지. 사진 제공 후이롱
지지팩토리 홈페이지 메인 화면. 사진 제공 후이롱

2019년 여름 <특강 욥기>(IVP)를 읽을 땐 매주 각자 읽은 것을 인증하고 마지막에 한 번 모이는 방식으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어떻게 인증할까 하다가 브이로그를 겸한 'Study with me'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 유튜브 채널 '후이롱'의 시작이었다. 책을 다 읽은 후 딱 한 번 모여 나눔을 하니 더욱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모임 당시 캐나다에 있던 저자와 영상통화로 진행한 Q&A 시간은 독서의 완성 같았다. 지금 글로 쓰고 보니 코로나 이전에 이미 언택트 모임을 맛본 것 같아 신기하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는 야심차게 <바울과 선물>(새물결플러스)을 읽기로 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은 처음이었지만 함께 읽는 친구들이 듬직해서 도전할 수 있었다. 사당에 위치한 한 카페는 독서 모임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마치고 사당역 길거리 음식을 나눠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유행이 시작돼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프리젠테이션 공유가 되는 걸 보면서 기술의 발전을 실감하고, 코로나가 독서 모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감탄했다.

본격적으로 온라인 독서 모임이 되면서 대구에 있는 친구도,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밤 늦게까지 모임이 이어져도 귀가길의 부담이 없고, 혹여 밖에 있어서 참여가 어려울 때는 팟캐스트처럼 '듣기'라도 할 수 있고, 다수의 인원이 마스크를 벗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고, 오고 가는 이동 시간이 절약되는 등 온라인 모임이 가진 장점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같이 밥 먹고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감상을 나누던 시간이 그립다.

어느 날 지지팩토리 독서 모임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간 읽은 책들을 나열해 봤다. 기독교 크리에이티브 팀 '오레브(O.LAB)'에서 멋진 로고송도 만들어 줬다. 돌이켜 보니 참 신기하다. 첫 책 <특강 이사야>를 함께 읽을 파티원을 모집하는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이 모임이 4년이나 지속되고 이렇게 다양한 책을 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모임을 갖게 됐고, 책이 사람을,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이 또 새로운 책을 연결해 주는 일이 이어졌다. 어느덧 카톡방엔 12명의 멤버가 모였고, 얼마 전에는 11번째 책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IVP) 모임을 시작했다.

지지팩토리가 함께 읽어 온 책들. 사진 제공 후이롱
지지팩토리가 함께 읽어 온 책들. 사진 제공 후이롱

우리 독서 모임 진행 방식 중 하나는 공유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각자 책을 읽고 느낀 점과 질문을 적고 그것을 모임 때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모아진 질문들을 보면 ‘우리가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각자 꽂힌 부분도 다르고 감상과 질문도 다채롭다. 구성원 대다수가 교파도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달라서인지 한 권의 책을 각기 다른 콘텍스트 아래에서 다양하게 읽는다.

각자 독서 후기를 나누고 사전에 적어 온 질문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모임의 1부라면, 그중 어떤 키워드가 산불처럼 뜨겁게 번지면서 예기치 못한 2부의 막이 열린다. 그때부턴 정말 '책은 거들 뿐'이다. 예를 들어 그날 이슈가 '만인 구원론'이면 그에 대해 각자 가진 생각들이 자유롭게 오간다. 가끔은 양립할 수 없는 의견 차가 있는데도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 나와 다른 이를 존중하는 태도 덕분인 것 같다.

처음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자기 생각을 주입할 것 같고,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매 주일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를 몸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보다(어차피 기억을 잘 못한다) 생각과 삶의 방향을 1도라도 바꿔 줄 '한 문장'을 찾는 게 더 좋다. 책을 함께 읽고 나누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과 다짐도 시작된다. 나는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생각과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독서 모임은 그런 면에서 참 매력적이다. 어떤 이는 독서를 "내가 가진 통에 더 많은 것을 담는 게 아니라 통 자체를 넓히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표현을 빌리자면 독서 모임은 '여러 개의 통을 갖게 되는 느낌'이다.

이제 진짜 '한줌짜리 기독교' 시대를 살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벌써부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벽을 쌓고 내 입맛에 맞는 사람과만 교류한다면 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편협한 사고를 가진 나 혼자'가 될 것이다. 다른 이와 상생할 수 있도록, 마음의 울타리를 조금씩 열고 관용하는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데, 책을 매개로 한 독서 모임은 이를 연습하는 데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책을 매개로 한 독서 모임은 상생과 관용의 태도를 배우기 좋은 장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책을 매개로 한 독서 모임은 상생과 관용의 태도를 배우기 좋은 장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파트 전도사로 사역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스물네 살에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청년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청년들을 보면 묘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냥 청년'이고 싶은 마음에 모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이전 같을 수는 없었다. '청년+사역자'가 내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지지팩토리에서 함께 책을 읽은 시간이 쌓여 가면서 책과 함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추억도 쌓였다. 모임의 가장 큰 형님이 신경림의 에세이 제목을 빌려 지지팩토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청년+사역자로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어떤 시기를 책 제목으로 말하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공동체가 있어서 감사하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이들이 조화를 이뤄,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지지팩토리는 서로를 지지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함께' 하는 공동체다.

우리 모두가 티는 내지 않아도 외로운 존재고,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혼자서도 괜찮은 것 같지만 어쩌면 고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에 몸과 마음이 아프면서 회사도 사역도, 1인 가구의 삶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면서 차츰 안정을 찾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 배웠다. 다른 이와 연대할 수 있을 때 진짜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고단했던 하루, 마음의 짐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동의 거실'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후이롱 / 파트 전도사이자 개인 사업자로 '움직이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재미가 월급인 일들 - 독서 모임 '지지팩토리', 유튜브 채널 '후이롱', 팟캐스트 '모두의 아멘' 등 - 을 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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