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몇 해 전, 어느 유명한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귀여운 캐릭터와 예쁜 그림,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원리를 설명하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어서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불편했다. 모든 시설의 눈높이가 철저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구부정한 자세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나는 매일 낮 시간을 보호자가 운영하던 작은 가게에서 보냈다. 그러다 같이 문을 닫고 퇴근할 때는 꼭 한 번씩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보호자가 매일 들르는 구멍가게의 높은 창구를 올려다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종종 "오늘은 뭐 샀어?" 하고 물었고 보호자는 그때마다 손바닥에 토큰이나 껌, 목캔디 같은 것들을 놓아 보여 주곤 했다.

어른인 내가, 어린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공간에 가서야 비로소 불편함을 느끼는 건 대부분의 공간이 어른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박물관 정도는 돼야 어린이의 눈높이를 '고려'해 준다. 어른들은 세상이 어른 위주인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알아채지 못하는데, 거기서 소외된 어린이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공간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그런 혜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누리는 것을 '특혜', '기득권'이라 부른다. 이 권력은 마치 '투명 망토'처럼 기득권자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덮고, 사회적 약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도 덮어 투명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이 되어서야 2020 도쿄 올림픽이 치러지고 있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켜거나 스마트폰으로 조금만 검색하면 올림픽 이야기가 가득하다. 각 종목에서 활약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지켜보는 건 어찌 됐든 사람을 벅차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런데 쏟아지는 뉴스 중 외신들까지 나서 보도하는 뉴스가 하나 눈에 띈다. 사상 최초로 양궁에서 3관왕을 달성한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게 '성차별적 온라인 학대(sexist online abuse)'가 가해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양궁이라면 비치핸드볼 종목처럼 여자 선수들만 노출이 심한 복장 규정 때문에 문제가 될 일도 없을 텐데 무슨 일일까 해서 살펴보니 내용은 몹시 황당했다. 안산 선수의 '머리가 숏 커트 스타일이니 페미가 틀림없다'는 이유로 안산 선수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악플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산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했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 위로 물음표가 여러 개 떠올랐다. 우선 페미니스트라는 게 왜 악플을 받을 일인지부터 이해할 수가 없었고, 다음으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추측한 근거가 스포츠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 때문이라니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향한 도를 넘는 비난이 쏟아지자,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안산 선수를 지켜 달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향한 도를 넘는 비난이 쏟아지자,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안산 선수를 지켜 달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 갈무리

'숏 커트 = 페미니스트'라니?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 언니는 엄격한 두발 규제 속에서 학교를 다녔다. 흔히 말하는 '귀 밑 3센티'가 당연하던 때였고 우리 언니는 학교 정문에서 선생님과 자를 들고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서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숏 커트로 살았다. 머리를 기르지 못하게 억압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짧다는 구실로 악플을 달고 메시지 폭탄을 보낸다니, 이걸 세대 차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숏 커트' 문제를 넘기더라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대체 왜 '페미니스트'는 악성 댓글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페미니스트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에 대해서라면 책 한 권을 쓸 만큼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악플을 달 정도로 적극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차별주의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아마 내 설명에 반대할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페미들'은 과격하고 남성을 혐오한다고, 한국사회는 이미 성평등을 넘어 오히려 남성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들만 군대를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지 않아도 되며, '오조오억', '허버허버', '웅앵웅' 같은 남성 혐오적인(?) 말을 쓰거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다는 것 등을 이유로.

사실, 이 집단이 이런 식으로 억지스러운 성차별적 집단 린치를 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한 성우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가 자신이 더빙한 게임에서 하루아침에 목소리를 삭제당했다. 여러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 작가들은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사상 검증을 당하며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받았다. 어떤 여성 연예인은 세계 각국에 번역된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었다고만 해도 지탄을 받았다. 최근에는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집어 드는 손가락 모양에 '남성을 모욕한다'는 혐의를 씌워 편의점 프랜차이즈 대기업,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심지어 공공기관인 병무청까지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기세등등한 사람들의 주장대로 한국이 이제는 여권이 신장되어 성평등을 넘어 남성을 역차별할 정도의 국가가 됐다면 성별 임금격차는 어째서 항상 세계 100위권이며, 유리 천장 지수는 OECD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할까. 왜 금융 대기업은 성적 조작까지 해 가며 남성 신입 사원을 많이 뽑아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까. 어째서 경찰청 범죄 통계상 강간 범죄자의 98.3%가 남성이고 피해자는 97.4%가 여성일까(2019년 기준). 혹시 이런 객관적인 지표들이 이 '안티 페미니즘 투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눈에만 잘 보이는 것일까?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 가서야 비로소 불편함을 느끼는 어른처럼, 기득권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눈에는 여간해선 보이지 않는다. 엄연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부정하는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이것이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개인에게 가해진 성차별적 온라인 학대를 비롯해 이와 유사한 수많은 사례에 '철없는 애들이 그럴 수도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그치고 법적·사회적·교육적 제재 방안을 만들어야 할 이유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와 기독교인은 성평등에 대해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이고 있을까. 짧은 머리를 한 여성 운동선수를 향한 비난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일익을 감당하기보다는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에서 성평등을 주도하기에는 교회 내 성차별이 사회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여성의 합계 출생률이 1 이하로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공허하게만 들린다. 성차별적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지표가 회복될 기미는 요원하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에게 남은 결말은 '예고된 소멸'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또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은 시급하게 필요하다. 지금 당장.

페미니스트 마저리 /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직장인. 순발력보다는 지구력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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