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나는 흔히 교회 내 '인싸'라고 불리는 학생이었다. 찬양팀에서 악기를 다루고, 대학부 임원진을 맡고, 리더로 동생들을 만나 조언도 해 줄 만큼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게다가 나는 소속 교단 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있던 남자 학생이었다. 아마 교회 어른들이 보기에도 기대를 걸어 볼 만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교회에서 촉망받는 엘리트 코스(?)를 순조롭게 밟고 있었다.

나는 그런 교회가 좋았다. 내가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교회 친구들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내 모습도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도 교회 안에서 만난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교회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내가 신앙의 길을 걷게 된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줬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가 속한 집단의 울타리 너머를 바라봤다. 평일에 기독교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있다가 주말이면 또 교회에서 기독교인만을 만나는 내 일상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비기독교인들을 만나 보고 싶었던 나는, 교회 밖 사람들을 주시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비신앙인을 '세상에서 방황하고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사람들'쯤으로 여기고 시혜의 대상으로 가르쳤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나보다 더 대단하고 멋지고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보니 오히려 내가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만의 신념을 토대로 사회에서 이웃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왜 교회는 사회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할까? 교회의 사회참여는 왜 이토록 저조하고, 사회적 감수성도 메말라 버린 것 같을까?

내가 교회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달리, 교회는 비장애인·이성애자들만의 리그였다. 교회는 장애인·성소수자가 설 수 없는 차가운 공간이었다. 내가 다닌 교회는 '동성애 반대'라는 배제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이 기본 값으로 고여 버린 장로교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지 알고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와 연대하기는커녕 혐오에 앞장서고 있는 교회를 '소수자 혐오 집단'이라 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 교회의 교육관이 우리 교회 주변에 건축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에 우리 교회의 사회참여가 더디고 사회적 감수성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던 나는 그 소식이 반가웠다. 우리 교회와 그 교회가 서로 보완하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교회는 실익이 없는 싸움을 걸기에 바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토요일 'OO교회 건축 반대 서명운동'이라는 PDF 파일이 전 교인에게 문자로 발송됐다. 여기에 반대 서명을 해서 교회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주일예배에서 목사는 해당 교회와 성소수자를 향해 폭력적인 설교를 퍼부었다. 해당 교회 목사님 이름과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바보"라고 조롱했고, 성소수자를 언급할 때는 "토악질이 나온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가관이었다. 내 이웃·친구에 대한 폭언과 차별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구조가 무너지는 걸 하나님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는 모습이 유치하고 우스웠다.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때문에 하나님나라가 무너질 것 같으면 그런 나약한 하나님나라 따위 뭐하러 믿나 싶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호소문을 작성해서 목사에게 전달했다. 목사는 내게 전화를 걸어 40분간 언성을 높였다. 그는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둘러댈 뿐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후로 여러 차례 표적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는 호소문에 작성했던 내 논리를 끌어와 강단 위에서 난도질했다. 그리고 "신앙의 정상적 기준치"라는 기괴한 문장을 만들어 나를 '비정상'으로 낙인찍었다. 

'공동체'와 '이익집단'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는 '다양성'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지 못하는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를 발현하는 이익집단일 뿐이다. 나는 다양성을 조금도 존중할 줄 모르는 교회에 질려 버렸고 교회를 떠났다. 만일 목사가 나의 호소문을 보고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해 줬더라면 내가 교회를 떠났을까? 나뿐만 아니라 교회를 떠난 많은 청년이 '가나안 성도'로 살게 됐을까? 내가 그동안 봐 온 목사들은 차별과 혐오에 무감각한 교회의 잘못을 늘 '열정 없고 세상에 물든' 청년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교회에서 촉망받길 바라며 그들이 만든 '정상성'의 기준치에 편입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이웃·친구들 편에서 연대하며, 그들이 차별과 혐오를 당하지 않도록 사랑과 존중의 언어로 더불어 살고 싶다. 이런 내 선택이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난 기꺼이 비정상으로 살겠다. 편입되지 못한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정상성'의 폭력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제도권 교회는 떠났지만 난 여전히 교회를 사랑한다. 교회의 필요성을 알고 있고, 내가 교회에서 훈련받고 누린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 안에 남아서 신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다만 교회의 차별과 혐오를 비판 없이 수용했던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으며, 교회 다니는 친구들에게 그런 지점을 공유하고 싶다. 교회가 사회적 소수자·약자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웃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서 더는 교회에서 '인싸'가 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배운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나그네의 삶이었기에.

경짱(가명) / 서울에서 태어난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대졸자.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정상'의 조건을 다 가졌지만, 그냥 사람이다. 모든 사람과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고 싶은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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