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올해 2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두산그룹 사옥 앞에 청년 기후 활동가 두 명이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 기업 등이 환경오염 문제를 실제와 다르게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포장하는 일 - 기자 주)'을 폭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공동대표와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이은호 위원장은 'DOOSAN'이라고 적힌 회색 로고 조형물 위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흩뿌렸다. 이들은 얼룩덜룩해진 조형물 위에 올라가 '최후의 석탄 발전소 내가 짓는닷!'이라는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이어 "두산이 말로는 녹색 기업, 친환경 기업, 그린 뉴딜 선도 기업이라고 하면서 베트남 붕앙2 석탄 화력발전소의 설계·조달·시공 전 과정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더 이상의 석탄 화력발전소는 지어져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이 일로 두 활동가는 재판에 회부됐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재물 손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을 들어 벌금 500만 원 약식명령을 내렸다. 7월 15일, 두 활동가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들의 '녹색 분칠(위장환경주의)'을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또,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도 대비 24.4% 감축하겠다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발표했다. 이러한 '그린 뉴딜' 기조가 무색하게, 두산중공업은 2020년 베트남 붕앙  2호기와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발전소를 설계·시공·조달에 참여하고 있다. 산업·수출입은행은 두산중공업에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말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당 발전소들이 완공되면, 향후 30년간 총 5억 톤가량의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방출된다.

환경 단체들은 이미 현실화된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탈석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직접행동'에 나서는 몇 안 되는 단체다. 기존 환경 단체의 운동 방식에 한계를 절감한 청년들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력감·우울감을 느끼지 않고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 위해" 2020년 단체를 출범했다.

청년기후긴급행동(김공룡과 친구들)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직접행동에 나서는 환경 단체다. 사진 제공 청년기후긴급행동
청년기후긴급행동(김공룡과 친구들)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직접행동에 나서는 환경 단체다. 사진 제공 청년기후긴급행동

'김공룡과 친구들'이라는 활동명을 내건 이 단체에는 청년 활동가 4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국가와 기업에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기후 위기 대응에 앞장서도록 요구하는 비폭력 직접행동 단체'로 규정한다. 이들은 행동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고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정상 회의인 P4G에서 대통령 수행 차량에 뛰어들고, 공룡 탈을 쓴 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기후 0번 김공룡 후보'로 출마하며, 해외 석탄 발전 수출 기업 로고에 녹색 칠을 하는 등 '틀을 깨는' 액션을 이어 오고 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창립 멤버이자 활동가인 강은빈(25) 공동대표는 올해 7월 임기를 시작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의 딸이기도 한 그는, 한반도 분단 체제에 관심이 많은 정치외교학도이기도 하다. 8월 6일 서울 중구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만난 강 대표는 털털하게 웃으며 "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마지막 학기를 이수하지 못했다. 졸업 후에도 취업할 생각이 없어서 졸업장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 위기 대응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에 '청년'들이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의 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글귀 '바트 하엘'을 손목에 새긴 강 대표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강 대표의 손목에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는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 대표의 손목에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치외교학도에서 기후 활동가가 되기까지

- 기후 위기 운동에는 어떤 계기로 뛰어들게 됐나요.

기후 위기 이전에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했고요. '어떻게 하면 분단 체제 이후의 세상이 더 이상 상상의 영역이 아닐 수 있을지' 고민해 왔어요. 그런데 '남북 관계 회복'이라는 과제가 이제는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미사여구로 전락한 것 같아요. 이러한 메커니즘이 기후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요. '지구온난화'는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들어온 말인데, 이제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지구 가열(Global Hea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수십 년간 방치해 온 거잖아요.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기성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에 의구심을 품게 됐어요.

저도 처음에는 쓰레기 배출 줄이기, 전기 절약하기 같은 개인적 실천에 의미를 뒀어요. 하지만 기후 위기 자체는 사실상 이것들과 크게 연관이 없거든요. 오히려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은 '에너지'예요. 전깃불을 끄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도 온실가스를 내뿜는 공장이 계속 돌아가면 개인의 실천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기후 위기 대응에서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가 뭔가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윤리적인 만족감에 그치게 할 수 있어요. 오히려 기후 위기 앞에서 누적된 무력감을 깨려면 국가·기업을 대상으로 석탄 발전 계획을 감축하라고 요구하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식의 방향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기존에도 기후·생태 문제에 목소리 내온 환경 단체나 정당이 있었잖아요. 왜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선택했나요?

한국 정당정치를 공부하면서, 만약 정치계에 입문을 한다면 이미 주도권을 장악한 거대 양당보다는 한국 정치의 역사를 새로 쓸만한 소수 정당에 들어가는 게 더 의미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대중적으로 기후 위기 논의가 아직 들끓지 않았는데 기성 정당이 의제를 선점하고 있고, 의식 있는 소수 정치인들이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시민들이 받쳐 주지 않아 힘을 잃는 상황이 많잖아요. 정당의 인재로서 일하는 것보다,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일에 좀 더 관심이 있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인식 개선 캠페인이나 스터디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기존 기후 관련 단체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현장에서 '직접행동'의 필요를 느낀 청년들이 꾸린 단체예요. 기후 활동을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좀 더 시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행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저 또한 비슷한 시기에 기후 운동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고, 단체가 출범할 때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어요.

기후 위기 대응 방안으로 쓰레기 덜 배출하기, 텀블러 사용하기 등 개인의 실천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강은빈 대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공장과 이를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개인적 실천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후 위기 대응 방안으로 쓰레기 덜 배출하기, 텀블러 사용하기 등 개인의 실천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강은빈 대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공장과 이를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개인적 실천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김공룡과 친구들'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잖아요. 단체 이름 치고는 조금 특별한데, 무슨 의미인가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은 딱딱한 이름이잖아요. 기후 관련 단체 이름이 대부분 비슷해서 차별화가 안 되기도 하고, '우리를 규정할 수 있는 이름이 정말 이것뿐일까?' 하는 고민도 들었어요. 선거철에 시민들을 찾아갈 때 이름에서부터 친밀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메시지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담으면서도, '귀염뽀짝'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김공룡'은 '공룡'에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김'을 붙인 거예요. 이미 멸종한 공룡처럼 우리도 멸종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기후 위기'라고 할 때 '그냥 좀 더 따뜻해지는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하지 인류의 멸종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잖아요. 세상에 종말이 왔다고 겁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니라 당장 직면하고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기후 위기가 인간을 넘어 생태계 전반의 문제라는 것도 비인간 동물을 앞세워 환기하고 싶었던 점이에요. '공룡'이 젠더 중립적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친구들'이라는 표현은 기후 위기 현실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테니, 잠식되지 않고 유쾌하게 청년들 날것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의도예요. 우리를 대변할 '인물상'이 필요하긴 하지만,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처럼 특정 개인을 띄우기보다는 팀 전체가 부각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거죠.

지구적 탈석탄 위해 연대의 큰 그림 그려야

- 베트남 붕앙2 석탄 발전소를 건설하는 두산중공업의 '위장환경주의'를 규탄하기 위해 로고 조형물에 초록색 수성 페인트를 칠하는 액션도 했는데요. 거대 기업과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 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액션을 진행한 때는 정부로부터 석탄 발전소 건설 사업 최종 승인이 나고, 착공에 들어가기 약 한 달 전이었어요. 그 전 1년 동안 성명문 발표, 기자회견, 청와대 앞 캠페인 등을 통해 결정을 철회하라는 목소리를 내 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결국 상황을 용인하는 게 될 것 같았어요. '우리는 국가와 기업의 기만 앞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액션이 필요했어요. 마침 두산중공업 앞에 금속으로 된 회색 로고 조형물이 있었고, 저희가 그것을 녹색으로 칠하면 두산중공업 측에서 씻어 낼 테니까 결국 친환경 기업을 표방하면서 석탄 발전 사업을 지속하는 두산중공업의 '녹색 분칠'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공공 기관으로부터 수조 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은 대기업이에요.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 사업과 함께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하고 개발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하면서, 정작 뒤에서는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석탄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거죠. 지구가 안전한 터전이라고 그 누구도 보장하지 못하는 기후 위기 상황인데,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늘 그랬듯 지켜만 봐야 할까요? 아뇨, 우리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기업의 기만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계속 감시하고 불의를 들춰낼 거예요. 단순히 두산중공업이라는 기업 한 곳만이 아니라, 위장환경주의를 행하는 수많은 기업들에 경각심을 주고 싶었던 거고요.

국내에도 계속 석탄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는데 왜 하필 인도네시아·베트남 문제에 대응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해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화석연료 기반의 문명을 끝내야 해야 해요. 온실가스 배출에서 압도적인 양을 차지하는 부문이 에너지고,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중에서도 석탄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해외 석탄 발전 수출에 나서는 기업들은 국내 규제로 사업을 하기 어려워지니까, 좀 더 규제가 완화된 국가에 가서 돈 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사실 석탄은 시장에서조차 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며 탈석탄을 외친다면, 국내의 탈석탄 운동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까지 연대의 큰 그림을 그릴 책임이 있어요. 기후 위기는 단순히 대기오염 문제가 아니니까요. 국내든 국외든 기후 위기의 작동 원리는 같아요. 극심한 자본주의 논리와 소수 관료의 결정에 따라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가 파괴되고, 결국 터전을 잃게 되는 거예요. 베트남 붕앙 석탄 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에서는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만이 아니라 지역·계층 등 어떻게 더 많은 메시지와 서사를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강은빈 대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내를 넘어선 연대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내를 넘어선 연대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년기후긴급행동 

- 그런 점에서 내년에 치러질 대선도 중요할 텐데요. 사실상 그런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은 친기업적인 정책과 정부니까요. 기후 의제를 보여 주기 식으로만 다루는 정치권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기업을 규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따라서 기후 위기 대응은 어떤 절차·제도로 기업을 규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단계까지 가야 해요. 정치인들은 표를 받기 위해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춰 대응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만큼 똑똑하고, 치열하고, 치밀하게 눈엣가시처럼 알짱거려야 해요.

지난 정권을 평가해 보자면, 작년 문재인 정부는 그린 뉴딜 계획을 발표하며 "그린 뉴딜을 통해 건국 이래 최대 투자를 하겠다"고 했어요. 기후 위기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거예요. 기후 위기는 자신감과 자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오만함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거든요. 우리 여태까지 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태도는 정말 위험해요. 그린 뉴딜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말은 기성세대의 오만함이 여실히 드러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의 미래라면 말이 안 되죠. 의료·교육·돌봄 등 공백이 많이 있었잖아요. 코로나를 초래한 기후 위기 사회처럼 우리의 삶과 미래가 암담해서는 안 돼요. 팬데믹 상황을 계기로 각고의 성찰과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건 위기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다가올 대선에서 갑자기 '기후 위기 해결사'를 자처하는 대통령이 등장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엄청난 영웅이 한 명 나타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뀔 만큼 대통령 한 명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진 사회도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올해가 파리 기후 협약이 발효된 첫 해고, 세계적인 기후 위기 대응의 흐름에서 맞는 새 정권인 만큼 향후 5년을 이끌 대통령은 정말 중요해요. 기존의 경제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위기를 버텨 내겠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정부는 기후 위기와 불평등 문제를 극복할 수 없어요. 결국에는 시민들이 뜻을 모으고 결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정책을 수립할 때 눈치 봐야 하는 집단은 누구인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 거부하고 등장한 기후 위기 활동가들

- 얼마 전 공동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모인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아지니까요"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이 인상 깊었는데요. 활동하며 고민하는 것들이 있다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후 위기에 맞서고자 하는 '청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성원들이 지닌 삶의 맥락과 정체성은 다양해요. 그렇다 보니 점점 다루고 싶은 내용이 많아지는 거예요. 단체 초창기에는 1인 대표 체제로 운영됐는데, 어떻게 하면 구조적으로 소진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어요. 팀을 돌보는 것과 동시에 운동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었고, 내부적으로는 남성 대표성에 대한 성찰도 있었고요. 그래서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게 됐어요. 저희 팀원들이 40명 가까이 되는데, 70% 이상이 여성이에요. 그럼에도 외부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남성인 경우가 많았어요. 실제로 기후 운동 단체에서 실무은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담당하는데, 중요한 의사 결정 단계로 올라갈수록 남성들이 많아지는 현상도 답답했고요. 여성 활동가들이 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후 위기 운동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갈 터전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에요. 그런데 청년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주거난'이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자고 모였으니, 실제 삶 속에서 겪고 있는 다른 공동의 문제들도 함께 풀어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활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서로의 돌봄이 필요하니까요. 또 수도권 중심이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든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어요.

성장 동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관성을 거슬러 투쟁하고, 균열을 내는 저항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꼭 눈물겨워야 하나?',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기후 운동이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 되려면,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 소진되기보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돌보면서 사회문제에 직면할 용기도 얻을 수 있어야 해요. 기후 운동은 당장 변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고 오래가야 할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의 슬로건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기성세대가 짜 놓은 판에 들어가는 대신,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맹렬히 비판하고 '균열'을 만들어 내려 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기성세대가 짜 놓은 판에 들어가는 대신,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맹렬히 비판하고 '균열'을 만들어 내려 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청년기후긴급행동이라는 단체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청년'들이 주체가 돼 기후 위기 대응 운동을 해 오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특정한 이미지만을 소비하거나, 기성세대의 편견을 바탕으로 청년들을 규정하기도 하는데요. 기후 운동에서 '청년'이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청년들은 이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정치적·사회적인 비중은 보장되지 않잖아요.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대상화·주변화되고, 많이들 지워지고, 실제로 내세워질 때도 보조 역할을 요구받아요. 그런데 소위 '미래 세대', '다음 세대'라고 하는 '청년'들이 기후 위기 대응 주체로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된 거예요.

단체 이름에 '청년'을 붙인 이유는 '기존 제도·세대가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서 우리가 나왔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기후 위기를 인식한 우리는 더는 기성세대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우리만의 목소리·행보를 보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요. 한 번뿐인 삶인데 사회가 규정해 놓은 대로 예측 가능하게 살기보다, 재미있고 후회 없는 삶에 대한 상상력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나의 청년 모델이 되고 싶어요.

-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시죠. 기독교 신앙이 기후 위기 운동에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아버지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님이고, 모태신앙이에요. 제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고, 내 욕심이나 성공을 따라서 살기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에 귀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후 운동까지 올 수 있었어요. 기후 위기라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신앙에서 얻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거대한 문명이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니까요.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영광을 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후 위기 대응도 마찬가지죠. 기후 위기 현실에서 목소리 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해 사는 것은 구조적인 폭력에 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하지 않아도, 교회가 저지르는 혐오·차별에 맞서지 않는다면 거기에 동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듯이요. 교회 공동체가 기후 위기 앞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각성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믿음은 시대가 어두울 때 빛을 발한다고 봐요.

- 기후 위기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래'의 문제로 여기거나 에너지전환 등 대안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기후 위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문명을 성찰하는 거에요. 21세기는 수백 년간 축적해 온 경제성장, 화석연료 문명의 결과를 직면하는 시기예요. 문명을 통해 누려 온 것들이 붕괴하고, 삶이 그저 평화롭게 흘러가지 않을 거란 거죠. 온실가스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급진적으로 줄여야 해요. 집에 물난리가 났는데 수도꼭지를 안 잠그고 물만 퍼 나르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평화 문제도 결국 기후 위기와 연결돼요.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지구 생태계의 평화를 회복하는 거니까요. 기후 재난과 전염병을 겪으며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두가 알게 됐잖아요. 기후 위기의 위급성·시급성으로 볼 때 기존 방식을 가지고는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어요. 기후 위기를 직면할 용기는 냈는데 현실을 향해 저항할 용기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10년이 인류 문명의 존폐를 결정한다는 말도 들려와요. 정말로, 기후 위기는 우리들의 삶과 문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거예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전환 앞에 우리는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하고,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을 위해 타협 없는 원칙 아래 기꺼이 싸울 수 있어야 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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