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독서 캠페인 '탐구생활'(탐독하고 구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독서 생활)에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아래 내용은 평자가 책을 읽고 주관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에티 힐레숨 - 근본적으로 변화된 삶>/ 패트릭 우드하우스 지음 / 이창엽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 / 240쪽 / 1만 4000원
<에티 힐레숨 - 근본적으로 변화된 삶>/ 패트릭 우드하우스 지음 / 이창엽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 / 240쪽 / 1만 4000원

정다운 번역가

오래도록 기다렸다. 아마도 10년 이상일 테다. 파편으로만 만났던 에티 힐레숨의 생애와 글을 전체로 조망할 수 있는 책이 나오기를 기다려 왔다. 그와의 짧은 만남(어쩌다 마주치는 인용문들)은 매번 인상적이었고, 때로는 꽤 오래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책 혹은 그에 관한 책이 출간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못했다. 종교에 냉담한 이들이 관심을 갖기에 그는 너무 종교적이며, 특정 종교에서 관심을 갖기에 그의 글은 소속이 모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티 힐레숨은 여러모로 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글 또한 즉각적인 반응을 낳지 않았다(그의 글은 사후 40년이 지나서야 출간됐다). 시몬 베유처럼 극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으며 디트리히 본회퍼, 에디트 슈타인 같은 신앙의 영웅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일생을 대단히 고결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그만의 자리가 있다. 특정 범주로 분류되지 않는 삶,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삶을 조명하는 일은 언제나 가치 있다. 늘 편 가르기 좋아하고, 상대를 '○○주의자'로 환원한 뒤 더는 그의 고유함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게으른 사고를 환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렌즈로 이 여인을 보려는 사람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렌즈를 벗고, 맨눈으로 이 여인을 만나면 (서문에서 로완 윌리엄스가 지적했듯) 본회퍼나 시몬 베유에 비견될 만큼 깊고, 고유하고, 아름다운 내면의 풍경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한 줄 평: 모두가 (생존을 위해) 무감각해지고 있던 수용소 막사에서, '생각하는 가슴'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던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복된 기회.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

#1. "하루하루가 전쟁이야." 코로나19와 더위에 지쳐 나이 드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이의 탄식. #2.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뭐예요?" 더 많이 대화하고 상황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에 대한 MZ세대 후배의 대꾸. 위아래에서 드리우는 불안과 체념의 그림자가 서늘하다. 그뿐인가. 동료 인간을 필요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조직 속 군상1인 나 또한 차가운 사회의 비인간화에 숟가락 하나를 올린다. 홀로코스트 시대에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져 쉽게 증오에 얽매인 이들 사이에서 "이성보다 더 깊은 길"(71쪽)을 탐색하며 "엄격히 갈고닦은 내면의 삶"(92쪽)으로 감사와 상황에의 참여를 말했던 에티 힐레숨. 홀로코스트 속 유대인이었던 그가 야만과 혐오의 시간을 건너며 신을 발견했다면, 오늘의 우리가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을 터. 그가 발견한 신이 오늘도 살아 있다면 그 신은 갇힌 공간, 전망 없는 미래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일 것. 고통 속에서 불신과 냉소에 빠지기는 얼마나 쉬운가. 믿음과 용기라는 유행 지난 태도도 80년 전 에티 힐레숨의 글로 되살아오니 이토록 힘이 세다.

한 줄 평: 2021년형 전쟁터를 지나는 우리에게 한 유대인 여성이 삶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메시지.

개봉동박목사

로완 윌리엄스의 <루미나리스>(복있는사람)에서 에티 힐레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고, 최근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부키)에서 다시 그 이름을 들었다. 그의 일기와 편지를 좀 더 읽고 싶었는데, 드디어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에 관한 책이 번역됐다 해서 매우 반가운 마음이었다(다만, 이 책은 1차 저작이 아니라 그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정리해 소개하는 책이다). 그의 이력이나 다른 이들이 언급한 내용을 보며 이미 기대한 대로,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발견한 인간의 심연과 신앙에 관한 귀중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추천사에 담긴 로완 윌리엄스의 말대로 '수용소 감방의 철학',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서구 사회에 남긴 충격과 상처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에티 힐레숨의 삶과 생각 속에서 그 상처를 넘어서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과 여전히 빛나는 희망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홀로코스트의 상처가 전형적인 질문과 전설적인 인물 몇 명으로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떨쳐지지 않았던, 그래서 사실 집중하기 어렵게 한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 우리의 홀로코스트는 무엇인가? 어쩌면 지금 여기의 삶도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데,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누구이며,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한 줄 평: 전설적 인물, 여전히 빛나는 희망. 하지만 떨쳐지지 않는 질문.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 연구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당하기까지 에티 힐레숨이 남긴 일기와 편지들은 그가 목격한 극악으로도 절대 더럽힐 수 없는 인간 됨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에티의 삶은 감히 인간으로 불리고 싶다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알려 준다. 가늘고 질긴 힘줄 같은 '용기'다. 나의 불안정하고 취약한 정신 상태를 직면하고 받아들일 용기, 던져진 상황과 조건이 우호적이지 않음에도 비집고 들어갈 용기, 세상이 괴롭고 귀찮아 비관할 수밖에 없더라도 뜨거운 생명을 소망할 용기, 그리고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비치는 어떤 형상을 끝까지 찾는 용기. 이 용솟음치는 갈망에 초점 맞추는 신의 존재를 믿는 용기. 세상에 고통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묻고, 신의 위치와 정의와 평화라는 환상에 대해 냉소적인 질문을 쏟아 내다가도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인간 됨을 파괴하거나 막을 수 없음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에티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이 뜨거운 숨결의 목소리가 우리의 것이 되기를. 

한 줄 평: 용기가 필요하다면, 집어 들고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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