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폭력 예방 교육은 공공 기관, 사업장, 학교 등지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필수로 이수해야 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도 권고 사항이다. 한국양성평등진흥원에서 실시하는 폭력 예방 교육 전문 강사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들이 주로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로 나선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는 목회자·장로들에게 '양성평등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로 이수하게 하는 몇 안 되는 교단이다. 정회원이 되면 5년마다 연수 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데, 2019년 입법의회에서 '양성평등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을 연수 과정에 포함했다. 정회원으로 가는 길인 준회원 진급 과정에서도 각 연회가 의무적으로 이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감리회가 교단 헌법에 준하는 '교리와장정'에 성폭력 예방 교육을 명시한 것은 교단 내 반성폭력 운동을 주도해 온 이들의 오랜 노력 덕분이다. 감리회 선교국 산하 양성평등위원회(양평위·공동위원장 최희성·홍보연·황창진)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운동 끝에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 성폭력 상담 신고 센터 설치를 이뤄 냈고, 지금은 성폭력대책위원회 신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감리회 양성평등위원회 관계자들이 6월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제1연수원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감리회 양성평등위원회 관계자들이 6월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제1연수원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양평위는 성폭력 예방 교육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강사 양성에도 힘썼다. 교회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양평위는 2018년 8월, 신청자 24명을 대상으로 양성 과정을 시작했다. 끝까지 강의를 이수한 사람은 22명이었고, 이후 현장 강의와 지정 강의 등 심사를 통과해 최종적으로 뽑힌 사람은 6명이었다. 이들은 2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지난해 7월 양평위로부터 강사 자격증을 부여받았다.

감리회 일부 목회자들,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에게
"동성애 찬성하냐 반대하냐"

양평위가 주관한 교육을 마치고 강사로 선정된 이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제1연수원(연수원·정승희 원장)에서 실시하는 정회원 연수 과정에도 강사로 설 자격이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양평위가 배출한 강사들의 강의가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감리회거룩성회복을위한비상대책협의회(감거협)라는 단체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감거협은 성소수자 축복식을 이유로 정직 2년을 판결받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를 규탄하는 등 동성애 반대에 앞장서 온 감리회 목회자 모임이다. 이들은 반동성애 기치를 내세우며 '감리회 거룩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도 열어 왔다.

감거협은 뜬금없이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유로 강사 자격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무총장 민돈원 목사 등 몇몇 목사는 올해 2월, 정승희 연수원장 및 연수원 관계자를 만나 양평위 관계자 및 양평위가 인증한 강사들 중 '동성애를 찬동하는 이'가 있다며,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진을 선정할 때 자신들(감거협)과 협의를 거치라고 요구했다.

감리회 일부 목사들은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이들 역시 동성애를 찬성하기 때문에 성폭력 예방 강사로 세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이동환 목사 행동을 규탄하는 감리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감리회 일부 목사들은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이들 역시 동성애를 찬성하기 때문에 성폭력 예방 강사로 세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이동환 목사 행동을 규탄하는 감리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최승현

민돈원 목사는 강사들에게 직접 사상 검증용 질문을 던지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정된 강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성애 찬성 여부를 묻고, 강의안을 미리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연수원과 아무 상관도 없는, 교회 성폭력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 이가 성폭력 예방 교육 강의안을 '검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 목사는 감리회 소식을 전하는 <KMC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위와 같은 일을 하게 된 건 연수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명환 감독(동부연회)의 부탁 때문이라고 했다. 양명환 감독은 6월 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동성애는 성폭력 예방 교육과 관계가 없긴 하지만, 혹시라도 동성애를 찬동하는 사람이 강사로 설 것을 우려해 미리 알아보게 한 것이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양평위가 배출한 강사를 연수원이 반드시 강사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양평위 "임의 단체가 강사진 좌지우지"
연수원 "양평위 강사 배제 아냐,
소요·잡음 없게 하는 것도 우리 역할"

양평위는 6월 8일 연수원을 방문해 정승희 연수원장, 이승현 부장 등을 면담했다. 양평위 공동위원장 홍보연·황창진 목사, 총무 최소영 목사, 감리회성폭력신고센터 손명희 센터장 등은 감리회 공식 기구인 양평위가 배출한 성폭력 전문 강사가 어떻게 임의 단체인 감거협의 이의 제기로 강사진에서 배제됐는지 해명해 달라고 했다.

홍보연·최소영 목사 등 감리회에서 교회 내 성폭력 운동에 앞장서 온 이들은 연수원의 강사 교체가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한 입법 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소영 목사는 "그동안 감리회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 운동을 해 왔다. 이런 목적으로 교육이 의무화된 것이고, 앞으로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양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황창진 목사, 정승희 연수원장, 이승현 부장, 홍석민 부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왼쪽부터 양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황창진 목사, 정승희 연수원장, 이승현 부장, 홍석민 부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홍보연 목사는 "전혀 상관 없는 일에 동성애 찬성 여부를 묻는 사상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동안 교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 왔고, 수년간 노력한 끝에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 됐다.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강사까지 배출했는데, 그동안 공들여 준비해 온 교육이 무산되지 않을까 두렵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 출신인 감리회성폭력신고센터 손명희 센터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 제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손 센터장은 "감리회 목사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강의했지만, 한 번도 동성애를 언급한 적이 없다. 강의를 들은 분에게 '성폭력 피해자 입장에서 그가 처한 어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강의였다'는 피드백까지 들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양평위 강사들이 '동성애 전도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며 강의안을 검열하겠다고 하는데 충격을 받았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 동성애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양평위 총무 최소영 목사는 "양평위 강사들이 두 차례나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 공식 기관의 요청도 아니고, 공식 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며, 양평위와의 사전 협의도 없었다.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며 연수원 차원에서 재발 방지 및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연수원 이승현 부장은 "연수원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양명환 감독과 민돈원 사무총장 등이 감리회 목회자들의 의견이라고 제시하다 보니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연수원은 감리회 공적 기관이기 때문에, 교단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소요와 잡음이 없게 하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앞으로는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수원장·운영위원장·운영위원들과 잘 협의해 강사를 선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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