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없다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살상 무기 개발 계획이 시작됐다. 원자폭탄이라고 불리는 살상 무기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15만 명 이상, 나가사키에서 7만 명 이상을 죽였다(이때 일본에 체류하던 조선인들 중에도 사망자·피해자가 다수 발생했다). 핵무기 2발에 전쟁은 끝났다. 피해도 피해이거니와 이미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이 등장한 이상 싸움에 승산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순식간에 수많은 이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 엄청난 위력의 무기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너도나도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혹자는 3차 세계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제목의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핵을 무기가 아닌 전기 생산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수많은 국가가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위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연설은 이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이후 냉전 체제로 돌입한 미국과 소련 외에도 수많은 국가가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미국과 소련 역시 냉전이라는 명분하에 더 강력한 핵무기를 더 많이 보유하기 위해 애썼다. 이처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은 핵무기의 개발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산업의 발전을 불러왔다. 바로 '핵 발전'이다.

핵무기와 핵 발전은 핵분열반응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느냐', '적당한 수준에서 통제하느냐'의 차이를 가질 뿐 결국 핵분열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핵 발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기껏해야 물을 끓이고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린다는 사실 때문에 '평화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핵무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처치 곤란한 독성 폐기물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이 독성 폐기물은 족히 10만 년은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핵 발전소는 기체·액체의 방사성물질을 상시 방출하고 있다.

서울대 백도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핵 발전소 인근 여성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유의미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갑상선암은 방사선 피폭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다. '체르노빌'이 있었고, '후쿠시마'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핵'과 '평화'가 얼마나 상반되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모 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인터뷰에서 "핵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의 선물도 있는지 되물을 일이다.

오염수 방류는 이미 예견된 일

지난 4월 13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했다.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는 갑작스러운 뉴스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일본 정부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공식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니 이미 2011년에도 1만 1500톤을 주변국과 협의 없이 방류했다. 관리 부실로 오염수가 누출되기도 했고, 2013년 8월에는 당시 도쿄전력의 발표에 따르면 리터당 8천만 베크렐(Bq)의 스트론튬(Sr)이 포함된 고농도 오염수 300톤이 누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마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 사고가 일어난 날부터 운명은 이렇게 결정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런 지진해일이 일으킨 핵 사고로, 그 지역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핵 사고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가장 이슈가 되었던 세슘(Cs)의 반감기가 30년이다. 이 말인즉슨 30년은 지나야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고, 그 사이 생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알파선·베타선·감마선과 같은 방사선을 방출하는 채로 자연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세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반감기가 10번쯤 지나면 그 양이 미미해져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따져도 300년이다. 사실상 핵 발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핵종들 가운데 세슘은 반감기가 긴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핵폐기물 처분장을 결정할 때 10만 년간 지하수·지진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지반을 찾는 이유가 바로 방사선의 반감기 때문이다.

핵을 두고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한번 핵분열을 시작한 핵연료는 그 열기가 쉽게 식지 않기 때문이다. 연료로서 가치가 다한 연료봉을 꺼낸 직후 연료봉을 저장 수조 안에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참 가동 중이던 핵 발전소가 폭발한 후쿠시마는 연료가 녹아내릴 정도로 강한 열기가 발생했고, 녹아내린 연료봉은 인간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를 내뿜고 있다. 후쿠시마의 오염수는 바로 이 연료를 식히기 위해 끊임없이 공급되는 냉각수다. 이 냉각수를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낼 수는 없으므로 저장 탱크를 지어 핵 발전소 지역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값싸고 편리한 방식을 선택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함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두 차례 처리해 대부분의 방사성물질을 제거했고, 이 장치를 통해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트리튬, T)는 물에 희석해서 버리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방사성물질의 총량엔 변함이 없다. 바다를 떠돌면서 여러 곳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해양 생물들이 당하게 될 피해는 생태계 먹이사슬에 따라 고스란히 인간의 피해가 될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반감기가 12.3년인 삼중수소는 체내에서는 12시간 정도면 배출되지만 만약 그중 일부라도 체세포와 결합했을 때는 내부 피폭의 위험성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내부 피폭은 방사성물질이 체내에 머물며 방사선을 방출하여 DNA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암과 같은 질병을 일으킬 위험을 몸에 안고 사는 것이다. 일본이 오염수에서 제거했다는 핵종들이 정말 제거된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삼중수소를 저렇게 바다에 버려도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전문가 그룹은 지층 주입, 해양 방출, 수증기 방출, 전기분해 수소 방출, 지하 매설 등 5가지 오염수 방출 방식을 제안했다. 일본 정부는 분명 이 중 자연에 피해를 덜 끼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제안된 방법 외에도 지역에 저장 탱크를 더 설치하는 방법도 존재했다.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를 선택한 것은 안전과 생명에 대한 고민없이 그저 편리와 비용적 이익을 생각한 결정이다. 지역 주민들에게서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을 해 주거나 별도의 설비·장치를 활용해 또 돈을 쓰기보단 그저 해양에 방류해 버리는 손쉬운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올림픽 개최를 위해 방사능 제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 지역민을 돌려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를 꼬드겨 후쿠시마에 밀어 넣고 방호복도 제공하지 않은 채 노동시키고, 그들에게 준 일당을 숙소·식대 등 명목으로 고스란히 돌려받기도 했다. 그런 정부가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서 생명과 안전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도외시한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베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월성 원전 배출수에 비하면 자신들의 오염수 방사성물질은 1/100 수준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베의 주장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오염 정도가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배출 자체는 사실이다. IAEA는 이번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국제적 관행"을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원장은 <한겨레21> 기고를 통해 "핵폐기물 버리는 '오랜 관행'과 싸우자"고 제안한다. 이미 오래된 관행처럼 방사성물질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천 차례 핵실험과 지속된 핵 발전 과정에서 발생된 기체·액체 방사성물질들은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자연에 버려지곤 했다. 핵 발전을 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공히 저질러 온 짓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핵 발전소 지하 관정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숨겨 왔고, 이것이 드러났을 때 "비계획적 방출"이었다고 변명했다. 이는 "계획적 방출"이 존재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비계획적이면 문제가 되고, 계획적이면 괜찮은가? 사실 어떤 것도 괜찮지 않다.

결국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다

핵 발전소가 기후 위기의 대안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핵 발전소는 기후 위기의 대안이 아니다. 작년 여름 태풍에 소외 전원 상실로 긴급 정지한 고리와 월성의 핵 발전소 6기와 냉각수인 강물의 여름철 온도 상승으로 인해 멈춘 프랑스 페센하임 핵 발전소는 기후 위기에서 핵 발전소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밖에도 방사성물질이 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핵 발전소가 없으면 전기료가 크게 오르고, 우리의 삶이 어려워질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전기가 필수적인데 탈핵하면 큰일이 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이들도 있다. 개별 문제를 반박하는 데 할애하기엔 지면이 아깝다. 결국 핵 발전소의 문제는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충분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핵실험, 핵무기를 원하지 않았듯, 핵 발전소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거나 소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체르노빌·후쿠시마 핵 사고가 불러온 고통에 공감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월성 핵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매일같이 상여 시위에 나서고, 손자·손녀·아들·딸의 소변에서 검출된 삼중수소 때문에 눈물짓는 일을 본 이들이라면 특히나 그럴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핵 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송전선로를 따라 밀양 할머니들을 아프게 하고, 결국 우리에게 도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이 전기는 일종의 죄악에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침묵한다면 이 죄악은 당연히 우리의 몫, 우리의 책임이 될 것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고통받을 해양 생물들과 어민들, 우리 자신을 위한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간 국민의 동의도 얻지 않고, 방사성물질을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 버려 온 국가들의 낡고 위험한 관행을 폐기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멋대로 핵 발전소를 늘려 왔던 정책 결정권자들의 월권에 저항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방사선량 '기준치 이하'라는 말로 문제를 덮어 버린 기술 관료들의 오만함에 분노해야 한다. '경제 성장' 혹은 '돈'으로 우리를 유혹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든 이 시대의 '바알 신앙'과 싸워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 선언'이 말하듯 "핵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 안에서 말이다. 

임준형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핵없는세상을위한한국그리스도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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