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50만 4809다발(다발 1개는 폐연료봉 37개). 현재 국내 원전에 저장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양이다. 전력 생산을 위해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지금도 그 양은 늘어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또는 '핵폐기물'이라고도 불리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사람이 1m 이내에 17초만 노출돼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이렇게 위험한 물질이 분해되는 데만 10만 년이 걸린다. 인류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영구 처분 시설을 마련해 10만 년 동안 보관하는 것뿐이다.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시작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핵폐기물은 이렇다 할 대안 없이 원전 내 저장 시설에 보관돼 왔다. 정부는 그동안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어떠한 가이드라인이나 법적 근거도 마련하지 않았다. 전북 부안, 전남 영광 등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건립하려고 9차례 시도했지만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는 사이 저장고는 포화해 갔다. 결국 2020년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 저장고의 '맥스터'(건식 임시 저장 시설) 증설이 강행됐다. 그리고 지난 12월, 정부는 원전 내 저장 시설을 명문화하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년 내에 중간 저장 시설, 37년 내에 영구 처분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핵폐기물은 원전 내부에 임시 저장 시설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된다.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춰도, 기후 위기가 해결돼도, 핵폐기물은 그대로 '남는'다. 핵폐기물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을 계속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이라는 무겁고 위험한 짐을 떠넘기는 일이다. 최종 처분장이 마련되기까지 핵폐기물을 부지 내에 저장하겠다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원전 지역 주민에게도 핵 발전소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이라는 위험 부담을 가중해 떠안기는 일이다.

핵폐기물 처리는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어디서 해야 할까?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는 정부의 제1차 기본 계획 재검토 방침에 따라 핵폐기물 처리의 안전성·형평성·민주성·공정성을 고려한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2018년 출범했다. 1월 25일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안재훈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안 공동집행위원장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과 2022탈핵대선연대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1월 25일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안재훈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1월 25일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안재훈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핵폐기물, 향후 10년간 다수 원전에서 '포화'
"임시 저장 시설 안전하면,
서울에 만들지 못할 이유 없어"

- 핵폐기물 처리는 시민·환경 단체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이슈다.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나면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고준위 핵폐기물은 방사선 세기도 높고 열도 많이 발생하니까 방사능 준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보통 원전 내에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 보관된다. 그런데 원전을 건설할 때 해당 원전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준위 핵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수조를 크게 짓지는 않는다. 핵폐기물을 원전 내 '임시' 보관한 것은 말그대로 원전 수명이 만료되기 전까지 중간 저장 시설이나 영구 처분 시설이 만들어질 것을 전제로 한 거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40년 넘게 원전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시설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원전을 계속 가동하다 보니, 핵폐기물이 수조 안에 가득 차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졌다. 가장 먼저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포화했다. 2021년 기준 월성 원전 저장 수조의 포화도는 98.8%다. 우리나라 원전 대부분은 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경수로'형 모델인데, 월성 원전은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형이라 핵폐기물이 4배 정도 더 많이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급한 숙제였다. 결국 2020년부터 맥스터 7기를 증설하는 공사를 강행했다. 월성 원전뿐만 아니라 다른 원전들도 대부분 2030~2031년까지 포화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원전 내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 사진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내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 사진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 원전 안에 임시 저장 시설을 더 짓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원전 지역 주민은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 종국에는 영구 처분 시설이나 다름없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20년 내에 중간 저장 시설을 만들고, 37년 내에 영구 처분 시설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이건 임의로 정한 시간표일 뿐이다. 정말 이만큼의 기간이 걸릴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도 2016년 '제1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2035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 2053년까지 영구 처분 시설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 이미 중간 저장 시설 부지를 어디로 할지 조사도 마치고 추진하는 과정이 진행됐어야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나는 동안 진도가 나간 것은 하나도 없다.

실제 해외에도 영구 처분 시설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전무하다. 가장 근접하게 진행된 국가는 영구 처분 시설 부지를 확정하거나 건설 중인 스웨덴과 핀란드다. 이 국가들마저 우리와는 조건이 다르다. 한국은 핀란드보다 원전·핵폐기물이 많고, 국토 면적이 좁으며, 원전이 밀집해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설립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원자력과 관련한 모든 시설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구 처분 시설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이번 기본 계획은 임시방편이 될 뿐이다. 정부는 건식 형태의 임시 저장 시설을 짓겠다고 하는데, 이 시설의 안전성도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다. 지역 주민과의 공론화 과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임시 저장 시설을 몇 년간 운영할지, 영구 처분 시설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건지,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동안 원전 지역에 어떠한 지원을 할 건지, 누가 관리할 건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하니 임시 저장 시설을 더 짓겠다는 논리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는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데, 위험 요소는 원전 지역 주민들만 떠안는 듯하다.

그래서 임시 저장 시설을 다른 지역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역 주민들도 있다. 그런 주장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임시 저장 시설의 안전성이 아닌가. 현재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거꾸로 대입해 보면 임시 저장 시설을 서울이나 수도권에 만들어도 된다는 거다. 안전하다면 만들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나.

먼저 우리가 책임을 다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원전 외 지역, 특히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책임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 우리는 전력의 20~30%를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해 왔다.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핵폐기물을 만드는 데 일조한 거다. 쓰레기는 동네에서 같이 만들어 놓고, 어느 한 집에만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언제 가져갈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각자 좀 나눠서 보관하자는 게 원전 주민들의 주장이다.

임시 저장 시설을 다른 지역에 분산해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안전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한들, 핵폐기물은 위험하고 관리하기도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기에 어느 한 곳에 잘 모아서 관리하는 게 적합한지, 아니면 지역마다 분산하는 게 적합한지 평가하고 검토해 봐야 한다. 지금의 핵폐기물 처리 방식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데 원전 지역 주민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임을 어떻게 나눠질 것인지, 임시 저장 시설이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인지 국민 모두가 제대로 알고 논의해야 한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사용 후 핵연료 건식 임시 저장 시설 '캐니스터' 300기(콘크리트 사일로·사진 위)와  '맥스터' 7기(사진 아래) . 2020년 증설에 착공한 맥스터는 최근 완공을 앞두고 있다. 월성 원전 유튜브 갈무리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사용 후 핵연료 건식 임시 저장 시설 '캐니스터(콘크리트 사일로) 300기(사진 위)와 '맥스터' 7기(사진 아래) . 2020년 증설에 착공한 맥스터는 최근 완공을 앞두고 있다. 월성원전 유튜브 채널 갈무리

- 핵폐기물 임시 저장 시설에 관한 공론화 과정이 시급해 보인다.

맞다. 지금까지는 공론화 과정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전국뿐 아니라 원전 지역 주민의 불신을 해결하고 공론화를 제대로 하는 게 관건이다. 이번 월성 원자력발전소 맥스터 증설도 시설 운영 기한이나 주민 지원 대책 등이 모두 불투명한 상황에서 건설 여부가 결정됐다. 왜 이곳에 핵폐기물 시설이 필요한지, 시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민 대표 100명을 뽑아 폐쇄적인 공론화를 진행한 거다. 월성 원전은 행정구역상 경주에 속해 있지만 원전 7km 인근에는 울산 북구도 있는데, 이들을 배제한 것도 문제가 됐다.

또 경주에는 이미 핵 발전 과정에서 나온 작업복이나 장갑 등을 보관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당시 특별법을 만들어 사용 후 핵연료 관련 시설을 더 이상 지역에 유치하지 않기로 했는데, 맥스터는 '관련 시설'이 아니라 '관계 시설'이라는 말장난을 해서 건설을 강행한 거다. 이런 법적 애매모호함이 주민들의 불신을 더욱 키웠다. 최근 발표된 기본 계획이나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도 발전 사업자가 공론화를 진행하거나, 공청회 수준으로 주민 의견 수렴을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우려된다. 지역 주민 100%가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공론화 과정을 근본부터 검토해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의견을 들어서 확정을 짓는 방식은 특정 지역의 일방적 희생만 계속해서 강요하게 될 것이다.

- 일각에서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기술혁신이나 과학 발전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데.

기술적으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사용한 핵연료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기술 - 기자 주)'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이 핵폐기물의 양을 줄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폐기물을 보관·처분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거나 사고 위험이 더 커지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셈이다. 만약 그게 좋은 방식이라면 왜 다른 나라들이 적극 선택하지 않겠나. 월성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중수로에서 나온 핵폐기물은 재처리할 수도 없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기술 개발의 문제도 있지만, 핵확산방지조약(NPT)이나 한·미 원자력협정 등 정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또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전체를 핵의 위험으로 끌고 갈 수 있다. 평화에도 방해가 되고, 비용도 막대하며, 비효율적인 방법을 굳이 고민해야 할까. 가장 단순한 방법이 있는데.

1월 25일 서울시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과 특별법안 철회 촉구 전국 행동'이 열렸다. 사진 제공 환경운동연합
1월 25일 서울시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과 특별법안 철회 촉구 전국 행동'이 열렸다. 사진 제공 환경운동연합

- 단순한 방법이란 게 뭔가.

우리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떻게 잘 버릴 거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애초에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을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지금의 탈원전 정책을 보다 분명히 하고, 발전소를 더 늘리기보다 지금 있는 발전소를 어떻게 줄이고 해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핵폐기물의 총량이 줄어들 수 있다.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도 없이 원전을 더 짓겠다고 말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미 발생한 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인지도 지금부터 차분하게 고민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을 나누고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사업자는 책임 있게 핵폐기물 처리에 관한 프로세스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기존에 해 왔던 것처럼 밀실에서 결정하고 나중에 해당 지역 주민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누구나 결과를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연히 반대를 외치는 사람도 있을 거고, 회의가 결렬되기도 할 거다. 하지만 이미 있는 문제를 숨기기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수명이 끝나도 핵폐기물을 계속 보관하기 위해 원전을 해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놔둘 건 아니지 않나.

- 기후 위기 대안으로 핵 발전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핵 발전을 해 왔는데 기후 위기는 해결되기보다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석탄 발전이나 화력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발전의 역할을 키우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재생에너지라고 해도 환경에 아예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고, 간헐성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문제가 생기면 그 지역을 복구할 수 있다. 반면 원자력발전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처치 곤란이고, 핵폐기물 문제도 남는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은 공존하기도 어렵다. 내일 일조량이 적다는 이유로 태양광발전 대신 원자력발전 출력을 올렸다가 다시 줄일 수 없는 거다. 원전은 금방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바엔 재생에너지를 안정화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

원자력발전소는 결국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값싸다는 이유로 계속 운영해 왔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가격 경쟁력이 있는 재생에너지가 등장했다. 지금도 원자력발전소를 계속해서 더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핵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상황에서 어떤 지역의 주민이 동의하겠나. 지으려고 해도 지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핵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건 동네방네에 핵폐기물장을 만들겠다는 거다. 그럼에도 핵이 마치 지속 가능한 발전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이자,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1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원전 정책을 지향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윤석열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1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원전 정책을 지향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윤석열 페이스북 갈무리 

- "기후 위기가 해결돼도 핵폐기물은 그대로 남는다"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오더라.

우리는 최근 기후 위기 걱정을 많이 하게 됐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노력을 통해 기후 위기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물론 해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핵폐기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 줄 건가. 지금부터 논의하지 않으면 기후 위기와 함께 핵폐기물이라는 위험하고 무거운 짐만 넘겨주게 될 거다. 원자력발전을 운영할 때는 그래도 수익이 생기지만, 나중에 원전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시기가 오면 핵폐기물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물게 될 거다. 100년, 200년이 지나 핵 발전은 아무도 안 하고 핵폐기물만 남은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질까.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세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 정작 이런 이야기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도 잘 다루지 않고 있다.

맞다. 언론에서도 관심이 없다. 오래 지속돼 왔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건드려 봐야 답도 없는데 굳이 고민해야 하나'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번 대선만 봐도,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국민 의견을 제대로 들어 보겠다고 말하는 후보가 없다. 정부는 공론화를 거쳐 이번 기본 계획을 냈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지난 5년간 핵폐기물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는데 무엇을 공론화했다는 건가.

핵폐기물 문제는 단번에 대안이 나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정부 임기 5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차근차근 프로세스를 밟아 나가며 이해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욕을 많이 먹을 수도 있고, 힘들겠지만 이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당장 발전소가 멈추지 않을지에 급급하지 말고, 원점으로 돌아가 책임감 있게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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