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방사능에 노출됐다'
'고등어·대구·명태 방사능 오염 가능성 높아'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비상'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사회에서 방사능 위험성을 언급하는 건 주로 먹거리와 관련해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사람들은 일본산 수산물을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걱정하지 않는다. 방사능 피폭 문제는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은 일본에만 해당하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경주 월성원전, 부산 고리원전, 울진 한울원전, 영광 한빛원전 이렇게 네 지역에 원전 24기가 집중 건설돼 있다.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는 일주일 사이 리히터 4.5~5.8의 지진이 세 차례 발생했다.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됐다. 당시 월성원전은 가동을 멈췄지만 시민 사이에서는 공포가 확산됐다. 한 번의 원전 사고는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전하지 않은 원자력발전에 문제의식을 느껴, '전국 방사능 오염 지도'를 그리려는 개신교인들이 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cumenical Youth Council in Korea·EYCK)는 전국에 분포한 원전 주변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 지도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범으로 경주 월성원전과 방폐장, 영광 한빛원전 인근을 걸으며 방사능 측정을 완료했다. 

EYCK 남기평 총무(맨 오른쪽)가 지도 제작에 함께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박재현 간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임준형 간사(왼쪽부터)와 함께 영광 한빛원전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사진 제공 EYCK

EYCK는 현재 휴대용 방사능 측정 기계를 한 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을 돌며 방사능 오염 수치를 측정하려면 한 대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방사능 측정 기계를 3대 더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모금하고 있다. 개신교 단체가 왜 이런 일에 나서게 됐는지 EYCK 총무 남기평 목사를 7월 5일, 한국기독교회관 EYCK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전 인근에 인구 밀집한 한국
한 번 사고가 대형 재난으로 이어져
원전 위험성 제기하려 지도 제작
방사능 측정 기계 구입 위해 모금

EYCK는 2017년 3월 일본에서 열린 '지속 가능 에너지 실현을 위한 세미나' 참석을 계기로 방사능 오염 지도 제작에 관심을 쏟게 됐다. 이미 탈핵의 길로 들어선 독일·대만 교회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들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후쿠시마 생존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하며 탈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마침 세미나 마지막 순서로 휴대용 방사능 측정 기계를 직접 만드는 시간이 예정돼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기계는 완성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YCK가 보유 중인 휴대용 방사능 측정 기계. 스마트폰과 연동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EYCK

같은 해 8월, 일본기독교단 소속 탈핵 운동가 가타오카 헤이와가 완성된 휴대용 방사능 측정 기계를 들고 EYCK를 방문했다. 가타오카와 일본·한국에서 참석한 청년들이 '한·일 공동 연수'의 일환으로 부산 고리원전 일대를 방문했다. 가타오카는 고리원전에서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3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남기평 총무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단체가 어떻게 핵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처럼 규모가 작은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지도 제작을 생각해 냈다. 방사능 측정 기계는 3초에 한 번씩 기록된다. 차로 이동하면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 원전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야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기에 걸어서 갈 수밖에 없다. 발품을 팔아서 방사능 오염 지도를 만들어 누구나 클릭만 하면 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제작에 돌입했다."

남기평 총무는 방사능 문제가 원전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에도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는 "한국의 한 시멘트 회사가 일본의 폐기물을 받는데, 매번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상이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 시멘트로 건물을 지으면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방사능에 노출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EYCK는 올해 하반기부터 분기별로 전국의 원전 주변 방사능 수치를 측정할 계획이다. 날씨와 기온에 따라 방사능 수치가 다르게 측정되기 때문에 기간을 길게 잡았다. 이후에는 대도시의 신축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 등을 돌면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할 예정이다. 수집한 수치를 지도에 기록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클릭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방사능 오염 지도를 준비하고 있다. 

영광 한빛원전 인근을 측정한 결과를 지도에 입력했다. 차로는 측정이 힘들기 때문에 걸어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사진 제공 EYCK

방사능 오염 지도 제작은 EYCK 구성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YCK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휴대용 기계는 한 대. 모금에 성공해 앞으로 세 대를 더 갖추면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방사능 측정 기계는 사용법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 지도 제작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대여를 신청하면 대여해 줄 의사도 있다. 모두가 함께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면 당장 전력 공급은 어떻게 하느냐는 현실적인 목소리도 있다. 남기평 총무는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약 2년 동안 모든 원전을 가동 중단했다. 그럼에도 블랙아웃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도 한 번에 모두 중단할 수는 없겠지만, 원전 이후 정책과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유독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다. 값싼 상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교회들은 교회 간판, 대형 십자가를 밤새도록 켜 놓는다. 남 총무는 "교회도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주일에는 힘들다 해도, 평일에는 일부 공간에서만 에어컨을 가동하는 방안도 있다. 대형 교회들부터 에너지 자립을 이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심 있는 사람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후원할 수 있다. 남기평 총무가 선물 중 하나인 머그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YCK가 시도하는 방사능 오염 지도 그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후원할 수 있다. 후원하는 금액에 따라 배지, 머그컵, 메모지 등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남기평 총무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그 주변은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탈핵은 결국 생명과 맞닿아 있다.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관심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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