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강호 지음 / IVP 펴냄 / 216면 / 1만 2000원
▲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 송강호 지음 / IVP 펴냄 / 216면 / 1만 2000원

나는 송강호가 불편하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는 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여름이었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는 월요일마다 국제 평화운동 단체 '개척자들'의 세계를 위한 기도 모임이 열렸다. 간혹 게시판에는 동티모르에서 열리는 평화 캠프 참가자 모집 포스터도 붙어 있었지만, 이슬람권 선교사 지망생이었던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이라크 전쟁 직전 이라크에 들어갔다가 한국에 잠깐 돌아와 현지 봉사 팀을 꾸릴 때 그를 만난 것이 고작이었다. 그 후 바그다드로 들어가던 중, 강도에게 돈과 카메라를 몽땅 빼앗긴 '개척자들'을 만나고는 '참 대책 없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나는 '개척자들'과 송강호란 사람을 거의 잊고 살았다.

강정에서 다시 만난 그

2011년 7월, 3년 반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 접한 소식은 송강호의 구속이었다. 놀란 가슴에 급히 강정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면회가 꽉 차 있어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강정천변 촛불 문화제 때 '짜잔' 하고 나타난 그는 내가 기억하는 부드럽고 조용한 송강호가 아니었다. 한 명의 '투사'로 변신해 감옥에서 돌아온 그는 많이 낯설고 놀라웠다.

광복절 다음 날은 강정에 공권력 투입이 예고된 날이자 '개척자들'의 제주 평화 캠프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서귀포경찰서를 전격 방문하였고, 곧이어 강정마을 일대에 대규모 경찰 병력이 배치되었다. '육지' 경찰들은 마을 주민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공권력 투입은 또 한 번의 기적처럼 '당분간' 유보되었고, 다음 날 나는 송강호의 '신나는 공무 집행 방해의 이론과 실제' 강의를 듣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중간에 나와 버렸다. '너무 과격하잖아! 왜 공무 집행을 방해해? 연행과 구속까지 감수하면서' 하는 반발심 때문이었다. 평화 캠프에서 빠져나온 나는 한동안 구럼비 주변을 방황했다.

구럼비를 잃고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다

그달 말, 강정 곳곳엔 '대한민국'이 신청한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 고시문'이 세워졌다. 그 고시문에는 강정마을회를 비롯한 평화 단체와 주민, 개인 활동가들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고, 이들이 다시 공사 현장에 들어가 공사를 방해할 경우 1회당 '2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 적혀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인 9월 2일 새벽 1000여 명의 무장 경찰에 의해 구럼비 바위로 가는 마지막 길이 막혔다. 폭력이 난무했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35명이 연행된 끝에, 우리는 구럼비를 빼앗겼다.

그때부터 송강호의 진가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육로가 막히자마자 해상 팀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 캠프에 참가하여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활동가들로부터 미군 기지에 대항하는 카약 해상 투쟁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에이, 저런 걸 실제로 하게 되겠어?' 했다. 그런데 별명이 '물귀신'인 그의 곁으로 오징어, 참치, 꽁치, 돌고래 등 얼핏 '해물탕 재료' 같기도 한 몇몇이 모였고, 그들은 해상 준설 공사를 하는 바지선과 구럼비 발파를 막기 위한 실제적인 계획을 세우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연행되던 때였다.

구럼비, 그의 기도 자리

그 여름, 평화 캠프를 빠져나온 이유를 묻는 송강호에게 이렇게 변명했다. "난 여기 싸우거나 외치러 온 게 아니라 기도하러 왔단 말이에요." 그러나 기도는커녕, 시시 때때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에 눌려 숨조차 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정작 기도하는 사람은 송강호였다. 그는 새벽마다 자신의 기도 자리인 구럼비 바위에 올랐다. 구럼비로 헤엄쳐 가다가 해군에게 폭행당하고 연행되어 조사받고 풀려나는 게 한동안 그의 '일상'이었다.

작년 10월에 시작된 '강정 평화학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초-심화 과정을 만들고, 이를 수료하면 즉시 현장에서 평화 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 의식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잠깐 평화 운동에 참여해 봤을 뿐, 평화학을 공부해 본 적도, 평화 활동가로 훈련 받아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참 버거우리만치 뼈아픈 조언이었다.

비록 나는 현장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평화학교 학생들이 '최전방'을 경험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기상 상황이 허락하면 해상 팀 훈련과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연행되지 않고' 구럼비에서 야외 수업하던 날의 환희를 잊을 수 없고, 구럼비에 철조망을 치기 직전 학생들과 함께 공사 현황 감시 활동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셀 수 없이 연행된 그를 면회하러 간 평화학교 학생들에게 "생명, 평화, 정의와 하나님나라"에 대해 5분 강의를 할 때, 제주 동부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을 가득 채운 뜨거운 눈물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훨씬 많은 경우, 나는 송강호를 보면 경외감과 함께 자괴감이 들었다. 1월 26일 강정포구 쪽에 해상 준설 공사를 위한 바지선이 떴을 때, 송강호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한 일도 없이 연행된 적이 있었다. 또 3월 어느 날에는 구럼비를 발파하려고 1.5톤이나 되는 폭약이 투입되었는데, 그날도 해상 팀은 말 그대로 '게릴라식 해상 작전'을 펼치면서 구럼비로 진입해 발파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열두 명 정도의 해상 팀이 해경과 곳곳에서 씨름하는 사이, 발파는 이미 다 끝나 버렸다. 그 난리통에도 송강호와 몇 명이 구럼비에 진입한 것을 보면서 '아, 그는 터미네이터급이구나.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는 자괴감이 찾아들었다.

우리들의 남루한 영웅

오늘도 중덕 삼거리 높다란 망루와 마을회관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을 든 그의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영웅화'로 문제 삼지 않는다. 그가 영웅이라면, 참으로 남루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영웅이며, 매일같이 얻어터지면서도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웅이고, 그래서 실상 '아무도 쉽게 따라할 수도 없고, 따라하고 싶지도 않을' 불편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아무리 번쩍인다 하더라도 그 지극한 실체는 '처형대'인 것처럼, 그는 추앙하기보다 외면하기가 더 쉬운 상징으로 중덕 삼거리에 걸려 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 그가 다시 구럼비에서 실제로 '피를 흘리며' 폭력적으로 연행된 날, 나는 강정에서 경찰에 의해 다친 활동가들 사진을 모았다. 망치에 맞아 피멍 든 손과, 카메라에 맞아 찢어진 이마, 그리고 '죽은 듯 누워 피 흘리는' 그의 사진 옆에, 가시관에 찢겨 피 흘리는 예수님의 사진을 배치했다. 그리고 이런 기도문을 달았다.

"주님의 고난, 저희 몸에 채우소서. 눈물이 주야로 나의 음식이 되었나이다."

위태위태한 길을 뚜벅뚜벅 걷는 그

그의 글과 말은 꼭 그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이미 자신의 사상과 신념 체계를 완성한 사람의 선언문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아간다. 그는 언젠가 이런 '분쟁 현장'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무시무시하지만 그것이,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기대하는 바다). 실제로 강정에서 그는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만났다. 이미 죽을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는 갈등의 낌새가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늘 비틀거리며 저만큼 뒤에서 주저하며 걷는 나 같은 인간은 가끔 미칠 지경이 된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기독교 사회 참여의 극단적 예'일 것이다. 같은 예수쟁이들 안에서도 이해는커녕 비난받을 수 있는 위태위태한 길을 그는 뚜벅뚜벅 걷고 있다. 극한의 고통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붙드시는 손'에 이끌려 '세상이 줄 수 없는 비밀스런 주님의 평안'을 경험하면서. 그의 용기와 초인적 인내, 정의를 위한 희생과 고난은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이야기를 다 읽을 즈음 당신도 나와 같은 고민에 빠질지 모른다.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목격하고 나면 그 분을 경배하든지 미치광이 취급하든지 결단해야 하는 것처럼, 단언컨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패거리'가 되어 그와 함께 걸을지, 모른 척 가던 길을 계속 갈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냥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정도로 그칠 수만은 없는 불편함과 갈등 또한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두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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