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위반으로 기소돼 제주교도소에 구속 수감된 평화 활동가 송강호 박사가 보내온 옥중 서신입니다. 송강호 박사는 구럼비 발파 8주기를 맞은 3월 7일, 활동가 한 명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강정 해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바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해군에게 고소를 당해 구속됐습니다. 송 박사는 강정마을이 회복되고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개편지를 <뉴스앤조이>에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평화 활동가로서 군사주의와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옥중 서신은 격주 간격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문재인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코로나바이러스로 온세상이 참혹한 재앙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가 이 사태를 잘 관리하고 극복해 나가게 해 주시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3월 7일 제주 해군기지에 철망을 자르고 들어가 구럼비바위에 두 시간 정도 머물며 기도했던 일로 현재 제주교도소에 구속 수감되어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관함식 행사로 제주 해군기지에 오셨을 때 기지 안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구럼비바위를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해군기지에 들어갔던 날은 8년 전 해군이 기지 건설을 위해서 구럼비바위를 폭파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과 같은 날입니다. 저는 그날의 아픈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한 우리나라의 자연유산을 망가뜨리면서 지켜야 할 국방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깊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12월 말 배철수 씨가 사회를 보았던 '국민과의 대화' 공개방송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마지막 질문자는 제주도민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대답하시며 갑자기 강정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는 이미 끝이 났다고 하셨을 때 저는 대통령님 주변 참모들이 대통령님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함식날 대통령님은 강정마을회관을 방문하셔서 주민들을 만나고 가셨지만, 정작 기지 건설을 반대했던 주민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대통령님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길이 아닌 다른 새로 난 길을 통해 마을회관으로 가셨기 때문에 만나실 수 없었습니다. 그 길에는 반대 주민 대표격인 강동균 전 마을회장과 나이 드신 천주교 사제 문정현 신부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님,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해군기지 앞에서는 기지 폐쇄를 기원하는 100배 절 명상을 드리고 있고, 정오에는 손에 손을 잡고 해군기지 폐쇄를 상징하는 인간 띠 잇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모두 외지에서 온 전문 시위꾼이라고 비난하지만, 강정에서 10년 이상을 머무르며 살아온 사람을 마을 주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강정마을이 예전보다 조용해진 것은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 정부에는 대항할 수 없다는 절망과 환멸이 가져온 굴욕적인 상황에 대한 묵인입니다.

대통령님, 국가 안보가 헌법의 가치보다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심보다 귀중한 것입니까?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 북한이나 중국입니까? 무기와 군대가 부족해서 우리나라가 현재의 국난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이제 국방의 개념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아닙니까? 코로나 난국을 지혜와 성실로 현명하게 극복해 온 우리 대한민국이 동북아시아 평화을 위한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국방 전략을 만들 수 없겠습니까?

대통령님은 어제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의 표준이 되는 선도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지 방역뿐 아니라 국방에 대한 세계 표준의 선도를 포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온 세계가 넘어 보지 못한 문턱을 대한민국이 먼저 넘어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무기와 군대를 통한 안보에서 외교와 친선, 문화 교류와 상호 신뢰를 통한 안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군사력에 의한 안보는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평화에 의한 안보라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 나가는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새로운 시도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유산을 담보로 한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통령님이 온 국민을 이 길로 함께 나가자고 설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사의 새 시대를 여는 평화혁명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데는 뜻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이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폭력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 나갈 운명이 바로 그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대통령님, 현명한 지혜와 뛰어난 기술력, 아름다운 문화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지키고 이웃 나라와 평화로운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2020년 5월 10일
한라산 중턱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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